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국 시리즈: 프롤로그

"한국을 쪼개야 한다구, 오후 4시까지."

김선흥 전 외교관 | 기사입력 2019/04/21 [14:30]

 

▲ 미국무부 발행     ©미지리협회


여기 분단 지도는 <미국지리협회> 사이트( https://uwm.edu/lib-collections/agsl-digital-map-collection)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미국 CIA의 기밀해제 지도 중에도 포함되어 있다. 1946년 7월에 제작된 이 지도는 아마 현존하는 최초의 한반도(조선반도) 분단지도가 아닌가 한다. 이 보다 더 빠른 분단지도가 있기는 하나 그건 만주를 포함한 광역지도이다(잠시 후 살펴본다). 미국의회도서관 사이트에서도 많은 한국 지도를 볼 수 있으나 이 보다 더 이른 한반도 분단지도는 찾지 못했다.

 

우리 땅의 허리를 가르고 있는 굵고 붉은 분단선이 시선을 잡아 끈다. 분단선 바로 아래쪽에는 큰 글씨로 ‘미국구역AMERICAN ZONE’이라고 새겨져 있다. ‘소련구역SOVIET ZONE’ 은 38선의 훨씬 북쪽에 적었다. 지도 제작자의 심리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해방을 맞았는데 왜 해방구가 아닐까?

 

좀 더 지도를 꼼꼼히 살펴보자. 지도 상단에 큰 글씨로 제목이 적혀 있다.

한국(KOREA):
점령구들 ZONES Of OCCUPATION

 

아래 글귀를 보면 ‘점령구 사이의 경계선Boundary Between Zones of Occupation’이라는 표기가 보인다.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기 위한 것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지도의 여백을 살펴보면  "Restricted(기밀)."이라는 글귀가 보이고 1946년 8월 12일 발행자로부터 선물로 받았다고 적혀 있다. 지도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지도제목- 한국: 미국과 소련의 점령구
발행인- 미국 국무부 지도정보 및 지도제작부
발간시기- 1946년 7월
주제- 한국의 역사/연합국 점령, 1945-1948

 

이상을 종합해 보면, 이 지도는 1946년 미국 국무부에서 기밀지도로 제작한 것을 미국지리협회에 기증한 것으로서 1945(해방)-1948(대한민국 정부수립)한국이 처했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지명 표기에 주목해 보자. 지도에서 지명 표기는 중요하다. 외세의 영향과 의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도는 일반적으로 우리말 지명을 표기하고 괄호 속에 일본식 이름을 병기하고 있다. 서울은 ‘경성(게이조 또는 서울)’이라 표기하고 있고 동해는 ‘일본해 Sea of Japan’이다. 제주도가 인상적이다.
 

▲ 제주도 퀠파르트     ©미지리협회


섬을 채우고 있는 퀠파르트QUELPART는 수 세기 동안 서양인들이 불렀던 제주도 이름이다. 아마 17세기에 화란인들이 작명했을 것이다. 위 쪽에 더 작은 글자로 제주Cheju라 표기하고 일본어 명칭 사이슈(Saishu)를 부기하고 있다. 우리의 고유 지명이 변경으로 밀려나 있는 모습이다. 지도에서 제주도의 지명을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외세의 발자국footprint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명을 보더라도 우리 땅이 진정으로 해방되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지명은 사람으로 치면 성명과 같은 것이다. 국토를 빼앗기면 지명이 창씨개명 당한다. 워싱턴에서 만든 이 지도에는 창씨개명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지도에서 이러한 암시는 중요하다. 미지리협회에는 분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도가 있다.

 

▲ 분단지도만주 및 주변     ©미지리협회

 

 

▲ 38선,미소 분할 점령     ©미지리협회


1945년 12월 10일 미국 전쟁부(육군부의 전신)가 만든 <한국과 만주의 광물 및 산업>지도이다. 주요 광물자원과 산업시설을 표시하고 있는 가운데 분단선이 또렷하다. 북녘에 광물 자원이 집중되어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수도는 경성이라 되어 있고 ‘게이조 혹은 Seoul’을 부기하고 있다. 제주도는 단지 ‘퀠파르트’로 표기되어 있다. 지도 여백의 상하단에 기밀(RESTRICTED)이라고 적었다. 38선을 가리키는 박스 안에는 ‘미소 점령의 분계선’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미소 양국이 38선을 코 앞에 두고 밀착 대치하고 있는 형상이다.

 

한국은 해방된 것인가? 재 점령당한 것인가? 해방의 감격은 무엇이었나? 당시 한국인들은 속힌 것일까? 이들 분단 지도를 보며 드는 의문이다.

 

이제 시선을 돌려 아래 18세기 한국 지도를 무심히 바라보자.

 

▲ 동국대지도 1755-1767,정상기(1678-1752)원작, 보물 제 1538호     ©국립중앙박물관


사막이나 초원이라면 직선 분할이 가능할까? 그러나 우리는 아니다. 수많은 산과 강, 구릉과 협곡, 들판과 개천이 서로를 기대고 포개고 잇고 적시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그 속에 사람들이 깃들어 살고 있다. 쪼갤 곳이 없다. 그런데 쪼개졌다. 왜 쪼개야 했을까?

 

▲ 수직 분할-위험한 푸딩 ,1851년 James Gillray작     ©미의회 도서관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 펜타곤의 한 사무실에 준장 몇 명이 허둥대며 들어왔다. “우리는 Koera를 쪼개야 한다. 어디에다 선을 긋으면 되는가?”라고 다그친다. 극동에 경험이 있는 한 대령이 “그럴 수는 없습니다. Korea는 하나의 사회적.경제적 단위입니다. 쪼갤 자리가 없어요”라고 대꾸한다. 장군들은 쪼개야 한다고 고집하고 대령은 그럴 수 없다고 버틴다. 장군들이 우긴다. “Korea를 쪼개야 한다니까. 오늘 하오 4시까지 해야 한다구.”
-John Gunther, (1951)

 

38선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낳았고 분단체제를 고착시켰다. 그 기하학적 선분은 해방을 며칠 앞둔 1945년 8월 어느 날 깊은 밤에 워싱턴에서 두 대령이 그었다. 그 중 본스틸 (Bonesteel) 대령은 나중에 주한 미군 사령관을 하게 되고 다른 한 명인 딘 러스크(Dean Rusk)는 나중에 국무장관을 두 차례나 하게 된다. 딘 러스크는 회고록< As I Saw>(1991)에서 이렇게 자백하고 있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훗날 큰 일이 되어 버린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는 일본군의 항복을 미군이 언제 어디에서 접수하느냐 하는 문제였는데 이에 대해 국무부와 전쟁부의 의견이 달랐다. 국무부는 가능한 최대한 중국의 북쪽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고자 했고 전쟁부에서는 미군이 주둔하지 않고 있는 중국 지역으로 진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중에 타협이 이루어졌다. 아시아 대륙에 미군을 어느 정도 유지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한반도에 일종의 상징적 발판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이 항복하기로 한 바로 그 날 심야에 챨스 본스틸 대령과 나는 옆방으로 갔다. 시간에 쫓기는 중압감 속에서 우리는 엄청난 과제를 떠안고 있었으니, 바로 한반도에서 미국의 점령구역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둘 다 한국 전문가가 아니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살피면서 서울 바로 위쪽에서 편리한 분할선을 찾아보았으나 자연적인 지리 분계선이 보이지 않았다. 그 때 38도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그걸 건의하기로 했다........

 

심야의 과로에 지친 두 대령이 건의하고 삼부조정위원회가 채택한 38선은 훗날 비운이 되고 말았다(proved fateful).”
-Dean Rusk, <(1991)-

 

미국의 국무.전쟁.해군 3부 조정위원회(SWNCC)의 존 머클로이(John J. McCloy, 당시 전쟁부 차관)가 두 젊은 대령에게 옆방에 가서 한국을 분할할 지점을 찾으라고 지시한 것은 8월 10일과 11일 사이의 자정 무렵이었다. 주어진 30분 안에 대령들은 지도를 보고 38도선을 선택했다. 미국측은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 한국인들과 전혀 논의하지 않았으며,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 계획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는 영국이나 중국의 의견도 묻지 않았다. 그 결정은 일방적으로 서둘러 내린 것이었다(브루스 커밍스).
 
여기에서 폭력적인 숫자 하나가 우리를 강타한다. 30분! 남들이 우리 땅을 쪼개는데 고작 30분이 소요되었다는 게 아닌가. 어떻게 그 30분이 무려 75년 동안이나 우리를 옭아맬 수 있을까?

 

딘 러스크의 표현을 빌면 38선은 하나의 ‘에피소드’였다. 하지만 그게 태평양 건너 우리에게 안긴 폭력과 모멸, 분열과 갈등은 거대하고도 깊다. 일본과 대조해 보면 그 역설이 보다 선명해진다. 즉, 순리대로라면 전범국인 일본이 쪼개졌어야 할 망정 피해국인 한국이 쪼개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거꾸로 되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동족끼리 전쟁을 벌였고 일본은 그 전쟁의 특수를 움켜쥐었다. 지금도 우리는 분단의 올가미를 운명인 양 목에 걸고 있다. 그걸 벗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도 있을까?.

 

한국의 분단에는 어떤 역사적 정당성도 없었다. 만약 어떤 동아시아 나라가 나뉘어졌어야 했다면, 그것은 (침략국인 독일처럼)일본이었다. 한국을 분단할 내부적인 구실도 없었다. …… 냉전을 연상시키는 모든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이분법이 한국분단의 이유였다. 그런 분열들이 세계적인 냉전이 개시되기 이전에 벌써 한국에 찾아왔으며, 다른 모든 곳에서 냉전이 끝난 오늘날에도 한국에는 남아 있다(브루스 커밍스, <한국 현대사>).
 
 

▲ 핵 항공모함 칼빈슨호,길이 333m, 폭77m, 비행갑판76.4m     ©미 해군


분단을 극복하고 외세로부터 궁극적인 자주 독립을 얻을 수 있는 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외세의 족쇄에 묶인 분단 조국에서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는가? 중립화 통일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김용중(金龍中, 1898년 ~ 1975년)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재미 동포였던 그는 독립운동가, 통일운동가, 민주화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중립화 통일론의 사도였다. 그는 1964년 박정희와 김일성에게 공개편지를 보내 이렇게 제안했다.

 

“1. 불가분의 조국을 그 본래의 상태로 복구시키기 위한 협상을 위하여 11명으로 구성되는 통일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수립할 것. 위원은 남북에서 각각 5명씩 선출하고 11번째 위원은 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할 것.

2.정치적 문제에 앞서 다음과 같은 긴급한 인도주의적 조치를 즉시 실시할 것.

.이산가족이 다시 합차도록 하고 그들의 거주지는 희망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나라의 양 부분 간에 무역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자유.

.남북 간 이주 및 여행의 자유.

.나라의 양 부분간의 우편, 전화, 전신, 수송 및 전력의 재개.

.전국을 통한 학술 및 체육활동에의 참가.

3.위원회의 지도 아래 한반도로부터 모든 외국군을 동시에 철수하고 남북의 병력을 국내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비개의 수준까지 축소시킬 것.

4.위원회는 38선에 있는 외국의 장벽을 철폐하고 군사정전위원회를 해체시키는 권한을 가질 것.

5.전국적으로 정부수립을 목적으로 하는 제헌의의 선거를 위하여 위원회의 지도와 감시 아래 비례대표제에 기초하여 실시되는 자유로운 전국선거를 준비할 것.

6.현재의 양 정권이 체결한 모든 협정, 조약, 공약을 무효화함으로써 미국과 유엔 및 인접 제국에 의해 보장되는 통일조국의 중립적 지위를 확보할 것.“

 

중립화 통일이 과연 외세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주독립을 이루는 방도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은 채 실제로 중립국을 이룬 나라들의 역사와 현주소를 탐험해 보도록 하자. <다음 호로 이어진다>

 

*필자/김선흥은 누구?

 

외무공무원 출신인 김선흥씨는 1980년 제14회 외무고시에 합격 후 외무부에서 근무하다 1990년 주네덜란드 대한민국대사관 2등 서기관으로 본격적인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오사카 영사, 상하이 부총영사, 칭다오 총영사 등을 역임했다. 2009년부터는 김대중평화센터 사무총장으로 재직했으며 DJ정부 국제의전비서관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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