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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원더 '당신의 심장을 사랑하는데 사용하기를'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이서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2/17 [15:46]
▲ 이서영     ©브레이크뉴스

평화ㆍ인권운동가이며 영혼을 치유해주는, '위대한 가수'라고 칭송받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1950년에 지구별에 도착했고  1961년 열한 살에 가수로 데뷔했다. 그는 미국 대중음악사의 산 증인이며  총1억 5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스물 두 번의 그레미상과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사람. 또한  유엔평화대사이기도 하다. 그는 장애ㆍ인종ㆍ가난이라는 조건을 뛰어넘은 인간 승리의 표본으로 여겨진다. 그는 육안으로 세상을 볼 수 없는데도 보이는 사람들보다 더 풍성하고 빛나는 아름다움과 사랑을 노래한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할 때 우리는 그의 표정에서, 입술에서 사랑의 최고치를 경험한다. 우리에게 이렇게 따뜻한 행복을 나누어주는 그는 누구일까?


그에게도 어머니가 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오직 한 사람.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 그에게도 어머니는 오직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자애로운 사랑보다는 엄격한 사랑이었다. 왜 그랬을까? 또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어머니 룰라 매는 교육도 받지 못했고 가족도 없었으며 중노동에 시달렸고 인간의 자존감을 느끼고 배울 기회조차 없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태어났다. 스무 살인 그녀에게 세 번째 아이였다. 스티비가 태어나면서 스무 살의 엄마 룰라 매는 삶의 자세attitude를 완전히 바꾸었다. 스티비는 엄마의 뱃속에서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인큐베이터 안에서 양육되었다. 생명은 가까스로 건질 수 있었으나 대신 시력을 잃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팔 다리가 정상인 나조차도 이렇게 살아왔는데 눈이 먼 이 아이는 나의 도움이 없다면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내가 정신차리지 않으면 이 아이는 빛이라고는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할 거야. 나는 스티비에게 사랑의 원천이 되어주어야만 해.'


스티비의 긍정적인 성격, 경쾌한 유머 감각, 아이처럼 솔직한 태도는 바로 엄마 룰라 매의 작품일 것이다.


"어머니의 의지가 오늘 나를 이 자리에 서게 했다."

그래미상 시상식에 어머니와 동행한 스티비는 이렇게 자신의 성공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다.


시시콜콜한 평가를 뛰어넘은 거장.

'검은 모차르트.'


그는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는 삶을 산다. 세상에 기여할 만한 무엇인가를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고 아프리카 흑인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스티비는 아프리칸 스타일을 고수한다. 레게머리를 하고 무대에 등장한다. 그는 자신을 통하여 척박한 환경의 흑인들이 희망을 품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힘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환경, 더구나 눈까지 멀어 세상을 볼 수 없었던 스티비에게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눈을 가졌을 뿐이야. 보이지 않는 것은 눈이지. 그러나 눈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단다. 너에게는 무엇보다 뛰어난 청력과 음악에 대한 사랑이 있잖니? 남들보다 더 노력하렴. 남들만큼 행복해지고 싶다면.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단다. 엄마는 너를 믿는다."


피아노도 치고 노래도 할 수 있는 교회에서 행복했던 스티비. 너무나 피아노를 사랑하는 스티비의 열정을 바라보던 이웃 아주머니는 이사갈 때 스티비에게 피아노를 선물해주었다. 여덟 살 때부터 동네 무대를 두려움없이 서곤 하던 스티비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모타운에서 오디션을 본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앨범 '재즈 소울'로 스티비 원더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열세 살이 되어 첫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였는데 그는 무대를 장악하는 라이브의 귀재로 어린 나이임에도,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무대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열일곱 살이 되어서야 스티비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음악은 뭘까?'에 대하여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고 정신적 스승인 마틴 루터 킹을 통해 삶이 주는 질문들과 마주치게 된다. 스티비에게 음악은 자신이 지닌 가장 귀한 것이었고 그러므로 그는 음악을, 노래를 정의와 평화과 평등과 그리고사랑을 향하는 통로로 활용하게 된다. '당신의 심장을 사랑하는 데 사용하기를.' 스티비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이렇듯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스티블랜드 모리스Stevland Morris.' 그가 태어나 가지게 된 이름이다. 출산 예정일이 두 달이나 남았는데 통증이 심했던 룰라는 집에 있다가 혼자 버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남편 캘빈 저드킨스Calvin Judkins는 무심했다. 1950년 5월 13일, 몸무게가 1,800그램밖에 안되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43일 간 인큐베이터에 있었던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는 아기의 따뜻한 체온에 할 말을 잃었다. 의사 또한 사물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는 아기의 시력에 대해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아기는 세상을 볼 수 없었다. 32주 미만, 체중 1,500그램 이하의 미숙아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신체 장기와 조직들을 모태에서처럼 제공받는다. 탯줄이 끊긴 상태이므로 아기 혼자의 힘으로 폐를 사용해 호흡해야 한다. 따라서 산소가 필요한데 이때 산소의 과다흡입은 눈의 혈관에 치명적이어서 섬세한 망막 조직에 상처를 일으키고 백내장, 망막 박리, 심할 경우 시력을 잃는다. 스티비의 경우가 그렇다.


스티비는 룰라의 셋째 아이였다. 임신 중에도 그녀는 중노동에 시달렸다. 남편 캘빈은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두 아이를 굶기지 않기 위해 룰라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 캘빈은 돈을 벌기 위해 아이를 가진 룰라에게 매춘까지 강요했다. 룰라는 기댈 곳이 없었다. 이 열악한 상황에서 태어난 스티비. 그것도 세상을 볼 수 없다는 절망적인 조건.


엄마 룰라는 1930년 앨라배마의 히츠버러에서 태어났다. 황량하고 가난한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흑인 노예의 후손들이었고 그들은 목화밭에서 일했다. 임금을 받지만 고작 몇 달러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유일한 위안은 잡음 섞인 라디오에서 흐르는 블루스였다. 룰라의 엄마는 십대에 룰라를 낳고 여섯 달 만에 친척에게 떠넘기고 사라졌다. 아버지 노블 하더웨이는 룰라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곳을 떠나버렸다. 룰라는 삼촌과 숙모 밑에서 자랐다. 1943년, 열세 살이 되자 룰라는 아버지가 있는 이스트 시카고로 떠나야 했다. 두 분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이스트 시카고는 칼날 같은 추위로 룰라의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했다. 이스트 시카고에서도 아버지의 급여는 열악한 수준이었고 두 아이와 아이의 엄마까지 비좁은 쪽방에서 살고 있었다. 결국 보름 정도 지나 노블은 룰라를 여동생에게 떠맡겼다. 룰라는 사춘기를 지나 한 남자의 아이를 가졌고 고모 부부로부터 쫓겨났다. 아이의 아빠도 곧 사라져버렸다. 룰라는 친구 집을 전전하며 아들을 낳아 밀턴 하더웨이라 이름지었다. 십대의 나이에 엄마가 된 룰라. 어느 날 룰라는 재즈 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는 남자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 캘빈 저드킨스였다. 그들은 결혼도 했다. 캘빈이 태어났다. 룰라의 둘째 아이였다. 결혼 이후 한동안 성실하던 저드킨스는 술과 도박을 버리지 못했고 매춘 중개일을 하더니 셋째 아이를 가진 룰라에게까지 매춘을 강요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룰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존감을 느낄 수도 회복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했고 결국 단 한 번도 세상 구경을 하지 못한 채 시력을 잃은 채로 어둠 속에서 세상과 조우해야 했다.


이제 룰라는 세 아이의 엄마였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스무 살.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으며 사랑받은 적 없고 세상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단지 생존을 위하여 살아야 했던 스무 살의 엄마 룰라. 룰라는 초점 없는 스티브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룰라도 행복할 때가 있긴 했다. 맨정신인 저드킨스가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거나 함께 그릇과 냄비를 두드리며 놀 때. 아버지 저드킨스는 스티브의 음악적 재능을 금세 알아보았다. 퇴락하기는 했지만 룰라의 마음을 빼앗은 피아노 연주 실력처럼 저드킨스도 음악에 대한 사랑만은 남다른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스티비에게 싸구려 봉고 한 세트를 사주었고 스티비는 늘 봉고 세트를 껴안고 살았다.

 

룰라는 바로 이 지점을 잘 포착했다.

 

'눈이 안 보이는 만큼 특별한 귀와 음악적 재능을 가졌으면' 하고 그녀는 바랐고 그 바램만큼 스티비는 뛰어난 음감을 가지고 있었다. 룰라는 잡음 섞인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스티비는 라디오 속에서 흘러나오는 소울을 들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했다. 엄마 룰라는 스티비를 볼 때마다 밀턴과 캘빈을 바라볼 때와는 다른 아픔을 느꼈다. 두 아이는 건강했다. 룰라는 사느라 바빴고 사는데 늘 채였다. 게다가 스티비는 건강한 아이가 아니었다. 지극한 사랑과 관심이 없다면 금세 스러져버릴 연약한 촛불이었다. 스티비를 통해 룰라는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느날 룰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내 삶도 불쌍하다. 그러나 스티비의 삶은 더 불쌍할 수도 있다. 아니다. 나의 삶을 아이에게 대물림할 수는 없다. 스티비를 정상아처럼 키우자. 그래서 스티비가 당당한 한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하자. 그래야 내가 없어도 세상과 마주하며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스무 살 엄마의 새로운 탄생의 순간이었다. 스티비가 시각장애를 갖지 않았다면 룰라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 밀턴과 캘빈에게는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이 룰라의 최고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스티비는 달랐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아이의 미래는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내가 이 아이의 눈이 되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룰라는 자신의 눈에 비치는 세상의 모습을 자세하게 스티비에게 전해주었다. 설명해주기도 하고 느낌을 들려주기도 했다. 스티비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결핍과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으므로 늘 손으로 귀로 감각하고자 했다. 스티비는 끊임없이 엄마에게 질문했다. 엄마는 귀찮아하지 않고

정성껏 대답해주었다.


'그저 볼 수 없을 뿐 불행한 것은 아니다. 내가 스티비의 눈이 되고 입이 되고 귀가 되어서 언젠가는 스티비가 혼자서 말하고 듣고 만져서 세상을 온전히 알 때까지 열심히 움직이자. 스티비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배운 것도 없고 따뜻하게 양육받은 적도 없는 룰라에게 마음을 단단하게 붙들어 줄 것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다. 룰라는 스티비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치유의 기적을 지닌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절박하게 기도하기도 했다. 룰라는 어느 날부터 찾아다니기를 멈췄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부터 강하게 변하지 않으면 스티비를 제대로 돌볼 수 없으리라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룰라는 더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술주정뱅이이며 폭력적인 저드킨스는 어느 날 룰라에게 담배심부름을 시켰다. 그녀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직접 사다 피워요." 저드킨스는 곧바로 폭력을 행사했다. 그는 당황스러웠고 분노가 치밀었다. 룰라는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늘 일상으로 이어지는 술주정, 폭력, 매춘에의 강요에 굴복해서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었다. 룰라는 아이들을 통해, 특히 스티비를 통해 엄마인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인식해 갔다. 뺨이 붉어지고 입술이 터져도 룰라는 저드킨스에게 대들었다. 잠들었던 아이들이 소란스러운 소리에 깨어 울었다. 룰라는 마음을 다잡고 애들을 데리고 떠나겠다고 저드킨스에게 말했다. 저드킨스는 다시 룰라를 무자비하게 때렸다. 순간 룰라는 치마 속에 숨겨둔 칼을 꺼내 휘둘렀다. 번뜩이는 칼날은 팔뚝 깊이 박혔다. 뚝뚝 흐르는 피를 보자 갑자기 두려워진 저드킨스는 팔을 붙들고 도망쳤다. 룰라는 어찌해야할지 알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저드킨스가 룰라를 고소했다. 룰라는 서둘러 집을 떠났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저드킨스가 사방을 수소문해 룰라를 찾아왔다. 자신이 잘못했으니 한 번만 용서해달라는 것이었다. 룰라는  신중히 생각했다. 아이 셋을 데리고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었다. 룰라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새기노라는 이 터전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새 삶을 살자는 것. 곧 그들은 디트로이트로 거주지를 옮겼다.


룰라가 폭력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늘상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불행하게 살아야 했을 것이다. 어린 엄마는 그렇게 강인해져 갔다. 스무 살에 스티비의 엄마가 된 룰라는 저드킨스에게 대적해 스물세 살에 디트로이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 한동안의 평화는 그들에게 꿀처럼 달았다. 시간이 흐르자 힘든 삶에 대한 대안이 없었던 저드킨스는 다시 방탕한 시절로 되돌아갔다. 잠들지 못할 정도로 추웠던 어느 날, 스티비가 여섯 살쯤 되었을 때 룰라는 부두 한쪽에 쌓아둔 석탄 도둑질을 해야 했다. 두 형들과 엄마가 석탄을 훔치고 스티비는 망을 봤다. 집안에는 동전 한 푼 없었고 아이들은 감기를 달고 살았다. 커서도 스티비는 석탄을 훔칠 때의 그 추위와 긴장감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룰라는 일로나 숙모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어시장에 나갔다. 온종일 생선들을 나르고 부리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손발은 얼어터지고 퉁퉁 부었다. 온몸에 생선비린내가 문신처럼 새겨졌다. 그래도 스티비는 엄마의 생선 비린내를 기다렸다. 따뜻한 엄마의 품이었기 때문이다. 스물여섯 살의 엄마는 이처럼 스티비에게는 절대적인 천국이었다

                                                                    

룰라는 아이들을 엄하고 단호하게 키웠다. 그녀는 스티비를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았다. 잘못을 했다면 두 형과 같은 무게의 체벌을 받아야 했다. 스티비는 매우 활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였으므로 사고를 치는 횟수도 부지기수였다. 피멍이 들도록 맞을 때도 많았지만 스티비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훗날 스티비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어머니는 자식의 첫사랑이다. 나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해주신 어머니, 이 어머니를 허락하신 신께 감사한다. 어머니는 앞을 못보는 나를 형들과 같은 무게로 다루셨다. 내가 잘못하면 가차없이 회초리를 들었다. 덕분에 나는 가장 귀한 친구인 음악을 만나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스티비는 눈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골목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는 쓰레기통들 사이를 걸음 수로 헤아린 다음 수없이 넘어진 끝에 결국 자유롭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는 다른 놀이도 같은 방식으로 배워갔다. 스티비는 집안에서도 머뭇거림없이 걸어 다녔다. 룰라는 스티비가 넘어져도 "일어나, 스티비. 좀 더 왼쪽으로."라고 말하며 흔연스럽게 대했다. 룰라는 스티비에게 특별 대우를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정상이 아닌데도 정상으로 대해주는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자란 셈인지도 모른다.


룰라는 아이들이 자립심을 키우게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했다. 혼자서 세 아이들을 키우며 노동을 해서 생활을 꾸려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거의 방임에 가까운 자유를 주었다. 그러나 문제를 일으키거나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는 매우 단호하게 회초리를 들었다. 형제들끼리는 서로 돕고 배려하고 사랑하도록 유도했다. 스티비가 많은 친구들을 사귀도록 격려했고 형들이 놀 때는 반드시 스티비를 함께 데리고 놀도록 가르쳤다. 스티비는 사회성과 친화력이 뛰어난 경쾌한 아이로 자랐다.


스티비는 늘 바깥에서 놀았다. 부딪쳐 넘어져도 벌떡 일어나 방향을 바꾸어 걸었다. 늘 상처투성이였지만 늘 바깥으로 나갔다. 스티비에게는 항상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들이 도와주어 자전거를 타기도 했고 그 길을 외워 혼자서 타기도 했다.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의 직관은 예민한 청각 덕분에 점점 발달했고 스티비는 현실에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성장하였다. 엄마는 스티비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다 다르게 생겼단다. 얼굴도 키도 다 달라. 똑같은 사람은 없어. 너 또한 부족한 게 아니라 그저 다를 뿐이야." 스티비가 대답했다. "알아요, 엄마. 난 알아요. 목소리만 들으면 키도 어느 정도 인지 짐작할 수 있고 얼굴도 다 다르다는 사실도 알아요." "스티비, 사람들이 모두 우리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단다. 그래서 너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어. 하지만 네가 이상하거나 나쁜 게 아니라 신이 너를 '특별하게' 만드셨음을 잊지 마라. 너는 '신이 주신 선물'이란다. 항상 너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렴. 신은 너의 눈이 되어 너를 돌봐주실 거야. 그러니 너는 너만이 할 수 있는 일,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렴." <스티비 원더 이야기>에서 마크 리보스키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현대 철학자인 휴버트와 숀은 <모든 것은 빛난다>의 에필로그에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늙고 지혜로운 스승에게 오랜 가르침을 받아온 두 제자가 있었다. 스승이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 세상으로 나가도 좋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빛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면, 너희들의 생은 복될 것이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두 제자는 우연히 길 위에서 다시 만났다. 첫 번째 제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 많은 빛나는 것들을 '보는 법'을 배웠지. 하지만 여전히 불행하다네. 세상에는 슬프고 실망스러운 것들이 너무 많았어." 그러자 두 번째 제자가 행복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모든 것들이 빛나는 것은 아니라네. 하지만 더없이 빛나는 것들은 존재하기 마련이지."

 
세상이 온통 빛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고 고통스럽거나 실망스러운 것들이 너무 많은 와중에도 '더없이 빛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니 맞출 수 있다면, 아니 '더없이 빛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세상에 빛나는 많은 것들을 제대로 '보는 법'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찬란한 빛의 통로를 따라 걷는 스티비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찬란한 빛의 통로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닌 룰라에게 '스ㆍ스ㆍ로ㆍ빛ㆍ나ㆍ는ㆍ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ebluenote@hanmail.net


**필자/이서영. 북카페 <책 읽어주는 여자 블루노트> 주인장.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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