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ㅡ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뜨거운 영혼

프리다와 디에고. 두 사람은 격렬하고 불 같은 성격 소유자 "뜨거운 사랑을 했다"

이서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7/12 [10:19]

▲ 프리다 칼로  ©자료사진

프리다 칼로. 그녀의 이름에는 강한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 눈썹과 눈썹이 붙어 있는 여자. 프리다. 필자에게는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으로 된 프리다의 그림이 3점 있다. 후기 작품의 강렬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이제 막 그림의 세계에 들어온 풋내기가 그린 듯한 느낌이다.

 

그림 하나. 프리다의 자화상. 흑백으로 그려졌다. 머리는 뒤로 묶었고 가운데 가르마를 탔다. 예의 특징적인 눈썹은 화면의 중앙에 매우 길게 그려져 있다. 눈과 코, 입술은 단순하지만 선명하다.


그림 둘.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가 손을 맞잡고 서 있다. 프리다는 필자의 입장에서 왼쪽에, 디에고는 오른쪽에 든든하게 서 있다. 아버지와 딸 같다. 프리다 가족들의 표현에 의하면 비둘기 한 마리와 코끼리 한 마리.


지구별에 도착한 시기를 비교하자면 생물학적 차이는 21년 정도 된다. 그녀의 고개는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디에고의 표정은 차분하다. 그녀의 표정은 약간 굳어 있는 듯하다. 진주 목걸이를 차고 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직후일까.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앳되어 보인다.


그림 셋. 검은 수염을 한 채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양복 입은 사람. 사진사였던 아버지일까. 그녀에게 예술적 재능을 물려준 사람.

 

프리다와 디에고. 두 사람은 격렬하고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뜨거운 사랑을 했다.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행복하지는 않았다.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육체적인 관계를 하지 않아도 늘 함께 있었다. 명목상 결혼한 상태로 그들은 각기 다른 사람들과 늘 사랑 속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사랑하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지속적으로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받았다.

 

▲ 이서영     ©브레이크뉴스


디에고는 프리다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함께 잔 적도 있다. 프리다가 27살때였다. 크리스티나와 리베라와의 관계는 프리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이후 별거 기간 동안 프리다는 양성적인 성향으로 여러 명의 정부를 두기도 한다. 29살 때는 미국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와 사랑에 빠진 프리다를 보고 몹시 화가 난 리베라에 의해 헤어지기도 했다. 프리다가 43살 때, 디에고는 자신의 모델 겸 영화배우인 마리아 펠릭스에게 청혼을 했다. 이번에는 크리스티나가 개입하여 성사되지 못한 적이 있다고 한다.


프리다의 작품에서 절대적인 상징으로 등장하는 디에고 리베라. 그녀는 디에고와 결혼 한 뒤 자신의 이름인 Frieda에서 Diego가 다섯 글자라는 이유로 e를 빼로 Frida라고 고쳤다고 한다.

 

우리의 관습으로 바라보면 거의 이해불가인 이들의 만남과 사랑과 삶을 들여다 본다. 프리다가 리베라와 처음 마주친 것은 15살 때.


그녀는 1907년 지구별에 도착한다. 7월 6일. 멕시코시티 코요아칸이라는 곳에서 헝가리계 유대인 혈통의 독일인 아버지와 인디오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막달레나 카르멘 프리에다 칼로 이 칼데론. 15살의 그녀는 멕시코 명문 국립예비학교에 입학한다. 의대 지망생이었다고 한다. 전교생 2천 명 중 여학생은 35명 뿐이었다고 하니 그녀는 명석한 두뇌를 지니고 있었겠다. 그해 당시 학교에서 벽화를 제작 중이던 디에고 리베라와 처음으로 마주치고 그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사건은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전차 사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 엄청난 사고를 통하여 그녀는 죽음과 고통을 늘 안고 살게 되었고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을 통하여 사랑과 애증과 존경과 좌절과 불안과 승화의 단계 등 한 인간에게 주어진 온갖 페이소스를 경험하게 되었으니. 그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일생 동안 나는 두 번의 심각한 사고를 당했다. 하나는 나를 부러뜨린 전차이다. 다른 하나는 디에고이다. 두 사고를 비교하자면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


그녀의 이 표현은 말 그대로 사실일까?

 

18살, 9월 17일. 집으로 가던 중 그녀가 타고 있던 버스와 전차가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왼쪽 다리 11곳 골절, 오른발은 탈골, 왼쪽 어깨 탈골, 요추, 골반, 쇄골, 갈비뼈, 치골 골절, 손잡이 철제 봉이 허리에서 자궁까지 관통. 살아남은 것이 신기하다.


이후로 그녀는 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다음해 늘 누워 있는 딸을 위해 어머니가 침대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이젤과 거울을 특수제작해 프리다에게 선물한다. 그녀는 누워서 천정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다. 21살. 프리다는 조금씩 몸을 회복하여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평생 동안 그녀는 통증에 시달려야 했고 수술에 수술을 거듭해야 했다. 47년 동안의 지구별 여행 중 그녀는 43세에는 오른발이 썩어가는 괴저병으로 발가락을 절단하는 수술과 척추 수술을 감행해야 했다. 이러한 수술과 고통을 잊기 위해 그녀는 술과 약에 의지하기도 했다. 지구별을 떠날 때까지 7번의 척추 수술을 해야만 했던 그녀, 총 32번의 수술을 해야 했으니 그녀의 육체적 고통을 누가 감히 느낄 수 있다 할까.

 

다시 21살의 프리다. 그녀는 교육부 청사 프레스코 작업 중이던 리베라를 만나게 된다. 15살 때 처음 만난 후 6년이 흘렀다. 그녀는 아팠지만 아름다웠겠다. 그녀는 벽화 작업 중인 디에고에게 다가가 자신의 그림을 봐 달라고 요청한다. 용감하고 당돌하다. 그런 그녀다. 운명적 만남의 순간. 사진 작가였던 티나 모도티가 중간에 개입하여 드디어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22살의 프리다는 가족들의 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째 부인과 이혼한 직후인 디에고와 결혼을 감행한다. 그녀는 이후 리베라와 그의 지인들을 통해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프리다의 가족들은 리베라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23세의 프리다. 남편 리베라의 벽화 작업 건으로 미국 캘리포니아로 옮겨가 4년을 거주하게 된다. 이때 그녀는 태우아나족 여인들의 전통의상을 즐겨 입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한다. 인공적으로 아이를 갖고자 했지만 유산한다. 두 번 세 번, 건강상 그녀에게 아이는 매우 부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이를 가지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녀는 미국에서 여성작가 정기전에 처음으로 작품을 제출하기도 하는 등 그림을 그리면서도 심한 향수병에 시달렸다.

 

27세. 크리스티나와 리베라의 관계를 알고 절망한 프리다는 별거에 들어갔지만 다음해에 화해한다. 단 별거는 계속되었다. 29세에 미국의 조각가와 사랑에 빠졌지만 리베라의 분노로 헤어졌다.


30세의 그녀,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츠키 부부가 멕시코로 망명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와중에 프리다는 트로츠키와 사랑에 빠졌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31세의 프리다. 멕시코를 방문한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거장 앙드레 브르통은 칼로의 그림을 보고 격찬을 한다.
'폭탄을 둘러싸고 있는 리본'.

 

32세의 프리다. 칸딘스키와 피카소 등의 격찬을 받았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칼로의 자화상을 한 점 구입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녀는 이로써 세계 주요 박물관에 진출한 첫 중남미 출신 여성 예술가로 기록된다. 이해에 공식적으로 리베라와 이혼하고 리베라가 좋아하던 긴 머리를 잘랐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해에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독립한다는 조건으로 다시 재결합.

 

40세의 그녀. 국립미술학교에서 열린 [18세기~20세기 멕시코 화가들의 자화상 45점]전에 [테우아나를 입은 자화상(내 마음 속의 디에고)]을 출품한다.


죽기 1년 전인 1953년, 46세의 프리다는 자국에서 첫 개인전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개최하는데 이때는 병세가 악화되어 침대에 누운 채로 구급차로 이동하여 참석하였다고 한다.

 

47세의 프리다.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리베라와 함께 과테말라 대통령 지지 집회에 참석하러 갔다가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11일 만에 사망, 지구별을 떠난다.

 

그녀에게 그림과 디에고 리베라는 어떤 존재였을까? 자신의 전 존재를 두고 사랑했던 두 대상. 그림과 디에고 리베라. 칼로에게 그림은 그녀가 이 세상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고 고통을 견뎌낼 수 있게 한 유일한 무기였다. 그녀의 작품은 매우 주관적이고 독창적이다. 그녀의 그림 소재는 거의 자신에 관한 기록이다. 그녀의 고통과 사랑이 그곳에서 살고 있다. 그녀의 교통사고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과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그림으로 고스란히 체화되어 드러난다.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디에고의 모습은 사랑스러운 괴물의 형상, 할머니, 고대의 은닉자, 없어서는 안 될 영원불멸의 물질, 인류의 어머니, 그들이 정신착란과 두려움과 배고픔 속에서 만들어 낸 모든 신들, 여자,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중에서도 바로 내가, 갓난아기처럼 항상 가슴에 품고 싶은."

 

1949년 작품, 그녀가 42세에 그린 그림이 있다. [우주, 대지(멕시코),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이 작품 속에서 그녀는 아기인 디에고를 안고 있는데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녀는 작고 디에고는 아기지만 매우 크다. 그녀가 안기에는 역부족일 만큼 크다. 디에고는 이마 위에 제3의 눈을 카다랗게 뜨고 있다. 그의 손에는 불꽃이 쥐어져 있다. 뜨거운 불꽃,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르는 불안하고 뜨거운 불꽃이다. 이 두 사람을 두 명의 여신이 뒤에서 끌어 안고 있다. 전면에 등장하는 두 손은 한 손은 어둡고 한 손은 밝다. 늘 그렇듯 프리다에게는 사랑과 애증이 동시에 상존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이 시기에 그녀는 리베라와 재결합을 하긴 했지만 정신적으로 늘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이기도 했으니. 리베라가 모델인 마리아 펠릭스에게 청혼을 한 시기이기도 하다.

 

[디에고 리베라의 초상].


그녀가 30세에 그린 디에고의 초상이다. 단단한 시선으로 화면 밖을 바라보는 사람.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는 초기에 그녀가 그린 디에고처럼 거대한 코끼리 같지는 않지만 다부진 체력을 가진 남자임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디에고를 진심으로 존경했던 것 같다. 열다섯 살 어린 소녀가 벽화를 그리고 있는 36세의 노련한 화가를 바라보고 있다. 스물한 살의 그녀가 자신이 존경하는 화가에게 다가가 자신의 그림을 봐 달라고 한다. 존경과 사랑. 어디로 튈지 모르는 뜨거운 에너지로 그녀를 늘 당황스럽게 했던 남자. 그녀는 디에고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시아인의 두상에 짙은 색 머리칼이 너무 가늘고 고와서 떠다니는 것 같은 디에고는 귀여운 얼굴에 약간 슬픈 눈을 한 커다란 아기다. 검고 대단히 지적인, 마치 튀어나올 듯이 돌출된 커다란 두 눈은 개구리처럼 불룩한 눈꺼풀 덕분에 가까스로 제자리에 박혀 있다. 남들보다 미간이 넓은 그의 눈은, 공간과 대중을 천착하는 화가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것처럼 더 넓은 시야를 담을 수 있다. 그의 넓은 시야에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동양적 지혜가 얼핏 그 모습을 비칠지도 모른다. 그의 외모에서 꽃처럼 도드라지는 아이러니한 부드러운 미소는 부처 같은 도툼한 입술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이 정도 표현이라면 가히 선생님을 연모하는, 사랑의 열병에 들뜬 한 여고생의 고백처럼 보이지 않는가? 29세에 미국인 조각가와 사랑에 빠졌다가 디에고의 분노에 의해 헤어진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디에고의 이 개입을 다행이라 생각했을까? 30세의 그녀가 바라보는 디에고는 '귀여운 얼굴에 약간 슬픈 눈을 하고 있는 한 남자'다. 그는 '화가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대단히 지적인' 사람이다. 그의 넓은 시야는 프리다에게는 제3의 눈이 되어 그림으로 표현된다.

 

[내 마음 속의 디에고(테우아나 차림의 자화상)].


그녀가 36세의 나이에 그린 그림이다. 칼로는 면사포를 쓰고 있다. 칼로의 이마에 이런, 디에고가 그려져 있다. 디에고의 이마에는 제3의 눈이 그려져 있었다. 칼로의 이마에는 디에고가 그려져 있다. 칼로의 삶은 디에고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다는 표현이 아닌가? 그녀는 면사포를 쓰고 늘 그를 기다린다. 그녀는 어딘지 모를 곳을 끝도 없이 방랑하는 디에고를 늘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사명이나 되는 것처럼. 흰색 실과 검은색 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그녀의 생각들이 지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멀리 퍼져 나가는 실들과 그녀의 중심에 살고 있는 디에고와 그녀의 진지한 기다림과 인내의 눈빛과 얼굴 이외에는 모두 은닉된 그녀의 다른 부분들. 그녀는 오직 얼굴 밖에 없다. 몸의 세부를 들여다 볼 수 없다. 나를 꽁꽁 싸매고 은폐시키는 듯한 제스처는 사실은 '은폐하고 있음, '숨기고 싶음'이라는 속마음을 맨몸처럼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쇼 라즈니쉬는 그의 책 [변형]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게 된 사람의 광채는 거대하다. 자각에 의해 거짓된 모든 것은 사라지고 실재하는 모든 것은 풍요로워진다. 이것 이외에는 어떠한 근본적인 변형도 가능하지 않다. 어떤 종교도, 어떤 메시아도 그대에게 그것을 줄 수 없다. 그것은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 주어야 하는 선물이다."

 

어쩌면 프리다는 자신에게 주어야 할 가장 커다란 선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표면적으로는 늘 고뇌의 대상이었던 열정덩어리 리베라가 사실은 그녀의 내면의 평화를 위하여 가장 필요한 존재였음을 인식하고 있었던 듯한 프리다를 떠올리는 시간이다. 그녀의 그림에 대한 잠재력은 디에고 리베라를 도구 삼음으로써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스물한 살짜리 어린 프리다가 자신의 우상이었을 디에고를 만나면서 그녀는 정신적 성숙과 그림에 대한 성숙을 동시에 성취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녀가 그린 자신의 삶의 슬픔과 기쁨들은 디에고 없이는 해석할 수가 없다. 그녀의 고통 속에도 디에고가 있고 그녀의 기쁨 속에도 디에고가 존재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녀의 정신적 원형은 바로 디에고 리베라였던 것은 아닐까?  프리다의 초기 그림은 보잘 것 없었다. 누구나 초기 작품은 어리고 유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녀의 작품은 점점 변화를 거듭하는데 그 중심에는 디에고가 존재하고 있다. 그녀의 내면의 공간이 열리는 열쇠 역할을 한 사람. 그래서 그녀의 작품이 점점 변형을 경험하고 그녀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핵심, 그 결정체와 대면할 수 있게 한 반면교사로서의 스승. 디에고 리베라.

 

[유산]이라는 25세 때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눈물 방울이 보인다. 그녀는 벌거벗고 있다. 그녀의 정상적이지 못한 몸은 두 개의 색채로 묘사되어 있다. 그녀의 자궁 속 아이를 그녀는 왼쪽 앞쪽에 배치했다. 그녀는 뺨을 가득 채우는 두 방울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녀의 자궁은 똑뚝뚝 핏방울이 흐른다. 눈물방울과 핏방울은 그녀가 아기를 얼마나 원했는지에 대한 간절함이 담겨 있다. 세 번이나 인공유산을 했던 그녀에게 디에고 리베라는 현전하는 그녀의 어린아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가 어떤 악동짓을 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끌어안아 줘야 할 모성으로서의 프리다가 존재하는 것이다.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의 사랑을 바라보면서 필자의 사랑에 대한 견해를 들여다 본다. 지구별 여행자로서 우리는 누군가와 사랑하고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 만큼 많은 것들을 망각한다. 첫, 마음을 잃어버리고 늙고 낡은, 마음으로 살을 맞대고 산다. 부부라는 이름의 지구별 여행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게 새록새록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은 시간이 갈수록 늙어가고 낡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늘 새로워야 한다. 마치 날마다 새벽을 맞이할 때 그 새벽이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맞이한 적 없는 전인미답의 순간임을 자각하는 것처럼 사랑은 늘 새롭고 신선해야 한다. 10년을 살고 20년을 살면서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 우리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 우리는 날마다 서로를 탐험하는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는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내가 얼마나 많은지도 모르면서 나를 망각하고 살아가듯 우리는 곁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오래된 석고상처럼 아무런 감흥 없이 대하고 바라보고  생각한다. 

 

시간은 서로에게 역사이고 추억이다. 삶은 어쩌면 추억만들기인지도 모른다. 숱하게 많은 추억들을 쌓아온 사람들은 살면서 점점 동지가 되어간다. 그들은 함께 한 세월만큼 깊이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깊이를 나누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어야 내 곁에 지금 누가 있는지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조금만 방심하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까먹는다. 우리는 탐험가이다. 시간 여행자이며 지구별 여행자이다. 낯선 곳으로 갈 준비를 할 때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떨리고 기대에 부푸는지 한 번 생각해 보라.

 

한국에 있는 내가 프랑스로 날아간다. 거기서 일주일을 체류할 것이다. 나는 낯선 그 거리를 산책할 것이다. 낯선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고 낯선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들을 것이다. 낯선 거리에서 낯선 건물들을 바라보며 낯선 감흥에 젖을 것이다. 이러한 여행의 낯섦을 지금 이 시간, 이 공간으로 잠깐만 옮겨와 보라. 나는 지금 내장산 400고지 북카페에 앉아 있다. 이곳은 어제도 내가 앉아 있던 곳이고 이틀 전에도 앉아 있던 곳이다. 그리고 지금도 앉아 있고 내일도 앉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늘상 같은 곳에 앉아 있는 나는 어제와 같은 나일까?


아니다.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어제만큼의 시간을 더 살아온 새로운 나이다. 지금의 나는 다른 어느 곳, 어느 시간에서도 만날 수 없다. 나는 늘 새로운 존재이다. 나는 늘 태어나 처음 맞이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낯섦의 경험, 이러한 새로움의 경험이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한다. 만남도 그렇다. 어제 만난 사람을 오늘 또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어제 만난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지금 만나는 사람은 태어나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왜? 지금 이 시간, 이 장소는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시간, 다른 장소이기 때문이다.

 

프리다 칼로라는 한 여자가 디에고 리베라라는 한 남자를 만났다. 열다섯 살이다. 소녀는 벽화에 집중하고 있는 한 예술가를 바라본다. 집중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15세기 화가 우첼로에 관한 책을 읽고 감명을 받는다. 그녀는 노트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 그녀는 그림을 그린 편지를 써서 친구에게 보낸다. 그녀는 곧 평생 동안 그려나갈 자신의 첫, 초상화를 완성한다. 열여섯 살에.

 

그렇게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세계로 접어드는 것이다. 한 사람과의 조우는 때로 기존에 살고 있던 세상을 통째로 바꿔버리는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운명이라 부른다. 잘 들여다보면 그 운명은 사실 선택의 문제다. 우리는 날마다 매순간 무언가를 '선택'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과거의 무수한 선택의 결과물로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사랑하라. 편견과 선입견을 모두 내려놓고서, 지구별 여행자로서 순간순간 낯선 시선으로 늘 처음인 양 사랑하라. 프리다처럼. 프리다의 디에고를 향한 사랑은 다분히 비논리적이다. 그러나 그러므로 그것은, 사 랑. ebluenote@hanmail.net

 

**필자/이서영. 북카페 <책읽어주는여자 블루노트> 주인장.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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