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혼을 위하여(71)- 170 언어의 해독 박기용 박사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4/23 [08:41]

서시(序詩)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일제 강점기의 어두운 세상에서 28세 나이의 짧은 삶을 이역의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마친 민족시인 윤동주의 서시(序詩)는 1948년 출판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실린 서언(序言)의 의미를 가진 시입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 시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의 행과 시어가 다를 수 있으며 그 의미의 자유로운 선호 또한 자신의 몫일 수 있습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시의 마지막 행인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를 깊게 생각합니다. 마지막 행의 문법적인 체계는 ‘별’이라는 주어를 ‘스치운다’라는 서술어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별’이라는 ‘주어’의 존재와 동행하는 영원한 오늘을 추구한 시인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에서 ‘스치운다.’라는 서술이 불변의 존재인 별을 스쳐 가는 바람으로 오늘과 별은 영원한 시간과 존재로 남는 까닭입니다, 

 

인간이 생명을 부여받아 주어진 삶을 살면서 영원한 존재로 남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위하여 평생을 정진하는 어느 학자의 이야기를 매만지면서 가슴을 걸어간 시를 먼저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 박기용 박사와 저서 分論語 와 고서적 論語     © 브레이크뉴스

 

 

민간 경제연구소에서 증권 분석업무를 하다 90년대 초 미술로 방향을 바꾸어 갤러리를 세워 일하면서 ‘부채 그림에 담은 한국의 명시전’이라는 전시회를 열고 있을 때 예전에 모셨던 이삼 원장님과 전시장에 함께 온 분이 계셨습니다. 고대 언어학자 박기용 박사님이었습니다. 이후 원장님과 함께 자주 찾아뵈면서 박사님의 성경보다도 더 아득한 시대의 해박한 식견에 빠져들었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명칭의 어원을 여쭈어 보면 차근차근 시대를 거슬러 오르며 다양한 계통의 어원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역사적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고대의 백과사전과 같았던 것입니다.

 

▲ (左)일제 강점기 경성제국대학 (右) 일제강점기 台北帝国大学 출 처:https://ja.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박기용 박사는 지금은 없어진 가톨릭 계열의 성신고등학교를 함세웅 신부와 함께 졸업하였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재학 중에 라틴어 수업을 통하여 익힌 라틴어와 독학으로 배운 산스크리티어와 독일어를 이해할 만큼 어학에 재능이 있었으며 높은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절친하였던 함세웅 신부와 가톨릭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박기용 박사는 도중에 건국대 영문학과로 편입하여 희랍어, 히브리어, 몽골어를 정복합니다. 이후 고려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고대영어와 중세영어 불어와 고트어 등을 공부하여 당시 28개의 언어를 해독하였습니다, 이후 정부기관에 등용되어 일하였으며 45세의 나이로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박사는 세계 19개 계통의 언어 중 16개 계통 163개의 언어를 해독하는 분으로 나머지 3계 계통은 아프리카 오지의 언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사는 서울대 언어학과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고대 언어에 깊은 이해가 가능하였다고 사석에서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전언에 의하면 서울대 도서자료에 모두 고대 언어로 된 서적과 문헌 자료가 가득한 비밀스러운 상자 하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박사는 그 자료에 매달려 ‘구약성서 복문구조 대조분석’ 논문을 발표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던 것입니다. 박사가 전한 이야기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으로 참가한 일본이 종전 이후 독일에서 받은 고대 서적과 고문헌 복사본(영인본) 2세트가 있었는데 동경대학교와 서울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에 전해진 것이라는 이야기이었습니다. 이러한 자료를 연구하면서 고대 언어에 대한 깊은 연구가 가능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박사 논문 심사과정에서 고대 언어에 대한 심사 부분에 서울대에 전문가가 없어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에서 수메르어 박사 학위를 받은 조철수 박사가 논문 심사과정에 고대어 분야를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이었습니다.

      

▲ 이와쿠라사절단(岩倉使節団) 경로 지도와 사절단 대표     © 브레이크뉴스

 

이러한 서울대학교에 소장된 고대 도서와 문헌에 대한 맥락에서 잠시 일본 이야기를 하여야합니다. 1860년 중반부터 막부의 독단으로 서양 강국과 잇달아 통상조약과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불거진 문제와 서양의 함대 대포에 잇달아 패배를 겪으면서 새로운 시대 상황을 인식한 반 막부세력과 충돌에서 막부세력이 무너져 왕정으로 복귀합니다. 이에 새로운 세력이 추구한 개혁운동이 1868년을 원년으로 보는 메이지 유신입니다. 이후 1871년 11월 일본 정부는 서양시찰과 유학생 파견을 목적으로 이와쿠라사절단(岩倉使節団)이라는 사절 46명, 수행원 18명, 유학생 43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하였습니다.

 

먼저 미국에 도착하여 샌프란시코와 워싱턴 DC 두 곳에 정박하며 8개월간 미국 전역을 견문합니다. 이어 사절단은 증기선을 타고 1872년 8월 영국 리버풀에 도착한 이후 영국에서 4개월, 프랑스에서 2개월,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에서 3주, 러시아 2주를 체류하고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에서 각 1주 그리고 오스트리아에 들러 비엔나 만국 박람회를 시찰하고 스위스까지 견문합니다. 이들은 지중해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홍해를 거쳐 아시아 지역으로 돌아와 유럽국가의 식민지 도시인 실론, 싱가포르, 사이공, 홍콩, 상하이까지 돌아보고 조선에 대한 정한론이 분분하던 1873년 9월 일본 요코하마 항에 도착합니다. 이러한 세계로 향한 발 빠른 움직임으로 40년을 다져온 일본에 결국 우리나라는 1910년 일제강점이라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일본은 연합군에 참전하여 세계 전쟁을 통하여 무기의 현대화와 전술의 특성을 면밀하게 살피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18년 독일혁명으로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새롭게 출발하면서 패전 보상금 문제가 합의되었지만, 당시 독일 정부의 열악한 재정으로 1923년경부터 상환이 어렵던 가운데 1929년 미국의 경제 대공황 사태가 일어나면서 세계적인 경제공황으로 상환 불가능 사태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우리나라를 강점한 일본은 탄탄한 국력을 정비하여 서양 강국의 학자들을 대거 초빙하여 대학의 위상을 높였으며 주요 나라에 국비 유학생을 지속해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기억할 내용은 특히 독일에 전체 유학생의 80%에 해당되는 유학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종전 이후 독일경제가 무너져 외환시장에서 월등한 환율의 이점을 가졌던 일본은 유학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 장점과 함께 당시 독일이 보유하였던 신기술 전수라는 큰 이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일본이 독일에서 사들인 도서의 목록과 규모를 살펴보면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도서 중 일부가 서울대학교 전신인 경성제국대학과 대만 대북제국대학에 소장된 것입니다. 

    

▲ 1차 세계대전 일본군 참전 출처:http://www.nippon.com/     © 브레이크뉴스

 

박기용 박사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에 10여 년간 고대 언어 강의를 하였으며 조철수 박사와 함께 ‘서울고대고전문헌연구소’를 설립하여 고대어 연구와 후진 교육에 진력하였습니다. 이후 2003년 동양 최고의 고전이며 유교 사상의 대표적 경전인 논어(論語)에 담긴 문장의 주석과 어학의 통사적 분석을 망라한 978쪽에 이르는 저서 분논어(分論語)를 출판하여 학계에 큰 관심을 불러 왔습니다. 박사는 170개의 언어를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세계의 다양한 저서와 문헌을 보아왔지만, 논어는 가장 높은 가치를 품은 고전임을 일깨워 이를 연구하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책은 논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장을 아카드어, 히브리어 ,라틴어, 영어, 국어등에 이르는 8개 언어의 다양한 문법과 비교하여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언어적 사고와 문법적 해석을 전개한 방대한 연구 작업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이거나 라틴어의 문법까지도 관통하여 논어의 문장을 수학적 분석처럼 풀어놓은 세계 최초의 연구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러한 박사의 연구에 대하여 과연 동양 최고의 고전 논어를 서양의 고대 언어가 가진 문법적 체계에서 비교와 해석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일부의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사의 연구에 논리적인 비판을 제시한 사실이 없었던 점에서 학자의 열정과 업적에 대하여 깊은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박기용 박사는 분논어 연구 저서가 출판된 이후 새로운 연구를 위하여 모든 연락을 단절하였습니다. 논어 중에서도 박사님이 가장 고귀한 문장으로 삼았던 논어 이인편(里仁篇)의 ‘아침에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는 말을 생각하며 "날씨가 추워진 후에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나중에 시드는 것을 안다. (歲寒, 然後知松栢之後彫也)"는 이인편(里仁篇) 문장이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다음 칼럼은 (72) 원자탄 연구를 후원한 일본에 최초의 원자탄이 투하되었다, 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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