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독립운동가 박의서 15세 사망신고 미스터리

박관우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6/02/22 [10:00]

1916년 유태인 출신의 천재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相對性理論) 발표를 통하여 세계 최초로 중력파(重力波)의 존재를 주장하였는데 그러한 중력파가 100년의 세월이 흘러서 하나의 이론이 아닌 실제로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으니 아이슈타인이 왜 천재과학자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역사적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 박관우 역사작가. ⓒ브레이크뉴스

그런데 아인슈타인 같이 100년의 세월은 아니지만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36년동안 가슴에 품었던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박의서(朴義緖)인데 필자가 독립운동가 발굴활동을 하게 된 강력한 원천(源泉)이 되었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박의서는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다가 행방불명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그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가 발굴활동을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의서는 1878년에 편제된 박승석(朴勝錫) 제적등본에 불과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사망신고된 것으로 처리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칼럼에 독립운동한 것으로 알려진 박의서가 서류상으론 15세에 사망신고 처리 된 미스터리를 소개한다.

 

이와 관련하여 박승석 제적등본에 기재되어 있는 박의서 관련 기록 전문을 인용한다.

 

[明治 四拾貳年 拾貳月 壹日 死亡 今日 申告 ] 제하의 내용인데 이를 번역하면 [ 1909년(융희 3) 12월 1일 사망 당일 신고] 라는 내용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망신고 기록에 사망신고자를 비롯하여 사망시간 및 장소가 누락되어 있다는 것이며, 더불어 금일(今日)이라는 의미가 당일(當日)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도 될 수 있다는 것인지 궁금하게 생각되는 대목이다.       

 

박의서가 1895년(고종 32)생인데 제적등본에 기재되어 있는 박의서 관련 기록이 정말 근거가 있는 것인지 진실을 규명하고 싶은 것이다.  

 

부인이 파평윤씨(坡平尹氏)로 되어 있으며, 1924년에 발행된 반남박문족보(潘南朴門族譜)에 박의서가 사망하였다는 기록은 없으며, 더불어 1921년에 발행된 파평윤문족보(坡平尹門族譜)에도 박의서는 큰사위로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에 박의서가 1909년(융희 3)에 사망한 것이 팩트라면 1924년에 발행된 족보에도 사망과 관련된 기록이 기재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는데 분명한 것은 그러한 기록이 전혀 없으며, 족보상으론 박의서는 1924년 당시 생존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그래서 이러한 몇가지 정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볼 때 박의서가 15세에 사망처리된 것은  팩트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아인슈타인이 예언한 중력파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인되기까지 1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렸듯이 필자가 박의서의 존재를 알게 된지 어느 덧 30년의 세월이 넘었는데 2016년을 박의서(朴義緖) 명예회복(名譽回復)을 위한 원년(元年)으로 삼았으며, 그 행적을 비롯하여 특히 15세에 사망신고 처리된 미스터리를 규명할 수 있도록 혼과 정성을 다할 것이다. pgu77@naver.com

 

*필자/문암 박관우. 역사작가. 칼럼니스트.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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