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독일식정당명부제로 정치개혁을 이룰 수 없다

지역감정 타파 등 중대선거구제 하에서 일본식이 더 적합

딴지걸기 | 기사입력 2003/02/11 [15:20]
{image1_left}  현행선거구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1인1투표를 통한 비례대표, 선거구의 유권자 편차)을 계기로 시작된 선거구제 논의는,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라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당선자는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을 언급하였으며, 인수위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정당명부식비례대표제'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큰 틀에서 밑그림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며, 국민들이 실체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안으로서의 성격은 아직까지는 미흡한 실정이다. 때문에 민노당과 진보세력에서 주장하고 있는 '소선거구제하의 독일식정당명부비례대표제'는 찬반을 떠나서, 그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지향하는 정치개혁의 방향과 합리적인 선거구제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독일식정당명부비례대표제(이하 "독일식"으로 표현하겠다)'란 '비례대표제(우리의 전국구)'의 한 방식이다. 선거제의 평가 기준으로는 크게 비례성과 안정성을 들 수 있는데, '비례대표제'는 안정성보다는 비례성을 중시하는 제도로서 직능별대표성과 정당정치의 발전에 보다 더 기여하는 제도이다. 선거제도의 평가는 상대적이다. '비례대표제'가 직능별대표성과 정당정치의 발전에 더욱 기여한다는 것은 '다수대표제(우리의 지역구방식)'와 비교했을 때이다.

[관련기사]
이상완, 정치개혁에 역행하는 노정권의 중대선거구제 주장, 대자보 95호

'비례대표제'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작년 지방자치선거처럼, 1인2표제를 통해 정당에 대한 지지도를 통해서 대표자를 뽑는 제도가 '정당명부비례대표제'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정당명부식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라고 여겨지며, "독일식"과 "일본식"이 거론되고 있다.

"일본식"은 작년에 지방자치선거에서 선보인 제도로서 병립적이다. 즉 지역구의석수와 비례대표의석수가 정해져 있으며, 정당에 대한 지지도는 비례대표의 의석배정만 구속할 뿐, 다른 의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독일식"은 지역구의석과 비례대표의석의 합인 전체의석수(a)에서 정당에 대한 지지도(b)로 정당에 대한 의석을 배정하고(a*b), 정당이 획득한 지역구의석수(c)를 뺀 나머지를 비례대표(a*b-c)로 뽑는 방식으로, "일본식"에 비해서 소수정당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한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독일식'과 '일본식'을 소수정당의 유불리로 섣불리 우열을 논하는 태도나, '일본식'을 독일식을 반쪽만 받아들인 제도라고 폄하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로, "독일식"은 우리의 사회여건상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제도이다. "독일식"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의석비율을 1:1로 하는 것과, 지역구국회의원에 대한 유권자의 의식변환, 대통령제와 조화의 문제가 그것이다.

비례대표제는 다수대표제(우리의 지역구방식, 한표라도 더 많은 사람이 당선되는 방식)와 비교할 때, 사표를 줄임으로서 비례성을 살리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독일식"의 경우 의석비율이 조정되지 않는다면, 취지와 정반대로 비례성에 역행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즉 우리나라처럼 지역구 의석수가 비례대표 의석수보다 많을 때(*현재 우리나라는 227:46으로 약 5:1정도이다), a정당이 지역구 227석을 모두 차지하고 정당지지도는 83%이고,  b정당이 지역구는 한 석도 차지하지 못했지만 정당지지도가 17%일 때, "독일식"은 b정당에 대해서 비례대표 46석((227+46)*0.17) 모두를 배정하는 방식이다. 즉, b정당을 지지한 17%는 반영되지만, a정당을 지지한 83%의 정당지지도는 사표가 되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은 비례대표 의석수보다 지역구 의석수가 많을 때에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독일식"은 "일본식"에 비해 지역구 의석을 많이 차지하는 정당에 대한 차별을 통해서 소수정당에 보다 더욱 유리한 것이다. 때문에 과연 이런 차별에 대해서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독일의 정치여건을 볼 때, 독일에서 적용되는 당위성을 우리나라에서 적용하기는 어렵다. 독일은 매우 엄격한 정당주의 국가로서 "지역구"와 "비례대표"라는 구분이 어디까지나 명목적이다. 우리나라의 "지역구"선거개념이 독일에서는 지방자치의원 선거에서 이루어지고, 우리의 "비례대표"선거개념이 국회의원선거 전체에 대해서 이루어지는 독일과 우리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매우 어렵다. 지역구에 대하여 독일과 같은 수준의 유권자 의식 변환이 이루어진다면 모를까, "독일식"으로의 도입을 주장한다면 우리 나름의 당위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일본식"이 우리나라에 더 적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일본식"은 독일과 달리 지역구 국회의원의 선택기준이 정당이 아닌 경우에, "독일식"을 조화롭게 수용한 제도이다. 비교적 최근에 선거제를 바꾼 일본(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의석비율이 3:2)과 러시아(1:1), 그리고 이탈리아(3:1)가 "일본식"으로 수용한 것은 각국의 사정에 맞게 "독일식"을 수용한 결과이다. 또한 "일본식"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의석비율의 조정문제가 "독일식"보다 비교적 자유롭다. 비례대표제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비례대표의 의석수를 대폭 확대할 필요성이 있지만, 비례대표 의석의 확대문제는 "일본식"이든, "독일식"이든 상관없이 따로 다룰 문제이며, 비례대표의 확대에 부정적인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대통령제"국가이다. "대통령제"의 취지인 정국안정과 삼권의 분립과 견제가, "독일식정당명부비례대표제"의 다당제와 입법부의 행정부의 통제를 통한 책임정치구현이라는 취지와 상충되는 점이 크다. "독일식" 선거구제의 실현은 장기적으로는 "내각제"로의 개헌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둘째로, "독일식"이 과연 우리의 정치개혁의 방향과 일치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하나의 자물쇠를 풀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열쇠가 필요하듯이, 우리가 지향하는 정치개혁의 방향에 "독일식"이 적합한가 냉정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정치개혁에 대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차가 있겠지만, 우리의 정치개혁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문제가 지역주의의 타파이다. 하지만, "독일식"이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 할 수 없다. 우리의 지역주의는 지역구선거에서 인물보다 정당에 대한 투표행태이기에 문제이다. 될 사람이 안되고,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정당에 대한 투표행위로 된다는 것이다. 이런 지역주의 문제를 비례대표제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그게 "일본식"이든 "독일식"이든), 사족이다. 비례대표제는 사표를 방지하고 비례성을 살리는 것으로 충분한데도 거기에 슬며시 지역주의 타파라는 검증 안된 사족을 그린 것은 앞으로의 논의 과정에서 필요없는 오해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독일식"을 통해서 지역주의를 타파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두 가지 정도가 있을 수 있다. 특정지역에서 독식하던 정당의 약화와 정당정치의 강화를 통한 정책대결에 대한 기대가 그것이다. 그러나 전자는 지역주의 타파에 대해 착각에서 비롯된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지역구가 있기에 지역주의가 나타나므로 지역구를 없애자는 논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후자에 대해서는 정책대결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별히 "독일식"이 "일본식"에 비해 우월하다고 여겨지지도 않고 그 결과도 미미하다는 생각이다. "독일식"선거구제를 통한 지역주의 타파는, 노력에 비해서 결과가 너무 미미하여 특별히 효과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image2_right} 지역주의의 타파를 위해서는 차라리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논의가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거구제를 통해서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그나마 그 중에서 가능성이 있는 선거제도를 뽑으라면 "중대선거구제"가 유일하다는 생각이다. 지나치게 배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상대적인 평가를 해보자면 "중대선거구제"는 분명 "소선거구제"보다 지역주의를 타파할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며, 헌재의 판결을 존중하여 선거구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서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우리식의 중대선거구제를 연구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비판은 정확히 말하자면 단기비이양식중대선거구제(-구일본의 선거구제,1인 1표행사)에 대한 비판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중대선거구제에도 여러 종류를 생각할 수 있고, 문제점에 대해서 보완해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연기투표식중대선거구제(의석수만큼 다수의 투표권 행사-아무래도 개표가 난해한 점이 있다), 선호투표와 낙선투표를 통한 중대선거구제(개인적인 생각으로, 1표는 지지하는 후보자에게 하고 다른 1표는 싫어하는 후보자에게 투표함으로써 중대선거구제에서의 중진의원들이 유리하다는 점을 상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등 중대선거구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상의 논의에서 보듯이 선거구제에 대한 선호는 그가 지향하는 정치개혁의 우선순위나 사회적 배경에 따라서 다를 수 밖에 없으며,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한 선거구제란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서 도입한 선거구제라도 시행착오나 사회요건의 불비로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독일을 본받아 "독일식"을 나름대로 수용한 일본의 정당명부제의 실패가 그 좋은 예라 하겠다.

하지만 이런 선거구의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그런 논의과정 자체가 선거제가 추구하는 정치 참여를 밑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논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정치개혁의 방향과 우리의 현 위치를 파악하고 보다 나은 선거제도를 위해 끊임없는 보완과 보다 많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선거구제라는 전문분야에 대해 해당 전문가와 이해당사자의 전문성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국민의 정치개혁의 지향점을 서로 교환하고 의견을 자유로이 개진하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나도 평범한 국민이다). 정치개혁을 원하는 국민이라면 정치개혁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선거구제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 본문은 독자기고입니다. 본문에 대한 반론을 환영합니다-편집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