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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준크의 눈] 성형미인을 찾아랏

공희준 Soccer Jockey | 기사입력 2002/09/06 [15:29]
{image1_left}비디오 파문으로 홍역을 치른 댄스가수 백모양에 이어 이번에는 유명 영화배우의 피앙세인 또 다른 백모양이 인터넷 상에서 한바탕 곤욕을 겪었다. 미모의 여성에 대한 세상의 관심과 질시는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꾸준히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다.

내가 다녔던 회사의 같은 부서에서도 백씨 여직원이 있었다. 내 책을 출간한 출판사 사장의 생김새를 보면 백씨 성을 가진 여자들 중에 어찌 그리 미인이 많은지 참으로 의아스럽다.

회사를 들어가면서 내심 상당한 기대를 걸었다. 테헤란로 연변에 위치한 기업들의 물이 좋다는 소문이 파다했기에 출근 첫날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천형처럼 육중하고 갑갑한 솔로의 저주에서 탈출할 천우신조의 호기가 마침내 찾아온 셈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기대가 빗나갔음을 동물적 후각으로 감지했다. 길을 걸으면 발바닥에 차이는 성형미인조차 전무했기 때문이다. 내 팔자가 끈떨어진 뒤웅박 팔자구나 하며 자위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입사한 지 달포쯤 경과하자 친구이던 팀장이 웹디자이너를 새로 하나 데려왔다. 백씨 성을 가진 젊은 아가씨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얼굴이 백옥처럼 흰 것이 한국의 전통적인 표준미인이었다. 그것도 아무리 요모조모 뜯어봐도 고친 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멸종위기에 처한 자연산 천연미인이었다. 외모뿐 아니라 왜 그리 숫기라고는 하나도 없는지, 지나가는 사람이 말만 걸어도 화장을 하지 않은 두 뺨 위의 홍조가 유난히 도드라지곤 했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준크와 그 아가씨 사이에 모종의 썸씽이 있었을 것이라고 예단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나는 직원들이 "이쁜 빽양"이라는 별명을 붙인 그 여직원을 여자라고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예쁘고 착한 여동생 같은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 여직원이 나를 친한 오빠라고 여기지 않고 맘씨 좋고 후덕한, 동네 슈퍼 아저씨처럼 대한 것이 조금 서운했음은 부정하지 않겠다. 10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나니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어여쁜 젊은 아가씨에게 농담을 걸지 않을 수야 없지. 사무실 분위기가 칙칙해 질 때면 으레 나는 그 여직원을 가리켜 "최근 3년 동안 본 여자 중에 최고의 마스크..." 운운하며 추켜세웠고, 그럼 옆에 있던 직원이 "공대리님이 최근 3년 동안 무인도에 살아서..."라고 화답하여 실내에 화기를 돌게 했다.

혹 "이쁜 백양"과 사귀고 싶은 분이 있거들랑 내가 중간에 나서서 오작교를 놓아줄 용의가 충만하니 본인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그리고 신분증 사본과 재직증명서에 더해 최종학교 성적증명서까지 첨부해 전자우편으로 발송해 주시기 바란다. 제출서류는 일체 반환하지 않겠다. 내가 아끼는 아가씨라 진입장벽이 매우 높으니 이점 각오하시라.

회사의 여직원 누구도 요란스레 화장발을 세우거나 야시시한 옷차림을 꾸미지 않았다. 특출한 미인은 없었지만 회사 생활에 있어 제각기 맡은 바 직분에 충실했고, 사적으로는 지극히 순수하고 여린 심성을 가진 이들이었다. 당차고 맹렬한 여성 사우들이야말로 소신 없이 상사 눈치나 살피는 겁 많은 남자 직원들을 대신해 회사를 성장시킨 원동력이자 전위부대였다.

우리 회사는 다른 사기업과는 판이하게 여직원 채용시 외모를 전혀 따지지 않았다. 능력보다 외양을 중시하는 그릇된 풍토 속에서 제 대접을 못 받고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숨은 인재들이 모인 회사인 탓이었는지 타사의 여직원은 물론 남자직원과 비교해서 우리 회사 여직원들의 업무능력과 근무태도는 단연 발군이었다.

{image2_right}우리 회사 여직원들이 21세기 한국사회의 통념으로 재단하는 여성의 미적 기준에 딱 맞아떨어지게 부합하는 외모의 소유자였더라면 나의 회사 생활이 훨씬 고달프고 팍팍했으리라 믿는다. '예쁜 그녀'는 대등한 동료사원이 아니라 호시탐탐 기회만 포착되면 즉시 작업에 착수해야 할 낯선 대상이자 소외된 타자였을 게다. 온정주의라고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할 망정 그녀들은 내 누이들이었으며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사장과 경영진을 뒤에서 흉보는 발칙한 공모자들이었다.

내가 외모로 상대의 사람됨을 판단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생긴 것만으로 나를 견적 내지 않는 법이다. 회사 인기투표의 득표결과를 분석하면 여직원들은 그야말로 나의 표밭이었다. 잘생긴 남자사원들을 제치고 후줄근한 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는 것은 창사이래 최고의 미스터리이자 벤처업계의 영원히 풀리지 않을 불가사의였다. 믿거나 말거나...

지난 주 내가 회사에 놀러갔을 때 반갑게 맞아 주며 기꺼이 책을 사준 것도 모두 여직원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고맙다. 회사 다니면서 별로 잘 해주지도 못한 것 같은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들의 집결지가 어디냐고 누가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평론 자영업을 개업하지 직전 내가 일했던 회사라고 당당히 외치겠다.

나는 자가용은커녕 면허증도 없다. 부모님의 몸이 편찮을 경우 멀리 사는 형들이나 매형이 차를 몰고 와야 하는 것이 불편하고, 애꿎은 애인에게 다리품을 팔게 하는 것이 미안하다. 그렇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자가운전자들이 여유 있게 만끽하기 힘든 독특한 즐거움이 있다. 바로 지나가는 젊은 아가씨들의 고운 자태를 감상하는 것이다. 스님이나 신부님이나 목사님이나 이맘과 랍비가 아닌 이상 눈에 띄는 예쁜 여성들의 얼굴과 몸매를 살피는 것-노골적 look at의 추파가 아닌 은근한 look의 시선으로-은 죄악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더더욱 심해지는 증상이 있다. 아무리 예쁜 여자도 구경하고 5분이 지나면 도무지 잔상이 남지 않는다. 오로지 신문과 방송, 온라인 광고에 등장하는 정형화된 틀의 미인이 떠오를 뿐이다. 지하철을 타면 이런 기억상실증은 도를 더한다. 건너편 좌석에 앉아 있던 아리따운 여성이 차에서 내리면 왠지 허전하고 안타깝다. 희한하게도 이번 역에서 하차했던 그 여성은 옷만 갈아입고 다음 역에서 재차 탑승한다. 이전 역에서 하차한 다음 화장실에 들러 잽싸게 원더우먼으로 변신하여 시속 100마일로 철로를 달려 전동차를 따라와 다시 여염집 규수로 변장하고 지하철에 올라 탄 것이 아닌 이상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미색이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여자들은 길거리를 지나든, 카페에 들어서든 철물점 거푸집에서 찍어낸 것처럼 죄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두터운 층위를 이룬 파운데이션의 개입만은 아닌 듯 하다. 전국 방방곡곡이 칼잡이 의사들이 설계도에 따라 대량으로 생산·복제·유포한 성형미인 군단에게 점령당한 형국이다.

내가 아는 백양의 매력포인트는 살짝 웃음 지을 때 쌍꺼풀 지지 않은 눈가에 이는 잔주름 물결이었다. 그 잔주름은 노화가 불러온 주름이 아니라 미세한 안면 근육이 조화롭게 일으키는 자연스런 결과물이다. 반듯한 콧날과 서글서글한 눈매가 합작해 빚어낸 그녀의 얼굴은 나무꾼과 선녀에 출현하는 선녀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예전만큼 예쁘지 않다. 그녀의 눈가에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쌍꺼풀이 돌연 태어났다. 신이 선물한 그녀의 미모에 인공의 메스가 가해지자 그녀가 가졌던 아름다움의 균형이 일거에 파괴돼 버렸다. 생기 잃은 눈가 잔주름의 활력을 보충하고자 짙은 눈화장과 마스카라를 하게 되면서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의 90%는 집중호우에 떠내려간 축사처럼 유실됐다. 여전히 그녀는 예쁘다. 그러나 자연스러움이 자취를 감춘 그녀의 미모는 그전만큼 편안하지도 상큼하지도 않다.

유명 인터넷 매체의 여기자로부터 '미모'라는 단어는 즉각 퇴출되어야 한다는 극언(?)을 들었다. 무심결에 사용하는 이 단어가 미인이 아니거나 미인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발버둥치는 대다수 여성을 사회적 소수자로 내몬다는 지적이었다. 그녀는 미모가 강판된 자리를 '매력'이 구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매력이라는 어휘 안에는 용모단정이 요구하는 단순무식한 몸매와 얼굴의 빼어남이 아닌 진지한 삶의 자세와 총체적 사고방식, 지혜로운 인간적 품성 등의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맥락이 포함된다는 주장이다. 그녀의 의견에 100%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회사의 여직원들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동아시아를 석권한 성형열풍은 외모지상주의(lookism)가 몰고 온 웃지 못할 희극이다. 아무리 꽃미남 신드롬이 확산된다 해도 겉멋에 기대어 궁극적인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 하는 운명은 여성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다. 한국사회의 미인이 많아질수록 여성들의 실질적인 지위향상과 양성간 평등실현은 바닥에 붙박힌 복지부동의 상태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할 게다. 진솔하고 서민적인 인생역정을 꼼꼼히 헤아리지 않고 누가 더 곱게 생겼고 옷매무새가 뛰어난가의 여부로 영부인될 인물의 호감도를 측정하는 한심한 세태니 두 말해 무엇하랴.

나는 즉각 대의를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뽀뽀한다는 핑계를 둘러 대고 내 코로 살짝 애인의 높은 콧날을 좌우로 흔들어볼 작정이다. 그녀의 코끝이 부드럽게 좌우로 움직인다면 내 애인은 성형족(族)이 아니라는 결정적 물증을 확보하는 쾌거를 거두게 된다. 글로는 인성을 우선하자고 호언장담한 나 역시 아직 여자의 껍데기에 광분하는 속물근성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길은 멀고도 아득하다.

* 필자는 [우리들의 비밀암호 : 노무현을 부탁해] (도서출판 시와사회, 2002)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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