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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223) 민요밴드 씽씽(SsingSsing) 그들은 누구인가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11/19 [11:15]

세계무대에서 주목을 받는 퓨전 민요밴드 씽씽(SsingSsing) 의 전통 소리꾼 이희문과 신승태의 화려한 여장은 씽씽밴드하면 금방 떠오르는 상징이다. 이에 대하여 소리꾼 이희문은 우리의 전통 무속에서 신을 섬기는 박수(남자)의 양성적인 의식으로 동양과 서양의 대중적인 소통을 위한 몸짓의 추구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은 씽씽밴드의 화려한 여장에 대하여 외국에서는 서양 대중음악의 록 장르인 글램록으로 쉽게 인식한다. 우리의 민속적인 무속에서 신을 안내하는 박수(남자)와 글램록이 지향한 신성한 우주의 공간까지 헤아려간 의식은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그 실체적 의식은 나름대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세계 모든 나라에 존재하는 성 소수자(sexual minority)의 사회적 현상과 문제에까지 맞물려 이래저래 씽씽의 여장 퍼포먼스는 성공한 콘셉트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역사적인 맥락을 헤아려 앞선 칼럼에서 글램록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정리하였다. 이러한 글램록을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 록 뮤지컬 ‘헤드윅’(Hedwig)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 가지 않을 수 없다.

        
          

▲ 퓨전 민요밴드 씽씽(SsingSsing) 출처: https://www.facebook.com/bandssingssing/     © 브레이크뉴스

 


인류사에서 사랑의 기원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최초의 작품은 플라톤(Plato. BC. 427~BC. 347)의 ‘향연’(Symposion)이다. 작품 ‘향연’에서 고대 그리스의 천재적인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BC. 445~BC. 385)는 사랑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태초의 인간은 두 개의 머리와 네 개의 팔, 그리고 네 개의 다리를 가진 남녀양성(男女兩性)을 지닌 결합으로 신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이에 제우스신이 신과 인간의 차별화를 위하여 둘로 나누었다. 이후 인간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자신의 반쪽을 항상 그리워하게 되었으며 이를 실현해주는 신이 바로 에로스(Eros) 신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발전한 이야기가 남자와 여자의 한 몸에서 갈라진 인간이 보편적인 이성애자라는 것이다. 이어 남자와 남자 그리고 여자와 여자의 한 몸에서 갈라진 이들이 동성애자가 되었다는 것이 성 정체성의 기원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작품이 록 뮤지컬 ‘헤드윅’(Hedwig)이다. 이 작품은 영화배우이며 제작자인 ‘존 카메론 미첼’(John Cameron Mitchell)과 미국의 음악가 ‘스티븐 트래스크’(Stephen Trask)의 우연한 만남이 계기가 되어 탄생하였다.
 
이들은 1994년 LA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 나란히 앉게 된 우연한 만남을 통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중 위에 언급한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전한 이야기를 들었던 음악가 ‘스티븐 트래스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그가 당시 뉴욕 소호에 있었던 성 소수자들이 출입하던 드랙퀸 클럽 ‘스퀴즈 박스’(SqueezeBox)에서 베이스 연주자로 활동하며 음악감독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배우 ‘존 카메론 미첼’이 ‘스티븐 트래스크’가 활동하는 ‘스퀴즈 박스’를 찾아가 드랙퀸 쇼를 관람하면서 헤드윅(Hedwig) 작품을 구상하여 대본을 썼다. 그는 대본을 쓰는 기간 스스로 여장을 하고 드랙퀸 클럽을 출입하였다. 그러나 그는 작품에서 성 정체성에 대한 단순한 포용이 아닌 인간의 현실적인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가슴에 품었다. 이와 같은 록 뮤지컬 ‘헤드윅’의 스토리는 미군과 사랑에 빠진 동독 출신의 소년이 결혼을 위해 이름을 ‘헤드윅’으로 바꾸고 성전환수술을 하지만 실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록 가수의 꿈을 키우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다, 원제목은 '헤드윅과 성난 1인치(Hedwig and The Angry Inch)'이다. 이는 작품의 주인공이 활동하는 밴드 이름이며 실패한 성전환수술의 흔적으로 남은 남성의 상징성이다.

 

‘존 카메론 미첼’은 대본이 완성된 후 ‘스티븐 트래스크’에게 신화에 담긴 인간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자신의 반쪽을 항상 그리워하며 떠도는 운명적인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헤드윅’의 명 테마곡 ‘사랑의 기원‘(Origin of love)이 탄생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뮤지컬은 1994년 7월 소호의 드랙퀸 클럽 ‘스퀴즈 박스’에서 30분 공연으로 초연되었다. 이후 여러 부분을 보완하여 새롭게 탄생한 뮤지컬 '헤드윅’과 성난 1인치‘(Hedwig and The Angry Inch)는  1998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날 허드슨강 강가의 ‘제인 스트리트 시어터’(Jane Street Theatre)극장에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 극장은 1912년 타이태닉 생존자들이 묵었던 유명한 ‘리버뷰’ 호텔을 극장으로 개조한 것이다.

 

이와 같은 공연 중에 작품의 주인공이 꿈꾸던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1947~2016)가 공연장에 관객으로 직접 찾아와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또한 대표적인 록 매거진 ’롤링 스톤지‘는 록 뮤지컬의 역사 속에서 진정한 록을 선보이는 첫 번째 뮤지컬로 평가하였다. 이는 ’글램 록‘이라는 음악 장르에 담긴 화려한 여장으로 시대 정신을 깊은 울림과 몸짓으로 표현한 결과였다. 이후 뮤지컬 '헤드윅‘은 2001년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뮤지컬 또한 2014년 브로드웨이에 정식으로 진출하여 주요 음악제와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이와 같은 뮤지컬 ‘헤드윅’은 우리나라에서도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2005년 4월 대학로 라이브 극장에서 첫 공연이 열렸다. 오만석. 조승우. 송용진. 김다현. 이영미. 백주연이 초연한 이후 서문탁. 윤도현. 박건형. 이준 등에 이르는 수많은 연기자와 뮤지션이 출연하였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뮤지컬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인 한국 뮤지컬 ‘헤드윅’ 공연은 대만에도 수출되어 지난 8월 순회공연을 마쳤다.   

 

지난 2007년 5월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국내 뮤지컬 ‘헤드윅’ 콘서트에 원작자 ‘존 카메론 미첼’과 작품의 테마곡을 만들고 오리지널 공연에서 앵그리인치(Angry Inch)밴드 리더를 맡았던 음악가 ‘스티븐 트래스크’가 내한하여 화제를 가져왔다. 그들은 한국 뮤지컬 ‘헤드윅’을 직접 관람하지는 못하였지만, 동영상을 통하여 살펴본 소감에서 한국 배우들의 화려한 여장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으며 배우 중 성 소수자가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었을 만큼 한국 연기자의 뛰어난 여장 역할의 연기력을 인정하였다.    

 

필자가 이와 같은 많은 이야기를 살펴온 맥락은 우리의 퓨전 민요밴드 씽씽이 외국에서 주목받는 배경을 헤아린 것이다. 이는 미국 NPR 라디오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공연의 프로그램 담당자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밴드의 놀라운 공연이었다고 토로한 사실과 영국에서 열린 k-뮤직페스티벌의 개막 공연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로빈 덴슬로’기자가 괴물 밴드 씽씽의 등장이라고 평가한 내용이다.

           

▲ 미국 공영라디오 NPR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 스튜디오에서 출처: https://www.facebook.com/bandssingssing/ © 브레이크뉴스   


 

퓨전 민요밴드 씽씽(SsingSsing)은 우리의 전통 민요를 노래하는 그룹이다. 이에 외국어로 노래하지 않는다. 이렇듯 우리의 민요를 우리의 언어로 노래하는 그룹이 외국의 남녀노소를 아우른 관객들에게 큰 환호와 호평을 받는 것은 우리 국악 역사에서 엄밀하게 최초의 일이다. 이와 같은 퓨전 민요밴드 씽씽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에 대하여 살펴본다.

 

퓨전 민요밴드 씽씽(SsingSsing)은 전통 소리꾼 출신의 이희문(리드보컬) 신승태(보컬) 추다혜(보컬)와 이철희(드럼), 이태원(기타, 키보드), 장영규(프로듀서, 베이스)로 구성된 혼성 밴드로 2015년 결성되었다.

 

이와 같은 씽씽밴드의 탄생에 대하여 살펴보면 씽씽의 메인보컬 이희문이 2008년 설립한 음악 그룹 단체 ‘이희문컴퍼니’의 기획공연으로 구한말 일제 강점기 시대의 서울 경기지역에 소리꾼이 부르던 경기잡가에 담긴 이야기를 헤아린 2013년의 공연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잡’(雜) 에서부터 그 출발의 바탕을 살피게 된다. 이와 같은 공연 ‘잡’(雜) 은 정형화된 형식과 관습에 매여 있는 국악의 현실을 기성복에 비유하여 시대의 주문과 관객의 주문이라는 의식으로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order made repertory)라는 프로젝트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와 같은 의식으로 펼친 무대는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과 신명이 있는 열린 공연이었다.

 

이후 다음 해 국립극장 음악축제인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는 뜻을 가진 2014년 ‘여우락(樂)’ 페스티벌에서 화제의 무대를 펼쳤던 공연 ‘제비. 여름. 민요’의 실험적인 공연이 이어졌다. 당시 공연은 오랜 역사 속에서 민중의 삶을 노래한 전통 민요에 담긴 신명과 흥취를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하여 관객과 함께 소통한 화제의 공연이었다. 남도민요와 서도민요 그리고 경기민요와 함께 타령으로 어우러진 우리 음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지향한 대규모의 실험적인 공연이었다,

 

당시 공연에 참여한 구성원을 살펴보면 종합 음악그룹 비빙의 리더인 장영규와 전통 음악의 정체성과 현대적 비전을 제시하는 국악 작곡가 이태원 그리고 경기민요의 전수자 이희문과 국립창극단 소리꾼 정은혜에 이르는 실력파 멤버들이 주축이었다. 이어 전통 음악을 전공한 음악 동인 ‘고물’의 멤버 고진호(대금), 김솔미(해금-철현금), 배승빈(피리), 홍예진(피리), 홍상진(장구)과 경기소리 그룹 ‘앵비’의 김미림, 이미리, 성슬기, 채수연, 채주연,에 이어 경기 소리 프로젝트 ‘놈’의 멤버 김주현, 양진수, 이동근, 신승태에 이르는 19명의 다양한 경력의 뮤지션이 협연하였다. 또한 공연에서의 서양밴드의 구성은 베이스(장영규)와 기타(이태원)에 이어 드럼은 실험적인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와 보이(VOY)밴드에서 활동하였던 이철희가 연주하였다.      

 

‘제비. 여름. 민요’의 실험적인 공연은 전통과 현대와 동양과 서양의 감성을 아우른 ‘공동작업’(collaboration)과 이와 같은 경계를 넘나든 ‘크로스오버’(crossover)의 실체를 가장 극명하게 실현한 공연이었다. 이는 우리의 민요에 담긴 이야기를 음악과 연극 그리고 무용의 형식을 종합하여 관객과의 가장 대중화된 소통을 추구한 것이다. 당시 세대를 초월한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민요밴드 씽씽(SsingSsing)의 구성원인 여성 소리꾼 추다혜를 제외한 장영규(프로듀서, 베이스). 이태원(기타, 키보드), 이철희(드럼), 이희문(리드보컬). 신승태(보컬)가 바로 2013년의 공연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잡’(雜) 에 이은 ‘제비. 여름. 민요’ 공연무대의 참가 아티스트이다. 이와 같은 공연 이후 같은 해 2014년 12월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이희문 컴퍼니의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2번째 시리즈 ‘쾌’(快) 가 공연되었다. 이는 전통 민요에 담긴 유희의 즐거움을 매만진 의식의 종합무대로 서양의 글램록(glam-rock)에서 차용된 이희문의 화려한 여장이 등장하였다. 당시 첫 시리즈 잡(雜)에 이어 안무가 안은미의 연출과 음악가 장영규와 이태원이 작곡과 음악감독을 맡았다. 잡(雜)에 이어 쾌(快)에 이희문과 신승태가 출연하였던 공연은 두 번째 공연 쾌(快)에서 씽씽의 유일한 여성 보컬 추다혜가 새롭게 출연하였다.

 

씽씽밴드가 2015년 결성되어 그동안 열어온 여러 공연을 살펴보면 바로 이와 같은 실험적인 공연이 바탕이 되었음을 쉽게 감지하게 된다. 이는 우리의 노래를 부르는 소리꾼 3명과 서양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 3명으로 구성된 씽씽밴드가 짧은 결성 기간에도 불구하고 국내는 물론 세계무대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가 이와 같은 공연을 통하여 관객과 소통과 호응에 대한 주요한 포인트를 꼼꼼하게 살핀 맥락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민요밴드 씽씽의 구성원을 세세하게 살펴보면 씽씽의 활약이 감각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즉흥성이 아닌 멤버 개개인의 오랜 활동을 통한 경험에서 축적된 내공이 어우러진 것임을 알게 된다. 먼저 밴드에서 실질적인 연출과 베이스를 맡는 음악가 장영규가 살펴진다.

 

 

음악의 강을 유영하는 감성의 물결 장영규

 

이러한 장영규에 대하여 대표적으로 언급한 이야기가 있다. 인간의 본질적인 죄의식에 대한 깊은 사유의 미학을 영상에 담아내었던 영화감독 박찬욱이 어느 인터뷰에서 전한 말이다. 자신이 만난 두 명의 천재 중 그 한 명이 음악가 장영규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장영규의 주요한 이력을 살펴보면 먼저 현대무용단의 음악감독에서부터 살펴진다. 이는 우리의 몸짓으로 세계로 비상한 천재적인 무용가 안은미가 88서울올림픽 개막식 리허설 디렉터로 활동하던 당시 창단한 안은미무용단(컴퍼니)에 1991년 음악감독을 맡게 되면서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였다. 이어 1994년 홍익대 미대 조소과에서 공부한 미술가이며 배우이며 가수인 ‘백현진’과 국악고등학교에서 피리를 전공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악 작곡을 공부한 음악가 ‘원일’과 함께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를 결성하였다.

 

이후 인디밴드 록그룹 도마뱀의 리더 겸 베이시스트로 정우찬(기타) 이병훈(키보드-programming)과 함께 활동하면서 1996년 그룹의 1집 ‘피부 이식’을 발표하였다. 다음 해 1997년 어어부 프로젝트 멤버와 함께 제작한 음반 ‘손익분기점’이 발표되었다. 이 무렵 어어부 멤버 백현진과 함께 영화음악 제작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후 2002년 달파란’(강기영) ‘방준석’ ‘이병훈’과 함께 영화음악 제작그룹 ‘복숭아’를 설립하여 영화음악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는 2000년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 음악을 맡았으며 2004년 발표된 김인식 감독의 ‘얼굴 없는 미녀’의 영화음악으로 제12회 춘사대상영화제에서 올해의 음악상을 받았다. 장영규의 영화음악은 최동훈 감독의 2006년 영화 ‘타짜’에서 도입부(Intro)에 흐르는 인상적인 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어 2012년 ‘도둑들’ 그리고 2015년 ‘암살’에서 음악감독으로 최동훈 감독과 호흡하였다. 이후 나홍진 감독의 2016년 영화 ‘곡성’의 음악감독으로 제37회 청룡영화상 음악상을 수상하는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영화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2007년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만나게 된 고지연(가야금), 나원일(피리, 태평소), 최준일(타악), 오영훈(음향감독), 김지명(공연기획가) 등과 함께 음악 동인 그룹 ‘비빙’(Be-Being)을 결성하였다. 첫 기획 공연으로 2008년 불교음악 프로젝트 ‘이(理)와 사(事)’를 공연하였으며 이어 2009년 가면극음악 프로젝트 ‘이면공작’(裏面工作)과 2011년 궁중음악 프로젝트 ‘첩첩’(疊疊) 을 통하여 우리의 전통에 담긴 소중한 정신을 현대적 살핌이라는 의식으로 펼친 매우 뜻깊은 공연이 연속 기획되었다.

 

이와 같은 장영규의 경력에서 살펴지듯이 대중음악과 무용에서부터 연극과 영화와 전통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펼쳐온 뛰어난 감성이 퓨전민요밴드 씽씽에 주요하게 녹아내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전통민요에 담긴 신명과 애환의 감성을 서양음악 록과 접목하여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계무대에 직선으로 달려간 승부수에서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는 글램록이라는 장르의 특성적인 여장의 차용과 서양악기로 구성된 밴드의 익숙한 비트와 리듬이 이국의 전통적인 음악에 담긴 신명을 가장 빠르게 소통하게 되는 효과를 낳았다. 바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여 많은 경험에서 체득된 감각이 흥건하게 녹아내린 느낌이다.

 

장영규 그는 음악이라는 강을 유영하는 감성의 음악가이다. 대중음악에서 전통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넘나들면서도 그는 굳이 음악의 장르를 구분하려 들지 않는다. 태초에 감정을 담아 소리로 전하였을 누군가의 음악에서부터 오늘날 첨단 음향을 덧칠한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오직 음악이라는 강으로 흐르는 물결로 헤아린다. 이와 같은 경계와 담장이 없는 의식으로 매만진 씽씽의 음악이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계인의 가슴에 신명의 음악과 몸짓으로 흐르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날개로 나는 새 이태원 

 

퓨전 민요밴드 씽씽에는 음악의 강으로 흐르는 감성의 물결과 같은 장영규와 함께 우리의 날개로 나는 새와 같은 기타와 건반을 맡는 이태원이 있다. 이태원은 국립 국악고등학교와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1997년 무렵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음악을 맡았다. 이어 2001년 가야금 앙상블 사계(四季)의 1집 음악감독으로 활동하였다. 이 무렵 민족음악연구회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2002년 전통음악의 음계 이론에서부터 전통음악의 역사적 기원과 구조의 범주에 대하여 단절된 인식의 복원에 대한 중요성을 헤아린 저서 ‘떨림과 살림’을 출판하였다.

 

그는 2001년 전통음악의 국악 단체 정가악회의 음악감독으로 2005년까지 활동하였다. 또한 숙명 가야금 연주단의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2002년 국악 기악을 전공한 7명의 연주자 홍예진(가야금). 김솔미(양금). 고진호(대금). 배승빈(피리). 이유경(해금). 홍상진(장구)으로 구성된 국악 실내악 음악 동인 ‘고물’을 결성하여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이태원은 우리 전통음악의 원형과 현대음악의 흐름에서 우리의 것으로 흐르는 음악에 대한 많은 열정을 쏟아온 음악가이다. 그는 전통 음악에 대한 분명한 이론적 바탕과 함께 서양음악의 현대적 감성을 관통한 음악가이다. 이와 같은 그의 음악적 활동에는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신국악이 우리의 것으로 날지 못하는 새라는 의식이 존재한다. 이는 전통과 현대라는 양날의 칼을 만져본 음악가의 깊은 고뇌의 의식이다. 세상의 동물 중에서 가장 회귀본능이 강한 생명은 새이다. 문득 이와 같은 새의 회귀본능을 노래한 시성 두보(杜甫)의 시 무가별(無家別)의 ‘숙조연본지’(宿鳥戀本枝) ‘안사차궁서’(安辭且窮棲) 한 구절이 스쳐 간다, 잠드는 새도 옛 가지를 그리워하는데 내 어찌 궁색한 곳인들 여기를 떠나겟느냐 하는 뜻이다.

 

우리의 날개로 나는 새와 같은 전통음악을 추구하는 그의 의식은 전통적인 정신을 소재로 극히 간결하고 순백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특히 우리 전통 음악의 가장 오랜 역사의 이론적 자료를 현대에까지 전한 가야금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으며 연극 음악에도 많은 열정을 쏟았다.  

 

그가 오랫동안 이끌어온 음악 동인 ‘고물’의 공연 중에서 지워지지 않는 여운의 공연이 있다. 현대의 가장 주요한 키워드인 디지털의 비전과 방향성을 살펴 가는 2012년 제6회 시네마 디지털 서울영화제(CINDI)에서 고 하길종(河吉鍾. 1941~1979) 감독의 1969년 미국 UCLA 대학원 졸업작품이었던 단편영화 ‘병사의 제전’(The Ritual for a Soldier) 필름이 발굴되었다. 이 작품영화는 MGM에서 매년 4명의 학생에게 지급하는 메이어그랜트상을 수상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사운드가 유실된 채로 발굴되어 끝내 사운드 복원에 실패하였다.

 

암울한 시대의 그림자인 젊음의 열병을 그려낸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통하여 시대의 정신으로 살다간 하길종 감독의 실험영화 ‘병사의 제전’은 인간성의 회복을 동양적인 의식으로 추슬러간 초현실주의 경향의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이를 음악 동인 ‘고물’이 영화의 상영과 함께 이루어진 라이브공연으로 잃어버린 영화의 소리를 예술로 승화한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날개로 나는 새와 같은 이태원이 우리의 민요를 부르는 씽씽밴드의 기타리스트이다, 이는 감성의 음악가 장영규와 함께 씽씽밴드의 양 날개와 같은 의미가 있다.    

 

 

세계에 선 여장 소리꾼 이희문

 

▲ 고주랑 이희문 母子 / 이춘희 명창 / 현대 무용가/ 안은미https://www.facebook.com/bandssingssing/     © 브레이크뉴스



퓨전 민요밴드 씽씽의 메인보컬 이희문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전수자이다. 그는 ‘경기민요’ 명예 보유자인 묵계월(墨桂月. 1921~2014) 명창의 이수자 고주랑 명창의 아들이다. 모태의 재능을 가졌던 그에게 정작 소리를 시작할 기회가 찾아온 것은 그의 나이 27세였다. 어려서부터 가수의 꿈을 가졌던 그는 어느 소속사에 들어가 연습생이 되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군에 입대하였다. 군 제대 후 가수의 꿈을 접고 프로듀서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동방학원영화전문학교에서 프로모션 영상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뮤직비디오 회사에 취업하여 프로듀서의 꿈을 매만지던 때에 어머니와 함께 관람하러 갔던 어느 소리 공연장에서 흥얼거리는 그의 소리를 들은 어머니의 친구 이춘희 명창(경기민요 보유자)이 소리 공부를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춘희 명창에게 공부하였다. 소리를 공부한 지 두 달만에 모태의 재능이 빛을 발하여 민요경창대회에서 연속 입상하면서  서울예술대학교 한국음악과와 용인대학교 국악과 그리고 중앙대학교 국악 교육대학원에서 전통음악 이론과 함께 소리를 공부하였다. 이후 경기 12잡가 전곡을 녹음한 음반을 발표하면서 소리꾼 이희문의 뒤늦은 탄생이라는 국악계의 평가를 받으며 2014년 KBS 국악 대상을 수상하였다.  
 
뒤늦게 출발한 소리꾼 이희문은 뒤늦은 만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예능인이었다. 이에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는 의식이 강하였다. 이에 국악인 어머니와 스승 이춘희 명창과 인연을 가진 국악계의 보편적인 여러 기대와 달리 이희문 스스로 자신의 방향성에 대한 번민과 갈등의 폭이 크게 다가올 즈음에 천부적인 감각을 가진 예술적인 스승을 만나게 된다. 바로 세계적인 현대 무용가 안은미 예술감독이다. 2007년 우리나라 ‘바리데기 공주’ 설화에 담긴 이야기를 춤과 소리와 관현악으로 아우른 무용극 ‘바리’-‘이승’ 편을 기획한 안은미 무용가는 소리꾼 이희문을 살펴본 첫 느낌에서 그의 소리와 몸짓에 담긴 여성성을 감지하였다. 이에 2007년 9월 13일 아르코 예술극장 무대에서 바리공주역을 맡아 열연하면서 이희문의 첫 여장이 시작되었다. 또한, 그는 이 무대를 통하여 세계적인 무용가 안은미와 소통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인물들과 교유하게 되면서 시대의 감성들을 접하게 되어 소리꾼 이희문에게 잠재되었던 여러 갈래의 끼가 쏟아져 나왔던 사실도 오늘의 이희문이 존재하게 된 주요한 바탕이라 할 것이다.

 

이후 2008년 설립한 음악 그룹 단체 ‘이희문컴퍼니’의 기획공연으로 경기잡가(京畿雜歌)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헤아린 2013년 공연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잡’(雜)이 있었다. 이후 2014년 12월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열린 주요한 전통음악의 근원인 무속의 굿판에 담긴 역사적인 감성을 헤아린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2번째 시리즈 ‘쾌’(快)의 공연에서 무용가 안은미는 예술감독을 맡았고 장영규와 이태원은 음악감독과 작곡을 맡아 소리꾼 이희문의 새로운 비상을 예고하였다. 특히 전통 민요에 담긴 유희의 즐거움을 매만진 2번째 시리즈 공연 ‘쾌’(快)에서 양성(兩性)의 모습을 가진 굿판의 박수(남자)를 등장시키며 서양의 글램록(glam-rock)에서 차용된 이희문의 더욱 화려한 여장이 등장하면서 씽씽밴드의 퍼포먼스 바탕이 되었다. 이어 2016년에 공연된‘오더메이드 레퍼토리’ 3번째 시리즈 ‘탐’(貪) 에서는 전통소리와 클럽문화의 음악적 접목과 융합에서 오는 전통과 현대의 시대의 감성을 헤아렸다. 이와 같은 실험적인 여러 공연을 바탕으로 씽씽밴드의 오늘이 존재하는 것이다.   

 

씽쌍밴드의 메인 보컬인 소리꾼 이희문의 소리는 분명한 특성이 있다. 이는 이야기에 담긴 다양한 표현을 나타내는 판소리와 달리 경기민요는 가사에 담긴 정서와 감성의 특성으로 대체로 청아한 방울목을 요구한다. 이에 여성적인 음색과 성량에 적합한 구조의 음악이 경기민요이다. 이와 같은 경기민요의 음악적 특성을 가진 경토리를 차용하여 판소리의 음악적 표현을 더욱 섬세하게 추가한 내용이 경드름이다. 이에 덧붙여 설명하면 기본적으로 판소리의 복심에서 통으로 올려 지르는 통성(通聲)에서 얻어지는 탁성의 고음 수리성은 무한한 노력의 득음에서 얻어지는 최상의 소리이다. 이와 같은 득음에서 얻어지는 소리가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난 소리 천구성(天口聲)은 애조의 호소력이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소리이다. 이와 같은 판소리와 달리 경기민요의 발성에 특성은 남도민요의 판소리적인 목을 눌러내는 듯한 소리이거나 서도 민요의 콧소리를 끌어내리는 소리와 확연하게 다른 부드러우면서도 애틋한 빛깔을 머금은 여성적인 소리의 특성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이희문의 소리는 여성 소리꾼이 부르는 경기민요와 또 다른 요소가 많다. 바로 이희문 특유의 여성성을 품은 음색의 성량을 가진 소리이다, 물론 이희문보다 훨씬 여성적인 음색과 소리를 가진 소리꾼은 많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모호한 경계선을 오가는 음색과 소리는 흔치 않다. 이는 애조의 가락과 선율에서 많은 차이를 갖게 된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의 입장에서 더욱 전문적인 이야기로 나서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소년 시절을 목포에서 보내면서 정규 극장이 아닌 가설 공연 무대라는 뜻으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나일론 섬유를 뜻하는 방언의 ‘나이롱극장’이라는 소리 전문 무대 공간을 훤히 내려보는 집에서 살았던 관계로 훗날 국악계를 주름잡았던 명창들의 소리를 날이면 날마다 귀에 달고 살았다. 이후 서울에 올라와 정신적인 스승이었던 당대 서화의 독보적인 감식안을 가졌던 전남 진도 출신의 석학 남계(嵐溪) 박진주(朴鎭柱. 1931~2004) 선생의 서실을 드나들며 소년 시절에 들었던 소리의 명창들을 두루 보았다. 박진주 선생은 전남 진도 출신의 당대의 서예가 소전(素荃) 손재형(孫在馨. 1903~1981) 선생의 제자이다.

 

손재형 선생은 조선조 후기의 당대의 석학이며 예술가였던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선생이 제주 유배 시절에 그린 국보 180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세한도(歲寒圖)를 목숨을 걸고 일본에서 찾아온 장본인이다. 이는 세한도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일제 강점기 시대에 경매에 나오게 되었다. 이를 당시 서울대학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있던 ‘후지츠카 치카시’(藤塚璘, 1879-1948)가 이를 낙찰받았다. 그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학문과 예술에 매료되어 그 누구보다 깊은 연구와 자료를 모았던 인물이었다. 그가 1944년 일본으로 돌아가며 세한도 또한 일본으로 건너갔다.

 

손재형 선생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본 도쿄로 건너가 무려 두 달 동안을 매일 후지츠카 교수를 찾아가 '세한도'의 양도를 요청하였다. 이에 후지츠카 교수는 아들을 불러 손재형 선생 앞에서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세한도' 작품을 손재형에게 양도하라는 뜻을 전하고 돌아갈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손재형 선생은 전쟁 중인 나라에 작품을 남겨두고 돌아갈 수 없다며 다시 한 달여 동안 매일 집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후지츠카 교수는 그대는 나보다 이 작품을 더 아끼는 사람이며 그대의 나라의 작품이니 가져가라는 말과 함께 세한도 작품을 내주었다. 이와 같은 목숨을 걸고 찾아온 세한도는 나라를 대표하는 예술품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소전 손재형 선생의 제자 남계 박진주 선생은 우리나라 주요한 도서 전적의 서지 목록을 정리한 숨은 공로자이다. 이는 왕실의 이왕가 도서관이 1918년 장서각(藏書閣)으로 이름을 바꾼 이후 1950년대 말에 낙선재본을 규합하여 1964년에 각 궁의 비장본인 칠궁비장본(七宮秘藏本)과 1969년 선원전 도서 그리고 국가 대계의 주요한 자료와 서책 그리고 임금과 신하 간의 논의를 기록한 자료와 임금의 가르침을 적은 모훈을 보관하였던 봉모당(奉謨堂) 도서와 자료들을 규합하였다. 당시 선생은 문화재 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말술의 애주를 단주하고 머리를 삭발한 채 삼 년간 이와 같은 서지 목록을 정리하신 분이다.

 

나는 서울로 올라와 선친에 이어 1954년 국전 제3회 동양화 부문에서 청신암(淸神菴)과 1955년 제4회 국전에서 야령(夜鈴)으로 입선 이후 세상을 떠나신 작은 아버지 이정남(李正南. 1923~1958) 화가와 깊은 교분이 있었던 인연으로 남계 박진주 선생의 서실을 MBC TV 예능프로 작가로 활동하던 이굉삼(李宏森)숙부님의 손에 이끌려 드나들면서 많은 공부를 하였다. 1998년 선생이 고희전을 준비하던 어느 날이었다. ‘고희전 서문은 자네가 쓰게’ 선생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선생님 고희전 서문은 제 나이도 그렇고 격에 맞는 분이 쓰셔야 합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귀신이 쓰란 말인가?’ ‘쓰는 대로 가져오게’ ‘내 서문은 자네가 써야 해’ 하는 호통이 떨어졌다, 며칠 후 서문을 들고 서실을 찾았을 때에 난초 잎을 닦으시며 듣고 계신 소리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후 당대의 소리로 평가받았던 전설적인 ‘김옥심’(金玉心. 1925~1989) 명창의 창부타령과 노랫가락이었다.


장황하게 이야기가 늘어진 까닭은 바로 씽씽의 메인보컬 이희문의 글을 쓰면서 선생의 서실에서 처음 들었던 이후 자주 접하였던 ‘김옥심’ 명창의 소리가 자꾸만 귓가를 스쳐 간 까닭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겠지만 필자는 이희문의 소리에 담긴 애조의 느낌이 마치 먹물처럼 번져오는 특성을 분명하게 감지한 까닭이다. 이에 25년여간 취미로 인터넷 음악방송을 해오면서 세상 모든 장르의 음악을 접한 얕은 감각의 잘못이라면 겸허하게 수용할 일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전하고 싶은 말은 씽씽의 공연에서 화려한 여장을 해제하고 흥을 이끌어가는 록 밴드의 음악을 빼게 된다면 모든 노래에서 우리의 민요만 들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때 들려오는 씽씽의 모든 노래는 서양의 음악에 맞추어 부르는 변형된 민요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논두렁 밭두렁이거나 어느 잔칫집에서 부르는 오직 우리의 민요라는 사실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어쩌면 흥을 돋우는 민요와 타령에서도 애틋한 느낌이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씽씽의 주역 젊은 소리꾼 신승태와 추다혜

 

씽씽의 공연을 세세하게 살펴보면 젊은 소리꾼 신승태와 그리고 멤버 중 홍일점인 민요를 전공한 추다혜가 메인 보컬 이희문과 함께 씽씽의 무대를 이끌어가는 신선한 젊음의 견인차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이는 씽씽의 퍼포먼스 적인 구성과 이들 소리의 탄탄함에서 한층 그러하다.

 

이러한 실체는 소리꾼 신승태의 약력에서 확인된다. 그는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재학 중에 2005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8명의 혼성그룹 코리아 소리(Coreasori)로 참여하여 ‘자유를 잃은 새’로 동상을 받았다. 이어 2005년 터키 세계 민속춤 Festival에서 남자 부문 개인상을 받았다. 정작 국악으로 상을 받은 건 2008년 대한민국 대학국악제에서 동상과 인기상을 받은 것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재능이 바탕이 되어 씽씽밴드의 서양적인 리듬에 익숙한 여장 퍼포먼스의 흥미로운 몸짓을 끌어내고 있다.

 

이와 함께 씽씽 밴드의 유일한 여성인 소리꾼 추다혜는 서울 예술대학교에서 민요를 전공하고 중앙대학교 연희예술학부에서 공부하였다. 젊은 신예 소리꾼 추다혜의 시원하게 뽑아내는 구성진 소리는 민요와 대중가요의 담장을 오르내리는 묘한 맛이 있다. 또한, 두 남자의 여장 보컬 사이에서 툭툭 내던지는 시크한 추임새는 저 소리꾼도 여장인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절묘한 백치미 또한 씽씽밴드를 빛내는 캐릭터이다.
       
     
세계 속에 피어난 꽃 씽씽의 소리 향기 이철희의 드럼


민요밴드 씽씽은 한국인의 가장 서민적인 삶이 녹아내린 전통 민요를 현대적인 신명으로 쏟아내는 밴드이다. 모든 밴드의 기본은 리듬악기인 베이스가 밴드의 리듬과 템포를 조율하고 리듬과 멜로디의 중심에 서는 것은 기본이다. 물론 드럼 또한 리듬을 선도하면서 조율하는 역할을 하게 되지만 보편적인 밴드에서의 드럼의 역할과 씽씽밴드에서의 드럼의 역할은 다른 점이 있다. 이는 우리의 민요가 가지는 특성으로 보컬의 돌출적인 애드리브(adlib)가 많아 보컬과의 타이밍은 감각적인 반응이 필요하다. 그의 놀라울 만큼 섬세한 타법의 노련함은 세계속에 피어난 씽씽밴드라는 꽃의 소리로 피어난 깊은 향기와 같았다.       

 

▲ 심포카 프린세스 바리 포스터 /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쾌’(快)/ 이태원 저서 떨림과 살림 / 출처:https://wikipedia.org/wiki     © 브레이크뉴스



마치 영화 속의 주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처럼 구성원 모두가 개성이 강한 민요밴드 씽씽은 어쩌면 지금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괴물 밴드 씽씽의 등장이라고 평가하였던 영국 주요한 일간지 가디언의 ‘로빈 덴슬로’(Robin Denselow) 기자가 하였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씽씽의 공연을 관람한 이후 리뷰기사에서 씽씽밴드(SsingSsing)가 한팀으로 계속 존재한다면 지난 K-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호평을 받았던 포스트 록 밴드 ‘잠비나이’(Jambinai)와 국악 그룹 '블랙스트링'(Black String)이 세계무대의 활동이 시작된 사실을 설명하며 다음 차례는 씽씽이라는 의미심장한 기사를 썼다.
 
필자는 우리의 민요를 우리의 언어로 노래한 씽씽이 세계무대에서 얻은 높은 평가의 소중함을 인식하여 부족한 글이지만 진정성을 담아 2회에 걸쳐 긴 글을 썼다. 필자는 이와 같은 나라의 소중한 문화를 가장 빠르게 세계에 전파한 기회를 깊게 헤아려 씽씽밴드의 구성원 모두가 지혜를 모아 한층 깊은 울림을 품은 새로운 모습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서기를 기원한다, 다음 칼럼은 (214) 월드뮤직 앙상블 이도(E-Do)와 K-뮤직 페스티벌 이야기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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