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관중의 삼국지는 제갈공명이 중원을 회복하여 한나라를 재현하려고 애쓰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반면에 남양자(필자)가 시도한 대륙풍운은 촉나라가 진나라에게 망하자 후손들이 일시적으로 중원고국을 떠나 변방에서 그 힘을 길러서 진국을 멸하고 다시 한나라의 후신인 전조와 후조를 일으켜 세운 이야기다. 그 중에 전.후조의 두 황제가 나타나기 까지 이야기를 펼치다 보니 대륙이 크게 소용돌이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명이 대륙의 풍운으로 정해 졌다. 독자여러분이 이 글을 읽으면서 촉나라 후손들의 꿋꿋한 기상도 만나겠지만 동이민족의 위대함도 만나게 될 것이다.
헌데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조자룡의 다음 이야기와 조자룡의 손자 석늑에게 크게 흥미를 느낀 것이다. 왜냐하면 살상의 제왕이기도 한 조자룡의 후손이 황제가 되어 중원을 정복한데 대한 진한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그 석늑의 곁에는 장익덕이라는 또 다른 살상의 제왕의 손자가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활약했듯이 지모를 한 것 발휘하여 대제국을 세워나가는 것을 추적해 가면서 역시 인간은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유전의 법칙의 범주 내에서 살아가는 법이며 왕대밭에 왕대가 나서 자란다는 사실을 독지여러분에게 알려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 조자룡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제갈공명이 남만을 왕화 시키고자 남만을 쳤을 때, 남만왕 맹획을 일곱 번을 잡고 다시 일곱 번을 놓아 주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저 유명한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는 사자성어를 만들어내었든 사건이다.
그 마지막 전쟁터를 가보자. 맹획을 도와 주기위하여 전쟁을 이끈 올돌골은 보름동안 공명과 싸워서 한 번도 패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이기고 또 이겼다. 등갑군이라는 특수한 갑옷을 입었기 때문에 이기기도 했지만 그 속내를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다 제갈공명의 계책 때문이었다. 그러나 올돌골은 까맣게 모르고 자만심이 크게 부풀어 있었다. 그 자만심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아 교만해져 버리기 까지 한 마지막 전쟁터는 반사곡이라는 험지였다. 그곳에서는 제갈공명이 이끈 촉병의 화살이 난무하고 화공으로 인한 불길이 등갑군을 제물로 삼고 말았다. 밀림의 음산한 냉기는 지옥문을 들어 설 때의 기분 그것이었다. 그런 음산하기 짝이 없는 그곳에 난데없는 불길이 한 번 번지자 등갑군이 불에 타 죽으며 절규하는 귀곡성이 간장을 도려내는 아픔을 토하며 천지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불패의 등갑군 3만명이 모두 다 반사곡에서 불타 죽었다. 온갖 맹수도 푸나무도 불에 타서 반사곡에 한줌의 재로 변하고 말았다.
이때 공명은 산 위에서 불타는 반사곡을 굽어보다가 등갑군의 절규를 들으면서 그만 애간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진정한 울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눈물을 흘리던 공명이 마음을 가다듬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내가 비록 병가로써 공훈은 이루었다 하나 반드시 나의 수명이 크게 줄어들고 말리라.”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장수들이 숙연해지며 말이 없자 조자룡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서며 공명을 위로했다.
“승상! 천하는 생생유전(生生流轉)하는 법입니다. 낳고 죽고, 죽고 낳고 반복하는 것은 천지개벽 이래로 생명의 본연한 자세입니다. 황하의 큰물이 한번 넘치면 수만 명의 인명이 살상되지만 그 물줄기가 원상으로 회복되면 곡식은 더욱 무성해지고 풍부해져서 인명은 더욱 번창해 집니다. 승상의 대업은 왕화의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저들이 운수가 사나워서 죽었지만 만토천재(蠻土千載)의 덕화를 남길 것이니 등갑군 3만의 죽음은 절대로 헛된 죽음이 아닐 것입니다. 어찌 승상과 같지 않은 말씀을 하십니까?”
“오호라, 자룡이 나에게 진실로 좋은 말씀을 들려주었소. 내가 자룡의 말을 들으니 다소나마 마음에 위로가 되오.”
공명은 눈물을 흘리며 자룡의 말에 대답했다.
필자는 이 두 영웅의 대화를 음미하며 과연 이들의 후손들은 어떻게 세상을 경영하며 살다갔을까? 라는 궁금증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제갈공명의 후손은? 조자룡의 후손은? 조조와 그의 수하 맹장들의 후손은? 유비의 수하 맹장들의 후손은? 손권의 수하 맹장들의 후손은 어떤 삶을 살다 갔을까? 라는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그 회답은 조조의 위(魏)나라를 지나서 사마소의 진(晉)나라를 거쳐 진무제 사마염의 대진통일시대를 조명하다보니 모든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AD 304년 흉노의 추장에 불과했던 유연이 팔왕(八王)의 난에 편승하여 거병(擧兵)을 하였다. 그는 산서(山西) 지방에서 흉노족을 이끌고 흉노국가를 재건하였다(漢: 前趙). 같은 해 저족인 이웅(李雄)은 사천(四川)에서 성국(成國)을 일으켰다. 이어서 서진(西晉) 왕조는 한(漢:유연)에게 수도 낙양(洛陽)을 빼앗기고 멸망하였다. 그래서 강남(江南)땅 건업에 망명정권이 탄생하였다(東晉:사마예). 그러므로 해서 흉노인 유요(漢:前趙)와 갈족인 석늑(조늑:後趙)은 서로 제 길을 따로 따로 찾아가서 중원을 차지했다. 이 같은 사실을 다시 정리해 보면 5호16국(五胡十六國)이란 난세가 나타났다. 여기서 5호란 사마소의 후손들인 팔왕의 골육상쟁에 결과물로 나타난 것으로 족속으로 흉노. 저. 갈. 선비. 한족을 말한다. 그리고 16국은 한(유연:전조:흉노) 성(이웅:저) 후조(석늑:갈) 전연(모용준:선비) 전양(장무:한) 전진(부견:저) 후연(모용수:선비) 후진(요장:강) 서진(걸복국인:선비) 후량(여광:져) 남량(독발오고:선비) 북량(저거몽손:흉노) 남연(모용덕:선비) 서량(이호:한) 하(혁련발발:흉노) 북연(풍발:한)등의 군웅인 소국과 대국을 모두 일컬어 말하는 것이다. 이제 그 5호16국 시대를 거치면서 변화무쌍하고 천변만화하는 역사의 뒤안길을 따라가 보기로 하자.
역사의 족적을 따라가다 보면 후조황제 석늑이 전조를 멸망시키고 유씨의 왕권을 중원에서 사라지게 하는 역사적 필연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유비현덕의 자손이 가졌던 왕권을 조운 자룡의 자손이 빼앗았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오랜 숙원인 중국통일을 조늑(석늑)이 이룩하게 되며 그 성공은 진시황제 한고황제 진무제에 이은 후조진성제(조늑)의 4번째 통일이 된 것이다. 하지만 진성제는 불과 4년 동안 황권을 지키다가 함화 8년. 태화 15년에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했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필자가 이미 써서 브레이크뉴스에 발표한바 있는 제갈삼국지와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밝혀 두는 바이다. -대전 가장산방에서. <계속> wwqq1020@naver.com
*필자/남양자 이순복.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