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를 통해 본 미국 민주당의 대권 레이스

바이든 전 부통령과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율은 각각 4%, 5%씩 상승

장성민 전 의원 | 기사입력 2019/05/21 [08:23]

2020년 11월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가 18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공화당의 현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再選)에 성공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이 4년 만에 정권을 되찾아 올 것인지 여부에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이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현재 가장 큰 관심의 초점은 과연 누가 트럼프의 대선 경쟁상대가 될 것인가에 쏠려 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예상 밖의 패배를 당했던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전 국무장관이 지난 3월 5일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그야말로 무주공산(無主空山)하에서 20여 명의 후보들이 난립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 동안 부통령직을 수행한 조 바이든(Joseph R. Biden Jr.) 전 부통령이 지난 25일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리고 그의 출마선언 전후에 실시된 워싱턴포스트-ABC뉴스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은 다른 민주당 후보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들은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장성민 전 의원.     ©브레이크뉴스

올해 나이 76세로 세 번째 대권도전에 나선 바이든이 20여 명에 달하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72세인 트럼프 대통령과 내년 대선에서 격돌할 수 있을까? 그의 대선 후보 레이스에서 떠오른 가장 큰 변수 중의 하나는 전직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 여부이다. 8년 동안 러닝메이트로 지낸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떠했고, 그것이 이제 막 시작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바이든 전 부통령은 과연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내서 민주당 후보로 지명 받을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서 내년 미국 대선을 향해 본격화된 민주당 대선 후보 레이스의 후보 윤곽과 이슈들을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한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와, 달라도 너무 다른 조합으로 8년 동안 민주당 정권을 이끌었던 ‘오바마-바이든’의 관계를 파헤친 <뉴욕타임스> 기사를 들여다봤다.


 * “바이든이 2020년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 경쟁자들보다 근소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민주당 유권자들은 아직 후보를 결정하지 않았다”


(Biden holds a slight advantage over nearest 2020 rival, but Democrats are far from making a decision)

https://www.washingtonpost.com/…/7749e8c2-66d8-11e9-a1b6-b2

 

워싱턴포스트와 ABC 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선 캠페인이 시작된 지 4개월이 지났는데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는 대다수 유권자들이 아직 후보자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전히 윤곽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현재 어느 후보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민주당원과 민주당 성향 유권자의 54%가 선호 후보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그동안 많은 출마 선언이 이어졌고, 이른 시기에 예비선거와 당원집회가 있는 주(州)에서의 활발한 선거운동이 펼쳐졌으며, 다수의 케이블 TV 타운홀 미팅 및 인터뷰와 지속적인 선거 기금 모금 호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의 56%에 비해 거의 변화가 없는 수치이다.

 

후보에 대한 선호에 응답한 유권자들 중에서는 조 바이든(Joe Biden) 전 부통령이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을 근소한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적어도 20명의 경쟁자들이 난립해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경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여론조사는 응답자에게 민주당 경선주자 명단을 제시하지 않고 직접 지지 후보를 말하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후보들의 명단 중에서 선호 후보를 결정하는 다른 여론조사에 비해서 후보들의 지지율 수치가 낮게 나타났다.

 

결과는 바이든이 가장 높은 1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9%를 얻어 2위를 차지했고, 피트 부티지지(Pete Buttigieg) 인디애나주 사우스밴드 시장이 5%로 3위, 카말라 해리스(Kamala D. Harris)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상원의원이 각각 4%를 얻어 공동 4위에 올랐다. 베토 오로크(Beto O’Rourke) 전 하원의원의 지지율은 3%였고, 에이미 클로버셔(Amy Klobuchar)ㆍ코리 부커(Cory Booker) 상원의원이 각각 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난 1월 조사와 비교해서 바이든 전 부통령과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율은 각각 4%, 5%씩 상승했다. 한편 1월 조사 당시에는 어떤 응답자도 그에 대한 지지를 보내지 않았던 부티지지 시장이 이번 조사에서 5%를 얻었고, 해리스 상원의원은 1월에 비해 4% 지지율이 하락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민주당 대선 후보 레이스가 ‘세대 간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65세 이상의 노령층에서는 25%, 40~64세까지의 연령층에서 24%의 지지를 받았지만, 40대 이하에서는 7%의 지지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한편 샌더스는 지난 2016년 대선 후보 경선 때 받았던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그는 40대 이하에서는 14%, 40~64세 그룹에서는 12%의 지지를 받은 데 반해, 65세 이상의 노령층에서는 불과 4%의 지지를 받는데 그쳤다.

 

한편, 민주당 성향 유권자들이 대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어떤 정치적인 특성이 정당의 후보로서 가장 중요한지를 놓고 의견이 팽팽하게 나눠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어떤 대선후보를 뽑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48%는 ‘민주당의 기본을 활성화할 수 있는 후보’를 꼽은 반면에, 44%는 ‘무당파 유권자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후보’를 꼽았다. 또한 응답자 10명 중 4명은 대선 본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 반면에, 약간 더 많은 응답자들은 ‘이슈에 대해 자신들과 가장 비슷한 입장을 가진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후보자들이 다가올 레이스 기간 동안 당선가능성과 정책 이슈에 대한 문제에 있어 유권자들에게 호소할 여지가 아직 많이 남겨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워싱턴포스트(WP)와 ABC뉴스 여론조사는 지난 4월 22~25일 민주당원과 민주당 성향 성인 응답자 1천1명을 대상으로 유무선(유선 35%, 무선 65%) 전화 응답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5.5%이다.


 * “바이든과 오바마의 ‘이상한 커플’ 관계가 가족 관계로 무르익었다”
(Biden and Obama’s ‘Odd Couple’ Relationship Aged Into Family Ties)

https://www.nytimes.com/…/…/politics/barack-obama-biden.html

 

4년 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Joseph R. Biden Jr.) 전 부통령이 대통령 경선에 나가지 말 것을 넌지시 압박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돌아왔고 자신을 오바마의 자연스러운 상속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선 경선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2015년 여름에 오바마의 묘책(trick)은 자신이 바이든을 레이스에서 낙마시키는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그를 보이지 않게 경선에서 배제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바이든이 선거 참여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을 때, 오바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2016년 대선이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결론내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바이든은 자신의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겨서 대단히 힘든 대선 마라톤 레이스를 치러 낼 마음상태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밀어붙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바이든으로 하여금 자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했다. 주례(weekly)오찬 회동을 갖는 동안, 오바마는 바이든에게 넌지시 자신의 생각을 주입했다. 결국 오바마는 자신의 전략가로 하여금 바이든이 경선에서 불리하다는 기(氣)를 죽이는 평가를 전달하도록 했다. 바이든은 훗날 “대통령이 자신의 출마를 원하고 있지 않았다”고 이를 인정했다.

 

대통령과 부통령으로서의 파트너십 7년 차에 있었던 이러한 힘든 시간들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멀어지게 했고, 두 사람의 연합이 가진 한계 또한 분명하게 보여줬다. 적어도 그 때에는 바이든이 오바마가 쌓은 전통의 맥을 잇게 되리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 문제는 바이든이 대통령 경선 참여를 시작하면서, 비록 오바마가 4년 전 자신이 낙마하는 데 일조했지만, 자신의 성공적인 대선 레이스를 위해 직전 민주당 출신 대통령으로서의 오바마의 도움을 활용할 수 있는가 여부이다.

 

바이든은 자기 자신을 오바마의 자연스런 계승자로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민주당원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피터 부터지지(Pete Buttigieg)나 베토 오로크(Beto O’Rourke) 와 같은 젊은 후보자들은 종종 자신들을 ‘새로운 오바마’라고 주장하고 있다. 바이든이 대선 출마 선언 이후에 오바마가 그를 칭찬했지만, 오바마는 후보지명전에서 어떤 후보를 지지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기질, 교육, 외모, 19년의 나이차 등에 의해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오마마와 바이든 둘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강력한 관계로 출발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민주당의 막내로서 2005년에 상원에 입성한 반면에 바이든은 1973년 이래로 자신의 경력과 지위를 높이면서 열심히 노력해왔었다.

 

오바마는 바이든이 고위 민주당 의원이었던 상원 외교관계 위원회에 배정되었다. 그러나 신참내기 오바마는 패널들이 실망스럽고 민주당 리더였던 바이든이 미치도록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한 청문회에서 바이든이 길게 거들먹거리며 말하자, 오바마는 한 보좌관에게 “지루하다 날 좀 깨워줘"(Shoot. Me. Now)라는 메모를 전달하기도 했다.

 

곧 오바마는 2006년 중간선거에서 다른 민주당원들을 위해 유세를 했고, 2008년 선거에 도전했다. 1988년 표절 스캔들 때문에 첫 번째 대권도전이 수포로 돌아갔던 바이든도 레이스에 합류했다. 그러나 그는 오바마의 ‘스타 파워’에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출마 선언하는 바로 그날, 오바마의 호소력에 대해서 “당신이 똑 부러지고 명석하고 깨끗하고 말쑥하게 보이는 첫 번째 주류 흑인출신 미국인”이라고 말하는 결례를 범하기도 했다.

여름철까지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을 따돌리고 후보 자리를 확정한 후에, 바이든은 러닝메이트 물망에 오른 3명의 후보 중의 1순위로 다시 이목을 끌었다. 처음에 바이든은 거부했지만, 오바마는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아웃사이더로서 후보가 된다는 것은 이례적인 선택이었지만, 오바마는 자신의 무경험과 아마도 그의 인종적 배경에 대해 걱정하는 유권자들을 안심시키기를 원했다. 또한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해 본 경험이 전무(全無)한 바이든에게도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이 그에게 이를 수락하도록 압박했다.

 

전당대회에서 그들의 파트너십이 공인된 후에도,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각자의 비행기를 이용해서 전국을 동분서주하며 선거운동을 했다. 그들이 승리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실제로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서로를 알게 되었다. 바이든은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 워싱턴의 기만적인 정치를 다뤄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현명한 멘토로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그들의 초기 나날들은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 번 이상 서로를 오해했다.

말이 앞서고 생각은 뒷전인 부통령이 경기 부양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있어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30%”라고 말했을 때, 화가 난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서 이를 일축하면서 “놀랄 것도 없이, 나는 조(부통령)가 무엇을 지칭하는 지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짜증이 난 바이든은 그들의 다음 번 사적(private) 오찬자리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오바마에게 자신이 이 행정부의 괴짜 ‘조 아저씨’로 그려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공개적으로 바이든을 폄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갖고 있었다. 회의에서 바이든이 자신의 긴 독백을 시작할 때면 보통 이에 짜증난 수많은 ‘눈알들이 굴러가는(eye rolling)’ 광경이 연출됐다. 부통령은 자신의 말을 실제로 끝내기 전에 “끝으로”라는 말을 4-5회 말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또한 후에 FBI 디렉터가 된 제임스 코미(James B. Comey)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주 명확하고 간결하게 ‘A’ 방향으로 대화를 주도하면서 회의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면 바이든이 어느 시점에 “대통령님, 제가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라며 거기에 끼어들었다. “오바마가 정중하게 동의하지만 그는 그 다음 5분 내지 10분 동안 우리가 ‘Z’ 방향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인내심을 갖고 바이든의 말을 듣는 기다림이 끝나면, 오바마 대통령은 대화를 원래 방향으로 되돌려 놓았다”


바이든으로서는 오바마의 사려 깊은 정책결정 과정을 불만스러워 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그가 지나치게 사려 깊었다”라고 외교적 언사로 기록했다. 바이든은 특히 오바마가 의회에 관여하는 데 주저하는 것에 화가 났다. 그는 대통령의 자문 팀들이 입법과정을 다루거나 통치를 위한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항상 능숙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조심스럽게 오바마를 따랐다. 바이든의 경제 고문이었던 자레드 번스타인(Jared Bernstein)은 “모든 것에 노련한 사람은 젊은이의 결정을 의심쩍은 눈으로 바라봤지만 어떤 분노나 적대감을 본 적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 재임 기간 동안 경기 부양 프로그램을 감독하고 이라크로부터 철군을 관리하며, 결과적으로 실패한 총기 규제 패키지를 마련하는 등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 가장 명확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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