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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 복직한 이용마 기자에게 띄우는 공개편지

[이계홍 주필의 이 생각 저 생각] "역사 역류에 맞서 싸우다 지치고 병든 몸은 선(善)합니다!"

이계홍 주필 | 기사입력 2017/12/14 [15:11]

▲ 이계홍 본지 주필.  ©브레이크뉴스

브레이크뉴스 이계홍 주필= 이용마 기자가 mbc로부터 부당해직된 지 근 6년만에 출근한 복직 환영행사 모습을 최근 지면을 통해 보았습니다. 그가 다른 복직기자들에 비해 유독 뜨거운 환영을 받은 것은 투쟁과정에서 몹쓸 암까지 걸려 이중고를 겪어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몸으로도 굽힘없이 담대한 모습으로 분투한 모습이 고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힘겹게 mbc 곳곳을 돌아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저는 안타까움과 함께 이 시대 이용마 기자와 함께 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세밑의 훈훈한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저 역시 30 수년간 언론현업에 투입돼 명색이 언론인 간판을 달고 있지만 익명으로 살고 싶은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발언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고, 부당한 간섭에 순응하고, 권력이 두려워 몸을 숨기고 살아왔습니다. 번연히 왜곡과 편파보도를 보면서, 권력을 위한 여론조작적 보도와 논조의 복판에 서있었지만 타성에 젖어 침묵하고, 때로는 나쁜 권력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음모를 눈감아주고 방조한 대가로 미주(美酒)에 취하기도 했습니다. 저같은 변방의 기자도 그랬으니 흔히 말하는 정경사(政經社) 파트의 기자들은 어땠을까요(전부 싸잡아 욕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없기 바랍니다).

 

그동안 우리 언론은 대체로 이명박근혜의 권력남용과 유신회귀의 군림을 방관하거나 때로는 엄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권력을 비판하는 세력을 도리어 야유하고 조롱했습니다. 우리 언론을 돌아보면서 눈앞의 이익 때문에 지식을 더럽게 팔아먹었다고 자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정희 정권 이후 보수세력은 남북대결, 지역분열, 좌우파 갈라치기, 그러면서 특정지역 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 그들이 점령한 강남 엘리트주의로 판을 짜서 자본독점 인사독식하며 나라를 주물러 왔지요. 그 본산이 오늘의 자유한국당의 뿌리인 새누리당 한나라당, 민자당, 민정당, 공화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일면의 진실일 뿐입니다.

 

뿌리는 그들과 굳건한 카르텔을 형성해온 보수언론입니다. 그들을 사주하고 지도하고, 때로는 따끔하게 훈계하면서 보수회귀와 권위적 권력유지의 틀을 짜준 지원세력이 바로 이 나라의 유력언론이라는 것이고, 지상파라는 것이고, 종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물론 이익을 챙겼겠지요. 우선 70년 체제동안 수구권력은 자본을 과점했으니 광고시장으로 언론을 유혹했을 것이고, 철통권력을 쥐었으니 주요 인사, 즉 공직자, 공기업, 사기업의 인사에 관여해 과실을 나눠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때 특권 반칙 불법은 그들의 기본 매뉴얼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이용마 기자와 같은 mbc 기자들이 이것이 아니다, 라고 투쟁했으니 거룩할 수밖에요. 그리고 고마울 수밖에요. 저 역시 언론 말석을 지키고 살았지만 비굴하게 굴종하고 아첨하고 순응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용마 기자는 그게 아니다, 라고 용기있게 나선 것입니다.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이다 라고 말하고, 사과는 사과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좌파가 옳으면 옳다고 말하고 우파가 옳으면 옳다고 말하고, 나쁜 권력을 나쁜 권력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자는 정직하게 진실하게 말하다 쫓겨난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눈보라 휘날리는 광야에 내던져진 것입니다. 반면에 저는 나쁜 권력도 좋은 권력이라고 우기면 그대로 순응하며 생계를 꾸려간 어설픈 가장이었습니다. 처자식 먹여살린다는 가장이란 이름으로 비겁하게 커튼 뒤로 숨어버렸지요.

 

그런데 이용마 기자는 이명박근혜의 민주주의 파괴, 공작정치, 역사왜곡, 국민탄압, 탈법 불법 반칙 오만 광기를 묵인하지 않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런 허상들을 병든 몸으로 벗겨내려고 힘겨운 싸움을 했습니다. 보수권력과 함께 수구 카르텔을 형성한 유력언론들이 침묵하고, 여론을 비틀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모욕하고 야유했을 때 분연히 일어나 이건 아니다, 라고 발언했습니다. 외로운 투병 과정에서, 잠자리에서, 화장실에서도 두 주먹 불끈 쥐었습니다. 그 과실이 지금 맺혔습니다. 아직 이를지도 모르지만 저도 그 과실을 거저 따먹고 있습니다.

 

저는 이용마 기자가 복직환영 행사에서 행한 연설을 다시 한번 음미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 잊지 맙시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서게 된 것은, 작년 엄동설한을 무릅쓰고서 광장에 나와 주었던 촛불 시민들의 위대한 항쟁, 과연 그게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여기에 서 있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 아직도 우리는 암담함 속에, 패배감 속에 젖어서 어찌해야 될 지를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촛불시민들의 항쟁, 그분들을 결코 잊지 말아야 될 겁니다. 앞으로 우리의 뉴스와 시사, 교양, 드리마,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 그분들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가 있습니다. 2012년 우린 170일 파업을 했습니다. 무려 6개월 가까운 파업을 했습니다. 그때 기성언론, 주류언론, 우리 문제 어떻게 다뤘습니까?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파업 100일이 지나도요, MBC가 파업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국민들이 당시에 상당수였습니다. 우리의 당시 비통한 심정, 억울한 심정 하소연할 데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자신들의 억울한 목소리를 아무리 외쳐대도 이 사회에 반영되지 못해서 고통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을 겁니다. 과거 우리의 모습을 상기하면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겁니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대변해주는 것일 겁니다. 그 노력 또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용마 기자는 언론이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제시해 주었습니다. 정론의 가치에 충실하자는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하자는 것입니다. 오만하고 군림하고 불법 탈법 특권을 향유하는 권력에 대해선 과감히 비판하자는 것입니다. 분열, 편파왜곡, 지역편견을 조장하고, 진실, 정의를 비틀어서 나쁜 권력에 부역하면서 이익을 탐하는 언론에 분명히 따지자는 것입니다. 기사 물타기와 기계적 중립으로 여론을 왜곡하는 짓을 하는 언론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좌파 우파 프레임을 걸어 좌파 콤플렉스를 작동시켜 특정세력에게 이익을 주는 낡은 이념의 허상을 벗겨내자는 것입니다.

 

2013년 문재인과 박근혜가 대결한 대선 기억하시지요? 국정원 여직원의 불법선거개입이 적발됐지만 셀프 감금으로 버티고, 오밤중에 전례없는 김용판 경찰청장의 국정원 댓글 선거개입은 없었다는 발표. 거기에 개념없이 기계적으로 보도하는 주요 언론들. 이는 결과적으로 누구를 도와주었을까요. 누구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나라를 거덜내버렸습니다. 부정을 눈감아준 것이 이토록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갈등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선한 언론이 정당한 비판을 했더라면 이명박의 실패나 박근혜의 실패가 있었을까요?

 

지난 한해 국정농단으로 국정이 마비될 때, 빨갱이들에게서 박근혜를 구해야 한다며 70년 체제에 세뇌된 60대 이상의 할배들과 극우집단의 태극기집회를 기계적 중립이랍시고 편파보도한 mbc, 그러나 마침내 정권교체가 되어서 낡은 유제(遺制)를 청산하기 위한 법적 조치를 취해나가는 것을 이제는 정치보복이라고 몰아가는 보도태도. 그것은 특정정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당기관지나 다름이 없습니다. 여차하면 종북몰이로 몰아가는 낡은 이념 프레임을 확대재생산하는 억지도 상식을 파괴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팩트 전달이라며 보도해주고 있습니다. 가치의 문제는 증발하고, 진영과 이익의 관점에서만 사물을 보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언론의 가치중립이라는, 이른바 기계적 중립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봅니다. 독자나 국민을 현혹시킬 뿐 진실을 수혈받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기계적 중립이라고 봅니다. 언론사마다 사시로 불편부당을 내세우지만 그러지도 못하면서 엄정한 중립의 가치를 도리어 훼손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누구의 지적대로 기계적 중립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기계적 중립은 바꿔 말하면 현재 상황을 담요로 덮어버리자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양측의 주장을 똑같은 지면공간으로, 똑같은 전파시간으로 전달한다는 중립이야말로 진실을 회피하고, 언론 역할을 포기하는 일이 됩니다. 만물은 고정 아닌 것이 불변의 원칙이듯 세상에 중립은 없습니다. 옳고 그른 것, 강자와 약자, 불의와 정의, 억압과 저항, 논리와 비논리가 있을 뿐입니다. 언론은 균형잡힌 시각이라며 선악의 중간을 균형으로 제시하는 듯합니다.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 합법과 불법, 원칙과 반칙의 중간이 균형일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과감히 선 진실 정의 합법 원칙 편에 서야 균형이 되는 것입니다. 엉터리 중립은 간사한 기회주의일 뿐입니다.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용마 기자의 꿈과 이상이 실현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여전히 민주화의 내용을 담기에는 더많은 시간과 시련이 요구될지 모릅니다. 저항세력이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이 수차 반동의 역사를 거쳤듯이 우리에게도 힘겨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70년 체제동안 구세력은 자본 정보 인적 인프라를 만리장성처럼 쌓았습니다. 그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정론의 가치, 언론자유 역시 단순히 노력하는 것만으로 쟁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노회한 방해세력들이 덫을 놓고 있습니다. 거기에 언론의 적은 바로 언론이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이용마 기자의 투쟁기에 보아왔던 것처럼 그토록 표현의 자유를 외치다 멱살잡혀 거리로 쫓겨나가도 어떤 유력언론도 관심을 보이거나 응원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당신들의 실수를 더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그때 가차없이 하이애나처럼 조롱하며 물고 늘어지는 습성, 그것은 그런 세상이 필요없다는 탐욕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시되 원칙에 충실하십시오. 성공했다고 깃발 들고 나서면 완장차고 설친다고 음해하고 비방할 것입니다. 역사의 역류에 맞서 싸우다가 사소한 실수 하나로 비극적 인생을 맞은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아왔습니까. 구세력은 실수를 비틀어 흐름을 바꿔놓는 놀라운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해방 이후 70년 체제를 유지해오지 않았습니까.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9년에서도 똑똑히 지켜보았잖습니까.

 

언론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더큰 반동이 온다는 것 똑똑히 지켜보았겠지요? 이는 문재인 정권에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겸손하되 정교하고, 유연하되 원칙에 충실하게, 그리고 용기있게 담대한 걸음걸이를 시작하십시오.

 

mbc 뉴스데스크에서 이용마 기자의 건강한 목소리를 하루 빨리 듣기를 기대합니다. 빠른 회복과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break9874@naver.com

 

*필자/이계홍. 소설가.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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