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소신공양 돌입했던 정원 스님이 원적에 들었는데...
민중들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부정부패에 분노하고 투쟁해야!
 
이법철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1/11 [13:56]
▲ 정원 스님.  지난 7일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에서 국민의 대오각성을 촉구하며 소신공양에 돌입한 정원 스님(서울 행복사)이 2017년 1월 9일 오후 7시 30분 원적에 들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이 단결하여 목숨을 바쳐 부정부패의 악의 세계를 변혁하려는 운동에 나서면 지구촌 어디에서도 악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근거는 동서고금의 각국의 민중봉기는 제국도 붕괴 시키고, 철통같은 독재정권도 붕괴시켜버렸다. 근거의 예를 국제적으로 찾을 필요는 없다. 그동안 한반도 역사에서 민중 봉기의 승리를 예를 들 수 있다.


이조 5백년간 한반도에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운명에 “양반과 상놈”의 신분제(身分制) 있었다. 부모에 의해 상놈으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인격과 권리는 없고 요즘 유행어로 “소, 돼지 같이 취급받는 인생”이었다. 신분제를 철폐하기 위해 일어난 민중봉기가 예화로 조선 말의 계급투쟁으로 볼 수 있는 동학혁명이다.


동학혁명의 봉기의 첫걸음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관오리를 징치하는 데 있어 보이지만 속내는 이조 5백년간 신분제로 고통 받는 민중의 해방과 민주적인 권리를 쟁취하자는 분노와 비원이 있었다. 첫째, 양반과 상놈의 계급사회를 끝내고 조선의 모든 인간은 평등한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둘째, 농노(農奴)같은 소작인 대우 속에 지주와 탐관의 수탈과 착취에서 벗어나 평등한 세상을 열어보자는 분노의 비원이 있었다.


당시 동학혁명의 지도자들은 세계적인 프랑스 혁명 소식을 접하고 봉기군에 프랑스 혁명의 대의와 성공을 알려주고 사상 교육과 봉기군을 규합하였다. 민중 봉기군의 대다수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이었다. 혁명의 봉기군은 오직 세상을 바꾸는 개벽세상(開闢世上)을 열어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산다는 이데올로기로 단결하여 목숨  치는 혁명에 나섰다.


동학혁명이 양반과 상놈의 신분제 철폐의 요구와 부당한 농노적 수탈과 착취에 대한 제도 철폐의 요구라는 것을 당시 왕과 왕비, 그리고 왕의 부하들인 조정의 권력자들, 힘있는 양반들은 뻔히 알면서도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려 했고, 동학혁명의 민중봉기를 반란으로 몰았다.


왕은 반란군을 소탕한다는 명분아래 외국군대인 청군(淸軍), 일본군을 비밀리에 끌여 자국의 국민들을 학살하려 혈안이 되었다. 마침내 일본군의 후비군(後備軍) 19대대의 3개 중대가 작은 포와 기관총 십여 정을 준비하여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당시 19대대의 대대장은 ‘미나미 고시로’ 소좌였다.


조선왕의 요청에 의해 동원된 일본군과 동학군은 공주 우금치 전투(1894년 11월)에서 최후의 대결을 하였다. 동학군은 가슴에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라는 주문을 하얀 천에 써서 달고 입으로는 주문을 큰소리로 외우며 칼과 죽창 등으로 무장하여 일본군을 향해 돌진하였다. 동학명군은 숫자적으로는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대부분 원시적 무기로 무장하였고, 주문을 가슴에 달고 외우며 돌진하면 일본군의 총알이 피해간다는 미신적이요, 주술적인 사상에 세뇌되었다.


일본군 19대대의 대대장 미나미 고시로 소좌는 동학혁명군이 목숨바쳐 원하는 신분제 폐지를 환히 알고 공감하였다. 그러나 상부의 명령은 위반할 수 없는 지엄한 명령이었다. 드디어 미나미 고시로 소좌는 주문을 외우며 돌진해오는 동학혁명군을 향해 휘하 3개 중대에 “발사” 명령을 내렸다. 일본군 3개 중대는 개인화기는 물론이요, 작은 포와 기관총들은 일제히 발사되었고, 신분제 없는 세상으로 바꾸려는 민중 혁명가들은 폭풍에 꽃잎이 지듯 죽어갔다. 주문은 기관총을 이기지 못하였다. 동학군은 전멸하디시피 대패하였다. 그것은 일본군의 대학살이었다.


포와 기관총, 개인 화기의 총에 죽어가며 주문을 외우며 돌진하는 동학혁명군을 보면서 일본군들도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한다.  후일담에는 미나미 고시로 소좌는 참회의 뜻에서 승려가 되었다는 설이 전해온다.


그 피바다를 거친 후 마침내 떼죽음한 동학 혁명가들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양반과 상놈의 신분제, 즉 계급철폐는 마침내 이루어졌다. 누가 신분제를 철폐하였는가? 본국의 명령에 의해 19대대는 경복궁을 포위하였다. 자신의 백성을 외국군에 집단 살해하도록 용청한 왕과 왕비를 협박하여 대원군이 회의 수장이 되는 조정회의에서 마침내 신분제는 철폐 되었다. 그날의 죽어간 위대한 동학 혁명가들이 없었다면 양반과 상놈의 신분제는 철폐되지 않았을 것이다.

 

▲ 이법철     ©브레이크뉴스

한반도 역사에 민중이 신명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혁명적인 운동은 기득권의 왕과 귀족들, 배운 양반들, 지주들이 아니었다. 무명의 민중들이었다.


가정형편으로 배우지 못하고, 너무도 가난하고, 농노 같고, 천형(天刑)같이 상놈으로 태어나 양반으로부터 고통 받고 신음하고 통곡하며 소 돼지 취급을 당하며 구차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무명의 민중들이 언제나 피 흘려 죽으며 세상을 변화시켰다. 왕과 귀족들 권문세가, 토호들은 이를 결사적으로 반대하였다. 특히 왕과 세도를 부리는 고관들은 하루아침에 을사늑약을 맺어 한반도를 일제의 식민지로 만들고, 자신들만은 일제의 특혜를 받는 천황의 신민이요 고관이요, 귀족이 되었다.


식민지의 민중들의 남자들은 일본군의 총알받이로 전쟁의 일선에 끌려가 죽어야 했고, 여린 처녀는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 종군 위안부가 되어야 했고, 또 다른 식민지의 남성들은 일본군을 지원하는 노무자로 강제 징집되어 죽어갔다. 여타 식민지 백성들은 일본군을 위해 강제로 총력으로 황군을 위한 공출이라는 미명으로 놋그릇 등 재산을 공출해야 했다.


사찰의 대다수 승려들은 사찰의 인사권이 있는 총독부에 주지 등 고위직을 하기 위해서는 아부와 뇌물을 바쳐야 했고, 조석으로 불전에 “천황폐하 수만세(天皇陛下 壽萬歲) 황군 무운장구(皇軍武運長久)”를 목탁 치며 기도해야 했다.


그러나 또다른 민중들은 독립군에 투신하여 중국의 이역 땅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일제로부터 해방과 자주독립을 위해 전투에 나서 죽어갔다. 독립전투에 나서 죽어간 부지기수의 독립군은 무명의 민중들이었다. 오늘의 우리는 그들에 경의를 표하고 헌화를 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나는 대한민국 건국 후 벌어진 민중운동에는 두 가지 민중이 있었다고 논평한다. 첫째,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하면서 민중이 신명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정부 투쟁을 해온 자유대한의 민중들이 있다. 둘째, 조국을 북으로 하고 김일성을 한반도의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대한민국을 망치고 장악하려는 종북이들이 있는 것이다.


종북이들은 민중 혁명을 통해 한반도를 김일성 왕국으로 하려고 온갖 공작을 하여 대한민국을 파멸의 길로 인도한다. 종북이들은 북이 한반도를 통일해야 한다며 북의 세습독재를 찬양하고, 북핵을 찬양하고, 북핵 증강과 북의 세습독재체제를 지원하기 위해 햇볕정책이라는 미명으로 대북 퍼주기의 사기질을 계속 주장해온다.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번영시키려는 민중들은 종북적 민중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작금에 수도 서울 광화문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촛불시위와 주장의 구호를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가? 촛불시위는 아직까지 오직 순수한 대한민국을 위한 민중혁명이듯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하여 동패끼리 국정농단과 정경유착(政經癒着)으로 검은 돈 챙기는 대도들의 시대를 끝내자!”는 혁명적 민중들로 분석된다. 그 민중 속에는 진보와 보수, 그리고 중도의 시민들, 그리고 추악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초등학생, 중,고생, 대학생, 등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백만 학도가 분노하여 일어선 것이다. 그들이 이조 500년의 병폐인 양반과 상놈 등 신분제를 철폐한 동학의 혁명가들이 환생한 듯 보인다.


하지만 부정부패의 공범자가 된 권력자에 충성을 바치는 촛불시위를 반대하고, 맹비난하는 일부 남녀들도 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민중의 이익 보다는 권력자를 위해서 촛불시위를 북의 조종을 받는 “빨갱이”로 내몰고 있다. 대한민국을 망치는 빨갱이는 누가 진짜 빨갱이인가? 대도들을 옹호하는 자들인가, 대한민국의 민중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촛불시위인가?


누군가 촛불시위 속에 북의 노동당 당원증을 공작적으로 내던져 촛불시위를 중상모략해 보이고 있다. 과거 한국사회의 고전적인 장난이다. 하지만 북의 간첩 잡는 전문가들인 국정원과 기무사, 경찰 등의 부서의 요원들은 확대경을 들고 분석한지 오래이다.


민중들은 신명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열기 위해 권력자들의 부정부패에 더욱 분노하고 변화에 나서야 한다. 지난 7일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에서 국민의 대오각성을 촉구하며 소신공양에 돌입한 정원 스님(서울 행복사)이 2017년 1월 9일 오후 7시 30분 원적에 들었다. 법랍 40세, 세수 64세였다. 그는 김일성 주의자는 아니었다. 세월호에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승려였다. 18대 대통령 선거를 문재인처럼 부정하는 승려였다. 그의 주장은 한국의 민주사회에서 이해될 수 있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였다. 그의 원적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한국 민중항쟁사에 영원히 그 이름이 기억되기를 바란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민중들은 더 나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정치계와 한국사회의 부정부패에 분노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bubchul@hotmail.com

 

*필자/이법철. 시인. 스님. 불교신문 전 편집국장. 칼럼니스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7/01/11 [13:56]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