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평창올림픽 때 필자는 깜짝 놀랐다. 2030 젊은 세대들이 남북 여자하키 단일팀 구성에 대단히 분노한다는 신문보도를 보고서다. 내가 잘못 보았나 싶어서 여론조사 수치를 살펴보았더니 82%가 단일팀 구성을 반대한단다. 그들의 분노의 내용은 몇 년간 올림픽 무대에의 꿈을 붙잡고 땀흘려 연습했던 힘없는 선수들을 내팽개쳤다는 것, 갑자기 남북단일팀 구성 운운은 ‘기회가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들은 선수단 엔트리를 확장하든 안하든 피해를 보는 우리 대표팀 선수가 생긴다, 출전할 때 한국선수 자리가 빼앗긴다, 적인 북한이랑 단일팀을 왜 구성하느냐고 비판했다. 서울대 등 대학게시판엔 “김정은이 북한 사람들 굶어죽는 와중에 스키리조트 지었다고 비웃은 게 언제인데, 거기서 공동훈련하느냐. 화가 나서 촛불이라도 들고 싶다‘는 글이 올랐다. 우리에게 득될 게 없는데 우리 선수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느냐는 불만과 남북회담을 비판하는 글과 댓글도 수천 건 올라왔다.
이에대한 분석들도 다양하게 나왔다. 건국 이래 최악의 미취업률 시대를 겪고 있는 2030 세대들에겐 자신들은 빽없는 흙수저인데 반해 할아버지 아버지를 잘 만나 북한 최고권력자가 된 김정은은 ‘핵수저’라며, 그런데도 평창올림픽이 북을 위해 평양올림픽이 되어가고 있는 정치적 상황에 대해 분노한다는 것. 그래서 단일팀 반대 82%라는 것. 청와대는 젊은이의 반항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사과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구호들이다. 평창올림픽을 흠집내고 실패로 몰아가려는 수구세력, 보수언론의 주장과 너무도 흡사하다. 물론 그들이 그런 세력과 한 목소리를 냈다고는 보지 않지만, 결과론적으로 그들과 견해를 같이해 누구에게 이익을 주는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런 현상은 어디서 오는가. 젊은이가 왜 보수화되었는가. 이명박근혜 10년동안 집요한 남북대결주의와 반북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측면이 강하다고 진단한다. 2030의 10년은 이명박근혜 집권 시기에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고, 취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때 보수매체와 지상파, 종편은 북한을 주구장창 벌레취급했었다.
그들은 부모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세대다. 부모들은 천민자본주의에 오염되었을망정 강남을 그리워하거나 강남을 건설한 세력이다. 남이야 어떻든 내 자식 잘되고, 내 자식이 경쟁에서 이기고, 내 자식 일류대 가서 스펙 쌓아 좋은 직장 얻도록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세력이다.
부모님들은 그저 남을 밟고서라도 내 자식 잘되는 것만 바라고 산다. 그래서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을 들여와 아이 공부방에 24시간 틀어놓고, 쾌적하게 공부하라고 독려한다. 고액과외의 방도 최고의 시설이다. 그 실내의 일산화탄소 등 나쁜 공기는 집밖으로 배출될 것이다. 밖으로 내보내면 누가 마시는가. 이웃 사람이거나 행인이 고스란히 마실 것이다. 내 자식 잘되라고 하는 일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그러나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 공동체의 공동선이 무엇인지도 생각할 필요도 없다. 바로 이기주의의 표본이다. 자기 자식도 문을 열고 나가면 당장 오염된 그 공기를 마시게 되지만, 부모들은 이처럼 이기적 모습으로 악착같이 산다.
요즘 대학교에 부모가 전화를 걸어서 자식 성적에 대해 항의한다고 한다. 회사에도 전화를 걸어 과도한 근무를 따진다고 한다. 수십년 전만해도 10대가 독재타도를 외쳤는데 현대교육이 만들어 낸 21세기 젊은 세대의 현실은 이렇게 이상한 '괴물'이 되어버렸다.그러니 거기서 나오는 결과가 점점 더 나빠질 것은 당연하다.
신학철학자 나인홀트 니버는 말했다. ‘도덕적 개인과 부도덕한 사회‘. 개인 하나하나는 훌륭한 아버지고, 착한 엄마다. 그러나 그런 착한 부모들이 모인 사회는 부도덕하다. 왜 부도덕한가. 공동체의 공동선을 외면하는 극단적 이기주의 때문이 아닐까. 바로 이런 것이 시대의 모순을 낳고 있다. 유복하게 자란 세대가 오늘의 2030세대고, 그들은 조그만 손해도 보지 않으려 하는 이기적 성향을 갖추고 있다. 바로 부모가 만들어준 비틀어진 자화상이다.
우리 내부를 돌아보자. 김정은과 비슷한 국내 자본가나 교회, 언론 등의 3대, 4대, 5대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더 악랄한 수법으로 경영하는 경우도 있다. 당장 나의 취업과 연결되어있는데 그들은 끼리끼리하는 카르텔을 형성해 부정채용과 부정합격, 일감 몰아주기, 단가후려치기를 일상화한다. 능력없는 자가 재벌2세라는 이유 하나로 전무, 상무 자리를 꿰차고 앉아 건방떨며 온갖 갑질을 한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기회가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외쳐본 적이 없다. 북한 단일팀 구성보다 더한 모순과 비리가 저자거리에 횡행하는데 단 한번이라도 항의해본 적이 있는가. 오히려 그것을 부러워하며, 그 대오에 끼지 못한 것을 가슴아파 하지 않았던가.
2030 세대의 주장이 남북단일팀 구성을 비난하는 보수세력의 논리와 너무나 닮았다는 점에서 필자는 한때 전율했다. 이렇게 늙어버렸는가. 젊은이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이 정도인가. 남북화해와 평화는 젊은이의 상상력이고, 미래고 민생이고 밥인데, 이렇게 낡은 세속에 물들어버렸는가. 그들 부모의 기득권에 취한 대결적 모습과 냉소적 우월감을 갖는 태도가 과연 옳은가. 이상주의를 꿈꾸는 그들이 왜 이렇게 꾀죄죄해졌을까....
여자단일팀 하나에도 이익 우선이라는 천민자본가의 욕망이 그대로 담겨있다. 실제로 여자하키팀이 불이익을 당했으면 얼마나 당했는가. 더많은 언론노출로 인한 비인기종목이 관심을 끌고, 더많은 평화의 담론을 이끌어낸 더 큰 가치는 없었는가. 한두 선수의 희생보다 더 값진 것을 가져왔다고 양해할 수는 없었을까. 젊은이들은 특정 정파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대결을 부추기는 대오에 끼어들어서 덩달아 춤췄던 것은 아닌가.
절차와 과정상의 문제를 제기하며 단일팀 구성을 반대한다는 것. 맞는 말이다. 그러나 보수 극우세력의 공격 프레임에 갇힌 태도라는 것을 모르면 너무 단순소박하다. 그래서 사물도 가려서 볼 줄 알아야 하고, 인문학적 상상력도 키워야 한다. 보다 값진 것과 덜 값진 것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보수세력은 평창올림픽 실패를 바라는 듯 허점만 보이면 흠집을 내고, 작은 실수도 끄집어내 과도하게 공격했다. 일부 언론매체는 북한선수단과 응원단의 오줌 누는 모습까지 보도하며 희화화했다. 북을 이상한 집단으로 몰아가는 그들에게 젊은이들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모를까.
남북간의 화해 얘기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는 수구세력과 보수언론의 행태를 안다면 더 유의했어야 했다. 평화를 사기 위해 어렵사리 구성한 단일팀의 취지가 증발하지 않도록 젊은이들이 더 이상주의에 젖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립적이고 분열적인 냉전사고를 여과없이 표출해냈다.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버지 세대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영향하에 성장하고, 교육의 혜택을 받았으니까.
아버지들의 세상은 남북간의 대결, 지역간의 갈등 프레임 속에서 일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천민 자본주의에 노출되어온 세대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이 오염됐다는 사실을 모른다.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국가번영을 이루었다고 자부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양해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회와 과정과 결과를 가장 무시한 세대들이기도 하다. 학연 지연 혈연을 통해 부정하게 개발정보를 빼내 부를 축적한 세대들이고, 강남을 축조한 세대들이다. 이들이 오늘의 2030세대를 낳은 아버지거나 할아버지들이다.
2030세대들은 지난 10년 세월동안 보수정권을 통해 중고대학을 나와 직장에 들어갔거나 캥가루족으로 사는 세대들이다. 그들은 보수 언론과 지상파와 종편의 일방적이고 편향된 논점에 알게모르게 순치되거나 세뇌되었다. 인터넷매체도 있지만 종이매체, 지상파, 종편의 24시간 소나기성 이념대결 홍수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면서 주구장창 외치는 것이 강남의식이다. 아버지 세대의 동경의 대상인 강남의식에 그 자식들도 알게 모르게 젖어들었다. 이상은 증발하고 현실에 뿌리를 박은 천민의식구조의 깃발만 나부낀다. 그들의 보수화는 이런 것으로 인해 체화되었다.
보수언론이 짜준 보수 대 진보에 말려들어서 얼어죽을 보수 진보 대결에도 오염돼버렸다. 상식과 몰상식만 있을 뿐, 보수 진보의 논리구조는 어디에도 부재한데도 인문학적 성찰이 부족한 젊은이들은 보수매체의 일방적 주입에 순치돼 그것을 뛰어넘는 담론을 형성하지 못했다.
조금만 공부하면 드러나는 것을 가지고 아버지들이 말하고, 언론이 밤낮없이 공급하는 북한타격의 대결주의에 세뇌돼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메말라버렸다. 기호를 달달 외워서 스펙을 쌓으니 남북한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에 신경질을 부리는 찌질한 젊은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로 생각없는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잠시 한국 내부를 들여다보자. 남북분단으로 인한 긴장과 대립, 북핵문제, 미국의 압력에 의한 과도한 국방비지출, 일본 우경화에 놀아난 지난 정부, 보수기득권층의 탐욕과 부패, 제자리 찾지 못하는 교육정책, 공기오염과 생태계 파괴, 원전개발과 환경, 청년일자리, 방산비리, 검찰개혁, 언론개혁... 그들이 현실적으로 발언해야 할 아이템들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안을 들여다 보며 멀리 내대보기를 바란다. 특정세력이 만들어내는 남북대결 프레임에 놀아나지 말고 부산과 목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서울을 거쳐 평양-블라디보스톡-모스크바-베를린-파리-런던을 가는 미래를 설계해보라. 꿈만 꾸어도 몸이 들뜨지 않는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주술처럼, 구호처럼 외치는 통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자유롭게 통행하며 함께 번영하는 길만 모색해도 된다. 젊은이의 스펙은 서울대 학력도 아니고, 각종 고시 합격증도 아니다. 기존질서에 매몰되지 않는 상상력과 평화다. 평화란 바로 우리의 미래고 민생이고 밥이다. 그런 가치를 내팽개치고 때묻은 낡은 세력의 대결주의에 물들어 덩달아 춤추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래서 몸이 오싹해지는 서글픔을 억누를 수 없다.
다시한번 말한다. 젊은이의 스펙은 명문대 학력도 아니고, 돈 많은 자본가 아버지도 아니다. 젊은이의 가장 큰 스펙은 무한한 상상력이다. 상상력의 원천은 한반도 평화다. khlee0543@naver.com
*필자/이계홍. 소설가. 본지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