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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대학자 다산 정약용 후손 정해인 바라보는 눈

박관우 객원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10/10 [09:41]

▲ 박관우 브레이크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지난 2017년 8월초에 “다산 정약용 평전” 제하의 책에서 필자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 출생한 달과 시간이 같다는 새로운 정보를 확인한 것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브레이크뉴스 8월 10일자 “조선후기 대학자 다산 정약용 천주교 관련성 심층연구” 제하의 칼럼 1회를 시작으로 9월 14일 8회까지 연재하였다.

 

그동안 다양한 인물들의 생애를 소개하는 칼럼을 기고한 바 있지만 이렇게 정약용의 생애를 소개하는 칼럼은 최초이었으며, 연재하는 기간동안 혼과 정성을 다하여 쓰려고 노력하였다.

 

생각하여 보면 다산은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최측근이었으나 1800년(정조 24) 6월 28일 정조가 승하(昇遐)한 이후 그 이듬해 발생한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인하여 강진에서 오랜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다산은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초인적(超人的)인 투혼(鬪魂)을 발휘하여 3대 저서인 목민심서(牧民心書),경세유표(經世遺表),흠흠신서(欽欽新書)를 비롯하여 5백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으니 경이로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다산이 1836년(헌종 2) 향년(享年) 75세를 일기(一期)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친 이후 어느 덧 18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거슬러 올라가서 필자가 다산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92년 잊혀진 우두의사(牛痘醫師) 박승석(朴勝錫)의 행적(行跡)을 최초로 알게 된 이후 그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정약용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박승석이 우두의사가 된 배경에 다산의 의학사상(醫學思想)이 영향을 주었는지 여부를 규명하고 싶었던 것인데 결국 그 실체(實體)를 밝히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박승석 서거 80주년이 되는 2017년에 다산의 생애를 연재한 칼럼을 기고하였던 것인데 최근에 정약용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산의 6대손이 현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동안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 후손의 이름은 정해인(丁海寅)이며 30세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당신이 잠든 사이에” 제하의 드라마에 경찰로 활동하고 있는 한우탁으로 출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필자는 이 드라마에 대하여 몰랐는데 정해인이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총 32회중에서 현재 8회까지 진행되었는데 뒤늦게나마 이미 방영된 8회분을 1회부터 8회까지 전부 재방으로 시청하였다.

 

필자가 이 드라마에서 정해인을 본 인상은 한마디로 선한 느낌을 받았으며, 특히 다산의 후손이라 생각하니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드라마가 시작한 날이 9월 27일이라고 하니 필자가 다산 생애를 연재한 칼럼을 마친 이후 2주만에 방영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끝으로 조선후기 대학자 다산 정약용의 6대손 정해인이 국민배우(國民俳優)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pgu77@naver.com  

 

*필자/문암 박관우.브레이크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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