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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팔순잔치를 치른 어머니의 마음!

시상천지에 뿌리없는 나무는 없는 벱이다...

이래권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5/01/27 [18:01]

사흘 연거푸 생을 마감한 위문과 조문을 다녔다. 마지막 한분 남은 고모님이 습관적 고관절 탈구로 세 번째 수술 중에 뇌사상태에 빠져 이대 목동병원 중환자실을 다녀왔고, 아침이 되기 전 고모부의 반년 암투병 6개월 끝에 모르핀과 함께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에 와서 잠시 쉬려하니 한민족 고대사연구의 권위자인 강동민 명지대 객원 교수께서 역시 폐암으로 귀천했다는 전갈을 받고 혜화동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들러 조문했다.

 

평소에 한결같은 행동지침은 경사를 멀리하고 애사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라는 신념으로 무장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 세 번의 조문 와중에 팔순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 이래권 작가     ©김상문 기자

 

“인자 시원허다. 동네 젊은 애미들이 나서서 시장 봐다가 내 팔순잔치를 해줘서 이빨없는 노인네들 밥 한 끼 대접헝게로 시상 날러갈 것 같다. 남들은 자식들이 내려와 뷔페다 뭐다 야단법석을 떠는디, 느끼허고 이빨이 시원찮어서 괜히 발품만 파는 고생잔치다. 그런디 겨울철 농한기를 짬내어 젊은 애미들 셋이 시장가서 요것저것 옴팡지게 장만혀서 양로당 노인들 대접헝께로 낼 죽어도 빚진 맴이 사라지는 것 같다. 신경쓸 것 없다. 환갑이고 칠순이고 팔순이고 다 필요 없는 쓸데 없는 짓이다. 직장 없고 고상허다가 연탄불로 죽어나가는 총생들이 허다헌디 무슨 아방궁 잔치라고 고상스런 새끼들 앞세워서 내 잔치자랑허것냐? 내 삼십에 청상과부되야서 느그들 사남매 남의 집 문앞으서 얼쩡대고 간사 안떠는 것만혀도 속이 든든허다. 우리 마제도 부모 전답 팔어가 망조든 자식들이 허다허다. 나는 그려도 선산허고 앞배미 논을 지켜내서 느그들한티 김치랑 쌀이랑 보내주는 늙은이 된 것만 혀도 조상님들이 다 보살펴 준 덕이다. 꼭, 맹절이나 지사를 빼먹으면 안된다. 시상천지에 뿌리없는 나무는 없는 벱이다.

 

팔순잔치는 동네서 치러줬으니 나중에 그 새댁들헌티 고맙다고 전화나 한통 넣줘라. 자식 보다 이웃사촌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갑다. 속 시끌시끌 애타지 말고 다 지나간 호사(好事)니 나중에 또 잔치다 뭐다 혀서 부산떨지 말거라. 니가 팔자다 뭐다 꽁짜으로 봐준 덕도 있으니 걱정을 말거라.

 

그리고 들판 논 가생이가 신작로로 들어가서 450만원이 보상 나왔다. 막내 손주딸 대학 등록금이라도 한번 내줄란다. 형제간이 우애가 있어야 되는 벱이다. 우선 내가 등록금을 내줄 팅게 형편이 되믄 십시일반 혀서 못사는 막내 좀 보태줘라. 고려대핵교 나와서 그놈의 뺑소니만 안 당혔드래도 떵떵거리지는 못혀도 손은 안벌리고 살틴디... 가만 생각허믄 죽어서도 그 도맹친 잡놈을 잡어서 주리를 틀고 싶은디……. 팔자가 그러허니 남은 느그들이라도 서로 섭력혀서 우애를 다지고 살어야 헌다.

 

노령연금 니가 보내주는 돈어다가 세 필지 전답으서 나오는 쌀 고구마 도지를 약삭빨리 모으먼 막내 손녀 등록금은 내가 댈랑게 걱정들 말어라. 어쩌것냐? 니 막동이 동상이 뺑소니로 그냥 걸어 다니는 것만혀도 조상님한티 감사허게 알고 인자 원망을 허지말고 뭉쳐 우애를 나누고 상어야 내가 저 세상에 가서도 편헌 벱이다. 내사 복받은 늙은이다. 이리저리 혀서 손녀 대학 하나는 갈칠 수 있으니, 동네 사람들이 나를 웃전으로 보고 이번 팔순잔치를 혀준 것이니라. 너도 베풀지는 못헐망정 남 속이고 뺏지말고 말강물나게 애끼고 애껴서 살어야 헌다. 이 세상 어디도 금가락지 솟아나는 우물은 없는 벱이다.

 

낼 모래가 구정인디 성주상(城主床-태조 이성계) 채리고 조상 고조부까지 챙기고 조왕상 어다가 길바닥 대문앞 집신에게도 고시래를 혀야 허느니라. 눈알에는 안 봬도 다 조상들이 있는 벱이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는 벱이다. 시상살이 고달프더라도 조상한테는 빼고 덜어 모시는 것이 아닝게 나 죽더라도 맹심혀라. 막내 손녀 고것이 속을 쌕이더니 유치원 애들 가르치는 선상되것다는디 참으로 잘된 일이다. 부모가 잘허믄 자식들도 언진가는 제길로 돌아오는 벱이다. 내가 조상님헌티, 고 애간장녹이는 막내 손녀 잘되라고 정한수 떠놓고 빌고 빌었다.  등록금이 얼매나 될지는 모르것지만 450만원 맹글어놨응게 그저 건강허니 남의 입방아에 오르지말고 살어가거라. 그리고 팔순잔치는 동네사람들이 혀줬응게 너무 속상허게 생각허지 말고 술 끊고 담배 끊어서 당노병을 잘 관리혀라.

 

한편으론 서운혔지만, 니가 이 애미 수술을 두 번이나 혀주고 동상 뺑소니 다 간병허고 책임졌응게 니 어께가 무거웠을 것이다. 그 맴 변치 말고 형지간이 우애허고 살거라. 그려도 양노장으선 내가 청소반장이디. 한달이 20만원 나오는디, 한푼 안먹고 노인네들 수박 괴기 사먹고 스니 이 애미 걱정은 하덜 말어라. 젊은 총생들이 직쟁 없이 연탄불로 죽는다는 소식 텔레비로 다 봤다. 부모 앞이 가는 놈은 천하의 불효니라 힘들어도 무쇠솥 마냥 은근히 참고 사는 것이 인생이니라. 아따, 팔순이 다로 있다냐? 오장육부 편허믄 하루하루가 팔순이니라. 잘 있거라......“

 

가슴이 콱 막히고 머리를 띵하게 울리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어머니의 힘찬 목소리. 30세에 청상 과부되어 4남매를 출가시키고, 이제 막내 손녀의 등록금까지 준비하시고도 매일 자식 손자 걱정이다. 부모의 팔순잔치를 동네 사람들이 치러준 불효의 한가운데서 생각한다. 여러분! 여러분도 나처럼 불효를 하고 계십니까? 나보다 나으면 꾸짖어주시고, 나보다 못하면 세상살이 친구하며 참고 하루하루를 희망이란 꿈을 결코 버리지 말고 땀 흘리며 살아갑시다.

 

어머니! 호남평야 한 구석 농토 위에 아직도 발걸음을 두 신 어머니! 서울의 한복판 연세대 앞에 살아도 어머님의 그 거룩하고 잔인한 인내와 이해심을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비록 한글을 못 깨우친 까막눈 어머니에게 위대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받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거의 다 자식을 그렇게 사랑하고 걱정하는 맘일 겁니다. 죄송합니다. 팔순을 빼먹고 동네 사람들이 챙겨줄 때까지 얼마나 이 못난 자식을 그리워했습니까? 못난 장남을 한밤 옥상에 올라가 취한 얼굴로 하늘의 별들을 헤어봅니다. 어둑한 구름 사이로 별들이 유난히 반짝거립니다. 고향 남쪽 하늘 먼 곳을 바라보며 빛나는 별을 따라 눈가를 두리번거립니다. 날이 차갑습니다. 따뜻한 양노당에서 편안히 주무십시오. 제가 드릴 것은 이것뿐이네요. samsohun@hanmail.net


*필자/삼소헌 이래권.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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