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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장 건전한 성생활 건배 발언" 옹호

위선적인 인간,위선적인 사회가 더 문제이다

송현 교수 | 기사입력 2006/08/03 [23:43]

"광명시장 발언보다 위선적인 인간과 위선적인 사회가 더 문제이다"

▲송현 교수  

호남 비하 발언을 한  이효선 광명시장이 마침내 한나라당을 탈당(?)하였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대로라면, 그가 말한 호남 비하 발언은 전라도 말로 "싸가지 없는 발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욕을 먹어도 싸고, 다소의 불이익을 당해도 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호남 비하 발언과 별도로, 그가 공개된 자리에서 "건전한 성생활 "을 위하여 건배 제의한 것이 구설수에 올라 이중의 곤욕을 치르고 있다. 호남 비하 발언에 대해서는 동정의 여지가 없지만, 건전한 성생활 건배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는 것은 내가 보기에 너무나 억울해 보인다. 그래서 건전한 성생활을 위하여 건배 제의한 부분에 대해서 옹호하고자 이 글을 쓴다.

그는 '... 오찬모임' 자리에서 "건건한 성생활을 위한 건배"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여성통장협의회가 아니라 동 방문 이후 동장님과 도의원, 시의원, 단체장, 통장 분들이 있던 자리였다"며 "자리가 너무 딱딱한 것 같아서‥"라고 말해 딱딱한 분위기를 바꿔보겠다는 차원에서 한 발언임을 시사했다. 이 시장은 그런 건배 제의를 한 지가 한 10여 년, 오래 전부 쓰던 단어, ‘건전한 성생활’을 건배제의로 10여년 째 하고 있음을 밝혔다.(브레이크 뉴스 기사)

여러 해 전 우리나라에서 “버자이너 모놀로그”란 연극이 히트한 적이 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란 제목을 우리말로 제대로 번역하면 「보지의 독백」이다. 「세 자매」, 「레이디 멕베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에서 열연한 배우 서주희 씨가 여성 성기를 주제로 한 일인극이었는데, 120회 공연할 때마다 객석을 가득 채울 정도로 인기가 대단한 연극이었다.  

그때 만약 그 연극의 제목을 “보지의 독백”이라고 제대로 번역했더라면 위선적인 인간들과 손만 잡아도 입덧하거나 임신하는 선녀들에 의해서 난리가 났을 것이며, 어쩌면 그 제목으로는 포스터도 못 만들고, 아예 공연 자체가 불가능했지 싶다.

“보지”란 말은 나쁜 말도 아니고 더러운 말도 아니고 추잡스런 말도 아니다! 우리나라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만든  국어사전에 당당히 올라 있는 표준말이다. 제 나라 국어 사전에 당당히 올라 있는 “보지”란 순수한 제 나라 말을 마음놓고 쓰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보지”란 단어를 쓰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미국사람들은 방송이나 잡지나 신문에서 제나라 말인 버자이너란 말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우리나라 사람은 순수한 제나라 말인 “보지”란 말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것일까?

내가 여러 해 전에 “ss이론”이란 새로운 섹스 이론을 발표할 때도 위선적인 사회, 위선적인 인간들 때문에 섹스 용어를 제대로 쓸 수 없는 문제로 난관에 봉착하였다. 여성중심의 새로운 섹스 이론을 설명하자니 수많은 섹스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보지, 자지란 순수한 우리말을 당당하게 쓸 수 없는 위선적인 사회 환경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간스포츠에 연재 할 때와 단행본으로 출판을 할 때 “보지” “자지”란 순수하고 아름다운 우리 말을 쓰지 못하고 “귀염둥이” “황금연못” “구군”,“설군”이란 ss용어를 400 여개를 만들어 비유법으로 설명을 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가 위선적인 사회가 되면서부터 표준말인 보지란 말을 쓰기 꺼려한 것이지 싶다. 내 짐작대로 우리 사회가 위선적인 사회라면 우리나라에 위선적인 인간들이 그 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겉으로는 도덕적인 척, 겉으로는 젊잖은 척,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면서 뒷구녕에서 온갖 호박씨를 다 까는 정직하지 않은 인간들이 바로 위선적인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술집도 아니고 ,심지어 노래방에서 돈 이만원만 주면 도우미의 가슴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정도로 도덕적으로 부패한 나라가 세상 천지에 우리나라 말고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도우미 절반 이상이 남편 있는 가정부인이라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광명시장이 벌건 대낮에, 공개된 장소에서, 여러 사람 앞에서 “건전한 성생활을 위해서 건배”했다고 난리 부루스를 추는 이런 나라가 위선적인 나라가 아니라면, 어찌 노래방에서 돈 이만원이면 유부녀의 가슴을 마음대로 만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한심한 현실을 도대체 어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지지난 핸가 강남에 한 젊은이가 노래방 유부녀 도우미에게 겨우 6만원 주고 2차 가자고 실랭이 하다 살인사건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 정도로 세상이 부패한 나라에서 "건전한 성생활 건배”했다고 난리를 피우는 천사들이 앞으로 어떻게 자식들을 무사히 잘 키우고, 어떻게 본인들의 맑은 영혼과 육체를 보존하며 살아갈지 걱정된다.

옛날에 늙은 보살이 있었다. 그녀는 어떤 스님을 삼십 년 동안이나 뒷바라지를 했다. 늙은 보살이 죽기 전날,  아가씨 한 명을 불러서 이렇게 부탁했다. 

  "아무개 스님의 암자에 가 옆으로 슬며시 다가가 그를 껴안아 보아라. 그러면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나중에 내게 사실대로 말해 다오. 오늘 밤 나는 죽을 것 같은데, 나는 지금까지 과연 순수한 사람을 보살펴 왔는지 확인하고 싶다. 나는 그가 순수하다는 확신을 못하고 있다. "

  "할머니, 그 스님은 제가 알기로 매우 훌륭하며 성자다운 스님이예요, 그토록 성자다운 스님을 본적이 없어요. 그런 분에게..."

그러자 늙은 보살은 그녀에게 돈을 주면서 구슬렀다. 드디어 아가씨가 암자로 갔다. 법당에 불이 켜져 있었고 스님은 명상을 하고 있었다. 아가씨가 법당 문을 밀고 들어갔다. 스님은 그 아가씨를 보더니 기겁을 하고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이 여자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는가? 당장 나가라!"

스님의 몸 전체가 떨고 있었다. 그래도 아가씨는 더 가까이 갔다. 스님은 법당 밖으로 뛰어나가면서 외쳤다. 

  "이 여자가 나를 유혹하려 한다.!"

아가씨가 돌아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하자 늙은 보살은 하인을 시켜서 스님의 암자를 불태워버리게 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자는 아무 쓸모가 없구나!. 아직 순수하지 못하였다. 그는 성자처럼 보이지만 그의 성스러움은 추악하다. 그것은 조작되어 있다. 자기 속에 음심이 없었다면 왜 그녀가 자기를 유혹할 것이라고 단정했을까?  

한 여인이 들어가고 있었지, 창녀가 아니었다. 그는 최소한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야심한 밤에 누구십니까? 들어와서 앉으시지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는 최소한의 연민심이라도 보여줬어야 했다. 그리고 비록 여자가 자기를 안았다 해도 왜 그가 두려워해야 되는가? 그는 나에게 30년 동안 "나는 육체를 초월했습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육체를 초월했다면 왜 그토록 육체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이 경우, 스님의 성스러움은 꾸며진 것이다. 꾸며진 성스러움은 알맹이는 없고, 겉만 번지르한 성스러움이다. 겉만 번지르한 성스러운 위선자들은 참 많다. 순진한 사람들이 그들의 겉치레 성스러움에 잘 속는다. 가식적인 미소, 가식적인 걸음걸이, 가식적인 삶에 속는다.

내가 이런 말하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겉으로 가장 성스러워 보이는 것이 속으로 가장 많이 성을 억압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 스님은 육체나 성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억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성을 초월하는 것과 성을 억압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성을 억압한다는 것은 성을 자연스레 분출하지 않고, 어느 한 구석에 꼭꼭 쑤셔박아 놓는다는 뜻이다. 어느 한 구석에 꼭꼭 쑤셔박아 놓은 성은 언젠가는 반드시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각종 성범죄들은 어느 한 구석에 쑤셔박아놓은 즉 억압된 성이 엉뚱하게 터져나오는 것이다. (내 책 “여성중심의 사랑” 명상출판사 발행)

프로이드는 미친 사람의 90%가 억압된 성때문이라고 하였다. 성의 억압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계속된다면 어찌될까를 상상하면 소름이 끼친다. 성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식생활을 자연스레 하듯이 성생활도 자연스레 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성을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말해야 한다.

그런데 이 효선 광명시장이 그것도 공개된 장소에서, 여러 사람 앞에서 “건강한 성생활을 위해서 건배”라고 했다고 무슨 못할 말을 한 듯이, 엄청나게 말을 잘못한 듯이 물고 늘어지고, 난리부루스를 추는 한심하고 위선적인 인간들이 많이 있는 한 이 나라는 “보지”라는 아름다운 우리 말은 못쓰고, “버자이너”라는 서양말을 쓸 것이며, 그것이 얼마나 주체성 없는 한심한 짓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니, 이 효선 광명시장이 공개된 장소가 아니라 설령 밀폐된 장소에서 시청 여직원이나 여성 당원이나 부녀회원 한 사람을 앞에 놓고 “건전한 성생활” 건배를 했대도 왜 그 게 어디 못할 말인가!

백보 양보해서 주일날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 효선 시장과 같은 의도로 "건전한 성생활" 건배(?)하면 안될 것은 뭔가?  가령 "난잡한 성생활을 위해 건배"도 아니고, "복잡한 성생활을 위한 건배" 아니고, 오직 "건전한 성생활을 위해 건배"를 제의 한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그 정도의 말이 듣기 거북하고, 그 정도의 말만 들어도 임신하는 천사들은 광릉수목원이나 남산식물원 아니면 자기 집 안방에 가만히 있지, 왜 밖에 나와서 공연한 일을 만들고, 멀쩡한 이 효선 시장을 곤경에 빠트리고, 아무 잘못도 없는 말꼬리 잡아 물고 늘어진단 말인가!!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지만, 이 효선 광명시장은 분명히 공개된 장소에서 여러 사람 앞에서, 그것도 공식 석상에서 "문란한 성생활"이 아니라  "건전한 성생활을 위해서"란 구호로 건배를 제의를 한 것이다! 이것은 한나라당 최 연희의원이 노래방에서 여기자를 주인집 아주머니로 잘못 알고 젖가슴 만졌다는 것과 성질도 전혀 다르고 차원도 전혀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면 광명시장의 건전한 생활을 위한 건배 제의는 아무 잘못이 없고,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의 정신상태나 의식구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여러 해 전 내 아들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일이다. 나는 입학식장으로 갔다. 아들에게 악수를 하면서 축하 선물꾸러미를 주었다. 선물꾸러미 속에는 다음과 같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내 아들 하슬린에게.

축하한다. 네가 그토록 하고 싶어하던 팬터마임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어 나도 참 기쁘다. 그동안 더러 힘겨운 기간이 있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바르게 자라서 오늘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더더욱 기쁘고, 고맙고, 네가 자랑스럽다.

네가 태어났을 때, 네 이름을 지을 때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아이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까? 어떤 인물이 되면 좋을까? 여러 날 숙고 끝에 ‘하슬린’(하늘이 준 슬기로운 린)이라고 지었다. 이 세상에 이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은 없지 싶다. 네 이름 속에 아비가 기대하는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으니, 반드시 네 이름값을 하기 바란다.

대학입학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아비가 네게 두 가지 선물을 한다.

하나는, 네가 우리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우리것을 자랑스럽게 빛내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뜻에서 우리옷(개량한복)을 한 벌 선물한다. 네가 전공하고자 하는 연극뿐 아니라,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제 나라 말과 글, 넓게는 문화, 역사, 전통, 얼 따위를 바로 알고 자랑스럽게 갈고 닦아 빛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따금 우리옷을 입으면서 아비의 뜻을 잊지 말기 바란다.

다른 하나는, 네가 이제 한 남자로서 구실을 제대로 하고, 멋진 사랑을 하라는 뜻에서 콘돔을 한 세트 선물한다. 사랑과 성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나는 네가 지혜롭고 멋진 여자와 멋진 사랑을 하면 좋겠다. 사랑을 통해서 네가 더 성숙하고, 실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 발전하기 바란다. 특히 네가 앞으로 어떤 여자를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네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신중하게 행동하고, 네가 한 행동에 책임지기 바란다. 꼭 필요할 때만 이 콘돔을 요긴하게 아껴 쓰기를 바란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입학식에 늦을까봐 마음이 급해 이만 줄인다. 하기야 내가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너는 아비 마음을 잘 알 것이라 믿는다.”

이 이야기를 인사동 어느 술집에 사람 여럿 모인 데서 했더니, 그 자리에 있던 무슨 방송국 아무개 pd가 말했다.

“송 선생님, 그 이야기 참 재미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프로에 나와 한 번 더 이야기 해주십시오!”

그이의 간곡한 부탁으로 무슨 생방송 프로에 나가서 이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전국에 소개가 됐다. 그 뒤 방송을 들은 이 중 “아드님, 콘돔 재고파악 해보셨어요?”라고 묻는 이가 더러 있는데, 그럴 때마다 “글쎄요” 하고 빙그레 웃고 말았다.

고대 인도 경전에는 반드시 연인의 조각상을 사원 입구에 세워야 한다고 써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다. 단지 설계자에게 연인의 조각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규정만 말했을 뿐이다. 각 사원의 문 앞에는 삼매에 빠져 있는 즉 오르가슴 속에 있는, 황홀경에 도취되어 있는, 서로의 팔과 다리가 엉겨 있는, 한 쌍의 남녀를 조각해서 세워두어야 했던 것이다.

가령, 북인도 카주라호(khajuraho) 코나라크(konarak) 혹은 인도에 있는 다른 아름다운 사원들에는 특별한 조각상이 사원 입구에 세워져 있다. 그 이유는 사랑을 올바로 알지 못하고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런 의미에서 그 문은 하나의 상징이다. 문은 마음의 세계와 무심의 세계를 드나드는 문지방이나 마찬가지다. 마음의 세계와 무심의 세계,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잇는 다리는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삶의 절정, 삶의 신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아예 몰랐거나 잘못 해석하였다. 그 까닭은 대부분 지나치게 도덕적이었거나 너무 위선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들은 한결같이 각질화된 도덕과 두꺼운 위선의 껍질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한 것이다. 진실과 맞대면을 못해본 것이다. 하기야 이런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 한번도 진실과 맞대면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효선 광명시장이 "건전한 생생활"을  건배를 제의한 것은 조금도 끈적끈적하지도 않고,  못할 말을 한 것도 않고, 욕 먹을 말을 한 것도 아니다!. 공개된 자리에서 시장이 그런 말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호들갑을 떨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부치는 천사들보다 그냥 조크로 받아들이거나, 분위기 띄우기 위해서 재미로 하나 보다 하고 웃어 넘길 여유롭고 멋진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이 효선 시장이 호남 비하 발언은 다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건전한 성생활"을 위해서 건배하는 것은 기죽지 말고, 종전처럼 계속해서 하는 것이 좋겠다.

“주여!
저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나이다! “

**필자/시인. 한국ss이론연구소 소장) www.songh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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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미 2006/08/04 [11:56] 수정 | 삭제
  • 필자의 논조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 와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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