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두인허원 박승석과 지구물리학자 박찬오 생애 비교분석

박관우 역사작가 | 기사입력 2017/04/17 [10:38]

 

▲ 박관우     ©브레이크뉴스

지금으로부터 80년전인 1937년 12월 28일 종두인허원(種痘認許員) 박승석(朴勝錫)이 강원도 철원군 신서면 도신리(현: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도신리)에서 향년(享年) 73세를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박승석이 세상을 떠나던 해에 경기공립중학교(京畿公立中學校) 2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박승석의 종손(從孫) 박찬오(朴贊五)가 된다.

 

필자가 그동안 브레이크뉴스를 통하여 박승석과 박찬오와 관련된 여러편의 칼럼을 발표한 바 있으나 본 칼럼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박승석과 박찬오의 생애(生涯)를 비교분석(比較分析)하려는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그동안에 발표한 칼럼들과 중복된 내용도 있을 수 있다는 점 독자 여러분께 깊은 양해를 구한다.

 

박승석은 종두인허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이에 반하여 박찬오는 지구물리학자(地球物理學者)로 활동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박승석과 박찬오의 공통점(共通點)이 있으니 전체적인 행적(行跡)을 자세히 모른다는 것인데, 특히 박승석은 출생한 이후부터 50여년의 생애가 베일에 쌓여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하여 박찬오 같은 경우는 41세가 되는 1963년 이후의 행적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박승석이 종두인허원의 길을 선택한 이유와 더불어 박찬오가 어떤 연유(緣由)로 지구물리학을 공부하게 된 것인지 근본적인 배경을 모른다는 점도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승석은 필자가 1992년에 재당숙(再堂叔)의 증언을 통하여 그 행적을 최초로 알게 되었으며, 박찬오는 그 이듬해인 1993년 만주(滿洲)에서 군자금(軍資金)을 모집(募集)하다가 행방불명(行方不明)된 것으로 알려진 박의서(朴義緖)의 행적을 추적(追跡)하는 과정에서 뜻밖에 정부기록보존소에서 판결문(判決文)을 발견하면서 그 행적을 알 수가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박승석과 박찬오의 행적을 연구한지 어느 덧 20년의 세월이 넘었다는 것이다.

 

2017년은 박승석이 세상을 떠난지 80주년이 되는 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해를 맞이하여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박승석의 생애를 복원(復元)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한 것인데 이러한 과정에서 결국 박찬오의 행적도 다시 추적하기로 한 것이니 참으로 기묘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핵심 포인트는 박승석은 어떤 계기로 종두인허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며, 더불어 박찬오가 지구물리학을 공부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게 생각되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박승석은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 1913년 4월 14일자 기사에 근거하여 49세에 종두인허원을 시작으로 71세까지 20년 넘게 활동하였으나 서거한 이후 그 행적이 역사속에 묻혀 있었다.

 

한편 박찬오는 1940년 경기공립중학교 5학년 재학중, 비밀결사조직(秘密結社組織)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경기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를 거쳐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 수감(收監)되었다가 다시 원산형무소(元山刑務所)로 이감(移監)되어 결국 해방이 되면서 출소(出所)하였다.

 

그 이후 1946년 소련제1기유학생 299명의 일원(一員)으로 선발되어 1948년 9월 27일 우랄광산대학 지구물리학과에 입학하여 1953년 7월 10일 졸업한 이후 귀국하였는데 당시 북한에서 지구물리학을 전공한 인물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이 분야(分野)에서 선구자(先驅者)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박찬오가 1954년 중공업성(重工業省) 지질탐사관리국(地質探査管理局) 물리탐광기사(物理探鑛技士)를 거쳐 북한과학원(北韓科學院) 산하 물리수학연구소(物理數學硏究所)에서 간행하는 학술잡지“수학과 물리”제3호에 도영찬과 함께 “Ge에 대한 In의 적심효과를 제고하기 위한 실험” 제하의 공동논문(共同論文)을 발표한 이후 행방불명되어 반세기(半世紀)가 넘도록 그 행적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박승석과 박찬오의 생애를 비교분석하였는데 필자는 앞으로 박승석 뿐만 아니라 박찬오의 행적도 복원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pgu77@naver.com

 

*필자/문암 박관우.역사작가.<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저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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