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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園幸乙卯整理儀軌”에서 발견된 농은 강문현 기록 분석
 
박관우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6/03/21 [08:49]

지금으로부터 221년전인 1795년(정조 19)에 거대한 역사의 파노라마가 펼쳐졌으니 윤2월 9일부터 2월 16일까지 8일동안 조선의 국왕이 수천명의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한양도성(漢陽都城)을 떠나 수원 화성행궁(華城行宮)에 머물렀는데 이러한 8일동안의 일정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이다.

 

여기서 의궤(儀軌)란 왕실에서 거행된 여러가지 행사의 전모를 자세하게 기록한 서책이라 할 수 있으며, 공식적인 권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 박관우  역사 작가. 

2016년 3월 19일 규장각(奎章閣) 홈피에서 이러한 귀중한 서책을 발견한 것인데 사실 그동안 의궤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직접 확인하고 싶을 만큼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필자로 하여금 이러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한 강력한 동기부여가 있었으니 그것은 농은(農隱) 강문현(姜文顯)의 문집에 화성행궁 양로연(養老宴)에 관련된 부분이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화성행궁 행차는 국왕인 정조를 중심으로 공식적인 수행원만 1700여명이었으며, 군사들까지 합하면 총 6000여명이 도성을 떠나 수원으로 간 것이었으며, 그러한 거대한 장관의 모습은 반차도(班次圖)라는 그림을 통하여 상상할 수 있다.

 

화성행궁에서 6일동안  다양한 행사가 거행되었는데, 정조가 낙남헌(落南軒)에서 문무과(文武科) 별시(別試)를 실시한 것을 비롯하여 봉수당(奉壽堂)에서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의 회갑연(回甲宴)이 열렸으며, 더불어 과거시험이 실시되었던 낙남헌에서 노인들을 위한 양로연도 개최되었으니, 당시의 행사가 얼마나 다양하게 진행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 정조가 혜경궁 홍씨와 누이동생 청연군주(淸衍郡主),청선군주(淸璿郡主)와 함께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을 참배하였으며, 서장대(西將臺)에서 정조를 비롯하여 많은 대신들이 참관한 가운데 국왕 호위부대라 할 수 있는 장용영(壯勇營) 군사들이 중심이 된  수천명의 군사들이 훈련을 하는 웅장한 장관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필자가 이러한 행사들중에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목이 바로 낙남헌에서 거행하였던 양로연인데,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서 당시 61세인 강문현이 정5품 품계인 통덕랑(通德郞)으로서 이 행사에 공식적으로 참가한 것이 확인되었으나 구체적인 관직명까지 나오지는 않았다.

 

양로연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전하면 정조를 수행한 15명의 노대신(老大臣)들을 비롯하여 수원 출신의 대신들과 평민을 포함하여 384명이 초대되었으니 총 400여명의 인원이 참석하였던 것인데 여기에 강문현도 포함된 것이다.

 

강문현이 양로연에 공식적으로 참석한 사실은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를 통하여 확인되었으며 더불어 그가 남긴 문집과 진주강문참판공파(晋州姜文參判公派)에 나와 있는 기록을 통하여 당시의 정황을 소개한다.

 

먼저 문집의 내용중에서 양로연과 관련된 부분을 인용한다.

 

[慈宮甲宴于長樂堂13日行養老宴設耆科于落南軒]

 

위의 내용은 강문현이 기록한 당시 양로연중에서 극히 일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필자가 이 대목을 중시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기과(耆科)라는 표현때문이며, 이를 번역하면 노인을 위한 시험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문제는 양로연과 관련하여 문집과 족보기록이외에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같은 공식적인 자료를 포함하여 그 어떤 자료에도 양로연에서 기과(耆科)를 실시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양로연에 참석하였던 강문현이 기과(耆科)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고 본다.

 

문집에 있는 내용을 추가로 전한다면 정5품 통덕랑의 품계를 가지고 있던 강문현이 어떤 이유인지 아직 그 실체를 모르겠지만 승전(承傳)에 의하여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품(陞品)하였다는 내용인데 여기서 승전(承傳)이란 임금의 뜻을 전한다는 의미인데 이에 근거하여 당시 국왕이었던 정조의 뜻에 의하여 강문현이 통덕랑에서 통정대부로 승품하였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기록이 진주강문참판공파에 소개되어 있는데 관련 기록을 인용한다.

 

[正祖乙卯(1795) 二月別恩辰耆科叅榜承傳賜資僉知中樞府事]

 

위의 기록에도 문집에서와 같이 기과(耆科)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인데 문집에는 통정대부로 승품한 부분만 나와 있는데 반하여 여기에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라는 구체적인 관직명이 소개되어 있다는 점이 이채롭게 느껴진다.

 

이와 관련하여 기과(耆科)가 한차례도 아니고 두차례나 언급되었다면 당시에 실제로 기과(耆科)가 실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문제는 다른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앞으로 고증되어야 할 부분은 1795년(정조 19) 윤2월 14일 낙남헌(落南軒)에서 거행되었던 양로연(養老宴)에서 실제로 기과(耆科)가 실시되었는지 여부와 더불어 어떤 과정에 의하여 강문현(姜文顯)이 정5품 통덕랑(通德郞)에서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승품(陞品)되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이다. pgu77@naver.com

 

*필자/문암 박관우. 역사작가. 칼럼니스트 <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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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3/21 [08:49]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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