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혼을 위하여(72)- 원자탄 연구를 후원한 일본에 투하된 원자탄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4/24 [14:14]

1차 세계대전에 연합군으로 참전한 일본이 1918년 종전 이후 패전국 독일과의 관계는 사실상 외교관계가 중단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일본이 1871년 11월 서방세계를 시찰한 이와쿠라사절단(岩倉使節団) 귀국 후에 독일에 계속 파견되었던 연수단과 국비유학생 숫자가 급격하게 감소한 자료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그러나 1919년 6월 연합군과 독일 사이에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서 미국과 영국에 의하여 일본이 철저하게 소외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1920년 독일 제국의 외무장관을 역임한 빌헬름 솔프(Wilhelm Solf, 1862~1936)가 주일 독일대사로 부임하면서 재개된 외교관계를 통하여 일본과 독일 사이의 밀월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로 독일행 국비유학생이 대규모로 선발되면서 1920년 동경대학교 조교수급의 인재들이 대거 독일로 떠났습니다. 이후 유학파들이 돌아와 일본 각계에 주요한 구성원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역사적 의미가 많은 내용입니다. (나중 기회가 되면 이를 상세하게 써갈 것입니다) 당시 이들이 공부한 독일 마르크시즘에 대한 영향이 일본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독일에서 돌아온 교수진들이 당시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설립한 경성제국대학에 학과들이 신설되면서 교수진으로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생겨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영향의 연관성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좌) 주일 독일대사 빌헬름 솔프(Wilhelm Solf) (우) 고도우 신페이(後藤 新平) 출처 https://ja.wikipedia.org     ©브레이크뉴스

주일 독일대사로 부임한 빌헬름 솔프 대사는 당시 어려운 독일 경제 상황을 설명하며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일본 각계에 진출한 실력자들을 찾아서 독일 연구기관의 기부금 후원을 위하여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상대성이론으로 원자탄 개발의 바탕을 놓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1922년 일본을 방문합니다. 나아가 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참혹한 살상 무기로 세계를 공포로 몰았던 독가스를 개발하여 아이러니하게도 1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던 1918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독가스의 아버지 프리츠 하버(Fritz Haber,1868~1934)도 뒤를 이어 1924년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당시 이들이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일본열도가 떠들썩하게 환영하였던 상황은 일본이 독일을 향한 동경과 기대치가 절대적으로 크고 높았음을 설명한다 할 것입니다. 솔프 대사의 외교적 노력으로 당시 독일 연구기관에 많은 후원금이 모금되었습니다. 과학, 의학, 법학, 예술에 이르는 각 분야의 정기적인 학술 교류와 연수생 파견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외교절차로 급속도로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1926년 체결된 일본과 독일의 문화협정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와 같은 문화협정에 따라 독일과 일본의 여러 문화 예술 교류단체들이 설립되면서 일본과 독일은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공유하고 발전시켜가는 혈맹의 관계라는 발기문이 선포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에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 (좌) 아인슈타인 1922년 일본 방문 사진 (우) 프리츠 하버 1924년 일본 방문 출처:https://search.yahoo.co.jp     © 브레이크뉴스

 

주일 독일대사 솔프는 1921년 아인슈타인이 노벨상 수상 이전인 1920년 부임하자마자 독일 유학파인 의사 출신 동경 시장이었던 고도우 신페이(後藤 新平, 1862~1929)와 접촉하여 특별한 요청을 하였습니다. 당시 아인슈타인이 교수로 있었으며 헝가리 출신의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Leo Szilard, 1898~1964)가 학생으로 있었던 베를린 대학의 전신인 베를린훔볼트대학 연구소 지원에 대한 요청이었습니다. 이에 신페이 시장은 당시 일본에서 1906년 이히 파스(イヒ湿布薬)와 1911년 호시 위장약(ホシ胃腸薬)으로 당시로써는 최초의 신약이라는 선풍적인 인기를 가졌던 호시제약(星製薬)의 창업자 호시 하지메(星 一, 1873~1951)회장에게 이를 설명하였습니다.

 

호시 하지메 회장은 개인 후원이 아닌 기업의 후원으로 많은 금액을 지속해서 후원하게 됩니다. 당시 아인슈타인 부부가 일본을 방문하면서 일본으로 향하던 배 기타노마루(北野丸) 선상에서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보로 통보받은 후이어서 일본은 더욱 대서특필로 보도하면서 뜨거운 환영의 인파가 넘쳐 났습니다. 그는 도쿄에서 2회 센다이,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후쿠오카에 이르는 순회강연을 하였습니다. 나아가 황궁을 방문하여 천황을 접견하는 등 40일간을 일본에 체류하였습니다. 또한, 독가스의 발명자 프리츠 하버는 호시 하지메 회장의 초청으로 1924년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군 연구소에 화학무기의 제조법에 대하여 강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호시 신이치 회장의 열성적인 후원으로 무산위기에 있었던 아인슈타인 그룹의 연구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호시 신이치 회장은 이와 같은 과도한 지원으로 1929년 미국발 경제공황 사태가 발생하면서 일본 경제를 엄습하여 동양 최고의 제약회사이었던 호시제약이 파산신청을 하게 됩니다.

 

▲ (좌) 호시제약 창업자 호시하지메 (중) 호시약과대학(星薬科大学) (우) SF 작가 호시 신이치 출처 https://ja.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세계의 공황은 결국 1934년 패전보상금 무효를 선언한 히틀러가 독일 총통에 오르는 역사를 맞게 됩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1933년 아인슈타인은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대학교수가 되었으며 제자 레오 실라르드는 1933년 영국으로 건너가 동위원소 분리에 대한 이론을 정립한 이후 1938년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다음 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게 되면서 미국에 모인 아인슈타인과 레오 실라르드 그리고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와 월터 진(Walter Zinn)이 그 유명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1942년 12월 인류 최초의 원자탄이 탄생한 것입니다. 결국,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것입니다. 파산에 이르는 어려움을 맞으면서도 후원하여 탄생한 핵폭탄이 일본에 떨어진 것입니다. 역사란 늘 이렇게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흐르는 살아있는 교훈입니다.

     

▲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 장면과 참상 출처: http://www.newsweekjapan.jp/ http://blog.livedoor.jp     © 브레이크뉴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원자폭탄의 개발자 레오 실라르드가 우리가 ‘타임머신’으로 잘 알고 있는 공상과학 소설의 선구자인 영국의 SF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의 소설을 손에 들고 다닐 정도의 팬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자탄 개발의 후원자 일본의 호시 하지메 회장 또한 삼십 년 후(三十年後) 라는 SF 소설을 발표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나아가 아들 호시 신이치(星 新一, 1926~1997)는 일본의 대표적인 SF 작가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에서 주관하는 일본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SF 문학상인 ‘호시 신이치 상’(星新一賞)의 주인공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되어 일본에 투하된 핵폭탄의 참상이 온 세계에 전해진 이후 1948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 객원교수로 있던 일본의 이론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사무실로 70 나이의 아인슈타인이 찾아왔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들을 죽게 하였다며' 눈물로 사죄하였습니다. 다음 해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일본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살피며 지금 온 세계가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 훼손될 수 없는 신성한 역사의 교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우리는 깊게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음 칼럼은 (73) 음악과 미술의 만남입니다.*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