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미국의 '해방군 연출', 이라크의 영혼마저 모독

바그다드를 함락한 건 파괴된 진실, 왜곡된 언어일 뿐이다

지오리포트 | 기사입력 2003/04/16 [01:07]
전쟁의 최초 희생자는 ‘진실’이라고 어떤 이가 말했었다. 미국이 주도한 침략전쟁을보면서 다시금 공감한다.

바그다드가 연합군에 의해 함락됐다는 소식이 떠들썩하게 전해진 4월 10일, 전쟁의 두 주역인 미국과 영국의 언론이 ‘최초 희생자’를 앞장서서 확인시켜줬다.

이날 연합군, 그리고 두 나라의 주요 언론은 능숙한 ‘마법’으로 침략전쟁을 ‘해방전쟁’으로 바꾸었다.

▲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 기사. 기뻐하는 이라크인들의 사진 아래 '총질은 드물었고,
대부분 환호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출처 www.nyt.com



‘총질은 드물었고, 대부분 환호했다(a few potshots, but mostly cheers)’ <워싱턴 포스트>
‘주민들은 나팔을 불고, 춤을 추었으며, 정부 사무실을 비워버렸다(residents blare horns, dance, and empty government offices)’<뉴욕 타임스>
‘미국, 바그다드 통제력 확보, 약탈과 축하 속에서’(us gains baghdad amid looting, celebration)<월 스트리트 저널> - 이상 미국
‘바그다드, 새 아침을 자축(baghdad celebrates new dawn)’
‘미군 병사들, 총질 아닌 미소를 만나다(us soldiers met with smiles not gunfire)’<인디펜던트>
‘이라크인들, 환호하고 나팔 불고 약탈하다(iraquis cheer, toot, and loot)’<가디언> - 이상 영국


이 기사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바그다드의 시민들 대부분이 미군들을 해방군으로 맞이한 듯 보인다. 하지만 외신에 전해지는 이들, ‘환영하는 시민들’은 단지 ‘수백 명’으로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바그다드는 인구 500만 명의 도시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동상 철거에 환호하고, 약탈을 자행한 이라크인들 중 상당수는 ‘동원’된 이들일 가능성 또한 높다. 바그다드에 미 해군이 들어선 이후 약탈을 일삼은 이라크인들이 미군 특수부대 차량을 타고 왔다는 증언이 뒷받침한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4둴 9일자에서 이라크 주민들이 미군지원을 받고 있는 이라크 민병대라는 ‘새 통치자’에게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보도했다. 바로 이들이 미군 차량을 타고 온 자칭 ‘이라크 국민통합연합(icnu)’이라는 것이다.

또한 바그다드의 알 파르두스 광장(al-fardus square)에서 후세인 대통령의 대형 동상이 철거될 때 외신은, 그 장면이 마치 바그다드 시민들의 ‘민심’을 상징하는 듯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인터넷 매체인 <인디미디어 센터>는 대부분의 외신들과는 달리, 주변에 모여있던 이른바 ‘군중’들을 ‘원거리’에서 찍었고. 그 사진 속의 군중이란 200여 명에 불과했음을 보여줬다. ‘군중’은 동상 근처에만 모여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바그다드 시내는 인적이 드물었다.

게다가 그 200여 명의 상당 부분은 미군과 기자들이었다고 <인디미디어 센터>는 전한다. 나머지 이라크인들 역시 미군 특수 차량을 타고 바그다드에 들어와 약탈을 일삼은 이들처럼 ‘동원’됐을지 모른다.

<파이낸셜 타임스><인디미디어 센터>의 보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바그다드의 시민들이 미군을 ‘따뜻하게’ 맞이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물론 후세인 대통령은 쿠르드족을 학살한 바 있으며, 정적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전력이 있는 독재자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리하여 내심 외세의 힘을 빌어서라도 그가 제거되기를 바랐을 이라크인들 또한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걸프 전쟁 이후 10년 넘게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으로 고통을 겪어왔고, 연합군의 ‘대량살상무기’ 세례를 받은 바그다드 시민, 그리고 이라크인들 대부분이 후세인 대통령 치하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사실만으로 미군을, 영국군을 해방군으로 맞이 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3일 현재, 이라크 당국은 이라크 민간인들의 사상자를 1천252명 사망, 5천103명 부상으로 추정한 바 있다. 3일 이후의 추가 사상자는 집계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혹독한 공습과 폭격이 잇따랐던, 그날 이후의 사상자는 훨씬 늘어날 게 확실하다. 더욱이 이라크 군인들의 사상자는 셈에 넣지도 못한 상태이다. (4월 10일 현재 미군은 96명 사망, 10명 실종, 그리고 영국군 30명 사망으로 집계됐다.)

▲ '총질은 드물었고, 대부분 환호했다'라는 제목의 <워싱턴포스트> 기사.
출처 www.washingtonpost.com
  

이라크 민간인들은 ‘학살’됐다. 공습과 포격이 ‘무차별적’이었음을 지난 3주간의 전황이 입증한다. ‘대량살상무기’ 보유 의혹을 전쟁 명분 중 하나로 내세웠던, 연합군은 핵무기에 버금가는 온갖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했다.

그 으뜸은 비핵무기로는 폭발력이 가장 큰 2만1천파운드(9513kg)의 ‘공중폭발대형폭탄’ 즉 모압(moab; massive ordnance air burst)이다. ‘모든 무기의 어머니(mother of all bombs)’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가, 생명을 대량 살상하는 무기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게 지금 현실이다.)

그것 뿐인가. 걸프전 이후 수많은 기형아를 태어나게 한 열화우라늄탄, 사람의 육신을 갈갈이 찢으며 축구운동장보다 훨씬 넓은 지역을 순식간에 초토화 시키는 ‘집속탄’, 불바다를 만들며 사람이 타죽게 만드는 네이팜탄….

미국은 자국의 부를 살찌우는 새로운, 한층 업그레이드된 ‘몰살 무기’ 상품을 선보였고, 이라크인들은 그 무기의 실험 대상이 됐다. 그런 이라크인들이 미군을 해방군으로 환호하며 맞이할 수 있었을까.

연합군으로 맺어진 두 나라는 대량살상무기로 이라크인들의 육신을 조각냈고, 그 두 나라의 언론은 ‘매체’를 이용해 이라크인들의 영혼을 모독했다.

‘언어는 생각의 거푸집’이라고 한다. 그러나 2003년 4월 10일, 언어는 폭력의 거푸집, 거짓의 거푸집으로 변해버렸다. 세계는 또 하나의 사전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유, 해방, 정의, 민주주의, 그리고 신(그들이 자주 말하는 god) …. 이미 이런 단어들은 그 속뜻과는 별개로 통용되는 또 다른 ‘기호’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인류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 갈래사전’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평화는 전쟁’ ‘자유는 속박’ ‘해방은 침략’….
미군의(연합군이라는 말도 사실은 허상이 아닐까) 침략전쟁은 확실하게 일러주는 듯하다. <1984년>에 나오는 언어의 역설이 그저 상상이 아닌, 지금의 구체적인 현실이라는 것을.

  ▲ 기사. '바그다드, 새 아침을 자축'이라는 제목이다. 과연 그런가.
출처 news.bbc.co.uk
  

이라크 침략 전쟁 이후, 워싱턴이 남미든, 중동이든, 아시아든 어떤 나라에 ‘자유’와 ‘해방’그리고 ‘민주주의’를 선물하고싶다고 말한다면 그 나라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일 게 뻔하다. 그 나라 사람들은 이미 자유를 ‘모압’으로, 해방을 ‘열화우라늄탄’으로, 민주주의를 ‘네이팜탄’으로 기억할 테니까. 그러면서, “우리는 이미 자유롭고, 해방된 민족이니 부디 그 ‘소중한 선물’이 있다면, 우리보다 더 딱한 나라에 먼저 주는 게 낫겠다”며 극구 사양할 지도 모르겠다.

‘거짓’은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강력한 무기였다.

바그다드가 함락됐다고 하는 지금, 대량살상무기로 이라크 민간인을 학살한 자들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주장하고, 이라크 땅을 철저하게 파괴한 자들이 전후 재건을 운운하고 있다. 더욱이 이라크에 전쟁범죄를 저지른 장본인 미국이, 전범재판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그것도 유엔이 아닌 자국에서.

워싱턴의 전쟁광, 그리고 연합군은 이라크 침략의 명분으로 내건 ‘대량살상무기’ 에 대해서만 해도 이미 숱한 거짓말을 남발했다. 전쟁 중 대량살상무기로 의심되는 것들을 발견했다고, 수 차례 호언했지만, 고작 살충제로 드러났을 뿐이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9일 기자회견에서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고 시인하면서, “그 같은 무기 및 관련 기술이 해외로 이전됐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에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이라크가 이번 전쟁이 벌어지게 된 대량살상 무기를 갖고있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으며, 이런 무기들이 발견될 것이란 높은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침략 전에도, 침략 후에도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진실’이, 워싱턴의 입을 통하면 말장난과 억지 수사로 변한다. ‘해외로 이전됐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발견될 것이란 높은 확신을 갖고 있다’ 등의 왜곡된 어법으로.

  ▲ 서방 언론의 왜곡된 사진에는 이것이 숨겨져 있다.
부모와 두 팔과, 미래를 빼앗긴 이라크의 12세 소년 압바스의 고통이... 

   

연합군은 침략 전부터, 이라크 민중들이 봉기를 일으킬 것이며, 후세인 정권은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으면서까지 잔인하게 저항할 것이며, 수세에 몰리면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등 갖가지 선전을 했다.

‘예견된 대로’, 그런 일은 내내 일어나지 않았다. 거짓으로 밝혀진 ‘바스라 민중 봉기’가 서방측 주류 언론에 잠시 동안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나타났다 사라졌을 뿐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 “우리가 바그다드 시가지에서 보고 있는 것은 ‘자유’를 열망하는 이라크 국민의 힘”이라고 플라이셔 대변인의 입을 빌어 말했다.

식상한 거짓말이지만, 지금 세계는 생존을 위해 그 거짓말에 수긍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거짓말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는 암울한 현실이다.

워싱턴이 그들만의 ‘해방군 세러모니(ceremony)’를 연출하고 난 이후, 발 빠른 외신들은 세계의 눈을 벌써 이라크 과도 정부, 복구 사업 등 전후 처리의 향배로 돌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전쟁범죄, 학살의 진상은 무대 뒤로 사라지고 있다.

무차별 공습으로 머리의 한쪽이 날아간 채 숨진 이름 모를 이라크 소년. 미군 헬기의 공격으로 몰살당한 라제크 알 카젬 알 카파지라는 이의 여섯 자녀와 아내, 부모 등 일가족 15명. 미사일 공격을 받아 부모를 잃고, 두 팔과 함께 장래 의사의 꿈도 잃은 열 두 살 어린이 알리 이스마엘 압바스….

이들의 비극적 희생은 또 다시 ‘전쟁 사상자수’라는 냉정한 산술에 묻혀버렸다. 평화의 힘을 믿는 세계의 많은 이들은 당분간 ‘실어증’에 빠질지 모르겠다. 언어와 진실이 무참히 파괴된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지만 그 증세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바그다드는 '함락'되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평화의 힘을 믿으면서. 그래야 하니까.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 협약을 맺은 "지구촌을 여는 인터넷 신문" 지오리포트 http://georeport.net/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 본 기사는 유만찬  geot@georeport.net 기자가 작성한 것입니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