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긴 축구와 가난을 이긴 한강의 기적의 유사점 (3)

별 생각 없이 수용하였던 서구문화에 대하여 새삼 곰곰이 따져볼 때다!

심상근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7/11 [14:33]

이 글은 지난 6월 30일자 칼럼(본지) ‘독일을 이긴 축구와 가난을 이긴 한강의 기적의 유사점’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587113§ion=sc11§ion2=  과 그 속편  ‘미국 대 중국의 충돌은 한국 내지 한민족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588641&section=sc11&section2= 에 이은 3부 속편으로서, 우리가 서구 문명과 문화에 너무 몰입하고 이끌려 다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고자 한다.

▲ 심상근 박사.   ©브레이크뉴스

수십 년 전 미국 신문에 보도된 기사로서, 폴란드계의 한 미국 젊은 여성이 노상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듣던 폴란드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자 난생 처음으로 폴란드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 여성이 다녀온 후 소감을 썼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사시다가 이민 왔다는 폴란드를 처음으로 찾았다. 어려서부터 노상 듣던 거리들과 풍경들을 직접 보니 참으로 감회가 깊었다. 모두 좋았는데, 다만 미국으로 돌아오니 원하는 아무 때나 샤워를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깨닫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같은 서양에서도 미국과 서구와 동구는 생활수준에서 상당히 다르며, 진정 샤워 시설, 냉방장치, 온방장치 등은 문명의 이기라고 부를만하다. 그러한 문명의 이기들을 발명하고 생활화시킨 서구인들의 진취적, 개척 정신은 알아줄 만 하다.


그러나 서구문명은 성경에 기술된 생활배경에서 보듯이 물과 풀밭을 찾아 가족단위로 항상 이동하며 살던 유목문화에 기인한다. 그들은 고로 상호 모두가 이방인들이었고 충돌이 잦았으며 중재자로서 유일신이 필요하였다. 그로부터 예수의 가장 중요한 계명, 즉, “네가 너의 친형제와 이방인을 차별하여 대하면 너는 지옥에 갈 것이다!”라는 요지의 계명에 의하여 근 2천년간 일종의 세뇌작업을 받았고, 그러므로 사회정의, 공정, 공평, 정직성 이런 면에서 두드러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심리학자 칼 융이 지적한 바와 같이, 유일신을 받드는 사람들은 단순한 면이 있어서 신 대신 돈을 신처럼 여길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서구인들은 예전처럼 교회에 꼬박꼬박 나가지도 않고 신에 대한 복종의 마음도 많이 희석된 바가 있으며, 고로 칼 융의 예측대로 이제는 돈을 신처럼 여기는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필자는 분석한다.


다른 연구조사에서 발표한 바로서는, 호랑이 그림을 보여주는 경우, 동양인들은 우선 그 배경을 본 후 호랑이를 보는 경향이 큰 반면, 서구인들은 처음부터 호랑이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크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동양인들은 코끼리들처럼 무리를 지어 한 곳에서, 수천 년은 몰라도, 수백 년 이상 살았던 고로 상호 ‘염치’가 가장 중요한 가이드라인으로서 작용하였고 고로 항상 이웃들의 의견에 민감하였으며, 염치없는 사람으로 몰리는 것은 서구에서 파문을 당하는 것과 유사하게 치명적이었고, 당장 아들 딸 혼인시키는 것에서부터 극히 불리하게 되었다.
고로 홀로 무릎을 꿇고 신과의 1대1의 대화를 통하여 삶의 진로를 항상 찾았던 서구인들과 정반대로 아프리카와 동양에서는 이웃들과 정을 나누고 상부상조하는 데서 오는 행복감으로써 수천 년 이상 살았다.


영국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였던 버트란트 럿셀의 저서에 의하면, 아프리카는 예전 조선왕국 시절 비슷하게 인심이 좋았고 예절을 중시하며, 해가 저물어 과객이 찾아오면 가난한 형편에서나마 대가를 바라지 않고 최대 융숭하게 대접하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등, 가난하지만 매우 행복한 공동체들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럿셀은 주장하기를, 서구인들이 자신들의 이기적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혹은 노예를 잡아오려고, 혹은 다이아몬드 등의 천연자원을 독차지하기 위하여, 그러한 아프리카 본연의 문화를 파괴하고 상스러운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문화파괴는 필자도 목격한 바 있다. 필자는 1944년생으로서, 내내 서울에서 살았지만 원적은 경기도 파주의 심씨촌이었고 외가는 충청도 성환이었다. 어머니는 맏딸인데다가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비로소 외가에 친손자가 처음 태어난 연유로 나는 외손자지만 친손자 대접을 받고 컸다. 그래서 외가에서 태어났고 동생이 태어난 후 서너 살 때는 외가로 보내져서 이모들이 나를 맡아 키웠고 그러다가 6.25전쟁 중에는 2년 정도를 외가에서 살았고, 그 후에도 여름방학이면 외가에서 한달 내내 또래들과 혹은 네 살 위의 외삼촌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리고 “명석하다”는 소문이 퍼져서 파주 심씨촌에서는 총체적으로 나를 상당히 총애하였고 그래서 중고교 시절 겨울방학에는 항상 파주 심씨촌에 가서 지냈다. 그러므로 친가 외가 모두 걸쳐 한국의 시골문화와 생활양태에 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외가는 상당히 잘사는 축에 속했지만 심씨들은 엄청 가난하게 살았다. 그래도 외가에서는 여름에는 꽁보리밥이 주식이었다. 여름방학에 내려가면 외할머니는 첫날은 소위 ‘이밥’을 지어주셨지만 그 다음 날부터는 평상시로 돌아가 꽁보리밥을 지었고, 그러나 나는 식성이 좋아서 그 것도 아주 맛있게 먹었고 외할머님은 “아이고 우리 상근이가 꽁보리밥도 맛있다며 저렇게 잘 먹으니 고맙다!” 하시곤 하였다.


그 가난을 이겨주던 것은 ‘정’이었다. 럿셀이 기술한 예전의 아프리카처럼, 성환과 파주 모두 ‘정’이 그 공동체들을 받쳐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저녁이면 소위 ‘말’을 다녔다. 그러므로 저녁이 되면 아버지들은 모두 어느 짐 사랑방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해학을 즐겼고, 어머니들은 어느 집 안방에 모두 모여 온갖 살림살이 이야기에 아이들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가난 속에서도 가장 행복한 사람들처럼 웃음꽃을 피웠다. 청년들도 무리를 지어 지냈고 달밤에 동산에서는 태권도를 서로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처녀들도 자기들끼리 모여서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노상 깔깔거렸다. TV, 컴퓨터, 전자게임, 스마트폰, 이런 것들은커녕 대부분 라디오도 없이 살았지만 그 대신 ‘정’은 공기처럼 많았고 서로가 서로를 즐겁게 만드는 재주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서로를 웃기게 만드는 엔터테이너들이었다.


그러나 가난은 혹독하였고, 특히 젊은이들은 갇혀있다는 생각에 근원적으로 우울하였다. 내가 고3이 되었을 무렵 박정희가 “잘살아보자!”는 모토를 내세우고 무력으로써 집권을 하였고, 그 후 한국은 잘살게 되었지만 아프리카 비슷하게 고유의 문화를 잃고 서구 문명과 문화에 휩쓸려 내려간 바가 아주 컸다.


우선, 경제부흥이 무르익을 무렵부터 저녁이면 말을 다니던 사람들이 모두 TV의 포로가 되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은 농담과 해학을 지어내어 서로 웃기었으며 이는 소위 양방향 (Input/Output) 소통의 문화였고 창조적인 문화였다. 그러나 TV가 들어오면서 일방적으로 Input만을 받는 수동적 생활이 시작되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은 그러한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추석과 제사 때 큰집에 가서 보면 젊은이들과 아이들은 여기 저기 틀어 앉아 각기 휴대폰만 드려다 보는 것이 예사다.


그리고 가장 문화파괴적인 요소들 중 하나가 아파트 빌딩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오른편 왼편 양편에 아파트가 있어서 두 가구가 산다. 그러나 그 두 가구들조차 서로 왕래가 없고, 물론 다른 층, 다른 동에 사는 동네사람들은 모두가 제각기 살아간다. 아침에 아파트에서 나오면 곧장 자기 차로 가서 시동을 걸고 아파트를 빠져 나가고 저녁이면 차에서 내려 자기 아파트로 들어간다. 이웃들은 흡사 화성인, 목성인들과 같이 상호 격리되어 산다. 아마 죄수들도 그보다는 더 이웃들과 정을 나누고 가깝게 지낼 것이다. 아파트 빌딩들은 아주 나쁘게 표현하면 ‘닭장’ 같다. 예전에는 닭들조차 마당에서 자유롭게 지냈다. 지금은 사람이건 닭이건 모두 아파트, 닭장에 갇혀 흡사 죄수들처럼 상호 격리되어 살아간다고 해도 큰 어폐가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각 아파트에서는 어른들은 TV만을 바라보고 있고 애들은 휴대폰만을 들여다보고 있는 식이다.


성환 외갓집에서 태어나 서울, 성환, 파주를 왕래하면서 성장하고 공군복무도 하고 그러다가 만 26세에 미국에 유학 가서 박사학위 받고 미국 국방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등 35년 미국생활 하다가 환갑이 넘어 귀국하여 이제 10여년째 살고 있는 중이지만, 참으로 말만 같은 한국이지 예전 한국과 지금 한국은 뭐 비슷한 것도 없다. 

    
이는 유일신을 모시고 각기 홀로 인생을 항해하던 서구문화가 지구촌을 장악한 것과 진배없다. 물론 상술한 대로 서구문명은 위대한 점이 있다. 샤워, 냉방, 온방, 통신, 교통 등 온갖 문명의 이기는 서구문명의 소산이다. 가난은 지옥이며 잘사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그 대가가 모두 ‘닭장’에 갇혀 인간 사이의 정을 포기한 채 TV 혹은 스마트 폰만 들여다보다가 잠자리에 든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고 심지어 뭐가 아주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에 대하여 여러 생각을 하여 왔으며, 무슨 해결 방안이 있을까 고심도 하였다. 예를 들어 필자가 요처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파트 빌딩을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한 층에 엘리베이터 한 대만을 운영하고 그 한 층에 아파트 8개를 지어 8 가구들이 대가족제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하는바, 예를 들어 서로 말을 다닐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한다. 즉, 그 8 아파트 외에 그 층에 ‘사랑방’, ‘안방’ 같은 공간들을 별도로 마련하여 예전 성환, 파주에서처럼, 남편들은 남편들끼리 모여 담소를 나누고 아내들은 아내들끼리 모일 수 있도록 하면 그 예전의 훈훈한 인심을 상호 즐길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집마다 자녀들이 8명 정도이었고, 아이들은 자기 형 언니로부터 인생수업을 받은 바가 많았다. 애들 마음은 애들이 서로 가장 잘 알고 또한 배울 것이 많다. 그러므로 예전에는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키우고 크는 식이었다. 지금은 가구마다 자녀가 하나, 아주 많아야 둘 정도이어서,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도 흡사 ‘닭장’에 갇힌 것처럼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홀로 지낸다. 그러므로 상기 각 층마다 자녀들도 성별 나이 별로 방들을 만들어 모여 일정 시간을 같이 보내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말이 되는 소리인지 필자 자신 잘 모르겠지만, 아파트 빌딩들의 분위기가 예전 한국 문화와 이질적인 것은 사실이다.


본인의 저서에서 기술하였듯이, 발명은 홀로 서는 문화를 가진 서구인들이 잘 하지만 그 발명을 개발하여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에는 집단적 협조에 익숙한 동양인들이 월등 뛰어난바 ( ’백만 명 먹여 살리기’, 도솔, 1996), 1970년 대부터 일본-한국-중국이 미국 유럽 국가들을 젖히고 지구촌 시장을 장악해 왔고 그 결과 자신감을 만회한 중국이 미국에게 일종의 도전을 하고 있으며,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동양문화와 서양문화가 거의 대등한 힘으로 겨루고 있는 중이다. 이는 극도로 복잡한 양상을 띄우고 있으며 한 쪽이 옳고 다른 쪽은 그르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상술한 바와 같이 유일신 문화의 미국 및 서구, 그리고 중동을 제외한 동양 같은 지역에서는 그 동안 별 생각 없이 수용하였던 서구문화에 대하여 새삼 곰곰이 생각하고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만회하는 데 신경을 쓸 하여야 할 때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sheem_sk@naver.com


*필자/심상근. 미 버클리대 박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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