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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개종교육 감금 납치당한 A여성…단독 인터뷰

종교자유 완벽하게 주어진 대한민국에서 개종위해 감금-납치 범죄사건 발생

인터뷰어/김예진(전국기자협회 회원) | 기사입력 2017/05/18 [11:27]
▲ 개종     ©브레이크뉴스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주어진 대한민국에서 개종을 위해 감금하고 납치하는 범죄적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1일 B 종교관련 언론매체는 신천지 교인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는 신천지예수교회에 다니는 A(여‧24)가 종교생활로 가출한 후 부모와 연락을 차단했다며 A를 애타게 찾고 있는 어머니의 인터뷰였다. 부모가 찾고 있다는 A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A는 “기사는 왜곡된 것”이라며 “나는 강제 개종으로 가족에 의해 두 번이나 감금당했다. 계속되는 폭력과 폭언, 개종 강요에 견딜 수가 없었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혼자 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기사를 보고 앞이 캄캄해졌다. 이런 식으로 나를 두 번 죽이는구나.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이어 A는 “신천지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집에서 한 달간 감금됐고 폭력을 당했다. 개종을 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면서 “이후 20여일을 경기도 구리시 인근 원룸과 펜션, 교회 등에서 감금된 채 강제 개종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개종 목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밤새 폭언과 폭력이 이어졌고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다”고 덧붙였다. A는 “두 번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이대로 진실이 묻혀선 안 된다고 생각해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음은 A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사생활 보호차원에서 인터뷰에 응한 A의 측면사진을 사용했습니다.-편집자 주 >


-B매체에 실린 어머니 인터뷰 기사를 봤나? 기사를 보고 어땠나?
▲온갖 거짓말로 도배가 된 기사를 읽으며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어버이날 전날 펑펑 울며 부모님께 쓴 편지조차 조작되어 보도된 것을 보고 절망감에 앞이 컴컴해졌다. 기사에는 내가 신천지 때문에 가출을 했다고 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나는 강제적인 개종을 요구받으며 두 번이나 감금됐다. 수면제까지 먹여 원룸에 감금한 부모님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집을 나온 것은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두 차례나 감금을 당했다고? 부모님이 감금을 한 것인가?
▲그렇다. 2년 전인데 한 번은 한 달간 집에 감금됐고, 두 번째는 원룸, 모텔, 펜션, 교회 등에서 20일간 감금됐다. 강제적인 개종을 하기 위한 감금이었다.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셨고 아버지는 종교가 없었다. 처음 집에 감금됐을 때는 내가 신천지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어머니가 알게 된 후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하려고 감금한 것이다. 그냥 감금만 한 것이 아니라 종교생활을 포기하라며 온갖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다. 학교에도 나가지 못해 전부 F학점을 받았다. 오히려 교회 생활을 하고 있던 1학기에는 전부 A+로 학과 내에서 1등을 했었고 내 생활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부모님이 내 신앙생활을 존중해주시더라. 이상하게 여겼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정말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건넨 수면제가 든 음료를 마시고 쓰러졌다. 알고 보니 개종 사업가들과 내통하며 나를 강제 개종시키기 위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거였다. 일어나보니 경기도 구리의 한 원룸이더라.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눈은 안대로 가려졌다. 조금 있으니 개종 사업을 하는 사람이 들어왔다. 개종 목사가 나를 데려 오라고 한 것이다.

 

-어머니는 A가 거부할 까봐 어디 가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A와 함께 이단 상담센터에 갔다고 했ᄂᅠᆫ데. 원룸이나 감금의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는데...
▲나는 수면제가 든 음료를 마시고 쓰러졌고, 이단 상담 센터(강제 개종 센터)가 아닌 센터 인근 원룸에서 눈을 떴다. 핵심 원인인 강제 개종에 대한 과정은 다 생략됐으니까 내가 왜 집을 나가게 됐는지 설명이 제대로 안 된다. 모두 왜곡된 것이다.

 

-강제 개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나?
▲처음에 눈을 뜬 곳은 강제 개종 사업을 하는 교회 주변 원룸이었다. 문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고 강제 개종을 하는 교회 관계자가 들어오더니 내가 다니고 있는 신천지교회에 대한 비난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이 방법이 정말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대화를 거부하고 이 곳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폭력이 시작됐다. 내가 소리를 치자 옆에 살고 있던 사람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가족들은 나를 구리초대교회로 이동시켰다. 협박이 이어졌고 권사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강제 개종을 강행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받아들이라고 하고 그러지 않으면 폭언이 이어지니까. 제정신으로 버틸 수 없었다. 잠시 틈을 이용해 나는 탈출을 시도했지만 아버지에게 금방 붙잡혔다. 이후 나는 교회 인근 펜션으로 옮겨졌다.

 

펜션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리 강요가 진행됐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지치게 하며 자신의 것을 받아들이게 한다. 나는 강하게 저항했다. 그럴수록 폭언과 폭행은 더 심해졌다. 밥도 굶겼고 내가 도망갈까봐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 나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볼일을 봐야만 했다. 심지어 개종하지 않으면 생리대를 주지 않겠다는 협박도 했다. 가족들과 개종 목사 측은 서로 암호를 정해 출입을 했다. 다른 사람이 들이닥치면 나를 감금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철저히 숨긴 것이다.

 

그 곳에서 나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개종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인정했다. 그러니 펜션에서 구리초대교회로 옮기더라. 그 곳에서도 계속 강제 개종은 진행됐다. 나는 듣기만 했다. 그러니 개종이 된 것 같다며 집으로 보내고 이후로는 왔다 갔다 하면서 교육을 받으라고 했다.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였고 절망감과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나를 감금하고 폭행까지 하며 억지로 개종하려 한 부모님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연락이 닿지 않으니까 교회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혹시나 해서 구리초대교회로 왔다. 나를 본 교회 분들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나는 강제로 차에 태워져 경기도 양평 깊은 산속으로 이동했다. 8시간 가량 폭언과 폭행이 이어졌다. 그리고 또다시 경기도 횡성의 한 펜션으로 이동됐다. 개종 목사 측이 전화가 와서 납치 신고가 됐으니 차량을 숨기고 번호판을 가리라고 지시하더라. 다음날 개종 목사 측은 펜션으로 왔고 생필품과 수갑, 안대 등을 건넸다. 나는 수갑과 안대가 채워진 채 또 다른 펜션으로 옮겨져 감금됐고, 밥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개종 목사 측은 강제로 신천지를 비난하는 글을 읽게 했다. 이들은 부모님에게 이런 행위를 계속해야 한다고 지시하며 이 생활은 반복이 됐다. 나는 개종 세뇌 교육을 받겠다는 각서를 쓰고 펜션에서 나올 수 있었고 다시 구리초대교회로 이동돼 개종 세뇌 교육을 받았다. 

 

-인터뷰에서는 신천지 측 사람들이 A를 데려갔다고 했다. 어떤 상황이었나?
내가 납치되어 간 모습을 본 교회 사람들이 경찰에 확인을 요구했고 경찰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당시에 구리초대교회에 있었는데 개종 목사 측과 가족들은 아무 문제없다고 말하라고 협박했다. 나는 눈을 피해 구석으로 가서 현재 납치를 당한 상태라고 말했고, 경찰이 교회로 찾아왔다. 상황을 확인한 경찰과 함께 나는 교회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더 이상 부모님과 함께 지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친구 집에서 지내다 밖에서 방을 얻어 혼자 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A가 학업에 충실하고 성적도 좋았지만 종교생활을 하며 집에도 늦게 들어오고 성적도 떨어졌다고 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못된 말이다. 나는 시험기간 중 세 번 정도 밤12시쯤 들어간 적이 있다. 노는 것도 아니고 시험 공부한다고 딱 세 번 늦게 들어간 것이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나는 교회 생활을 하던 1학기에는 올 A+를 받아 과내에서 1등을 했다. 학교 성적이 떨어진 것은 감금을 당해 출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다니려면 등록금을 내야하는데 당장 가진 돈이 없었고 학자금 대출은 부모님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 개종하기 전에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학교에서 제적 처리를 받게 됐다. 너무나 좋아했던 공부였지만 강제 개종으로 인해 나는 가족도 학업도 모두 잃게 된 것이다. 지금은 학교를 다시 다니기 위해 학비를 벌고 있다.

 

-개종 사건 이후 부모님을 보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래도 어버이날 때 편지도 전달했던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끔찍한 개종 사건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도 나는 계속 해서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납치와 폭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가 어디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1년 정도 지났을 때 쯤 집에 들어가겠다고 연락을 드리고 찾아갔다. 낮부터 다음날 새벽이 되도록 밖에서 기다렸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으셨다. 그런데 부모님은 내가 다니는 교회에 찾아와 나를 돌려달라며 울고 계시더라. 나는 너무 황당했고 어머니께 다가갔다. 그런데 경찰은 어머니가 자신의 시위를 방해한다고 나를 고소했다며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그러면서도 계속 밖에서는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울부짖으셨다. 사람들은 나를 부모 버린 패륜아 취급을 했다. 견딜 수가 없었다. 1년 전 오랜 고민 끝에 집으로 들어갔지만 가족들은 밤마다 폭언과 협박을 했고 나는 이대로 살수 없어 다시 혼자 살기로 결심했다.

 

-요즘 생활은 어떤가?
▲다시 대학을 다니기 위해 학원에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며 돈을 벌고 있다. 물론 혼자 살면서 힘든 것도 많지만 배우는 것이 더 많다.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는 환경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사랑하는 법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부모님께는 종종 연락을 드리고 있고 얼굴도 뵙는다. 강제 개종에 대한 트라우마로 불안함은 여전히 있다. 갑자기 누가 들이닥쳐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그래서 내가 어디서 지내고 있다는 말씀은 못 드리겠더라. 그랬더니 얼마 전에는 부모님이 나를 실종신고까지 해서 위치추적을 하셨다. 깜짝 놀라 연락을 드렸는데 받지 않으셨다. 나는 또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그 스트레스로 학원에서 강의를 하다 쓰러졌다. 병원에 가보니 스트레스성 위궤양인데 정도가 심해 위에 피가 고여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어머니 인터뷰 기사를 보니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모님께서 내게 했던 폭언과 폭력, 그리고 이렇게 거짓 증언 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문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없애려고 하는 기성교단 목회자들이다. ‘기성교단이 아니면 안된다’는 이들의 주장은 수많은 사회적 갈등을 만들고 있다. 아무런 문제도 없던 내 인생에 강제 개종이라는 사건을 맞이하며 가족 간 신뢰는 산산조각이 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받은 폭언과 폭력, 강요는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상처가 됐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납치, 감금, 폭행, 강요로 인한 강제 개종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치가 떨리고 악마 같은 개종 목사들이 떳떳하게 목회 생활을 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많은 분들이 강제 개종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

 

*인터뷰어/김예진(전국기자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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