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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제가 이 일에 실패한다면 군법대로 벌을 받겠습니다"

<역사소설 대륙풍운(大陸風雲)-47>맹손과 수지의 용병술

이순복 소설가 | 기사입력 2018/01/18 [01:01]

▲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어히 어히 어히.”

한주 유연의 군영에서는 비통한 곡성이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전만년 장군의 죽음을 하늘도 애도하는지 천둥을 실은 먹구름이 폭우를 쏟아 놓았다. 날이 새자 비는 그쳤으나 칙칙한 먹구름이 불귀의 객이 된 만년을 슬퍼하는 듯 보였다. 오늘도 한진에서는 무겁고 지루한 하루가 시작될 모양인데 제갈수지 군사가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내기를

전장군의 분하고 원통하게 죽은 일은 아군의 사기에 영향이 클 것입니다. 하니 일단 경양성으로 회군하여 주공과 함께 원대한 계획을 세운 뒤에 다시 옹주성을 도모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제갈수지 군사의 의견을 다 듣고 나서 장맹손 군사가 그 말에 찬동하여 즉각 3군에 회군령을 내려 만년의 운구를 수레에 싣고 경양성을 향하여 힘겹게 무거운 발걸음을 때어놓았다. 장빈은 혹 진병의 추격을 대비하여 유영과 호

 

연유로 후군을 삼고 자신의 멘토였던 강유 대장군의 가르침대로 침착하게 회군을 시도했다.

한편 맹관은 계책으로 만년을 죽였으나 고현대장을 비롯한 7부장과 3만군을 잃었으니 한군에 비해 손실이 더 컸다. 맹관의 마음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한동안 더 크게 만회할 일을 생각하다가 한군의 동태를 살피면서 일단 회군하기로 작정했다. 맹관이 대군을 이끌고 옹주성에 들어오자 양왕이 전만년을 죽인 일을 아주 기뻐하며 군사를 호궤하고자 잔치를 베풀었다. 양왕의 생각은 비록 1대장과 8부장 그리고 3만군을 잃었으나 적괴 만년을 처리한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만약 주처가 이런 전과를 올렸다면 꼬투리를 잡아 비꼴 위인이지만 맹관에게는 아주 후하게 대해 주었다. 양왕 동의 인간성이 드려나 보인 대목이다.

 

한편 경양성에서는 슬픈 회군을 맞은 유연이 방성통곡을 하다가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두 군사가 급히 전의를 불러 약을 쓰게 했다. 반에 반나절을 지나자 정신을 되찾은 유연은 또다시 애절하게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제나라 정승 전단의 후손인 만년은 나의 한쪽 팔이었다. 나는 오늘날 팔 하나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나의 팔 하나가 꺾이다니 하늘이 무심하다. 이것이 하늘의 뜻이란 말이냐. 하늘은 한실의 부흥을 외면한단 말이냐. 오호 통재로다! 오호 애재(哀哉)로다!”

 

유연이 이 같이 비통해 하자 군사 장빈은 극진한 말로 유연을 위로하기를

주공께서는 부디 안정을 찾으시고 고정하십시오. 만년이 쓰러진 것은 천명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이리 안정을 찾지 못하시면 귀한 몸을 상할까 두려우며 대업을 이룩하시는데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요량컨대 맹관은 머지않아 속하게 우리 경양성을 공격해 올 것입니다. 전장군의 죽음이 맹관에게는 기세를 조장해 주는 결과라서 그렇습니다. 속히 주공께서 몸을 추슬러서 맹관의 공격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시옵소서.”

유연은 장빈의 진언을 외면하지 못하고 일어나 경양성을 지키는 일과 향후 나아갈 길을 모두 장빈에게 일임하였다. 장빈은 곧 만년의 유해를 유림천으로 운구하여 정중히 장사지내게 했다. 그리고 여러 장수들을 모아 놓고 앞으로 있을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병장기의 보완을 지시했다. 만년의 운구가 유림천을 향하여 떠나고 난 다음날 탐마가 달려와 급히 보고하기를

진병이 옹주성을 떠나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습니다. 대군이 산과 들을 메우고 말발굽소리가 산천을 진동하고 있습니다.”

 

진병의 공격이 눈앞에 닥쳐와 만년의 영용함이 그리운 때라 다들 말을 아끼는데 유영이 나서며 말하기를

제게 일지군을 주십시오. 나가서 진병이 한명도 우리 경내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막아 보겠습니다. 만약 그리 못하면 백성이 놀라 민심이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제게 중책을 지워 주십시오.”

유연이 유영의 간절한 말을 옳게 여겨 장빈을 바라보며 묻기를

진병의 위세에 눌려 겁을 먹고 백성의 동요가 생기면 일이 복잡해지오. 장 군사는 무슨 대책이 있소?”

유연이 목 타는 심정으로 묻자 장빈이 차분하게 대답하기를

주공께서는 조금도 근심치 마십시오. 제게 적을 깨칠 계책은 있으나 아직 선봉장을 정하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이에 제갈 군사가 장빈에게 보탬을 주는 말을 하기를

적의 예봉을 꺾기 위해서 선봉장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신중을 기해서 결정할 일입니다.”

장맹손과 제갈수지 두 군사가 다 같이 선봉장을 두고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이자 유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하기를

소장이 두 분 군사께서 선봉장을 두고 심사숙고하신 뜻을 잘 압니다. 그 적임자가 바로 접니다. 만약 제가 이 일에 실패한다면 군법대로 벌을 받겠습니다.”

 

유영이 할 말을 다 하고 선봉장 자리를 얻으려고 하자 곁에서 침묵을 지키던 양흥보가 나서며 말하기를

소장에게 선봉을 하명하십시오. 전날 진장의 솜씨를 보니 두렵게 여길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굳이 유영 장군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 싸움은 소장 정도의 능력이면 적장과 싸울만할 것입니다.”

양흥보가 말을 마치자 이번에는 호연유가 일어서서 청하기를

.양 두 분 장군은 전날 싸움에서 수고가 많았습니다. 소장은 아직 적과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힘이 비축되어 있습니다. 부디 소장을 써주십시오.”

여러 장수가 서로 선봉이 되기를 원하자 장빈은 손을 들어 제지하며 말하기를

여러분이 다투지 않아도 모두에게 응분의 임무를 맡기겠으니 나에게 맡겨두시오. 여러 장군이 각각 일진씩 맡아 적의 한 조각의 갑주마저도 돌아가지 못하게 하시오. 그럼 작전을 하달하겠소.”

 

장빈은 먼저 호연유에게 2천군을 주어 내일 진병이 나타나면 북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싸우고 양흥보는 2천군을 이끌고 북문 안에 매복하고 있다가 싸우고 황신형제는 2천군을 이끌고 서문 안에 매복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싸우고 조염형제는 3천군을 이끌고 남문 안에 매복하고 있다가 때을 기다려 싸우게 하고 특별히 유영에게는 3천군을 주어 수시로 구하고 응하는 접응의 임무를 맡겼다. 짧은 시간에 여러 장수들에게 임무가 배분되는 것을 보고나서 제갈 군사가 한 마디 거들기를

내 의견은 유영은 3천군을 이끌고 전구(前驅)가 되고 장경에게 2천군을 주어 뒤를 잇게 하고 호연안을 접응군을 삼으면 좋을 듯하오. 그래서 호연유가 먼저 북문을 나가 적과 여러 합 싸워주면 일제히 방포를 군호로 삼아 대문을 활짝 열고 나아가되 유자통과 장경이 적의 중군을 찌르게 하면 크게 이길 것입니다.”

제갈 군사의 계책을 장빈이 수용하여 작전키로 하였다. 유영과 장경은 영을 받자 물러나와 군사들에게 작전지시를 하달하고 그 밤을 푹~ 쉬도록 하였다.

 

다음날 일찍 아침을 먹고 나자 진병들이 경양성 밖 10 리 허에 당도하여 군사를 4대로 나누어 광범위하게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서문을 향하여 기첨이 앞장서고 남문을 향하여 양왕이 복윤을 선봉대장을 삼아 기다리게 하고 동문은 평강장군 이조가 맡았다. 그리고 해자사는 접응을 맡아 뒤를 따랐다. 맹관이 북문에 사람을 붙이지 않는 것은 성안의 군마가 도망칠 곳을 남겨둔 것이다.

유연은 두 군사와 유영을 대동하고 성루에 올라 진병의 세력을 가늠해보았다. 거대하고 막강한 진세는 유연의 기를 죽이게 충분해 보였다. 유연은 그런 위기의식을 가지고 걱정이 되어 유영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오늘 이 싸움에서 특별이 아우 장군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오. 부디 맹관을 무찔러서 만년의 원수를 확실히 갚아주오.”

 

유연이 유영을 아우 장군이라 지칭했다. 이는 유영과 유백근이 유비의 양자 유붕의 아들이니 따져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유영은 유연의 살가운 말에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기를

맹관에게 진평의 지모가 있다 해도 기어코 깨뜨리고 말겠습니다. 주공께서는 심려치 마시고 기다리십시오.”

진병들이 물밀듯이 성문 앞까지 다가와 큰 소리로 외치기를

보아라. 만년이 죽었으니 싸울 놈이 있겠느냐. 머저리 같은 놈들을 되게 몰아쳐라. 저것들은 겁이 나서 이제 오금도 못 편다. 어서 성문을 부수고 돌격하라.”

이 모양을 지켜보고 성루에서 내려온 장빈은 곧 호연유에게 영을 내려 포성이 울리면 북문을 열고 나가라 일렀다. 장빈이 호연유에게 영을 내리고 잠시 후 요란한 포성이 울려 퍼졌다.

쾅 콰당~”

 

일성 포향이 경양성에 울려 퍼지자 이를 군호로 삼아 호연유가 일지군마를 이끌고 북문 밖으로 내달렸다. 그 인마가 달리는 형상이 마치 성난 표범과 같았다. 호연유군이 소리치며 달리고 있는 곳에 진병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핏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갑자기 죽고 넘어진 진병으로 언덕을 이루었다.

이때 다시 쌍포소리가 4대문을 진동하자 각각의 문이 모두 활짝 열리면서 한병이 구름처럼 쏟아져 나왔다. 먼저 남문을 향하여 다가오던 복윤이 유영의 사모를 잘못 피하여 어깨가 찔리는 부상을 당했다. 복윤은 단 1합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어깨 죽지를 움켜쥐고 본진으로 달아났다. 동문 쪽의 이조에게는 양흥보가 대추를 휘두르며 기선을 잡고 대적하고 서문의 기첨에게는 황신과 황명이 함께 부딪쳤다. 진조와 한실의 양군이 쌍불을 켜고 피가 터지도록 싸우자 경양성 아래 들판이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를 뚫고 유영과 장경이 진병의 중군을 몰아치자 다급해진 진병 속에서 4부장이 달려 나와 2장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반각도 버티지 못하고 유영과 장경 2장에게 각기 목이 잘리고 말았다.

 

최전선의 사정이 이와 같이 급박하게 패색이 짙어지자 맹관은 재빨리 말을 잡아타고 필마단기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영은 모든 것을 이미 짐작하고 맹관의 퇴로를 끊고 있었다. 맹관은 달아나려던 길이 막히자 할 수 없이 철편을 휘둘러 유영의 사모를 막았다. 둘의 싸움이 볼만하다. 맹관이란 진조의 머리가 되는 최강의 장수가 아닌가. 그 영용함은 빼어났고 지모 또한 출중하여서 갖출 것을 모두 갖춘 완전에 가까운 장수다. 그런 맹관이라 유영의 용맹으로도 쉽게 꺾지 못했다. 둘은 30여 합이 넘게 싸웠으나 승부를 볼 수 없었다.

 

이때 기첨과 이조 2장이 한장에게 쫓겨 중군으로 물러나다가 맹관이 유영과 싸우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자기들의 대장 맹관이 크게 밀리고 있었다. 2장은 급히 말을 몰아 맹관을 감싸며 유영에게 대들었다. 맹관은 2장이 유영을 상대해 주는 틈을 타고 싸움판을 물러나와 패잔병을 질타하여 하나로 긁어모아 다시 진세를 갖추려고 했다<계속>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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