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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건강하려면 가을볕 쬐라

김희정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10/11 [17:53]

 

겨울에 건강하려면 가을볕 쬐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햇살이 바스락댄다. 한창 가을볕에 취해있던 태연. 문득 베란다 쪽을 쳐다보다 ‘꺄악!’하며 놀라 뒤로 나자빠진다. 달랑 사각팬티 한 장만 걸친 아빠가 바캉스라도 온 듯 선베드를 펴고 누워 있는 게 아닌가! 햇살 아래 드러난 두둑한 뱃살이 유난히 하얗게 도드라져 보인다.
 
“악! 내 눈 살려~, 그 몸매 어쩔! 엄마, 아빠가 홀딱 벗고 누워 있어요!”
 
“쉿! 팬티가 아니라 수영복이야! 지금 일광욕을 하는 거라고. 곧 겨울이 올 텐데 그 전에 자외선을 잔뜩 받아서 비타민D를 축적해 두려는 무척이나 과학적인 행동이란 말이다. 마침 잘 왔다. 얼른 가서 수영복 갈아입고 같이 하자꾸나.”
 
“무슨 말씀이세요. 아빠가 틀림없이 자외선은 피부를 늙게 하고 심하면 피부암까지 생긴다며 선크림 꼼꼼하게 바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 놓고선 일광욕이라니, 아빠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인 줄은 정말 몰랐어욧!”
 
“어허, 내가 한 입으로 술 두 말은 마셔도 두말은 안하는 사람이야. 다 맞는 말이라고. 자외선은 피부 깊숙이 진피층까지 침투해서 피부 탄력을 떨어뜨리고 노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기미와 잡티까지 만들어낸단다. 심지어는 발진, 간지러움, 짓무름 등을 동반하는 햇빛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도 많아요. 최악의 경우에는 피부세포 속의 DNA를 변형시켜 피부암을 일으키는데, 영국에서만 매년 2000여 명이 피부암으로 목숨을 잃고 있지.”
 
“자외선의 위험성을 그리 잘 아는 분이 지금 이 해괴망측한 모습은 무어란 말이어요?”
 
“그야 지금은 봄이 아니라 가을이니까 그렇지. 봄에는 일사량이 강해서 특별히 자외선을 조심해야 하지만 가을에는 그렇게까지 예민할 필요가 없거든. 실제로 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간 일사량의 평균을 내보니까 3월부터 5월까지는 한 달에 460MJ/㎡인데 반해, 9월부터 11월에서는 330MJ/㎡에 불과했단다. 같은 시간 볕을 받아도 해가 덜하다는 얘기야. 게다가 여름 내내 강한 햇볕에 단련되어 있어서 가을에는 피부의 자외선 수용능력도 더 좋지. 자극을 훨씬 덜 받는다는 거야.”
 
“아, 그래서 봄볕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을 내보낸다는 말이 있는 거구나! 봄볕은 자외선이 강해서 피부가 상하기 쉽지만 가을에는 그럴 염려가 별로 없으니까 미운 며느리만 피부손상을 입게 한다는 거잖아요. 와, 옛날 시어머니들 진짜 못됐다. 저는 꼭 가을볕에 내보내주는 시어머니를 만나야겠어요. 그건 그렇고, 아무리 가을볕이라도 어쨌거나 자외선은 자외선이잖아요. 그런데 굳이 일광욕까지 왜 하시는 거예요?”
 
“흔히 자외선의 안 좋은 점을 부각해서 얘기하곤 하지만 사실 자외선은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야. 비타민D 생성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거든. 비타민D는 백혈구 기능을 강화해 면역력을 높여주고 칼슘·인의 흡수를 도와 뼈와 치아건강을 유지해 주는 것은 물론 우울증과 치매까지 막아준단다. 비만, 골다공증, 당뇨병, 치매 같은 성인병을 예방하려면 무조건 축적해둬야 하지. 그런데 요즘엔 생활 패턴의 변화로 바깥활동이 점점 줄어들면서 비타민D가 부족한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난다는구나. 전 국민의 93% 정도가 비타민D 결핍증이라는 거야.”
 
“헐, 그럼 자외선 말고 다른 방법으로 비타민D를 만들어낼 수는 없어요?”
 
“그러면 좋을 텐데 자외선이 피부에 자극을 가해 비타민D 합성작용을 일으키는 것 외에 인체가 비타민D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단다. 연어나 청어 등에도 비타민D가 들어 있긴 하지만 효과가 미미하거든.”
 
“아빠 말씀이 다 이해는 되는데, 그래도 팬티 입고 일광욕은 오버예요. 그러니까 일단 방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아부지.”
 
“아, 팬티 아니라니까! 살짝 배가 나와서 수영복이 좀 끼일 뿐이라고. 암튼,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난 절대 들어갈 생각이 없어요. 왜냐! 이제 곧 햇빛 보기 어려운 계절이 되는데, 비타민D는 합성해 놔도 서너 달밖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꽉꽉 눌러 담아놓지 않으면 한겨울 건강을 장담할 수 없단 말이다.”
 
“아, 정말요? 아빠, 순간적으로 옛날 시어머니들이 소름 끼치게 무서워졌어요. 딸은 겨우내 건강을 챙기라고 가을볕에 내보내고 며느리는 골골대며 아프라고 안 내보냈던 거였군요! 와, 공포영화가 따로 없네. 아빠 잠깐만요. 빨리 수영복 갈아입고 올게요.”
 
이때 벌겋게 화가 난 얼굴로 베란다에 들어온 엄마. 눈에서 불이 난다.
 
“모두 동작 그만! 정말 이렇게 부끄럽게 할거예욧! 하얀 뚱땡이 아저씨가 팬티만 입고 베란다에 나와 있어서 아이들 눈이 다 썩어 들어간다고 민원이 들어왔단 말이에욧! 당장 못 들어가욧!”
 
“저, 정말로 패, 팬티가 아닌데에에…….”
 
글: 김희정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김석 작가
 
출처 <KISTI의 과학향기>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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