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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 '원칙과 소신'의 노무현 A/S를 부탁해!

한국정치의 아방가르드, 미국발 폭탄에 무너지는가?

울카맨 | 기사입력 2003/04/01 [01:03]
노사모, 한국정치의 아방가르드

나는 대선 때 노무현을 찍었다. 노무현지지자냐고? 애초에는 중아저씨를 찍거나 혹은 투표용지를 찢고 나오는 자족적인 퍼포먼스를 하려고 생각했었다. 투표당일 12시가 지나고 투표율이 저조하다는 걸 알았을 때,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마이너 계열에 서 있었던 나는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는 선택을 쫓아 보았다. 노무현 개인에 대해서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매력적인 캐릭터이긴 하지만, 나의 정치적인 지향-나에게는 민노당이나 사회당도 깝깝하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상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는 최종적 순간에 파업을 진압할 인물이고, 단지 자신이 필요한 한에서만 그리고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욕망의 폭발을 허용할 것이다. 더구나 그가 손에 쥐고 있는 자원은 너무나 적다. 사방이 적이며, 그가 하려는 낮은 수준의 개혁도 번번이 벽에 부딪힐 것이다. 노무현 개인이 가진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그 한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 많은 사람들. 한나라당이 학생집단이라고 폄하했을 때 한나라당사 앞에서 부장급, 차장 급의 명함을 붙이며 스스로 정치색을 커밍아웃했던 한국사회에 없던 솔직함. 생업을 마다하고 뛰어들어 결국은 노무현을 전국경선에서 이기게 만든 그 헌신적인 열정. 대의원 한명 한명에게 자필로 쓴 편지를 보내 결국 그들의 마음을 바꿔놓은 그 진실함. 50대 아저씨가 지하철 입구에서 율동을 하며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던 그 파격성. 정몽준이 철회한 공조약속을 보고 새벽녘부터 게릴라전사들이 된 신속함. 마침내 투표당일 두 시 이후 대역전극을 만들어낸 용사들... 나는 그것들을 폄하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건 진짜다!'

투표당일 나는 오후 다섯시까지 고민을 하다가 이회창이 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핑계로 노무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저기에 한번 걸어봄직 해. 노무현에 대한 판단은 다르지만, 어쩌면 당신들이 노무현을 끌어당겨 한국사회를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 어쨌든 당신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노무현이 당선되었다.

그들은 한국정치사에 처음 등장한 아방가르드들이다. 그것도 대규모로 출연한 아방가르드들이다. 지식인, 전위투사, 활동가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수동적인 대중(?)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계획하고 집행하는 개인들의 집합체다. 무엇보다 대규모의 개미군단들이 스스로 움직였다는데에 큰 의미가 있다. 그 움직임은 돈이 들어가야만 움직이는 관변단체들과 이념적 노선과 조직적 틀거리로 움직이는 정형화된 사회운동세력들의 움직임과도 다른 방식이었다. 기존의 사회운동 조직의 이념적인 스펙트럼은 진보적일지라도 움직이는 방식에서는 대단히 중앙집중적이고 구태의연하다는 측면에서 노사모가 움직이는 방식은 분명 새로운 것이었다. 그 엄청난 에너지는 민주당 국민경선을 강타했고, 마침내 한국 정치를 바꾸어놓았다.

한국정치의 아방가르드, 미국발 폭탄에 무너지는가?

내가 그들의 목소리에 움직일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한번쯤 원칙과 소신을 지킨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나 실리를 쫓지 않고 '양심과 일관성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한번쯤은 성공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룰조차도, 스스로 표방한 소신조차도 지키기 어려운 대한민국에서 단지 원칙과 소신을 지킨다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었고 양심과 일관성을 따르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분명 그 자체로 커다란 개혁이다. 단지 그것만 되더라도 한국사회는 크게 바뀌리라 싶었다.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는 걸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개미군단들의 열망이 실현되는 경험을 갖는 것은 우리에게 소중할 것이다. 노무현이 당선됨으로써 그들이 기를 펴고 더욱더 큰 발언권을 얻는다면 분명 한국사회 구석구석의 문제들이 조금은 해결될 것이다...' 나의 기대는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이라크 학살전쟁을 시작하는 당일 노무현은 즉각 파병을 재확인하며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암울했다. 한국의 이름으로 대학살을 지원한다는 것에 놀랐고, 충분히 지연작전을 쓸 수 있었음에도 노무현이 그렇게 빨리 지원의사를 밝히며 대국민 설득에 나선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러나 그건 가능한 일이다. 그는 일개의 전략적인 정치인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던 건 노무현 지지자들이 자주 가는 여러 사이트에서 '파병을 해야한다', '노무현이 옳다'는 글이 대거 올라온 사실이다. 평소 노무현의 개혁노선을 지지하던 필진들 입에서 적극적인 '국익론'이 나온 사실이다. 원칙과 소신을 이야기하던 사람들 입에서 국익이나 실리라는 말을 듣는 것이 참으로 슬펐다. 서영석이나 변희재 같은 어용 칼럼리스트들-아마도 그들은 노무현이 파병을 반대했다면 원칙과 소신을 지킨 노무현이라며 또 그를 변명하는 글을 썼을 것이다-의 글발에 휘둘리고 있는 노무현지지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지금의 기분은 실망이라 표현하기도 어렵다. 암담하다. 암울하다. 그것은 단지 도덕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식 개혁이 출범 한달만에 무덤속에 들어가는 모습이 훤히 그려지고 있고, 무엇보다 한국정치의 아방가르드들이 '국익'이라는, '실리'라는 포로에 묶여 와해되는 것이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지지자들이 삽을 들고 그들 스스로 주장했던 개혁을 무덤 속에 묻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양심과 원칙과 소신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삼았던 한국정치의 아방가르드들이 미국발 폭탄에 산산이 흩어지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원칙과 소신은 언제나 중요하다

파병론을 두고 인터넷은 초토화되었다. 파병을 찬성하는 목소리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올라오고 있다. 그 중 절반 이상은 '나는 전쟁은 반대하지만 파병은 찬성한다'는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목소리다. 전쟁은 반대하지만 전쟁에 참가하는 것은 찬성한다니? tv에서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학살전쟁에 참여해야한다니? 부당한 것을 알면서 참여해야한다니? 여기에 무슨 원칙이 있고 무슨 소신이 있는가?

정치적 지형은 새롭게 짜여졌다. 노무현이 조중동의 칭찬을 받고 있고 일부 노무현지지자들이 그들이 청산대상으로 여겼던 수구세력과 입을 맞추고 있다. 노무현을 비판하면 바로 노무현지지자들의 반비판이 올라온다. 노무현의 개혁이 아니라 노무현이란 인물을 보고 있는 사람들, 한국사회의 개혁이 아니라 대통령 노무현이 목적인 것 같은 사람들,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노무현이 아니라 '대통령' 노무현을 보고 있는 사람들, 노무현이 정책을 잘못 했을 때 혹시나 노무현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질까봐 노무현을 옹호하는 사람들...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노무현은 개혁을 잘 할 때만, 자신의 소신과 원칙을 지킬 때문이 노무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노무현이 소신과 원칙에 어긋날 때 그를 채찍질해서 제자리로 가져다 놓아야 그에 대한 지지도도 회복된다는 사실을...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노사모, 대선 때 당신들이 움직인 건 정치적 계산에 빠른 이익집단들이 아니다. 당신들이 움직인 마음은 남들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고 남들이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는, 양심있는 시민들이다. 국익이 무엇인가, 나에게 이득이 무엇인가 계산을 하긴 하지만, 적어도 나 살기 위해 남들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아야 된다고 판단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누군가 원칙과 소신을 지키고 있을 때 소리없이 지지해줄 사람들이다. 그것이 노무현이든 노사모이든 혹은 그 누구이든 간에... 무엇보다 그들은 노무현이 '제대로된' 개혁을 할 때 나서서 수구파들의 저항을 방어해줄 사람들이다. 당신들이 움직인 건 바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다.

지금 중요한 점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학살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양심들이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어떤 국익이 있는지 어떤 실익이 있는지도 모호하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학살전쟁에 참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을 떠나고 있다. 파병이 현실화되고 한국 군인 중 누군가가 죽어서 돌아올 때 그 마음들은 노무현을 떠날 것이다. 한국인이 아랍권의 테러의 대상이 되었을 때, 그 피해자를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노무현을 떠날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전쟁이 성과를 얻지 못하고 전쟁책임론이 대두되었을 때, 그 마음들은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을 변호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죽음을 두고 떠나간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김대중씨의 집권중반 이후와 같이 정치적 부동층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노무현식 개혁이 물건너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민심이 떠나고 노무현이 무엇을 하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만 남았을 때, 그것은 해방 이후 50년만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한국정치의 아방가르드의 공중분해를 의미한다. 거기에는 단지 노사모를 통해 혹은 노무현지지자들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략적인 인물들만 남아있을 것이다. 도대체 양심을 저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제대로된 개혁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노사모, a/s를 부탁해!

내가 보는 상황은 무척 심각하다. 물건너가는 것은 노무현의 개혁만이 아니다. 원칙과 소신에서 활력을 얻었던 대규모 개미집단들이 와해되었을 때, 사람들의 주검을 앞에 둔 쓰라린 배신감이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 앞에 드리워졌을 때, 누가 다시 정치적인 아방가르드가 되려고 할 것인가?

거의 불가능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당신들, 나는 당신들이 노무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무현을 믿어보라며 사람들에게 노무현을 강하게 권유했던 당신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새벽에 전화를 돌려가며 모든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하며 노무현이 되야하는 이유를 역설했던 당신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노사모를 믿고 노무현에게 한 표를 던진 나로서는 노사모에게 하소연하는 수밖에 없다. 대선 때 만들어진 그 아방가르드적 움직임이 지금 바로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노무현의 개혁도 당신들의 꿈도 물건너갈 것이라고, 그렇게 소리 높여 외쳤던 한국사회의 원칙과 소신은 오랜 동안 싹을 피우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건 협박이 아니라, 사실이다. 지금 상황에서 노무현을 제자리로 옮겨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바로 당신들이다. 그래서 당신들에게 노무현을 a/s해달라고 부탁한다.

노사모의 반전평화성명서는 고맙게 보았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본 노사모는 다른 정치집단들이 하듯이 립서비스 운동을 하는 조직은 아니었다. 진정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파병을 반대한다면, 반전평화 성명서 하나로 침묵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은 몸으로 움직여야할 때다. 종묘에서 노사모 깃발을 든 수십명의 반전시위대들을 보았다. 그러나 남들 다 든 깃발 들고 노사모도 반전시위에 참가했다고 자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신들이 가야할 곳은 청와대 앞이다. 거기서 당신들이 만들어낸 대통령에게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원칙과 소신으로 돌아오라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노사모, 다시 한번 한국 정치의 아방가르드가 되기를...
계산도 안나오는 국익과 실리의 포로가 된 노무현을 a/s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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