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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특집>롯데 신격호 성공비법 대해부

“멋지게 사업성공 하려면 신격호에 관심 가져라”

문일석 기자 | 기사입력 2005/12/29 [18:48]

▲ 고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그의 성공비법을 해부한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1922년생)은 한·일 양국에서 기업을 일으켜 성공한 경영인. 그는 한국이 낳은 이 시대의 거인(巨人)이다. 그같은 거인이 몇명만 더 있었다면 한국의 국운이 바뀌었을 것이다. 한국의 롯데는 이제 재계 서열 5대그룹 이내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신격호의 성공 비법은 특별한 것이 있다. 국제화 시대, 신격호식 성공법이 젊은층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업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성공은 누구나 기약할 수 없다. 창업을 원하거나 사업을 하는 이들은 신격호식 성공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롯데그룹 신 회장은 개인적으로 세계적인 거부(巨富)이기도 하지만, 한·일 양국에서 대기업을 일으켜 세운 풍운아(風雲兒)다. 짝수 달은 일본에서, 홀수 달은 한국에서 경영 지휘를 하는 한국이 낳은 경영명인 신격호.“사업으로 멋있게 성공하려면 신격호식 사업 비법, 성공법에도 관심을 가져보라”

 

1.. 맨손도 재산이다, 도전하라

 

기업인들이 기업을 일으키는 방법은 다양하다. 신격호는 맨손으로 사업을 일으켰다. 신격호에겐 맨손도 거대한 자본(?)이었다. 아무것도 없다고 자포자기하면 성공할 수 없다. 아무것도 없는 게 오히려 더 큰 재산일 수 있다는 게 신격호식 성공 비법이었다.

 

스스로 사업을 벌여 성공한 사람은 누구의 도움으로 성공한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 부모의 유산으로 일어선 것보다 자기 힘으로 일어선 사람이 더 행복하다. 신격호는 ‘맨주먹도 재산이다’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일제 강점기, 그는 혈혈단신 맨주먹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후 맨손으로 모든 것을 일으켰다.


신격호는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성실과 신뢰로 사업 기반을 닦았다. 1946년, 비누·포마드를 제조·판매하는 히카리(光) 특수화학연구소를 설립, 사업에 뛰어들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패망할 당시 그가 키웠던 공장이 폭격을 맞아 전소, 큰 시련을 겪었다. 그후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사업에 도전, 오늘의 ‘롯데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신격호는 온갖 고생을 이겨내고 오늘의 롯데를 일으켜 세워 재일 동포들이 선망(羨望)하는 표상이 되고 있다.

그의 인생 사전에는 한가지 잊지 못할 사건이 있다. 야망을 가졌던 신격호는 일본 시모노세키 항에 도착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일본 형사의 가혹한 고문이었다.

 

한국인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견디기 힘든 고문을 당했다.


그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있으며, 한국 국적을 고집스럽게 유지했다.


기업을 하는 이로서 일본에 귀화하면 많은 경제적 이익이 뒤따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을 고수한 것.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했기 때문에 성공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돈이 없다, 가문이 좋지 않다는 등의 이유는 신격호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에겐 맨손 창업으로 대성공을 거둔 신화가 항상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맨손도 큰 사업 밑천이다. 신격호의 인생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도전하라.

 

2.  좋은 아이디어를 실천하라

 

신격호가 사업가로서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은 남보다 앞선 아이디어를 곧바로 사업화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디어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으나 실천할 때만이 좋은 성과를 거둔다.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를 잘 찾아내기도 했지만, 그 아이디어를 즉시 행동으로 옮겼기에 성공의 열매를 따먹을 수 있었다.

 

신격호는 40년대 말 화장품으로 돈을 벌었다. 하루는 친구가 찾아와 껌제조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당시 소규모 껌공장은 수백곳이 난립했다. 좋은 원료를 구입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그의 나이 24세 때였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화장품 기술을 원용, 풍선껌을 만들어 시판에 들어갔다. 약제사 한명과 몇명의 종업원을 둔 작은 껌 공장이었다. 껌은 불티 나듯 팔려 나갔다.


몇명 안되는 직원이 있는 껌공장에서 돈을 모은 그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회사를 키워 갔다.


그가 회사를 키워 간 것은 껌공장을 만들 때의 기회 포착과 비슷했다.

 

좋은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가 기회를 포착, 과감하게 실천에 옮겼다.


그는 항상 남이 하지 않는 새로운 사업에 손을 댔다. 그가 호텔업에 손을 대었을 때만 해도 그는 그 사업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다만 남보다 앞선 아이디어 하나로 그 사업을 일으켜 최고 수준으로 육성시켰다.


신격호의 성공 비결 가운데는 남보다 항상 앞선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꼽을 수 있다. 새로운 사업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도 신격호만의 성공 비결 중 하나였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아이디어는 무용지물이다.

 

신격호식 성공법은 성공하려면 좋은 아이디어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3 공부하라, 책을 읽어라

 

신격호는 1941년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 항에 도착했다. 일본 도쿄에 입성한 그가 제일 먼저 관심을 가졌던 것은 공부였다. 그는 스기나미구(衫竝區) 코엔지(高圓寺) 거리에 다다미방 하나를 빌려 자취를 하면서 와세다 중학 야간부에 입학했다.

 

신격호식 성공법의 시작은 공부에 열중하는 것과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우유 배달과 신문 배달로 학비를 벌었다.

 

그는 시간이 나면 간다(神田)거리에 있는 헌책방을 찾았다. 그곳에서 읽고 싶은 책을 구입, 밑줄을 그어 가며 독파했다. 그의 손에서는 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학전집류도 그때 모두 읽었다.


그는 결국 신문·우유 배달로 고학을 하며 돈이 있어도 졸업하기 힘든 와세다 대학 화학과를 졸업했다.


독서광이었던 그는 한때 작가나 신문기자를 지망했으나 사업가로 진로를 바꿨다.


이국인인 그가 일본에서 공부를 하지 않고 책을 읽지 않았다면 사업가로서 대성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은 열심히 공부하고, 독서광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책 속에 정보가 있었다. 그는 책을 읽으면서 ‘롯데’라는 회사 이름도 얻어냈다.

 

4. 신용이 승패의 지름길이다

 

신격호는 신용을 중히 여겨 온 경영자다. 그는 우유 배달로 학비를 벌었다. 그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이른 아침 제 시간에 우유를 배달한 것으로 유명했다. 또한 친절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의 주문이 폭주했다.

 

우유 배달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자 그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정확한 시간에 배달해야 한다’는 신용을 위해 배달원을 고용했다. 이는 신격호의 유명한 일화다. 배달원이 배달원을 고용했던 것은 소비자들이 제 시간에 우유를 마실 수 있게 하려는 배려였다.

 

신 회장은 ‘롯데와 거래하면 언제든지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신용을 어린 시절부터 닦아왔다.


그는 신용이 성공의 지름길임을 잘 알고 있다.


신용이 있으면 살아남고, 신용이 없으면 죽는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기업인이다.


그는 1940년대 초 일본인 하나미쓰로부터 6만엔을 빌려 커팅 오일 공장을 차렸다. 그러나 이 공장은 연합군 폭격기의 폭격으로 완전 잿더미가 됐다.

 

그는 빚 6만엔을 갚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 그후 1946년 5월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개설, 화장품 제조 사업으로 돈을 벌게 됐다.

 

그가 돈을 벌어 맨 처음 한 일은 하나미쓰에게서 빌린 돈을 갚는 일이었다. 신격호는 그 때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화장품 사업을 벌여 1년반 만에 빚 6만엔을 모두 갚고 이자로 집 한채를 사드렸다. 사업을 한다기보다는 어떻게든 돈을 빨리 벌어 하나미쓰 노인에게 보답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신격호는 남이 자신을 믿어 주는 신용(信用)을 그 무엇보다 중히 여겼다. 이것이 큰 사업가로 성공할 수 있는 성공 비결 중 하나였다.

 

그는 신용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었다고 고백했다.


신용을 돈보다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오늘의 신격호가 있었던 것이다.


신격호식 성공법의 또 다른 하나는 신용이 곧 성공의 열쇠였다는 것이다.

 

5. 세계를 상대로 경영하라

 

신격호 회장은 한국·일본 양국에서 기업을 경영, 성공했다. 기업환경이 전혀 다른 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한·일 양국의 민족 감정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성공했던 비결은 국제적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합리적 경영, 남보다 앞선 국제적인 아이디어가 생존과 성공의 기반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 문화가 앞서 발달했다. 일본에서 먼저 유행한 품목을 한국에 접목시키고, 한국 기업문화의 장점을 일본에 접목시키며, 한·일 양국의 기업교류 폭을 넓혀갔다.

 

국제화·세계화·무한경쟁·첨단 아이디어로 대변되는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 신격호의 성공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중앙일보> 부국장을 역임한 작가 정순태는 자신의 저서 <신격호의 비밀>에서 신격호를 장보고와 비교,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역사적 비중이야 어떻든 신격호는 금세기 한국 인물 가운데 장보고(845년 사망)에 비유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다. 더욱이 장보고와 신격호 사이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장보고와 신격호는 잇단 흉년 속에서 신분 상승의 야망을 품고 20세 안팎의 나이에 무단 가출하여 중국 혹은 일본 땅에서 사생결단의 승부를 걸었다. 한 사람은 탁월한 무예로 전쟁터에서, 또 한사람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상전(商戰)에서 승리했다. 두 인물 모두 해외에서 쌓은 기반을 바탕으로 모국에 유턴하여 세계인으로 대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피력했다.

 

한·일 양국을 오가며 국제적인 경영을 해온 신격호 회장의 폭넓은 경영감각이 오늘의 롯데를 일궈냈다. 짝수 달은 일본에서 홀수 달은 한국에서 경영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그는 국제화 시대의 국제 경영인이다.

 

 6. 작은 일에도 충실하라

 

롯데가 추진했던 사업들은 거의가 현금이 일시에 많이 들어가는 큰 사업들이었다. 서울·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호텔·백화점·잠실 롯데월드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신 회장이 큰 사업을 하기 때문에 큰 일에만 신경을 쓰는 줄 알고 있다. 그것은 상식의 허실.


신 회장은 작은 일에 지극히 철저하다고 롯데에서 일해 본 한 직장인은 증언한다.


“나는 롯데에서 중간급 사원으로 10년간 일하다가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 되어 자리를 옮겼다.


현재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롯데가 어떤 회사인가를 새삼 알 수 있었다. 롯데는 작은 일에 지극하게 철저하다. 사무용품 절약하기, 비용 아끼기, 책걸상 오래 쓰기 등 꼼꼼한 회사였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정도였다.

 

작은 돈 나가는 것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큰돈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고, 이로 인해 회사가 나날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롯데맨들은 1년에 몇 차례씩 실전을 방불케 하는 안전교육을 받는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진화방법, 방범 교육이 그것이다. 신 회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회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화재 예방 상황과 방범 실태를 체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건축을 할 때도 소방 설비를 시설 기준보다 더 많이 설치하도록 지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작은 것에 충실한 최고 경영인이다.


신 회장은 작은 것을 크게 아는 생활 습관으로 성공 기업을 만들었다. 큰 저수지도 조그마한 쥐구멍으로 무너질 수 있다. 티끌이 모여 태산을 이룬다는 속담도 상기해 보자.

 

 7. 자신을 속이지 말라

 

신 회장의 기업 경영 이념은 ‘기업보국’이다. 그는 일본에서 기업을 일으켜 국내에 투자한 대표적인 애국 기업인이다.

 

그는 자신이 한국인 출신임을 속이지 않았다. 이름을 바꿔 일본인으로 행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본인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다.


돈을 벌어 모국의 발전을 위해 전적으로 투자, 자신이 한국인임을 부끄럼없이 드러낸 것이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모국 투자 길이 열리면서 한국에 투자를 계속해 신 회장이 지금까지 한국에 투자한 총규모는 50억달러 이상이다.

 

외국에 나가 성공한 기업인 가운데 그만한 액수를 국내에 투자한 인물이 있는가. 그는 한국을 잘 살게 하는데 기여한 애국 기업인인 셈.


그는 많은 외화를 국내에 투자하면서 식품·관광·유통산업의 선진화를 이룩해 냈다.

 

롯데제과·롯데삼강·롯데칠성음료·롯데햄·롯데우유 등은 한국 최고의 종합 식품 회사들이다. 롯데쇼핑은 우리나라 유통산업의 선두 주자로서 유통시장 개방에 맞서 경쟁력 확보에 일익을 담당해 왔다.

 

해외에 나가 있는 많은 한국인이 있지만 신격호가 돋보이는 이유로는 자신이 가진 재화를 아낌없이 모국의 발전에 투자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신격호는 자기를 낳아 준 고국이 가난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한국인인 것을 긍지로 여겨 왔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국가 사랑, 그는 분명 부유한 기업인이기 이전에 성공한 한국인이다.


신격호는 1922년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됐다. 그는 그 동안 고향을 위해서 많은 재화를 투자했다. 부산에 호텔을 지은 것도 자신의 고향 사랑의 표현이었다.

 

사업에서 크게 성공하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비록 약점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떳떳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업으로 번 돈을 자신의 고향과 모국을 위해 쓸 수 있는 고향 사랑, 나라 사랑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자기가 자신을 속이지 않을 때 성공의 길이 보인다.

 

8 관광-유통산업 새장열었다

 

서울 도심, 그 한복판 을지로입구에 미끈하게 솟아오른 쌍둥이 빌딩이 있다. 남산과 북악산 중간에 우뚝 선 이 38층짜리 빌딩은 호텔롯데 본점 건물이다. 70년대말 이 건물이 등장하자 장안의 온갖 화제와 시선이 집중됐다. 6·25전쟁 폐허 이후 처음 등장하는 화려한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의 주인공은 신격호. 과자류와 음료사업으로 성공한 교포쯤으로 알았던 한국사회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의 재력과 안목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건물을 짓는데 든 돈은 약 2억달러. 당시로서는 큰 돈이었다. 자동차 공장을 세우고도 남을 거액을 들여 호텔을 지은 그의 속셈이 궁금했다. 철골구조에 이탈리아 대리석을 붙인 이 건물은 중세 유럽의 궁전을 연상케 하는 화려하고 장중한 인테리어로 사람들의 시선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이때부터 롯데와 신격호 회장은 갑자기 유명해졌다. 이후 장안의 유명한 건축물들은 롯데 호텔을 교과서로 삼아 본뜨기 시작했다. 건축의 패션을 리드하게 된 것.


아울러 이 건물곁에 붙은 롯데 백화점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우선 그 규모(바닥 면적 3천1백43평, 12층 연 3만6백77평)와 화려함에 압도됐다. 2백만종이 넘는 최고급 상품에 세련된 서비스가 고객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수준의 백화점을 구경하지 못했기 때문에 롯데의 등장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이는 또 우리나라 관광 유통산업의 현대화, 세계화를 선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롯데는 백화점 이외에 관광식당가, 쇼핑몰, 패션가 등 부대시설을 함께 선보여 관련사업의 패션에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관광식당가의 등장은 우리나라 레스토랑 업계에 일파만파의 유행을 몰고 왔다. 깨끗하고 편안한 분위기, 밝고 화려한 조명, 예쁜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들의 세련된 서비스, 그리고 맛있고 위생적인 메뉴 등. 이 모든 것은 롯데관광 식당가에서부터 시작된 것. 좁고 칙칙하고 질퍽질퍽한 포장마차 수준의 식당문화를 일거에 바꿔놓았다. 아직도 롯데가 사치와 소비를 조장한다고 비난하지만 세계수준의 호텔이 무엇인가, 진짜 백화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것이 롯데인 것.


신 회장은 이에 머물지 않고 88년 올림픽때 잠실벌판에 또하나의 명물을 만들어 서울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연면적 17만평에 달하는 전천후 실내공원 롯데월드가 그것. 서울시민들이 롯데월드의 진가를 아직 잘 모르고 있을 때 일본 관광객들에게는 명소중의 명소가 됐다. 시내 한복판에서 숙식, 비즈니스, 쇼핑, 심지어 놀이를 통한 리플레싱까지 원스톱 서브가 가능한 곳이기 때문. 그때 일본관광객들은 “미국에도 이런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 롯데월드는 그후 10년, 지난해 5월 중국 관광객이 서울을 처음으로 왔을 때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제주도도, 경복궁도, 비원도 시큰둥했지만 롯데월드에 가서부터 웃음이 터지면서 ‘원더풀’을 연발했다.

 

9. 미녀를 활용하라

 

미녀와 사업은 어떤 관계일까? 많은 회사들이 미녀를 모델로 내세워 상품을 광고하고 있다. 남자 모델보다 여자 모델이 더 많은 돈을 벌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성공한 회사 뒤에는 미녀의 도움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쁜 여자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롯데 신격호 회장도 잘 생기고 예쁜 여자를 사업에 활용,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신 회장은 1953년 일본 껌업계의 선두를 달릴 당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린껌이 일대 선풍을 일으키며 팔려 나갈 때였다. 

 

일본 문화방송 개국에 맞춰 ‘미스 롯데 선발대회’를 개최한 것.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예쁜 여자들의 앞·뒤·옆모습을 보여주는 미녀 선발대회는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당시 신문들은 롯데의 ‘미녀 찾기 캠페인’을 크게 다루었다. 미스 롯데 선발대회는 롯데껌의 이름과 함께 일본 열도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경쟁 업종에서는 “롯데의 미녀 선발대회는 천만달러짜리 아이디어였다. 이 아이디어로 우리는 롯데를 추격할 수 없게 됐다”고 탄식할 정도였다. 미녀 선발대회는 일순간 일본에 롯데껌을 알리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미녀 선발대회 장면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오래오래 남아 있었기 때문.


롯데는 그후 한국에서도 미스 롯데 선발대회를 개최, 소비자들에게 롯데상품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롯데는 백화점·호텔 등의 경영에서 사원 선발 단계부터 외모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여성 사원을 선발할 때 미모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 예쁜 여자는 모든 사람이 거부감 없이 좋아 한다는 것에 핵심이 있다.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미녀의 도움을 얻어라.


심리학자들은 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도 하지만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이끌어 낸다고 말하고 있다.
성공은 미녀와 함께 있다. 미녀에게 투자하라. 미녀를 사업에 활용하라.

 

10. 회사 이름 좋아야 성공한다

 

(주)롯데는 1948년 6월28일 출범한 회사이다. 회사 이름은 신격호 회장이 직접 지었다. 그는 고학하던 시절 문학 책을 밤새워 읽었다. 그중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가 25세 때 집필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한다.

 

신격호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샤롯데를 회사 이름으로 정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히로인을 회사 이름으로 결정한 것이다.


신격호는 그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진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회고한다.

 

“내가 회사 이름을 롯데로 선택한 것은 내 일생의 최대 수확이자 걸작의 아이디어였다.”롯데라는 회사 이름은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었다. 롯데가 빠른 시일 내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로 알려진 것도 이름 덕분이었다.

 

현대 기업의 성패는 브랜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신 회장이 작명한 롯데라는 브랜드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져 빠른 성공을 가져다 준 행운의 여신이었다.


성공하려면 회사 이름을 잘 지어라. 신격호 회장이 지었던 롯데라는 회사명처럼.
            

 11.최종 결정은 본인이 하라

 

숲 안에서는 숲 전체를 볼 수 없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회사의 전체를 보는 인물. 말하자면 숲의 주인으로서 숲 전체를 볼 수 있어야 최고 경영자이다. 그렇지 않으면 숲 안에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신격호는 거대한 사업의 결정이나 작은 일의 결정에 있어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결정을 하기 전에 신중을 기한다는 것.


결정을 하기 전 상황파악을  위해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구한다. 충분한 자문이 끝나면 어떠한 일이든지 본인이 결정을 내린다.


신 회장의 성공 비법 중에는 어떤 일이든지 최종 결정은 자신이 내린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최고 경영자로서 간부들의 조언대로만 회사를 이끌어 가지 않고 자신이 이끌고자 하는 대로 회사를 이끌어 가는 경영관을 가지고 있다.

 

잠실 롯데월드를 신축할 때였다. 이 공사에 들어가는 돈은 자그마치 6천억원에 달했다. 간부들은 너나없이 이 공사를 반대했다.


“그 많은 돈을 투자해서 언제 환수할 수 있느냐?”는 게 반대 이유였다.


당시 간부였던 한 인사는 “잠실 롯데월드를 시작할 때 간부들 대다수는 밑지는 장사가 될 것이고, 이로 인해 롯데그룹이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면서 사업 시작을 적극 반대했었다”면서 “구체적인 수치까지 나열하며 사업 시작을 만류했다. 그러나 신 회장은 간부들의 의견을 충분하게 들어본 후 사업을 진행하는 쪽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때 신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것.


“잠실 롯데월드 건설 공사는 시작합니다. 롯데월드는 개장과 동시에 성공하는 사업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공사가 마무리되어 오픈을 하면 그때 가서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잠실 롯데월드는 롯데그룹의 효자 사업체이자 서울의 명물로 전세계에 유명해졌다.

 

간부들은 공사가 완공되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야 신 회장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회사를 이끄는 경영주는 두 가지 타입이 있을 것이다. 회사 사원이나 간부들의 의견을 청취, 그들의 결정대로 따르거나 경영 최고 책임자가 결정을 내리는 방법이다. 신격호 회장은 의견은 다양하게 들어보지만 최종 결정만은 본인이 하는 스타일인 것.

 

간부들은 회사의 결정이 잘못되어도 자신의 피해가 작겠지만, 회사의 오너나 경영주는 회사가 잘못되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하므로 위험부담이 클 수 있다.

 

망망대해에 선박을 이끌고 가는 이는 항해사이다. 항해사는 항로를 결정하는 권한이 있다. 최고 경영자는 자신의 회사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회사 간부의 말에만 의존했다가는 배가 항로를 이탈, 산으로 가는 것과 동일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신격호식 성공법에는 ‘최종 결정만은 자신이 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최고 경영인은 외로운 존재다. 최종 선택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12. 제품이 좋아야 성공한다

 

사업의 성패는 상품의 품질에 달려 있다는 것은 일반 상식. 품질이 좋은 상품을 값싸게 팔 수 있다면 더욱 성공의 확률은 높을 것이다.


이런 상식을 알면서도 쉽지만은 않은 게 상품의 질을 올리는 작업이다. 거기에는 자금·인력·노력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격호 회장의 성공 비결 가운데는 상품이든 서비스든 제일주의를 지향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오늘의 롯데를 일으켜 세운 데는 일본에서의 껌산업 성공이 그 기반이 됐다. 1954년 무렵. 일본의 껌 산업계는 불경기로 인해 회사들의 도산이 잇따랐다. 각 회사들은 살아 남기 위해 경품을 끼워주는 일로 승부를 걸고 있었다.

 

이때 신 회장은 “품질로 승부 하자. 좋은 껌을 만들자”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풍선껌보다 판껌이 잘 팔리는 때였다. 천연 치클을 사용하긴 했으나 수지 수입이 마땅치 않았다. 천연 치클껌이라고 선전을 했으나 사실은 합성수지가 상당 부분 가미된 껌이었다.

 

신 회장은 어차피 합성수지를 사용해서 껌을 만들어야 한다면 합성수지가 잘 용해되어 품질이 좋도록 하라고 연구진에 당부하고 자금과 인력을 충원시켜 주었다. 이 결과 합성수지를 균일하게 용해·혼합시키는 방법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신 회장은 좋은 상품을 만들어야 제품이 잘 팔린다는 것을 신조로 가지고 있었다. 롯데껌이 품질이 좋다는 것은 1956년 일본의 남극 학술 탐험대 제1진이 인정해 줬다.


롯데껌이 탐험대의 휴대 식량으로 채택돼 그 품질이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받았다. 좋은 품질의 껌은 결국 롯데를 부자로 만들어 주는 행운의 여신이었다.

 

신 회장은 제품을 만들든 호텔을 짓든 백화점을 건설하든 좋은 품질을 지향하고, 좋은 위치에 좋은 건물을 지어 소비자에게 봉사하고 있다.

 

서울 소공동의 호텔롯데·롯데백화점, 잠실의 호텔롯데·롯데백화점·롯데월드, 영등포 롯데백화점 등은 모두가 도심의 노른자위다.


성공하고 싶거든 신격호식 성공법에 관심을 기울여 보라. 품질에 승부를 걸라. 그리하면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이 보인다.

 

  13.자사맨·외인부대 양날개 활용

 

기업을 이끌거나 발전시키는 것은 운도 있어야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업의 성공 여하는 사람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신격호 회장의 용인술은 남다른 데가 있다. 회사 안에서 잔뼈가 굵으며 회사를 발전시킨 정통 자사(子社)맨과 외인부대의 양날개를 기업 상층부에 조화있게 배치, 회사를 이끌어 왔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안이 달리 보인다.

 

또한 안에서 밖을 쳐다보면 밖이 새롭게 보인다. 신 회장은 ‘안에서 밖을, 밖에서 안을 볼 수 있는 양날개 인재등용 정책’을 구사했다.


호텔롯데의 장성원 사장은 롯데 쇼핑을 본 궤도에 올려놓은 경영인. 롯데물산 김규식 사장은 제과를 발전시켜 기업에 기여해 온 인물. 조동래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대행은 호텔롯데·롯데햄 사장을 거쳤다.

 

이들은 롯데를 발전시킨 대표적 롯데맨. 이들을 활용, 롯데의 핵심 사업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신 회장은 외인부대를 수혈, 기업에 부족한 경영을 보충해 왔었다. 경제기획원 장관 출신 유창순(롯데 전회장), 국세청장·건설부 장관 출신 고 이낙선(롯데 전부회장), 교통부·철도청 국장 출신 김웅세(롯데물산 전 대표이사. 김영삼 전대통령 차남 김현철의 장인) 등이 대표적인 외인부대 출신이었다.

 

정통 롯데맨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신뢰감을 보내면서 회사의 주인임을 각인시켜왔다. 그런가 하면 국가 경영에 참여해본 외인부대에게 사업을 맡겨 정부와의 유대관계를 돈독하게 하거나 국가 흐름과 함께 발전하는 경영 방법을 구사해 왔다.

 

신 회장은 용인술에서 롯데맨과 외인부대라는 양날개를 적절히 활용,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효율 경영을 해 왔다.


정부의 요직에 있었던 외인부대 경영인으로부터 회사의 경영도 자문받지만, 정치·경제·사회의 흐름을 늘 자문받아 기업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14.  과감하게 융단폭격하라

 

사람이 살면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고 한다. 그 기회가 다가온 것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못 느끼는 이도 있다.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확실히 포착, 활용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신 회장은 ‘나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라고 생각할 때 과감하게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일본의 소비자들이 롯데를 기억하는 것은 롯데의 상품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상품 선전에서 늘 앞서왔기 때문이었다. 1957년. 일본에서는 컬러 텔레비전 시대가 열리는 때였다.


그 당시 현재 일본 천황인 아키히토와 쇼다 미치코와의 결혼식이 컬러 텔레비전 생중계로 화제가 됐었다.

 

천황의 결혼식을 컬러로 보고 싶다며 컬러 텔레비전이 붐을 이룰 때였다. 그는 컬러 텔레비전 붐을 사업의 기회로 포착, 융단폭격을 가했다.


신 회장은 이 무렵 전 일본인의 입을 부산하게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20엔에 팔았던 그린껌이 빅히트를 쳤다. 천문학적인 광고비를 투자한 컬러 텔레비전 융단광고 작전이 주효했던 것이다.


신격호는 롯데 간부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우리가 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컬러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을 몽땅 사들여라. 그리고 컬러 방송에 그린껌을 선전하라.”신 회장의 지시에 따라 텔레비전 방송의 가요 프로그램을 통째로 사들여 ‘롯데 가요 앨범’이라고 붙였다.

신 회장이 방송 시간대를 몽땅 사들여 그린껌 선전 융단폭격을 가하자 타회사들에서는 신 회장의 대담한 상품 선전에 전율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신문·라디오 등에도 대대적으로 광고, ‘입 속의 연인’이라는 롯데껌 선전 문구를 초등학생까지도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이때 롯데껌이 일본시장을 완전 석권했다. 이는 광고 융단폭격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그는 사회적 기회를 자신의 기회로 만드는 명수였다.

 

 15. 현장을 확인하라

 

스포츠 선수는 연습보다 실전에 강해야 승리할 수 있다. 연습에서 잘해도 실전에서 패배하면 무의미하다.


신격호 회장은 현장에 강한 경영인이다. 그는 간부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 기업체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다.

 

예고하지 않고 곳곳을 찾아다니며 고쳐야할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왔다. 잠실 롯데월드를 건축할 때였다. 그는 혼자서 작업현장을 확인하러 나갔다. 한 인부가 일을 하는데 어설프게 보였다.


“자네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시킨 대로 해보게.”

 

그 인부는 신 회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신이 누군데 나더러 이래라 저래라 합니까?”


그 인부는 현장지시를 하는 사람이 신 회장인줄 몰랐다.


“자네 말이야 내가 이 회사의 신격호 회장이네.”

 

그 인부는 깜짝 놀라서 사과를 했다. 그리고 신 회장이 시키는 대로 일을 마무리했다. 이것은 롯데그룹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이다.


신 회장은 호텔 구석구석, 백화점 각 매장에 시간 날 때마다 현장 확인을 위해 나간다. 소비자들에게 친절한지, 불편한 곳이 없는지를 확인, 시정토록 지시한다. 그런 결과 롯데호텔이나 백화점은 친절과 청결이 정착됐다.

 

경영자는 기업의 발전을 위해 지시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그 지시가 완전하게 하달되고 실현되었는지는 현장확인으로만 가능하다. 신 회장은 철저한 현장 확인주의자다.


경영인으로서 자기 회사가 잘되게 하려면 현장을 확인하라. 그것도 회사 성공 비결 중의 하나이다.  

         

 16. 확실한 믿음을 줘라

 

기업은 사람이 모여서 이뤄지는 인적 조직이다. 사람이 돈을 벌어주기도 하고, 사람에 의해서 돈이 밖으로 새나가기도 한다.

 

신 회장은 사람관리에서 믿음을 중요시 해왔다. 사원들에게는 “이 회사에 들어오면 평생이 보장된다”는 확신을 주고, 거래처 사람들에게는 “결코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어왔다.


1952년. 일본 껌시장은 경쟁이 치열했다. 선발주자들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었다. 롯데의 시장 점유율은 겨우 20% 정도였다.

 

그럼에도 사원들은 밤낮없이 일을 했다.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기에 인력·물량 등이 달렸기 때문이다. 보통 밤 9시 전후까지 야근을 해야할 판이었다. 사원들 가운데는 일이 많다면서 회사를 떠나는 사태도 속출했다.


하루는 회사원 한명이 일터에서 쓰러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회사의 경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그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동료의 죽음은 회사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신 회장은 장례식을 치른 뒤 미망인을 불렀다.

 

“남편께서 회사 일을 하다가 돌아가셔서 회사가 할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생계와 자녀 학비 일체를 책임지겠습니다.”그 미망인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는 지금도 우리 회사 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세대 연립주택을 한동 사들여 등기를 마쳤습니다. 연립주택 주인으로 입주하고 나머지 세대분은 세를 놓으세요. 그 수입이면 생활비로 충분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대학 진학비도 걱정 없을 것입니다.”“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호의를….”

 

그 미망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신 회장은 회사 일을 하다가 사망한 사원을 위해 성심을 다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종업원들은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했다.


신 회장은 회사 사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했다. 직원들이 회사를 믿을 때 그 회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래처도 마찬가지. 신 회장은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하던 초창기에 가내공업 형태로 캔디를 만들어 판 적이 있다. 그는 캔디를 만들어 여러 가게에 위탁 판매를 요청했다. 그러나 가게 주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니 그런 물건이 팔리겠어요?”


“아닙니다. 내 제품을 팔면 절대로 손해는 없습니다. 안팔리면 돈을 안받겠습니다. 물건이 팔리면 돈을 받게되니 가게에서 손해볼 것은 없잖습니까?”그는 소매상 주인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었다. 결국 그렇게 위탁 판매한 캔디가 불티나듯 팔려 나갔다.

 

1967년. 롯데과자가 한국에 진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제과회사들이 많았다. 롯데제과는 초창기라서 소매상들이 제품을 잘 모르고 있었다. 이때도 롯데는 소매점을 상대로 위탁판매를 실시, 성공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 롯데 소매점과의 직판거래는 혁명적이었다. 중간 도매상들의 반발이 예상되었으나 롯데 영업사원들은 자동차·리어카·자전거로 전국 소매상에 롯데 상품을 진열하는데 성공했다.

 

소매점들은 롯데 상품을 팔면서 이익금이 많아지자 좋은 장소에 진열하게 됐고 결국 롯데제과는 유수 제과업체로 발돋움하게 된다.


신 회장은 지금까지도 “롯데 제품을 취급하면 손해는 안본다”는 믿음을 주는 경영을 구사하고 있다.


성공은 결국 사람이 가져다 주는 선물이다. 성공하고 싶으면 회사 내부인이나 거래처 사람에게 신용을 쌓아라. 그 신용의 크기만큼 성공할 수 있다.

 

  17.쉼없이 부지런하라

 

신 회장을 아는 사람은 그의 부지런함에 감탄한다. 그는 한시도 쉼없이 일한다. 신 회장의 경영지침 중에 정열(情熱)이 있다. 뜨겁게 살라는 것이다. 그는 열심히 일하면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 간부는 말한다.

 

“우리 회장님은 정말 부지런하신 분이다. 한시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간부들의 보고를 받는 시간 외에는 회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점검한다. 회사 경영방침도 정열이다. 정열적으로 열심히 일해야 보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분의 건강 비결 또한 부지런함이다. 열심히 땀흘리며 일하면 자연히 건강해진다는 게 비결이다.”부지런해야 성공한다는 것은 교과서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 좋은 모델이 바로 신 회장이다. 촌음을 아껴 기업 발전을 위해 뛰었기 때문에 오늘의 롯데가 있게 됐다. 성공하려면 열심히 일하라. 부지런해야 성공한다.

 

 18. 부동산에 관심을 쏟아라

 

신 회장의 부동산 투자감각은 뛰어나다. 그런가 하면 독특하다. 사업 매장 선택시 사람이 많이 몰릴 곳만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유동인구가 많은, 목좋은 곳을 선택해야 된다는 것.

 

롯데 신격호 회장이 도심의 사업장으로 선택한 곳은 모두 교통 요지였다. 교통 요지를 차지한 것이 그의 사업 성공 비결 중 하나였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롯데백화점은 9천여평의 대지에 4천5백여평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 지역은 서울에서도 금싸라기 땅일 뿐만 아니라 지하철 서울 시청역·을지로입구 역을 끼고 있어 교통 요충지다. 서울 도심에서 이 지역만큼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드물다.

 

강남 잠실 롯데호텔·백화점·롯데월드는 호텔·백화점·쇼핑센터·레저 시설이 한꺼번에 밀집되어 있는 건물이다. 2만3천평의 부지에 세워진 복합건물은 롯데타운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대규모이다.


롯데호텔 건너편에는 2만6천평의 제2 롯데월드 부지가 있다. 이곳의 건축이 완공되면 단일 기업 건물로서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가 된다. 이곳이 서울의 교통요지 중 하나라는 것은 불문가지.


서울 영등포 롯데 역사(驛舍) 역시 교통 요지 중의 요지. 국내 첫 민자 역사이다. 1만평의 부지에 지하 5층, 지상 8층, 연건평 2만8천평 규모다. 롯데는 서울의 3대 교통·상업지대로 통하는 곳에 둥지를 틀었다.

 

서울역사 근처의 롯데 진출도 그 맥락이다.


지방에 진출한 롯데는 부산·대구·대전·광주 등에서도 교통 요지를 확보했다. 부산의 경우, 부산 서면의 옛 부산상고 자리 1만7천평을 사들여 호텔롯데 부산과 롯데백화점 부산점을 신축, 96년 개점했다. 부산시청 옆 롯데 1번가도 교통 요지다.

 

신 회장은 교통 요충지를 좋아한다. 저절로 인파가 몰려드는 곳에서 사업을 하면 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리라.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남다른 부동산 감각을 익혀라.


사람이 많이 몰리는 교통 요충지, 앞으로 그런 가능성이 있는 부동산을 찾아라.

 

신 회장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교통 요지에 대규모 사업장을 만든 것을 들 수 있다. 교통 요충지에 사람이 있고, 돈이 있고, 성공이 있다.

 

 19. 애국하라, 그곳에 길이 있다

 

사업과 애국의 함수관계는 어떤 것일까? 기업을 일으켜 국가에 기여하는 기업보국이 사업 성공의 큰 기둥일 수 있다. 신격호 회장은 해외에서 몸바쳐 얻은 재화를 모국에 아낌없이 투자한 대표적인 경영인이다.

 

신 회장은 한국에서 롯데 경영을 시작한 이후 외국에서 40억달러를 들여와 한국에 투자했다. 말하자면 해외에서 땀흘려 번 외화를 한국에 들여옴으로써 애국 기업인의 표상(表象)이 된 것이다.


그는 한국에 필요한 사업을 일으켰다. 식품·관광·유통산업의 선진화를 이끌어 왔다. 롯데쇼핑은 우리나라 유통산업의 선두주자로서 해외 유통시장 개방에 맞서 국익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굴뚝없는 공장’이랄 수 있는 관광산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관광산업은 외화 가득률 90%에 이르는 고부가가치 미래 전략산업이다.


신 회장은 국가 차원에서 해야할 관광사업에 손을 댔으며, 관광산업의 인식전환을 위한 기폭제 역할을 해왔다.
정부는 신 회장의 기업보국 공로를 인정, 95년 9월27일 관광의 날에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금탑산업훈장은 기업인에게 주는 국가 최고 서훈. 지금까지 기계·전자 등 제조 분야에서는 수상자가 있었으나 관광산업 분야에서는 신 회장이 처음이었다.

 

신격호 같이 해외에서 돈을 벌어 한국에 아낌없이 투자한 애국 기업인이 10명만 되었어도 국제통화기금 사태는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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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현영 2007/06/04 [13:24] 수정 | 삭제
  • 하루는 회사원 한명이 일터에서 쓰러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회사의 경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그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동료의 죽음은 회사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신 회장은 장례식을 치른 뒤 미망인을 불렀다.

    “남편께서 회사 일을 하다가 돌아가셔서 회사가 할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생계와 자녀 학비 일체를 책임지겠습니다.”그 미망인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는 지금도 우리 회사 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세대 연립주택을 한동 사들여 등기를 마쳤습니다. 연립주택 주인으로 입주하고 나머지 세대분은 세를 놓으세요. 그 수입이면 생활비로 충분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대학 진학비도 걱정 없을 것입니다.”“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호의를….”

    그 미망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신 회장은 회사 일을 하다가 사망한 사원을 위해 성심을 다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종업원들은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했다.
    신 회장은 회사 사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했다. 직원들이 회사를 믿을 때 그 회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한말씀 올겟습니다
    5개월 전에 ,롯데제과 얀산 공장에서 휴일날 일하다가 억울 하게
    돌아 가신 분이 계십니다
    나이 39에 ,, 7살 5살 두 자녀와 35살 된 미망인은
    어떻게 보살펴 주실 건가요 ?
    알고나 계신가요? 위의 말이 사실이라면 ,,
    미망인에게 고인에 대한 인사 한마디도 없나요 ?
    직원들끼리 쉬쉬 하고 보고를 안햇는지 모르지만 ,,
    정말 서럽고 억울 합니다
    너무나도 억울합니다

  • 좋네요 2005/12/31 [11:24] 수정 | 삭제
  • 아마도 감동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 젊은이들이 나아갈 길이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인생일 것이다.
    소인배 사고를 이젠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매일 일빠, 이빠하면서 우치하게 노는 풍토를 멸시했으면 좋겠다.
    하여간 누구든지 간에 위인 없음을 탄식하지 말고, 자신이 위인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거는 풍토가 생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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