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참상 고발한 기자 '헤밍웨이'가 주는 교훈

<인터뷰>헤밍웨이 번역자 김영진..."현대전에는 승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기사입력 2017/09/10 [17:15]

세계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 시점에 어니스트 헤밍웨이인가? 지금 한반도는 북한 수폭실험과 ICBM발사 그리고 사드문제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7.21~1961.7.2)는 세계 1.2차 대전에 전쟁기자로 참여하여 전쟁의 참상을 고발했다, 스페인 내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보도하고 무솔리니, 히틀러의 전쟁의 광기를 폭로했다. 그는 종군기자로서 어느 한 편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취재.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에 따른 전쟁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기자이기에 앞서 휴머니스트였다. 헤밍웨이가 고발했듯이 전쟁이 발발하면 누군가는 돈을 벌고, 어느 나라는 반사적 이익을 얻게 된다. 지난 한국전쟁(6.25전쟁)에서 대동아 전쟁의 가해자인 일본이 국가를 부흥하는데 발판을 마련하였듯이...

 

문제는 전쟁이 나면 미국 워싱턴이나 , 일본의 도쿄에서 가공할 무기들이 소비되지 않고 한반도에서 국지적 성격의 전쟁이 아닌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맞부딛쳐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되어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한반도를 폐허로 만든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헤밍웨이의 작품이 아닌 그가 전쟁의 참화 속을 누비며 취재한 보도기사를 통해 인간 헤밍웨이를 만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브레이크뉴스는 9일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엮은 김영진 번역자를 서초동 서래마을 한 카페에서 만나 그 소소한 얘기를 들어봤다.

 

▲  해밍웨이가 "전쟁 참상을 고발할 때는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 무솔리니의 군인, 전쟁터에 끌려온 용병 등 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린 선량한 사람들의 죽음을 고발했습니다. 또 세계열강이 전쟁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해득실에 따라 전쟁이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전쟁 자체가 범죄임을 역설했다"고 김영진 작가는 밝혔다.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왜 어떤 이유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번역하게 되었는가?


▶ 시리즈 ‘더 저널리스트’ 첫 번째 주자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가 남긴 교훈을 되짚고 시대를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헤밍웨이의 눈으로 당시 시대상을 선명히 보여주고 싶은 의도로 기획됐습니다.

 

1.2차 세계대전과 크고 작은 전쟁의 참화 현장을 누비는 헤밍웨이의 진면목이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분단된 한반도에서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네스트 훼밍웨이는 너무도 유명하여 그의 작품세계는 일반 독자들도 많이 접했습니다.

 

하지만 헤밍웨이가 작가이기 전에 대학도 안 나온 고졸의 학력으로 말단 수습기자에서 직접 취재 현장을 누비고 다니며 베테랑 기자로 발돋움하기 까지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작품이 아닌 저널리스트로서 직접 전쟁의 현장에 뛰어들어 발로 쓰는 생동감 있는 인간 헤밍웨이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 번역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 더 저널리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가 25년에 걸쳐 쓴 400여편에 이르는 기사와 칼럼 가운데 26편 상당수는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것입니다. 사회 불평등과 부조리, 전쟁의 고통 등을 직설적이고 간결한 문체, 대화체를 섞어 넣어 생동감 있는 글로 담으려고 애썼던 저널리스트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주로 프리랜서로 활동한 헤밍웨이의 기사와 칼럼은 다수 매체에 실렸지만 대부분 디지털화되지 않아 접근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외국 도서관 자료와 온라인 스캔본 등의 자료들을 수집하느라 많은 시간을 헤밍웨이에 빠져있었습니다. 마치 헤밍웨이와 대화하고 연애하듯 장기간 수집과정을 거쳐 기사 수백 건을 모았고 그중 헤밍웨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기사만을 선별하는 작업이 어려웠습니다. 

 

특히 기사모음집으로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주제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문체 또한 중요합니다. 흔히들 헤밍웨이를 마초(macho)스럽다. 즉, 남성적이며 힘센 사람으로 이미지화되어 있습니다. 헤밍웨이 특유의 간결하고 건조한 하드보일드(Hard-boiled)문체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의 숨결과 감정을 살려내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세계관과 번역자의 세계관 차이에서 오는 혼란은 없었는가?


▶ 창작의 원동력은 흔히들 사랑이라고 얘기합니다. 세계의 지성인 니체와 릴케, 프로이트, 바그너 등 당대 최고의 천재들에게 뮤즈(Muse)로 유명한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를 쓴 "루 살로메"에서 보듯, 사랑은 창작의 무한한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 또한 저널리스트로서 경험을 중요시 하는데 넒은 의미에서 사랑 또한 경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헤밍웨이는 놀랍게도 세 번 이혼하고 네 번 재혼합니다.

 

작품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은 사랑의 만남과 헤어짐의 고통 속에서 그의 작품들과 기사들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분명 헤밍웨이의 세계관과 저의 세계관은 다르겠죠. 하지만 그러한 문제는 전혀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더 저널리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에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무엇인가?


 ▶ 헤밍웨이가 살고 있는 동시대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대입하여 그가 남긴 기사속에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인간의 욕망에 의한 전쟁의 광기를 보여 줌으로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무솔리니를 인터뷰하며 전쟁의 참화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유럽을 지켜본 후 1935년 9월 <에스콰이어>에 게재한 “다음 세계대전을 기다리며”는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전쟁의 급박함을 반추하게 합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미국)는 돈을 벌 것이다. 정치적 프로파간다와 사람들의 탐욕(전쟁을 부추기는 미 월가의 국제금융), 전쟁을 통해 망가진 국가 재정(미 군수산업)을 되살려보려는 속셈이 우리를 전장(한반도)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전쟁을 향한 준비는 이미 시작됐다. 오랜 기간 구상된 살인 계획에 우리는 매일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 전쟁이라는 이름의 살육을 막는 법은 단 하나다. 전쟁을 만드는 지저분한 수법들, 전쟁을 기다리는 더러운 자들과 범죄자들, 이들의 어리석은 전쟁 운영 방식을 공개함으로써 선량한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현대전에는 승자가 없다. 현대전에는 승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을 5년 앞둔 시기, 헤밍웨이 예측의 날카로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반도에서 전개되고 있는 현실과 전쟁 배후에 도시리고 있는 북한의 김정은, 미 트럼프,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러시아 푸틴의 면면들이 당시의 상황과 오버랩된다.  

 

- 일반 사람들은 ‘무기여 잘있거라,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기자이기에 앞서 작가로만 알고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어떤 사람인가?

 

▶ 헤밍웨이는 수습기자 시절 주로 사회의 부조리와 위선적 지도자 즉, 약자가 아닌 강자를 향한 비판에 날을 세웠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등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솔직하고도 사실적인 글을 쓰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1934년 ‘에스콰이어’)이라고 설파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헤밍웨이의 기자정신과 직접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 들어가 발로 쓰는 기자로서 진면목이 돋보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당이 극에 달할 때 “유럽 최대의 허풍쟁이, 무솔리니”라는 제목의 기사로 무솔리니를 날카롭게 비판했죠. 마치 지금의 트럼프나 김정은을 허풍쟁이로 비판하듯이.

 

전쟁기자로서 그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마치 눈앞에서 현장을 보는듯한 생생한 묘사와 그 속에 등장한 인물들의 감정 묘사입니다. 무솔리니가 1935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했을 당시 전장을 다룬 “아프리카에는 독수리가 난다” 기사에선 독수리, 까마귀들이 날아와 군인들이 부상해 쓰러져 살아 있는데도 쪼아 먹는 참상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묘사합니다.  

 

또한 그리스와 터키의 전쟁으로 죄 없이 이주해야 했던 기독교인의 처참한 행렬도 기자의 눈으로 날카롭게 바라봅니다. 스페인 내전에선 공화군의 마지막 거점지로 프랑코 반군의 공세에 시달리던 마드리드의 모습을 실감나게 기록하죠. 마치 영화를 보여주듯이. 포탄과 총성이 오가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그의 기사는 전쟁의 비극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보여줍니다. 

 

흔히들 전쟁에 파견된 기자를 종군기자로 표현한다. 그러나 김영진 작가는 종군기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전쟁기자’로 썼다. 그 이유는 종군기자는 어느 한편에 시각으로 취재 보도하는 것은 바람작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인간적 매력은 무엇인가?


▶  1917년 고교를 졸업한 그는 지역신문사 ‘캔자스시티 스타’에서 수습기자로 7개월간 일했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합니다. 그러나 그는 부상으로 귀국한 뒤 캐나다로 옮겨 ‘토론토 스타’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22세가 된 21년에는 토론토 스타의 유럽(파리)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엘리자베스 해들리 리차드슨과 첫 번째 결혼을 하죠.

 

유럽 특파원 시절 이탈리아 무솔리니를 수차례 인터뷰를 합니다.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면서 목격한 피난민 행렬은 “무기여 잘 있거라”장면묘사에 영향을 줍니다.

 

그는 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북아메리카신문연합 통신원 자격으로 활약하며 파시즘 비판에 앞장섰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을 취재해 보도하는 등 전쟁기자로서 필명을 날립니다.

 

그가 전쟁 참상을 고발할 때는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 무솔리니의 군인, 전쟁터에 끌려온 용병 등 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린 선량한 사람들의 죽음을 고발했습니다. 또 세계열강이 전쟁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해득실에 따라 전쟁이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전쟁 자체가 범죄임을 역설했습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한국의 젊은 청년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 책속에 소개되지는 않지만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에서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오랫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합니다. 하지만 바다와 싸우며 바다의 냉혹함에 결코 굴복하지 않죠.  '파괴될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는 그의 불굴의 정신은 저를 포함하여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청년세대들이 노인의 불패 정신을 배우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인생은 절망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늙은 어부는 84일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시간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지만 절대 희망만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겪고 있는 지금 우리의 청춘 세대가 희망, 용기, 도전의 꿈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 번역 또는 앞으로의 계획은?


▶ 어니스트 헤밍웨이, 조지 오웰, 칼 마르크스의 공통점은 시대를 상징하는 작가이자 뛰어난 저널리스트였습니다. 이들은 저널리스트로서 당시 사회상을 고발하고 전쟁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직접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과 평화, 자유, 인권, 평등, 자본과 경제적 불평등의 주제를 천착(穿鑿)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조지 오웰, 칼 마르크스가 당대에 고민하고 던진 질문이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서 더 저널리스트 시리즈로 위의 두 사람을 세상에 내놓을 예정입니다. 

 

- 책속에서 헤밍웨이는 작가가 되고 싶은 청년에게 글쓰기 비법을 충고한다. 독자와 글을 쓰는 작가지망생들에게 소개한다면?


 ▶ 소설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가? 그는 세 가지로 압축 강조합니다.

 

첫째, 아는 것만 쓰라. 헤밍웨이는 누구보다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보고 겪지 않은 것을 쓰면 곧, 자기 자신의 감동은 몰론 독자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작가의 상상력 또한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믿었죠. 그는 “경험으로 배우는 게 많아질수록 더 진실에 가깝게 상상할 수 있다.” 고 강조했습니다.

 

둘째, 명확하게 쓰라. 그는 “독자가 글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건 글쓴이가 자신의 얕은 지식을 감추려고 일부러 복잡하게 썼거나, 뜻이 잘 전달되게 쓸 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명확하게 쓰기 위해서는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훈련을 하라. 그때 어떤 소리가 들렸는지, 어떤 느낌이 났는지, 내 감정이 어떻게 흔들렸는지 옮겨보라. 독자가 그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고,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셋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라. 그는 다른 사람 머릿속에 들어가는 연습을 해보라고 권유한다. “젊은 연인이 싸우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치자. 여자가 무슨 생각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지, 이때 남자는 어떤 느낌이 들까? 각자의 입장에서 분석해보라. 누가 옳고 그른지의 판단은 우리 몫이 아니다”라고 헤밍웨이는 말하고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그를 찾아 온 작가 지망생에게 충고합니다. “작가로서 누구를 판단하라는 게 아니야. 작가의 역할은 사람을 이해하는 거”라고.  그러나 우리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 수 있지만 한길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고 했으니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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