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여 있던 대한족노동단 7인의 독립운동가

박관우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6/03/01 [21:17]

 필자가 독립운동가 발굴활동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독립운동 단체들을 알게 되었는데 2016년 박경순(朴敬淳)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한 단체가 본 칼럼에 소개하는 대한족노동단(大韓族勞働團)이다.

 

이와 관련하여 2월 11일자 “역사 속에 잊혀진 독립운동가 박경순 연구현황 및 과제” 제하의 칼럼에서 대한족노동단을 간략하게 소개하였으나 본 칼럼에서 이 단체에 대하여 심층분석한다.

 

▲ 박관우  역사작가 .  ©브레이크뉴스

사실 대한족노동단은 그 명칭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지며, 박경순으로 검색하기 전까지는 그동안 그 어떤 자료에서도 발견한 기억이 없다.

 

이 단체의 존재를 최초로 알게된 것은 국내 자료가 아닌 일본 외무성 문서라는 점인데 과연 대한족노동단은 어떤 단체이기에 오랜 세월 베일에 쌓였던 것인지 궁금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 없다.

 

1923년 10월 29일 ‘機密 第38號’로 작성된 “貴館 管內에 根據를 둔 鮮人不逞團의 當館 管內에 있어서 行動에 關한 件” 제하의 문서에 대한족노동단이 최초로 등장한 것인데 시기적으로 언제 조직되었는지 명확히 모르나 일단 소재지는 남만주(南滿洲) 화전현(樺甸縣)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단장 고창동(高昌東)을 비롯하여 단원 박경순(朴慶淳),나국진(羅國珍),권중만(權重萬),기내성(奇乃聖),김봉상(金奉相),이승연(李承連) 등 총 7명인데, 한마디로 무명(無名)의 독립운동가들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그동안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여 세상에 알리는 활동을 한 만큼 대한족노동단의 독립운동가들도 유사한 사례라 할 수 있지만 기존의 경우와 차이점이 있다면 독립운동가에 대한 개별적 연구가 아닌 한 단체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7인의 독립운동가중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인물은 박경순이라 할 수 있는데 2월 22일자 “비운의 독립운동가 박의서 15세 사망신고 미스터리” 제하의 칼럼을 통하여 소개한 바 있지만 박경순(朴敬淳)은 독립운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박승석(朴勝錫)의 제적등본에 15세에 사망신고된 것으로 처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족노동단의 박경순(朴慶淳)이 연천 출신의 박경순(朴敬淳)과 한자(漢字)가 다르기는 하지만 동일인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한편 외무성 문서에 군정서(軍政署)가 등장한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데 분석한 결과 지역적으로 볼 때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보다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며 대한족노동단과 서로군정서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인가를 규명하는 것이 이 단체의 성격을 밝히는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본다.

끝으로 대한족노동단(大韓族勞動團) 단장(團長) 고창동(高昌東)을 포함하여 7인의 무명(無名)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를 숙연한 심정으로 추모하며, 그 행적이 우리사회에 알려지기를 충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pgu77@naver.com

 

*필자/문암 박관우. 역사작가. 칼럼니스트.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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