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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천만원 잃어도 고래가 보이면‥”

[르포]잃고 또 잃어도 못 끊는 ‘바다이야기’

박광우 기자 | 기사입력 2006/08/25 [10:39]
 
▲ 23일 오후 3시경 '바다이야기'업소의 내부. 한 사람당 서너대씩 게임기를 돌리는 40-50대가 상당수다. ⓒ프리존뉴스
온나라가 ‘바다이야기’로 시끄러운 23일 저녁. 서울 동대문역 주변의 성인오락실 밀집지역에는 바다이야기를 비롯한 성인오락실 대부분이 문이 굳게 잠겨 있다. 도시의 밤을 화려하게 비추던 네온사인 불빛도 꺼져 있다. 인근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는 최모 씨는 “한창 언론에서 떠들어대니 사람들이 어디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겠어? 요즘 경찰이 집중단속을 벌인다는 말도 있고 하니 문을 닫을 수밖에...”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대문역세권에서 조금 벗어난 주택가의 바다이야기 게임장 풍경은 사뭇 달랐다. 한 건물의 2층 전체를 쓰고 있는 이 곳은 여전히 네온사인을 환하게 밝히고 성업중이었다. 게임장 내부에 들어서자 100평도 더 되 보이는 공간에 대략 40여명의 사람들이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게임장에 들어선 기자가 두리번거리자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다가와 “게임하실건가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역세권 주변의 게임장들이 다 문을 닫았는데 이 곳은 괜찮냐고 묻자 그는 “정품 기계를 들여놓고 정상적인 영업을 하고 있어 문제될 것 없으니 걱정 안해도 된다”고 안심시키며 게임기로 안내 했다. 또 “코너를 돌면 게임기 30대가 더 있다. 오늘은 50번대 기계에서 고래가 나올 확률이 높으니 그 쪽에서 해보라”고 권했다.

옆 코너로 돌자 게임기 30여대가 놓여있고, 10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한창 게임에 몰입하고 있다. 기자가 빈 자리 중 한 곳에 앉으려 하자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거기 자리 있어요. 라이터 올려 논 거 보면 모르나?”라며 언성을 높였다. 자세히 보니 '시작' 버튼위에 라이터가 올려져 자동으로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작' 버튼을 누르고 한 번 배팅에 걸리는 시간은 4.4초. 게임장 손님들 대부분이 여러대 기계의 '시작' 버튼 위에 라이터 등을 올려놓는 방법으로 3~4 게임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이날 5시간여 만에 40여만원을 잃었다는 한 40대 남성은 곧 고래가 터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자리도 뜨지 못하고 연거푸 담배를 피워대며 초조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을 자영업자라고 소개한 그는 “두 달 전부터 게임에 빠졌는데, 1천만원은 잃은 것 같다”며 “우연히 들렀다가 재미삼아 했는데 고래가 걸리는 게 아니겠어? 그날 엉겁결에 150만원을 딴 다음날부터 두 달 동안 매일 수십만원씩 쏟아 붓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 달만 게임하고 있다보면 감이 와. 고래가 나올 것 같다는 느낌말이지. 화면이 어두워지고 바다가 잔잔해지면 고래가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하면 돼. 특히 해파리가 등장하면서 들리는 ‘대박예시’신호음만 들리면 가슴이 두근거려”라며 “3일 연속 이 게임기를 붙잡고 있는데, 이제 나와 줄 때가 됐다고 확신한다”며 손에 들고 있는 만원짜리를 한 장 더 기계에 밀어 넣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고래다. 화면이 어두워지고 고요한 바다와 함께 상어나 고래가 나타나면 대박이 터지는 확률이 높다는 신호다. 이런 예고 기능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이 게임에 빨려든다고 말했다.

대박 한 번만 터지면 이곳과 인연을 끊겠다고 장담하는 그를 세 시간 동안 지켜봤지만 결국 대박은 터지지 않았다. 그는 “여기 있다보면 바다이야기로 신세 망친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나도 어떻게 보면 그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잘만 터지면 금방 본전을 회복 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모두가 손을 떼지를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 검,경의 단속이 한창이지만 주택가에 위치한 상당수의 '바다이야기'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성업중이다. ⓒ프리존뉴스
24일 낮. 또 다른 성북구 주택가의 바다이야기 게임장. 날을 샌 듯 보이는 서너명의 남자들을 비롯해 스무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바쁘게 게임기를 돌리고 있다. 이 곳에서도 쉽게 수 천만원을 잃었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자동차 정비업을 한다는 김모(50) 씨는 "성인오락실에는 원래 관심이 없었는데, 여기저기서 하도 '바다이야기'에 대한 말이 많아 동네에 있고 해서 와 봤다가 발길을 뗄 수 가 없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통장에 비자금으로 모아뒀던 1천여만원을 모두 바다이야기에서 탕진하고 집을 담보로 2천만원 대출까지 받았다"며 "그만두려고 한 두번 마음먹은 것이 아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도박 중독자가 된 것 같아. 매일같이 가진 돈 다 잃고 오락실 문을 나서면서 '하지 말아야지' 다짐 하면서도 다음날만 되면 발길이 이 곳으로 오게 된단말이야. 도박 중독자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도 확률에 관한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있어. 어제 잃었으면 오늘은 꼭 딸 것 같다는 확신같은 것 말야. 또 오늘 따고 나면 다음 날은 어제 땄으니 오늘도 딸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김 씨는 도박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다이야기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같은 심리에 대해 최시형 박사(신경정신과)는 “대부분의 도박 중독자들은 도박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일시적으로 도박을 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런 결심은 금단증상으로 인해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도박을 하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해 지면서 집중력을 완전히 잃게끔 돼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결국 이 증상을 견딜 수 없어 다시 도박장을 찾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전국적으로 1만5천개의 도박장이 주택가 골목길, 학교 앞, 심지어 아이들 독서실 앞까지 파고들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 레저,게임산업 육성이라는 취지로 불과 4년만에 27.8%(2000년) 에서 51.3%(2004년)로 불어난 것이다. 특히 게임산업의 현금이라 할 수있는 상품권도 마구 찍어내 성인오락실 도박 규모가 1년 만에 5천억원에서 30조원으로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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