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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에 참전한 콜롬비아 노병의 ‘꼬리아’ 사랑

<남미 여행기-2>여행은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든다

손경찬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9/20 [15:30]

어젯밤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새벽 일찍이 잠에서 깼다. 새벽잠이 많은 내게 이국의 풍경들이 마음을 설레게 하고 수면의 시간을 방해했는가보다. 장시간 항공기를 탄데다 이동거리가 길었다보니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오히려 맑아진다. 생전 처음 밟아본 콜롬비아 땅이라서 하나라도 더 볼 요량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으니 여행 욕심이 아닌가.

 

아르메니아에 위치한 낀디오 주 청사를 방문하고 주 문화국 관계관 제임스 곤잘레스 마타와   미팅하고 예술단체 협약을 맺기로 했으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김종성 회장을 비롯한 우리 일행은 약속한 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숙소를 출발해 청사를 방문했다.

 

▲낀디오 주청사 문화예술 관계자와 미팅(앞줄 오른쪽에서 첫 번째 김종성 대구예총회장. 두 번째 필자)     ©브레이크뉴스

 

사전에 방문일정 협의된 터라 낀디오 주청사의 문화 관계자관과 예술단 인사들이 반갑게 맞아주어서 커피 타임을 가지면서 얼굴 익힘을 한다. 여기서 나오는 커피는 설탕이 들어간 딘또와 우유를 첨가한 카페 콘 레체(Cafe con leche)를 즐겨 마신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실무 논의에 들어갔는데 예술분야 협의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남미 특유의 대화 방식으로 우리일행과 협의를 하고 의견을 교환하는데 자연스럽고 격의가 없다.

 

오늘 협의는 대구예총과 낀디오주에 위치한 도시의 예술단과 교류 방안에 관해서다. 여기에서 필자는 대한민국의 문화예술도시인 대구시와 대구예총이 해외 문화교류를 많이 하는데 주로 동남아시아 국가에 한정돼 있어 이번 콜롬비아 방문은 이의가 크고 또한 기대된다는 이야기를 했고, 낀디오 주정부 관계관이나 예술단에서는 코리아를 잘 안다면서 양 단체가 교류협력의 물꼬를 틔우자며 제안하는 등 시종일관 분위기가 좋았다. 

 

▲낀디오 주청사 문화예술 관계자, 예술단 관계자들과 미팅을 마치고 (앞줄 오른쪽에서 첫 번째 필자, 세 번째 김종성 대구예총회장)      ©브레이크뉴스

 

우리 일행과 낀띠오 예술단체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통상적으로 외국 예술단체와 문회예술 교류 협력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이다. 양국이 매년 번갈아가며 공연을 하게 되니 격년제로 하게 되는데 대구예총 산하에 미술, 음악 등 단체가 많은 관계로 해당 단체에서 낀디오 주정부 산하의 예술단체와 상호 방문 공연에 대한 기본 방향 등을 협의했던 것이다.  
 
콜롬비아의 낀디오 주 정부 관계자와 함께 나온 낀디오 예술단은 주의 음악과 예술을 책임지고 있는 민간단체다. 낀디오 지역 내의 14개 시와 긴밀한 협조를 통하여 콜롬비아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예술교육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우리 일행이 어제 들렸던 예술의 고장 부에나비스타 공연에도 집중지원하고 있으니 파트너로 잘 선택했다.

 

낀띠오 주정부와 예술단 핵심 관계자들과 미팅을 가진 후에 우리는 아르메니아 예술학교를 방문했다. 주 정부내 각종 학교에서는 낀띠오 예술단의 지원을 받아 콜롬비아 전통문화를 전파하고 있으니 김종성 회장과 나는 호기심과 기대를 갖고 공연을 관람했던 것이다.
  

▲아르메니아 예술학교의 공연을 관람하다     ©브레이크뉴스

 

어제도 부에나비스타시의 학교에서 학생들의 공연을 관람했지만 콜롬비아 낀다오주의 어디를 가도 학교는 학교대로 또 사회단체나 성인은 성인대로 시간만 나면 춤을 추고 예술활동을 편다. 무엇보다 이 나라에는 커피향보다 진한 예술혼이 흐르는가보다.

 

아르메니아 예술학교 학생들의 공연을 재미나게 보고 우리 일행은 다음 일정에 따라 한 가정집으로 가서 소중한 분을 만났다. 6.25전쟁 당시 한국전에 참전한 엘리 그리잘레스 옹(90세)이다. 그리잘레스 옹은 연로해 병원에 입원중이었는데 아르메니아 지역에 한국사람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를 만나기 위해 하루동안 퇴원 허락을 받아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자택에는 그리잘레스 옹 뿐만 아니라 큰 아들과 들째 아들이 와 있었는데 그 분의 성의가 보통이 아니었다. 타 지역에 살고 있는 두 아들 중 큰 아들은 의사이고 둘째 아들은 커피 농장을 경영하고 있으니 비교적 잘사는 집안이었다.

 

▲ 한국전 참전용사 그리잘레스 옹 자택에서 (좌측에서 첫 번째 장남, 둘째 필자, 셋째 그리잘레스 옹, 네 번째 김종성 회장, 다섯 번째 차남)       ©브레이크뉴스



우리 일행은 그리잘레스 옹의 자택에 도착해 환대를 맞았다. 자식들을 소개하고서는 한국전에 참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직도 잊지 않고 있으며 자식들에게 자주 이야기했다는데 그의 집 벽에 걸린 한국전 사진을 보고 놀랐다. 방마다 사진이 가득하였는데 평화의 사도로서 자부심을 갖고 한국전을 잊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한국전 참전으로 박세직 전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으로부터 전해 받은 ‘평화의 사도’ 메달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었고 우리일행에게 내보이며 감회에 젖은 듯했다.

 

▲그리잘레스 옹 자택 벽에 걸린 한국전 참전 사진 장면들     ©브레이크뉴스

 

그리잘레스 옹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다음해에 자발적으로 참가했다고 한다. 1950년 11월 1일 콜롬비아 병사 4,300여명과 함께 카르타헤나 항을 출발해 오랜 항해 끝에 한국에 도착했고 평화군이 되어 대한민국을 도와 전쟁을 수행했다고 한다. 콜롬비아는 한국전쟁에 참가해 214명이 전사하고 438명이 다치는 등 65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하는데 다행히 노병은 무사히 콜롬비아로 돌아왔다고 한다.   

 

우리국민 중 60대 이하는 거의가 6.25전쟁을 겪지 않아 잊고 있고 어느 해에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있지만 수역만리 외국에서 한국전에 자진 참가한 콜롬비아의 노병은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자식에게 한국전 참전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90세 노인의 이 같은 자랑스러움과 희생에 나는 감격을 해서 그분 앞에서 넙죽 엎드러 큰 절을 올렸다.

 

지금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전쟁의 공포를 없애려고 노력하면서 남북화해의 시대를 맞기 위해 남북한이 노력하지만 전쟁의 참혹성에 대해서는, 또 한국전쟁이 가져온 비극적인 현실은 늘 잊지 않고 생각해야할 것이다.

 

멀리 남미 콜롬비아에 와서 한국전 찬전 용사를 만나 그의 간직하고 있는 평화의 사도로서, 한국사랑에 감격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이마에 주름살이 깊이 진 노병의 자긍심앞팡에서 잠시 숙연해진 마음을 달래며 다시 부에나비스타로 이동했다.

 

콜롬비아 둘째 여정은 낀디오 주정부와의 공식적인 공연업무 협력을 위한 미팅이 있었고 주정부가 지원하는 예술학교 학생들의 연주도 들었지만 생각지도 않게 또 다르게 애국에 대한 생각 여지를 남긴 노병 한 분을 만난 귀중한 삶의 교훈을 얻게 됐으니 이래저래 여행이 가져다  준 이외의 감동 드라마였다. 한국전쟁에 직접 참가했으며, 지금도 잊지 않고 자랑으로 여기며 평화를 수호하는데 힘 쏟고 계신 그리잘레스 옹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빌어본다.
yejus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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