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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아가면서 서로를 소중히 그리고 아끼며 살아야 합니다!

"생각하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우리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김덕권 시인 | 기사입력 2018/06/22 [17:35]

▲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참전계경(參佺戒經)》제255事에 <주공(主恭)>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주공’이란 공손함을 위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머무를 때에도 반드시 공손하고 온순하게 하여, 일을 할 때는 넘치는 물그릇을 드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하며, 사람들 대할 때는 중요한 것을 몸에 찬 것처럼 신중하게 합니다.

 

이렇듯 삼가고 조심스럽게 믿음의 덕을 이루고, 나아가 명예로운 덕을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맡고 있는 일과 지금 우리들이 만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공손함을 통해 정성을 다한다면 그 덕이 쌓여 향기로운 인품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공손(恭遜)은 예의가 바르고 겸손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공순(恭順)은 공손하고 온순하다는 말입니다. 또 온순(溫順)은 부드럽고 어질며 고분고분하다는 뜻이지요. 아마 이 모든 뜻을 합한 것이 ‘주공’이 아닐 런지요? 주공은 사람의 가장 훌륭한 미덕(美德)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주공함이 훌륭한 미덕일지라도 예(禮)에 합당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입니다.

 

그래서 과공은 비례(過恭非禮)라고 합니다. 지나치게 공순해 무례하면 비굴하게 되고, 비굴하면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못하고 남의 주장에 끌려 다니게 됩니다. 결국은 남의 지배를 받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신중함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신중해 무례하면 겁쟁이가 되고 말지요. 이런 사람은 매사에 결단력이 부족하고 무엇을 하든지 주저하고 머뭇거려 결행의 때를 놓치기 쉽습니다.

 

아마 이런 사람은 큰일을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과는 대사(大事)를 도모할 수 없습니다. 위기가 닥치면 허둥대고 비겁하게 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용감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신하가 용감하기만 하고 무례하면 역적이 되고, 장수가 용감하기만 하고 무례하면 패장(敗將)이 됩니다.

 

또한 강직한 것은 선비의 장점입니다. 하지만 강직한 것이 지나치면 고집스럽고 아량이 없으며 매사에 여유가 없기 쉽습니다. 일을 처리함에 지나치게 경직돼 덕을 잃게 되고 원한을 사기 쉬운 법입니다. 남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할 줄 모르고 매정한 사람이 돼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이와 같은 말들은 매사에 중용(中庸)을 좇아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를 시중(時中)이라 합니다. 때에 맞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어떤 경우에도 모자람도 넘침도 없는 중정(中正)의 인생이 최고의 삶입니다. 공순한 이도, 신중한 이도, 용감한 이도, 강직한 사람도 꽤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덕(德)을 갖고 있으면서도 시중(時中)의 삶을 사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습니다.

 

공손과 친절은 만사를 형통 시키는 길도(吉道)임에도 요즘 대한항공 총수가족들의 갑 질을 보면 소름이 다 끼칩니다. 쥐어진 권력의 한계를 뛰어 넘어 남용하고, 권력을 빙자한 오만불손한 그들에게는 애당초 공손과 친절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교만(驕慢)하고. 인색(吝嗇)하며. 냉담(冷淡)한 자를 미워하면서 거리감을 두고 경원(敬遠)하기도 합니다. 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공손하고 온유하며 친절할 때 그 삶의 몸에서는 온정의 향기가 나고 은근한 빛이 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신뢰와 사랑이 솟아나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도 하지요.

 

공손하면서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남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법 없이 사는 사람이라는 평가와 함께 공동생활의 대열에서 추앙을 받기도 합니다. 공손이란 남을 높이고 스스로를 낮추는 마음의 행동으로 나타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남을 높이는 마음이 가득하고 있기 때문에 남의 인격을 존중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거나, 남의 의사를 높이 여기며 항상 존경하는 태도를 잃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남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일이 없고 욕먹을 일이 없으며 남과 적대(敵對)되는 일이 없는 것이지요.

 

우리들의 모든 행동의 기본은 마음과 몸가짐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 1762~1836) 선생은 평소에 가르치기를 “발은 무겁게 하고, 손은 공손하게 가지고, 입은 다물어야 하고, 머리는 곧게 하고, 눈은 단정하게 가지고, 인상은 정숙하게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편안한 사람이 되려면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할 줄 알고, 불가능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보기 위해 애쓰며, 다른 사람을 위해 호탕하게 웃어줄 수도 있고, 편안함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살아가면서 서로를 소중히 그리고 아끼며 살아야 합니다. 운명이 우리의 삶에 끼어들어 언제 서로를 갈라놓을지 모릅니다. 서로 함께 있을 때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말 한마디라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겸손해야 하고 나는 타인에게 어떠한 사람인지, 나보다 먼저 남의 입장이 돼 생각하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우리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아름다운 덕목인 사랑, 협동, 화목, 대화, 희생, 봉사 등은 모두 다 믿음과 신의의 토대 위에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신의와 마음의 질서가 무너질 때 인간관계가 무너집니다. 예전에 두 사람이 고기를 사려고 푸줏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은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여봐라, 고기 한 근만 다오.” “예, 그러지요” 함께 온 다른 사람도 말했습니다. “여보게, 나도 고기 한 근 주게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금 전보다 공손한 태도로 답변한 주인은 고기를 더 넉넉하게 잘랐습니다. 그러자 먼저 말한 사람이 화를 내며 “이놈아, 같은 근인데... 어째서 내 것보다 크게 자르는 것이냐?” “예, 별것 아닙니다. 손님 고기는 ‘여봐라’가 잘랐고, 이분 고기는 ‘여보게’가 잘랐을 뿐입니다.”

 


겸손은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므로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겸손은 우리들의 긴 여정 속에서 삶을 윤택하게 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래서 ‘주공’은 모든 미덕의 근본입니다. 오늘도 주공의 지혜로움으로 행복하고 멋진 날을 엮어 가면 어떨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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