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의 교훈을 잊었는가?

허태정 대전시장, 미국 공식방문 하루 늦추면서까지 홍역발생 후속조처 챙겨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 기사입력 2019/04/16 [16:47]

 

▲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영국인들 스스로 ‘복지국가라는 왕관에 박혀있는 보석’이라고 일컫는 것이 ‘국가보건서비스(NHS)’이다. 즉, 무상의료보호제도이다. NHS(National Health Service)는 “국유화되어 있으면서 국가의 일반예산으로 운영되고 원칙적으로 진료비는 무료이고(National), 병의 치료뿐만이 아니라 국민의 질병예방과 보건증진에도 똑같이 비중을 두며(Health), 개인의 지불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필요한 욕구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받는 공적인 봉사조직(Service)”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48년 노동당 정부에 의해 도입된 국가보건서비스는 영국에서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의료적·경제적 불평등을 사라지게 했다. 이제는 병을 다루는 서비스 못지않게 건강까지 다루는 서비스 제공으로 목표를 확장했다.

 

예방 가능한 조기사망을 줄임으로써 국민 건강을 높이자는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는 현대의 보건의료문제를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문제로 보는 것이다. 보건의료정책이 병원에서 지역사회보호로 바뀌고, 보건증진이 지역보건당국의 핵심기능이 됐다는 의미이다.  (사라 네틀턴, <건강과 질병의 사회학>, 조효제 옮김)

대전시는 지난 4월 9일 홍역 환자가 12명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이날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에는 한 살 안팎의 영아를 비롯해 홍역 예방백신을 한 차례만 맞은 20대 2명도 포함됐다.

 

이에 앞서 대전시는 지난 8일 홍역 예방 긴급비상대응 체계를 가동해 대전권의 6~11개월 영아 4천여 명을 대상으로 홍역 예방접종을 앞당겨 실시하고, 환자와 접촉한 이들에 대한 관찰에 나섰다.

 

대전시의 이 같은 조치는 지난달 28일 첫 홍역 환자가 발생한 지 11일 만에야 내려진 것이다. 15일 현재 대전시의 홍역확진 환자는 15명으로 늘었고, 환자접촉자는 1662명으로 파악됐다.
 
홍역은 감염병의 일종이다. 감염병은 개개인이 감당하기 벅차다. 혼자 조심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홍역은 바이러스에 의해 전파되기 때문에 감염속도가 빠르다. 홍역은 그래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건강을 위협하는 위험, 그 중에서도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라고 칭한다. 영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국민이라면 누구나 건강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홍역과 같은 전염성이 강한 질병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것도 긴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매우 신속한 조치가 요구된다. 대전시가 이번에도 비상대응체계를 제때 가동하지 못하는 등 방역체계에 허점을 보인 것은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감염환자가 발생하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질병발생 경위 등의 역학조사와 함께 확산방지를 위해 환자와의 접촉자 파악에 나선다. 의심환자가 나타나면 병원이나 자택 등으로 격리 조치한다. 이것이 질병관리본부의 감염환자 관리지침에 따른 매뉴얼상의 대응 절차이다.

 

절차상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환자의 감염확진 지역이 아닌 환자의 주거지 지자체가 이런 방역체계의 주체가 된다. 대전소재의 한 병원에 입원치료 중인 환자가 확진판정을 받으면 대전시가 방역조치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주거지 지자체가 초등 대응에 나서도록 돼있다.

이번 홍역발생은 충남 공주에 사는 어린 환자가 대전 소재 소아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중 홍역으로 확진됐다. 따라서 공주시가 나서서 역학조사와 접촉자 조사 등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환자발생 확진지역인 대전시도 발 빠른 조치를 했어야 했지만, 신속한 비상대응 과정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홍역환자가 입원한 병원 쪽은 확진판정이 나자 주거지인 공주시는 물론 발생지역 관할당국인 대전시 서구보건소에 동시에 통보했다고 한다. 주거지 지자체인 공주시로부터의 통보를 받느라 방역대응이 늦은 것이 아닌 것이다.

 

확진 날자가 주말·휴일에 속해서 통보사실을 뭉갰을 수도 있으나, 어찌됐던 비상 방역대응 골든타임을 놓쳤다. 그 사이 확진환자와의 접촉자는 1600명 넘게 늘어났다. 잠재적 홍역의심 환자가 열흘 남짓 동안 그토록 많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이원적인 대응체계가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협진적인 방역대응이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발생지 방역당국의 조처를 한발 늦어질 수밖에 없다. 대응이 늦어지면 환자 수가 늘어나기도 하지만, 공포심도 덩달아 확산된다.

 

대전은 2015년 5월 186명이 감염돼 38명이 사망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때  세 번째로 감염확진을 받고 환자가 사망한 지역이다. 사실상 메르스 사태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곳이다. 그런 상황을 겪었음에도 감염병 대응체제가 개선되지 않은 채 아직도 이원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한심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메르스를 포함, 또 다른 질병의 창궐을 방역하는 체제정비를 하지 않았거나 안일하게 땜질로 일관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뒤늦은 대응이나 허술한 방역체제는 곧바로 시민의 공포로 이어진다. 유언비어의 양산도 뒤따른다. 사회적 혼란이 일어난다.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환자의 치료와 확산여부도 촉각을 세워야 하지만 공포감에 따른 유언비어의 확산 등 사회적 혼란 유발요인에도 신경써야 한다.

이렇듯 감염병은 단지 의학과 보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응과 퇴치가 사회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별 환자의 격리나 마을단위의 봉쇄 등은 ‘사회적 배제’를 강제하는 것이므로, 개별 환자 및 발생 지역과는 대화의 채널이 확보돼야 한다. ‘위험소통’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위험소통은 작은 정보라도 지역사회가 함께 공유해 불필요한 불안과 공포감을 낮추는 것이다. 위험에 대해 정확히 정의하고 쌍방향으로 전달해야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이번 홍역사태를 보면 대전시가 종합적인 사회적 해결과정은커녕 메르스 사태의 교훈도 되새기지 않은 것으로 보여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회복지제도는 특별한 계기를 맞을 때마다 기존 체계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서 발전해 왔다. 국가보건서비스(NHS)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영국을 승리로 이끈 국민의 희생에 보답하는 무료의료보호체계이다.

 

이제는 병을 다루는 서비스에서 건강을 다루는 복지서비스체계로 입법취지를 전환하고 있다. 최저임금법, 아동급식법 등 20세기 초 영국의 각종 사회개량입법들도 1899년 보어전쟁으로 나타난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를 개선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전쟁을 계기로 부족하고 허술한 복지체계를 바꿔나갔던 것이다.

대전은 충청권 방역체계의 권역별 거점도시이다. 대전시도 전쟁이라는 국가적 재앙은 아니더라도 메르스 사태처럼 재해에 준하는 감염병의 창궐과 이번의 홍역발생을 계기로 보다 촘촘한 새로운 방역체계를 세워야 한다. 전통적인 의료적 대처방안 마련 이외에도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응하는 사회적 해결체계의 확립을 종합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굳이 오늘(16일) 5주년을 맞는 ‘세월호 참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국가나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조그만 사건·사고가 사회적 참사로 확대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경험해 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허태정 대전시장이 미국 공식방문을 하루 늦추면서까지 홍역발생 후속조처를 꼼꼼히 챙긴 일이다. 시민들의 불안을 다소 해소시키고 보건행정에 대한 신뢰를 가져올 수 있는 발판을 쌓은 것이다.

 

대전시 공무원 조직도 이런 노력으로 시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본연의 업무를 다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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