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기쁨을 만끽하며, 통일조국의 발전을 염원하고...

<장편 연재소설>통일아리랑-67

작가 하정열 | 기사입력 2016/02/12 [16:23]

행복과 희망을 그득 안고

     

얘야! 이곳 황금평과 신의주 일대가 몰라보게 달라졌구나. 어떻게 이렇게 짧은 기간에 천지개벽이 될 수 있냐?”

황선영은 5년 전 방문 시와 비교할 때 너무 급속하게 발전한 황금평의 모습이 신기한 듯 연신 탄성을 질렀다.

어머니, 이곳을 자주 방문하는 저희도 깜짝깜짝 놀라곤 해요. 과거 상하이의 푸동 지구보다도 발전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아요.”

 

강 기자도 1년 전에 비해 더욱 발전한 모습에 놀라며 대답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짧은 기간에 놀랍게도 국제적인 산업도시가 되었구나.”

할머니, 저곳에 보이는 건물이 저희가 최근에 준공한 공장이예요.”

김지혜가 황선영에게 얼마 전에 준공한 공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근사한 건물이 너희 공장이란 말이냐?”

! 잠깐 들리셔서 둘러보시고, 연해주 쪽으로 이동하시도록 해요.”

그러자구나! 어서 가자구나!”

강민국과 김지혜 부부는 평양의 사업이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새로운 공장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곳 황금평 지역에 섬유공장을 지었다. 근로자가 1000명이 넘는 공장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공장을 지으며 평양에서 이곳으로 옮기게 된 김순애 공장장이 나와서 사장 일행을 정중하게 안내했다.

모든 설비가 최신식이고 깨끗해서 평양공장과는 비교가 안 되는구나. 그래 모두가 너희가 번 돈으로 지은 거냐?”

은행융자가 조금 있지만, 대부분 저희가 지난 7년 동안 번 돈을 투자해서 지은 거예요.”

훌륭하구나! 참 훌륭해!”

 

▲ 하정열     ©브레이크뉴스

황선영은 손자 부부가 대견한 듯 김지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들은 황금평 일대를 돌아보고 연해주 지역으로 향했다. 처음 여행을 건의한 것은 강 기자였다. 오랜 기자생활에서 퇴직도 했고, 구순에 가까운 어머님을 모시고 여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여 강 기자 부부와 황선영 이렇게 셋이서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강민국과 김지혜 부부가 효도여행을 함께 해야 한다며 합류를 했고, 강선화와 김정식 부부도 참여하게 되어 일곱 명이 되었다. 막내 강한석도 휴가를 내어 합류하려 했으나, 중국과의 국경에서 일이 생겨 못 오게 된 것이 황선영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차량을 이용하여, 신의주와 황금평 지역을 돌아보고 압록강과 두만강의 연안을 따라 변경지역을 경유하여 연해주 지역의 발전상을 살펴보도록 했다. 34일의 여유가 있는 일정이었다. 라진에서부터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여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의 베를린까지 여행한 후 비행기로 복귀하도록 했다. 20일 간의 여행이었다.

아니 이곳이 통일 직후에 보았던 바로 그 허허벌판이란 말이냐?”

 

연해주 지역에 도착한 황선영은 믿기지 않은 듯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통일조선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접경을 이룬 이곳은 중국과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이 투자하여 황금평 지역에 버금가도록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어머니! 많이 놀라셨죠. 바로 이곳이 10여년 전만해도 허허벌판이었지요. 지금은 국제산업지구로 이렇게 발전하다니 저도 무척 놀랐어요. 바로 우리나라의 통일의 덕분인 것 같아요.”

조영숙은 어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며 통일의 진정한 가치를 내세웠다.

어머니 말씀대로 통일이 안 되었으면 지금도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강선화가 조영숙의 말을 거들었다.

그렇구나! 통일이 이런 외진 곳에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구나.”

조영숙은 딸의 이야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우리가 돌아본 변경마을들도 통일 전에는 중국 쪽 마을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었어요. 그런데 통일이 된 후 짧은 기간에 급속도로 발전해왔지요. 과거에는 북쪽주민들이 중국 쪽을 바라보며 우리는 언제 저렇게 살 수 있나하고 몹시 부러워했는데, 지금은 중국 쪽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무척 부러워한다고 해요.”

통일 전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정식이 나서서 설명했다.

이번에 한석이가 함께 못 온 것도 동북 삼성에 거주하는 교포들이 두만강을 넘어 귀화를 많이 하는 바람에 중국과 분쟁이 생겨 그렇다고 하더구나.”

 

황선영이 막내 손자가 걱정이 되는 듯 강한석이 근무하는 두만강 쪽을 바라보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3대가 함께 여행하는 강 기자 가족을 부러워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바로 한반도 통일로 연해주가 크게 발전하는 바람에 블라디보스토크의 경기가 최고로 활성화되었다는 것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항구와 역에는 통일조선에서 온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바로 철도를 이용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물건들이었다. 어떤 열차에는 현대자동차가 만든 차량들이 가득 실려 있었고, 어떤 열차에는 삼성TVLG냉장고가 실려 있었다. 과거에 선박으로 수출할 때에 비해 기간은 반으로 단축되고, 물류비는 40%가 절감된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통일조선의 상품경쟁력이 강해져서 유럽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것이었다.

 

모스크바로 가는 길은 멀지만 즐거운 여행이었다. 식구들은 모처럼 함께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통일 이후 각자가 다른 길을 가느라, 서로 바빠서 식구가 함께 모여 즐길 시간이 없었는데, 오밀조밀한 열차 칸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맛은 독특했다. 김지혜는 강 기자를 처음 뵌 날을 상기하며, 그때 남쪽 기자인 강 기자의 기를 꺾기 위해 내심 노력했었노라고 말해 모두가 함께 웃었다. 김정식은 처음에는 자유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고 시장경제체제를 부정했으나, 이제는 여행사 사장으로서 이를 즐기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통일조선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처음에는 통일 후의 좋은 점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물어오지 않아도 먼저 장점을 이야기하고 싶어 안달이라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 이번 여행도 김정식이 하나에서 열까지 계획하고 추진하였다.

 

그들은 중간에서 휴식을 하며 그 지방의 특산물을 먹고, 지역문화도 즐겼다. 모든 정차역마다 통일조선의 여행객들을 우대한다는 간판들이 걸려 있었다. 여행객의 대다수가 통일조선에서 출발한 여행객이었다. 특히 각 정차역마다 통일조선의 화폐인 이 국제화폐로서 역할을 하고 있고, 어디서나 환전이 가능하다는 점은 한없는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여행 전에 별도로 달러나 현지화로 환전할 필요가 없어 무척 편했다.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크렘린궁전과 붉은 광장을 돌아보며 모스크바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곳곳에는 통일조선을 홍보하는 선전판이 걸려있었고, 길거리에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주류를 이루어 달리고 있었다. 이곳은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로서 지난 수백 년 동안 러시아 권력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들의 무대로서 러시아 건축예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크렘린 궁전의 건축물들은 서구적이면서도 러시아적인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크렘린 궁전은 오랫동안 러시아 황제의 거처이자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지였으며, 최근에는 구소련 정부의 청사로 활용되었다. 광장 주위에는 성 바실리성당, 레닌 묘, 국립역사박물관 등의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바실리성당은 양파 모양의 지붕에 색상과 모양이 다른 여덟 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레닌 묘는 피라미드 공법의 화강암 건축물로, 지하 유리관에는 생전 모습 그대로 레닌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다. 그동안 금수산 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뀐 과거 태양궁전의 김일성과 김정일 시신의 안치문제로 국회에서 갑론을박하고 있던 시점이라 레닌 묘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레닌 묘를 보고 나서 식구들 간에 역사적인 가치와 북쪽주민들의 민심, 그리고 관광객을 고려하여 태양궁전의 시신들을 존치해야 하느냐? 혹은 역사적인 허물을 물어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하느냐?’를 놓고 토론을 벌렸으나, 반반으로 갈라져 결론을 내지 못했다.

 

베를린으로 가는 길에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을 들렸다. 만나는 시민들은 멋진 통일을 이루고 일류국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통일조선의 여행객들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라이프치히는 중부 유럽의 교통의 요지로 중세부터 상업도시로 발전하였다. 15세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독일의 최대 무역박람회를 개최하였다. 음악의 도시로 음악가인 바흐, 멘델스존, 슈만 등이 살았다. 바로 19894월부터 이곳에서 독일 통일을 촉진했던 시민의 시위가 일어났다. 니콜라이교회에서는 평화통일기도가 열렸다. 그들은 예배가 끝난 후 자유를 요구하며 시위를 시작했고, 바로 베를린장벽 붕괴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가족들은 니콜라이 교회 안에서 자유의 소중함을 위해 기도를 했다. 크진 안지만 곳곳에 역사적인 현장이 숨 쉬고 있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통일 후 라이프치히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어 붐비고 있었다. 또한 도심이 재정비되고 주변에 산업화 시설이 들어서 과거 프러시아시절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었다. 곳곳에는 한국 기업의 선전간판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강 기자 가족은 통일조선의 교향악단이 바로 음악의 고향인 라이프치히에서 초청공연을 한다는 선전간판을 보며 한없는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다. 대기업의 상품뿐만 아니라 남북의 융합된 문화도 수출되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였다. 18세기 초반에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 궁전 등 유명한 건축물과 회화를 포함한 많은 문화재는 오랫동안 머물며 보고 싶었다. 궁전 내부에는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마돈나를 비롯하여,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기의 명화와 루벤스, 렘브란트 등의 작품을 수집한 드레스덴국립미술관이 있어, 예술의 도시와 음악의 도시로서 알려져 있었다. 통일 직전에 강 기자가 방문 시는 궁전의 외부를 포함한 모든 조각품들이 보수가 안 되어 볼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으나, 통일 후 대대적인 보수 작업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특히 노이마르크트Neumarkt 광장에 있는 프라우엔교회Frauenkirche는 바로크 양식으로 18세기 초반에 건축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전쟁이 끝난 후 드레스덴 시민들은 언젠가 재건축 할 것을 생각하며 무너진 교회의 돌들을 모아 번호를 매겨 보관했으나, 통일 이전에는 재원의 부족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2005년 재건이 끝나 옛 모습을 되찾았다.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현장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바로 이곳에서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남북관계의 개선을 시도하고 통일의 길을 모색했었다. 한동안 전략적인 접근방법의 실패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다가, 결과적으로 평화통일의 길을 활짝 연 인연이 깊은 도시였다.

 

! 이곳이 바로 TV에서 많이 보던 독일 통일의 역사적인 현장이구나!”

할머니 말씀대로 저 웅장한 건물이 바로 브란덴부르크 문이에요.”

생각보다 크구나. 바로 저쪽이 동독지역이었고, 베를린장벽이 이 문을 경계로 서로를 막고 있었단 말이지?”

! 어머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의 핵심적인 관문으로서 역할을 했는데, 1971년에 동독 측에 의해 폐쇄되었어요. 1989년에 동독이 무너지자, 브란덴부르크 문은 다시 열려 통일의 상징이 되었지요. 당시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는 이 문을 통해 걸어가 동독의 한스 모드로우의 총리의 환영을 받았던 것이지요. 지금도 통일기념일인 103일이 되면 이곳에서 성대한 기념식을 진행하지요.”

독일 통일 당시 베를린 현장에서 그 과정을 지켜본 강 기자가 감회가 새로운 듯 역사적인 현장을 설명했다.

그 당시 우리는 우리 조국도 바로 통일이 될 줄 알고 몹시 들떠 있었단다. 내 친구들과 밤새워 교훈을 도출하고 통일의 주역이 되자고 다짐을 했었지. 그런데 그 후 30년이 넘게 걸릴 줄이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단다.”

 

강 기자가 옛날을 회상하며 자녀들에게 몹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통일이 그렇게 늦어진 것은 참 안된 일이었으나, 아버지와 친구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셨잖아요. 저는 아버님의 아들인 게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아버님과 친구 분들의 그 끈끈한 우정도 몹시 부러워요.”

강민국이 눈물을 글썽이는 아버지의 등을 주무르며 말했다.

아버님! 저도 평생을 평기자로서 근무하시며, 통일 하나에 모든 열정을 바치시고 이를 이루신 아버님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존경스러워요. 사실은 사랑하는 민국씨와의 결혼도 존경하는 아버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김지혜가 강 기자의 손을 꼭 쥐었다.

여보! 당신과 친구들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조국의 통일이 조금은 앞당겨졌다고 저는 생각해요. 평생을 평기자로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멋진 글을 쓰며 통일의 길을 매진한 당신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당신은 진솔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멋진 친구들을 가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삶을 사신 거라고 생각해요. 친구 분들 한 분 한 분이 통일의 길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셨잖아요. 여보! 긍지를 가지세요.”

 

조영숙도 남편의 등을 어루만지며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얘야! 나는 애비를 키우고 뒷바라지를 하면서 언젠가는 우리 조국을 위해 큰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조국의 통일을 위해 헌신 노력한 삶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온 가족이 함께 이렇게 열차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통일이 주는 한없는 혜택이 아니겠느냐! 나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겠구나.”

황선영도 눈물을 글썽이며 가족들을 껴안았다. 그들은 강 기자가 친구들과 함께 토론을 즐겼다는 맥주홀에 들려 독일산 맥주로 축배를 들었다. 당시 종업원으로 일하던 꼬마가 이제는 예순이 넘은 어엿한 주인이 되어 강 기자를 반겼다. 초가을 베를린의 하늘은 티 없이 맑고 푸르렀다.

 

강 기자는 온 가족과 함께 통일의 기쁨을 만끽하며, 통일조국의 발전을 염원하고, 자신의 남은 삶을 올바르게 살기 위한 다짐을 담은 시를 한 수 지었다.

      

기도

 

해 돋는 아침부터 여명의 밝음 끝까지

흙처럼 진실한 삶을 살게 해 주소서

 

조국의 달빛보다 더 고요하고 평화롭게

온 몸을 물들여

나라의 부름을 고이 받아 섬기고

신의 눈으로 진리를 보게 하소서

 

살아 황홀한 이 목숨,

조국을 위해 버리고도 남은 생이

얼마나 넉넉하며 아름다운가를

느끼며 살게 하소서,

신이 주신 것으로 족하게 하소서

 

인고의 세월 이겨 활짝 핀 통일의 영광 속에서

어여삐 피어나는 인동초가 되게 하소서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참다운 사람 되게 하소서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거센 물살 한가운데 우뚝 서서

조국통일의 기쁨을 안고 사는

사명으로 불타는 용자가 되게 하소서

 

불꽃처럼 남김없이 자신을 연소하고 남은 생을

민족과 조국의 광영을 구현하는

조그만 심부름꾼이 되게 하소서

 

한 알의 씨앗이 대지의 품에 안겨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듯이

오직 조국통일 하나로 불 밝혀온 정성

찔레꽃 향내 그득한 여생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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