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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30)-프랑크 왕국과 유럽 (上)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2/21 [09:49]

프랑크 왕국(Frankenreich)의 태동과 멸망은 근현대 유럽사의 근원이라 할 만큼 중요한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로마 대제국이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의 사망으로 로마 제정 시대가 막을 내리고 동서 로마 시대로 분할되어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481년 프랑크 왕국이 세워졌습니다. 프랑크족은 살리족· 리부아리족· 카티족· 브라반트족 등의 크고 작은 부족 중에서 대표적인 세력이었던 살리족이 부족 간의 통합과정을 거치면서 메로빙거 왕가의 클로비스가 프랑크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 프랑스 역사화가 Jean Alaux 작품 세례받는 클로비스 출처:Wikipédia     © 브레이크뉴스

 

프랑크 왕국은 크게 태동기의 메로빙거 왕조 시대와 제2 전성기의 카롤링거 왕조 시대로 정의되는데 이러한 프랑크 왕국의 계보를 살펴보면 로마가 공식적으로 동서로 분할되기 전 마지막 황제인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의 통치(379~395)시대로 거슬러 오르게 됩니다. 에스파냐 출신의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로마의 국교를 니케아신조의 삼위일체설에 바탕을 둔 정통 그리스도교로 선포한 황제로 두 아들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에게 나누어 동서 로마 제국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서로마제국 기병대장과 동로마제국 대장군을 지냈던 리코메레스(Richomeres335~393)가 가장 정확한 기록으로 확인되는 프랑크왕국의 시조 격인 인물입니다. 리코메레스는 그리스 철학과 학문에 상당한 지식을 가졌으며 이의 소중함을 인식하여 많은 문헌을 수집하였으나 테오도시우스 황제와 불화가 생겨 불태워진 이야기도 함께 전해지는 인물입니다.   

 

▲ 프랑크왕국 481년~814년 세력 지도 출처:Wikipédia     © 브레이크뉴스

 

그의 아들 테우데메르(Theudeme)가 프랑크족 족장으로 활동하다 로마군에게 사망하였습니다. 이후 테우데메르의 아들 클로디오(Clodio380~450)가 뒤를 이어 현재의 벨기에를 거점으로 세력을 키워나가 로마와 동맹을 맺어 제국이 인정하는 왕국이 됩니다. 이후 메로빙거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메로베크왕(Merovech, 412~457)이 짧은 기간 동안 왕위를 계승합니다. 그러나 여러 기록이 엇갈리는 메로베크왕은 당시 가장 강력한 침입자였던 동방의 훈족을 로마군과 함께 물리친 승전의 이야기와 함께 전해 옵니다.

 

이후 457년 메로베크의 아들 킬데리크(Childeric440~481)가 왕위를 이어 로마군과 함께 갈리아 지역을 침입하는 부족들을 물리치는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476년 서로마제국이 붕괴하게 되면서 다시 로마 세력과 대항하게 되었고 481년 사망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볼 때 당시 광활한 영역을 통치하던 로마제국의 각 지방 관료들의 부패에 따른 여러 문제가 드러나면서 통치 능력에 한계가 드러나 담당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이민족 세력들과 대림과 동맹을 거듭하였던 실상이 확인되는 것입니다.   

 

킬데리크가 세상을 떠난 후 아들 클로비스1세(클로도베쿠스)는 서로마 멸망 이후 극심한 혼란기에 당시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 왕국을 이루었던 부족들을 제압하여 486년 거대한 세력을 가진 통합된 프랑크왕국을 세웁니다. 크고 작은 세력의 통합에 따른 국력을 바탕으로 로마의 마지막 총독 시아그리우스가 서로마 제국 멸망 후에 지배하고 있었던 오늘날의 프랑스 레지옹 영역인 북부 갈리아 지역을 정복하였으며 프랑스 북부와 스위스 알프스 영역을 지배하던 알레마니족까지 차례로 통합하여 로마 제국이 통치하였던 거의 모든 지역을 통합하였습니다. 이러한 국력 신장을 바탕으로 491년에 서고트왕국과 동맹하여 어머니 바시나의 부족인 투링족을 통합하였으나 세력 확장으로 인하여 마침내 남부 갈리아에 거점을 둔 서고트 왕국과 국경 충돌이 잦아지면서 전투가 시작되어 프랑크 왕국이 승리합니다. 이후 독일 지역은 물론 프랑스와 에스파냐 양국의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 산맥에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던 시기가 507년이었습니다.

 

▲ 랭스대성당(Cathedral of Reims) 동쪽 전경 출처:Wikipédia     © 브레이크뉴스

 

이와 같은 시기에 클로비스 1세는 이교의 프랑크왕국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합니다. 이러한 과정에는 많은 이해관계가 담겨 있으며 역사적으로 유럽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먼저 서고트 왕국이 궤멸한 상황에서 프랑크 왕국은 이탈리아 북부지역에 막강한 세력을 가진 동고트왕국과 동로마제국(비잔틴 국)의 삼각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이에 동로마제국(비잔틴 국)에서 클로비스에게 옛 선조들과 로마의 관계를 애증의 관계를 상기하며 확고한 귀족 신분을 보장하며 동맹을 권유합니다. 당시 클로비스는 그러한 권유의 환심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교인 프랑크족과 정복한 영토의 원주민이 가지고 있는 로마 가톨릭에 대한 불화의 심각성을 깊게 인식하여 향후 전개될 상황에 대비하여 497년 프랑스 북동부 레옹 지역에 있는 랭스대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며 개종을 선포하게 됩니다. 경쟁 세력 동고트 왕국 또한 기독교로의 개종을 하였지만,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이단시되었던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선택하였습니다. 이러한 서로 다른 결정의 차이는 훗날 유럽 전역에 전파된 로마 가톨릭의 대세로 프랑크왕국에 대한 전성기가 열리게 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다음 칼럼은 (31)『프랑크 왕국과 유럽 (下)』 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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