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 일본어 뿌리 우리민족 문화민족

고 박병식 선생 평생연구 유고 용인대학교에서 세권 책으로 출간

강동민 이사장 | 기사입력 2010/09/02 [09:35]
전국 유명도서관에서 “어원으로 밝히는 우리 상고사 상. 하와 소리 바꿈 법칙”을 만나는 즐거움을 느껴보세요 ! “어원(語源)으로 밝히는 우리 상고사(上古史) 상. 하” 와 부록으로 (소리 바꿈 법칙 책 : 박병식 지음) 책을 “용인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에서 발간하여 전국의 유명 도서관에 무료로 기증했다. 우리민족의 고대 언어로 역사를 풀이해 쓴다는 것은 길바닥에서 읽어버린 바늘 찾기보다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물론 모든 옛 사료들을 재정리해야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옛 사료들 모두가 한자의 뜻에만 몰입하여 풀이 번역하였지만, 언어 역사학자 “박병식 선생”은 우리민족의 고어인 “이두문자”나 그 이전에 사용되던 “우리고어”로 지명과 인명은 물론 역사내용까지 밝혔으니 학문을 연구하는 뜻있는 학자들은 꼭 한번은 읽어봐야 할 귀중한 참고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박병식  저서  ©브레이크뉴스
상권은 우리민족의 역사를 상세하게 서술하였으며, 하권은 일본 탄생을 기록하였으니, 왜곡되었던 역사가 중국지역과 일본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한눈에 훤히 알 수 있도록 상세하고도 재미있게 전개되어있다. 18년이란 긴 세월동안 연구하고 모아왔던 자료들을 정리하여 이 한권의 책을 완성하였지만 책이 발간되어 전국의 유명 도서관에 기증되는 오늘 박병식 선생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하늘로 돌아가셨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뿐 이다. 평소 일본 국립 시마네 대학에서 가르치실 때는 “가야인은 슬프다. 일본어의 비극”등 30여권의 책을 일본어로 발간하여 20만 명 이상의 일본 애독자를 확보하셨지만 귀국하여 “일본말 어원사전(바나리 출판사 발행)” “말은 어떻게 태어났나?(조선일보사 발행)” “소리 바꿈 법칙(한민족문화연구원 발행)”을 세상에 내놓았다.

특히 인류의 언어가 규칙정연(規則整然)한 소리변화법칙에 따라서 변화한다는 사실을 처음 법칙으로 세상에 알린 사람은 약200년 전 게르만민족인 독일인 “야꼬부 그림”이었으며, 그 법칙은 그 사람의 이름을 따라 <그림의 법칙 grimm's law>라고 부르며 현재까지 독일이 세계 언어학의 선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그 법칙은 그리어와 인구제어(印歐諸語) 사이에서 b. d. g 소리가 게르만어에서는 p. t. k 소리로 바뀐다는 사실만을 지적하였을 뿐 다른 자음(子音)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리변화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그러나 “박병식 선생”은 그리스어와 인구제어사이 뿐만 아니라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의 자음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리 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규제함으로서 <그림의 법칙>의 편협성(偏狹性)과는 비교가 되지 않음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이렇듯 “박병식 선생”의 세계 언어학에 끼친 공로가 커지만 10개 국어로 되어있어서 번역사에서 영어로 번역이 되지못하니 세계 언어학계에 아직 알려지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 할 뿐이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우리 민족의 상고사(上古史)는, 오늘까지도, 검은 안개에 가려진 채, 오리무중(五里霧中) 속에 버려져 있는 딱한 형편에 놓여 있다. 바로 그러한 우리의 등한(等閒)함이 원인이 되어, 일본은 오래 전부터 역사를 제 멋대로 왜곡(歪曲)해 왔으며, 최근에는 중국 사람들조차 그들 정부가 앞장서서「고구려는 중국민족이 세운 나라였다」는 기막힌 망언(妄言)을 서슴없이 하기 시작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저들의 국사교과서 내용마저 그렇게 고쳐 쓰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목적(目的)은, 일본과 중국 문헌(文獻)에 남아있는 우리 낱말 몇몇을 예시하여, 그 어원을 밝힘으로서, 저들의 그러한 왜곡행위(歪曲行爲)를 근원적으로 봉쇄(封鎖)하여, 다시는 그러한 망발(妄發)을 되풀이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데 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서는, 우리 사학자(史學者)들 사이에 오랜 고질이 되어온 중대한 오류(誤謬)도 차제(此際)에 시정(是正)하고자 한다.
 
★가라(명사. 나라 이름)

▲ 강동민 이사장과 박병식 선생 부부     ©브레이크뉴스
<가라>는 문헌(文獻)에 남아있는 우리민족 최초(最初)의 국호(國號)다. 이렇게 말하면 「그게 무슨 소리냐? 『삼국사기』에는, 우리나라를 처음 세운 분은 단군(檀君)이며, 최초의 국호는 조선(朝鮮)이라고 명기(明記)돼 있지 않는가!」라고 항변(抗辯)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게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깨달아야 할 점은, 『삼국사기』의 그러한 기록은, 중국의 사서(史書)에서 전재(轉載)된 것이며, 따라서,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는 수도(首都)의 이름 <아사달>을 한자(漢字)로 의역(意譯)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이다.

즉, 순수한 우리말인 <아사달>은, <아작 달=아침 달>의 옛 형태로서, <아사>는 <밝음․해가 비침>을 뜻하는 고어(古語)이며, <달>은, <양달=햇빛이 비치는 밝은 땅>, <음달=그늘진 땅>등에 씌어진 <달>과 같이, <땅․곳․나라>를 뜻한다. 따라서 <조선(朝鮮)>은 「해가 아름답게 비치는 나라」라는 뜻으로, <아사달>에서 유래되는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음달>이란 말이 나온 김에 여기서 한 가지 지적(指摘)해 놓자. 우리말 사전에는, 「<음달>은 원래 <응달>이라고 적는 게 옳다」고 돼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국어학자들이, <음(陰)>의 <ᄆ>소리는 <ᄋ>으로 바뀌기 쉬운 소리라는 소리 바뀜 법칙(예: 골마지→골아지. 林檎=림금→능금. 매?→왜?)를 깨닫지 못한 탓에 저지른 잘못이다. 따라서 <응달>이 옳은 게 아니라, <음달(陰地)>이 옳은 표기다. 우리가 쓰고 있는 <양달(陽地)․<음달(陰地)>이란 낱말은, 한자(漢字)와 우리말이 결합된 합성어(合成語)다.

그건 그렇고, <아사달>을 건국한 임금의 이름도 역시, 한자(漢字)로 <단군(檀君)>이라고 표기하지만, 그것도 우리말 <밝은 달=밝은 땅=해 비치는 나라>의 변형(變形)인 <밝은 달→밝달→박달(檀)>과, <임금(君)>을 의역(意譯)하여 합성(合成)한 것으로서, <단군(檀君)>은 「해가 비치는 땅의 임금․해의 나라의 임금」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아사달=해가 비치는 나라․해의 나라> 즉 <밝달>이 우리민족 최초의 국호임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가라>가 처음 국호라는 것은 웬 소리냐? 이 물음에 대한 정답(正答)은, 「<가라>도 <아사달>과 마찬가지로, <해가 비치는 나라․해의 나라>를 뜻하는 말이다」여야 할 텐데 과연 <가라>가 그런 뜻을 지닌 말일까? 그것을 풀자면, 두어 가지 기초적(基礎的)인 소리 바뀜 법칙을 알아야 한다. 우선 그 첫째는, <해(日․太陽)>의 원형(原形)이 <하>라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은, 출가(出家)해서 중(僧)이 된 이후, 나이, 즉 연세(年歲)를 셀 때 <하>라고 하는데, 그때 쓰는 말인 <하>가 <해=年>의 원형임을 확인함으로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내 것=나의 물건」을 <내 해>라 하는데, 그 말에 쓰이는 <해=것>의 원형 역시 <하>임은 우리 말 사전에서 확인(確認)할 수 있다.

둘째로 밝혀야 할 소리 바뀜 법칙은, <ㅎ>소리는 <ㄱ>소리로 바뀌기 쉽다는 법칙이다. 그와 같은 소리 바뀜의 예로는, <王>을 뜻하는 우리 옛말은 원래 <가시하나>이지만, <가시가나>라고 도 했으며, <지나게=지나도록>이라고 하는 말의 고어(古語)도, 원래는 <지나히>라는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사실은, <가라=해가 비치는 나라․해의 나라>의 옛 꼴도, 원래는 <하라>이었을 것이 라고 추정(推定)하게 한다. 그리고 <하라>의 <라>는 <땅․나라>를 뜻하는 옛 말이며, 고어(古語) <다라=높은 곳>․<다라=들․들판> 따위에 쓰인 <라>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고증(考證)으로, 우리 민족의 첫 국호인 <가라>의 옛 꼴은 <하라>이며, 그 원래 뜻이 <해의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왜 우리 조상(祖上)은, 나라 이름을 <하라=해의 나라>라고 했을까?」하는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 물음에 대한 정답은, 「우리는 이 지구상(地球上)에서 유일(唯一)하게 스스로를 <태양의 자손>이라고 자부(自負)하는, 독특(獨特)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집사람(妻)을 <아내>, 자식을 <아이>라고 부르는 데, 그것들의 원형은 각각 <안해=집 안에 있는 해>․<아해=어린 해․아기 해>이다.

어디 그뿐이던가? 현대(現代) 말로, 우리 스스로를 나타내는 칭호(稱號), 즉 일인칭(一人稱)은  <나>인데, 그 원형은 <라>다. 모-든 사람이 다 알다시피, <라>는 이집트(egypt)에서 태양신(太陽神)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즉, 우리는, 태양신의 자손이라고 자부하는 까닭에, 스스로를 <라(太陽神)>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연대(年代)가 내려옴에 따라서, <ㄹ> 소리를 <ㄴ> 소리로 바꿔 발음하는 <우랄-알타이>어족(語族)의 특성(特性) 때문에, 원래는 <라>이던 일인칭(一人稱)이, 지금은 <나>로 바뀌었다. 그러나 원형인 <라>는, 일본 쪽에 가까운 동해(東海)에 있는 오끼섬(隱岐島)의 사투리가 되어, 현재도 씌어지고 있어서, <라>→<나> 소리 바뀜이 있었던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일본어 사전(辭典)을 뒤져보면, 일본 사람들도, 만요-슈-(萬葉集)가 편찬(編纂)된 8세기(世紀)까지는 일인칭(一人稱)으로 <나>를 쓰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 조상님은, 「<태양의 자손>인 <해>들이 사는 땅>」이란 뜻으로, 최초의 국호를 <하라→가라>라고 했던 게다.

▲ 박병식 저서     ©브레이크뉴스
우리나라에서는 <가라>를 한자(漢字)로 <加羅>․<伽羅>․<迦羅>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8세기 초에 편찬 된 일본『고사기』와『일본서기』에는 <가라>가, <加羅> 및 <韓>이라고 표기돼 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봐서, 적어도 8세기까지는, <가라>라는 우리 국호가 일본열도에서도 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우가야(上伽倻)가 신라에게 멸망당했던 서기562년 이후까지도, 고구려․백제․신라 등을 통 털어서, 우리나라를 <가라=태양족이 사는 나라>라고 불렀던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韓國古代史硏究(한국고대사연구)』의 저자(著者) 이병도(李丙燾)는, 「<가라>는, 변진(弁辰) 제국(諸國)이 낙동강 유역(流域)에 세운 부족국가(部族國家)다」라고 했는데, 『고사기』와『일본서기』의 기록(記錄) 하나만 봐도, 그것이, 상고사를 무시한 맹랑한 잘못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뿐인가! 이병도(李丙燾)는 한 술 더 떠서 말하기를, 「우리의 국호 <가라=태양족이 사는 나라>의 <가>는, 변두리를 뜻하는 말이라」고 하며,「<가라>는 강(江)이나 해변(海邊)에 자리한 나라를 뜻 한다」는 망발(妄發)을 해 놨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역사를 왜곡(歪曲)하여 조상을 더럽히는 일본(日本) 일본 사람들은, <가라>가 「태양족이 사는 나라」라는 사실을 모르면서도, 가라가미(韓神)를 황실(皇室)의 시조(始祖)라고 하며, 천황(天皇)의 거처(居處)인 궁성(宮城) 안에 모시고 있다. 일본정부의 손으로 서기927년에 편찬된 『연기식(延喜式)』이라는 문헌이 있다. 거기에는 그 책이 편찬될 당시, 일본 전국의 신사(神社)에 모셔진 신(神)들을, 신격(神格)의 고하(高下)에 따라, 제사(祭祀)를 모셔야할 사람의 신분과 제사의 격식(格式)을 자세히 규정(規定)해 놓았다. 거기에 따르면, 가라가미(韓神)는 천황이 몸소 제주(祭主)가 되어,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제사(祭祀)를 받들어 모시도록 돼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근년(近年)에 이르러 서는, 봄에 가라가미(韓神) 제사를 지내는 날인 2월 11일을, 우리나라 개천절(開天節)에 해당하는 건국기념일(建國記念日)로 정하고, 국경일(國慶日)로 삼고 있다. 평소엔 우리민족을 말끝마다 서슴없이 경멸(輕蔑)하는 저들인데,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들이 우리 가라가미(韓神)를 그토록 떠받들지 않을 수 없을까? 그런 의혹(疑惑)을 속 시원 하게 풀어주는 기사(記事)가, 2003년6월23일자 일본 교-도-통신(共同通信)에 나타났다.
 
<교-도-통신(共同通信)>=동경대학의학부(東京大學醫學部) 인류유전학교실(人類遺傳學敎室) 도꾸나가 가쯔시(德永勝士)교수는, 인간의 6번 염색체 내(內)에 존재하는 “hla유전자군”을 이용한 인간유전자(게놈)을 비교 연구한 결과, 일본 본토인과 가장 가까운 집단이, 한국인과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으로 추정된다는 결론(結論)에 도달하였다.「도꾸나가」교수는, 일본인, 한국인, 중국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등, 12개 민족(집단)을 비교분석(比較分析)한 결과, 일본 본토인은 오끼나와인(沖繩人)이나 혹까이도(北海道)의 <아이누>족보다 한반도에 사는 한국인과 중국의 조선족에 가장 가까웠다고 밝혔다. 일본 본토인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hla유전자형태는, hla-b52-hla-dr2로, 북 규-슈-지방(北九州地方)부터 야마가다현(山形縣)에 이르기까지의 사람들에게서는 12%이상 존재했고, 몽골인(蒙古人)에게서는 5-8% 나타났다. 반면, hla유전자는 오끼나와인 에게 서는 2%, <아이누>족에게서는 1%에 끄쳤다. 이런 연구결과는, 7월 동경대학출판부(東京大學出版部)가 출간(出刊)할 예정인 공개강좌(公開講座) 총서(叢書)에 수록될 예정이다. 한편, 돗도리대학(鳥取大學) 의학부 이노우에다까오(井上貴央)교수 팀은, 벼농사 도입(導入)과 청동기(靑銅器) 전래(傳來)로 상징(象徵)되는 <야요이>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dna가, 현대 한국인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연구결과(硏究結果)룰 내놨다.  돗도리대학(鳥取大學) 연구팀은, <야요이>시대 유적(遺跡)인 돗도리현 아오야가미(靑谷上) 절터(寺跡)에서 출토된 <야요이>인(人)의 유골(遺骨)에서 추출(抽出)한 <미토콘드리아>dna 염기배열(鹽基配列)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그 연구팀은, <야요이>인 유골 29점 가운데 7점으로부터 dna를 추출하는데 성공한 뒤, 그중 4점에서 <미토콘드리아>dna 염기배열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이들이 한국의 현대인 및 혼슈-(本州)의 일본인과 동일(同一)한 그룹에 속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 박병식 저서    ©브레이크뉴스
일본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일본열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열도(列島)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열도 밖에 있는 사람들과는 아무 혈연관계(血緣關係)가 없는 천손(天孫)이다」라는 비과학적(非科學的)인 주장을 해 왔다. 그러나 이제 움직일 수 없는 유전학적(遺傳學的) 증거의 부상(浮上)으로, 그들의 허무맹랑(虛無孟浪)한 주장은, 더 이상 지탱할 근거를 잃고 말았다. 때늦은 감은 있으나, 그네들은 이제, 좋건 싫건,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가라족(韓民族)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게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가라족(韓民族)이라면, 그들이 쓰는 말도 우리말과 같아야 할 텐데, 두 나라 사람들의 말은 통역(通譯) 없이는 서로 이해할 수가 없으니 어찌된 일인가? 일본말은, 백제(百濟) 성왕(聖王)이 오경박사(五經博士)를 파견하여, 불전(佛典)을 일본에 전(傳)한 서기552년까지도 우리말과 꼭 같았다. 그렇던 것이, 차차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그 원인을 제공(提供)한 것은, 어려운 한자(漢字)로 씌어져 있는 불전(佛典)을 쉽게 읽기 위하여 그들이 창안(創案)한 가다가나(片假名)였다.

왜냐하면, 가다가나(片假名)에는, <ㅓ>․<ㅡ>․<ㅐ> 모음을 표기할 문자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ㅓ>․<ㅡ>․<ㅐ> 모음소리를 표기할 문자가 없는 가다가나(片假名)로 교육받으며 자라난 세대(世代)는, <ㅓ>․<ㅡ>․<ㅐ> 모음으로 구성된 우리말을 발음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에, 오늘날 같이 우리와는 다른 발음으로 말하게 된 게다.
 
즉 50가지 소리밖에 없는 가다가나(片假名)로 교육받게 된 사람들은, 우리말 가운데서, <ㅓ>․<ㅡ>․<ㅐ> 모음으로 구성된 부분을, 가다가나(片假名)에 있는 다섯 모음<ㅏ>․<ㅣ>․<ㅜ>․<ㅔ>․<ㅗ> 등으로 대체(代替)해서 발음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게다. 예컨대, 우리말 <어머(母)>는, 모음 <ㅓ>로 구성 돼 있기 때문에, 그 모음 <ㅓ>를 <ㅏ>소리로 바꿔 놓은 것이 일본말 <아마(母)>다. 이런 현상(現象)이 일어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일본 학자들은, 「나라시대(奈良時代. 서기 720년부터 784년)까지의 일본말에는, 모음이 여덟 있었는데, 그 후부터는 모음이 다섯으로 줄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모음이 셋이나 줄어든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가다가나(片假名)의 결함(缺陷)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일본말이 더욱 더 우리말과 달라 지게된 것은, 세종대왕(世宗大王)께서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創製)하여 반포(頒布)하신 이후부터다. 왜냐면, 그때부터 우리말 표기에, 예전엔 없었던 <받침>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가다가나(片假名)에는 <받침>으로 쓸 수 있는 문자가 <ん=ㄴ>과 촉음(促音)으로 씌어지는 <つ=쯔>소리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네들은, <받침>으로 끝나는 우리말은, <받침>을 삭제(削除)하거나, 또는 <받침>이 돼 있는 자음을, 가다가나(片假名)에 있는 적당한 모음과 결합시켜서, 아래와 같이 대치(代置)하고 있다.
 
<받침>있는 우리말을 일본말로 표기하는 예(例)

*사물이나 현상, 또는, 성질 따위를 추상적(抽象的)으로 이르는 명사(名詞)인   우리말 <것>을, 일본말로는 <こと=고도>라 발음한다. 이 경우에는, <것>에 쓰인 모음 <ㅓ>를 <ㅗ>로 대체(代替)해서, 우리말의 <거> 소리를 <고>로 나타냈다. 그런 다음, 우리말의 <ㅅ 바침>은, 자음 <ㄷ>에다 모음 <ㅗ>를 결합시켜서, <도> 소릴 만들었다. 그 때문에, 단음절(單音節)인 우리말 <것>은, 두 음절인 일본말 <こと=고도>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말 소리 <념(念)>은 일본말로는 <ねん=넨>이라 발음한다. 이 경우에는, 모음 <ㅓ>소리가 바탕이 돼 있는 <ㅕ> 소리를 표기할 수단이 없는 일본 사람들이, 그것을 <ㅔ> 소리로 대치해서 <네> 소리를 만든 다음, <ㅁ 바침>은, 그들이 갖고 있는 유일한 자음 <ん=ㄴ>으로 표기했기 때문에, 우리말 소리 <념>은, 일본에서는 <ねん=넨>으로 변했다.

*우리말 소리 <발호(跋扈)>는 일본말로 <ばっこ=받고>라 발음된다. 우리말 소리 <발>에 씌어진 <ㄹ 바침>은, 일본에서 촉음(促音)으로 씌어지는 <つ=쯔>소리로 대치했다. 우리말 소리 <호>가 <고>로 바뀐 것은, <ㅎ>소리와 <ㄱ> 소리가 서로 바뀌는 자음교체(子音交替) 법칙 때문이다. 예컨대, 한자(漢字) 韓․寒․汗․漢을, 우리는 <한>이라 읽지만, 일본에서는 <간>이라고 발음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에 일본열도에 건너가서 그곳을 오늘과 같이 살기 좋은 땅으로 개척한 가라족(韓族)이 일본 사람들의 조상이란 것은, 천황이 받들어 제사지내는 가라가미(韓神)로 입증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유전학적(遺傳學的) 연구로도 확인(確認)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사실을 인정(認定)하지 않으려는, 황국주의(皇國主義) 사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완고(頑固)한 일본 학자들이 많다. 그들은, 한일(韓日) 고대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현대사마저 날조하고 왜곡하기를 떡 먹듯이 하며, 일본말의 뿌리가 우리말이라는 사실조차 부정(否定)하고 있다. 그런 탓으로, 불쌍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죄 없는 일본 국민이다. 왜냐면, 저들의 국어사전이, 「일본말의 뿌리는 한국말이 아니다」는 것을 전제(前提)로 편찬돼 있기 때문에, 자라나는 일본 아이들은, 죄다 그릇된 지식을 주입(注入)받고 있는 딱한 실정에 놓였다.

그들 때문에, 애꿎은 일본 아이들이 얼마나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있는지, 저들이 현재 쓰고 있는 사전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일본말 사전에 실려 있는 오류(誤謬)의 예(例)

▲ 박병식 저서     ©브레이크뉴스
*우리말 <떠 나부끼다=떠서 나부낀다>. 일본말로는 이것을 <다나비구=たなびく>라 발음하고, 그 뜻을「구름이나 안개가 엷은 층(層)을 이루어, 옆으로 길게 끌리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저들의 말 <다나비구=たなびく>가 우리말 <떠 나부끼다=떠서 나부낀다>로부터 변화된 꼴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본말 사전의 주석(註釋)에는, 「<다=た>는 <나비구>에 부쳐진 접두어(接頭語)다」라고 돼 있다. 일본말에서 접두어(接頭語)라 함은, 「독립된 어휘로서는 아무 기능을 갖지 않는 것」이라 한다. <떠 나부끼다=떠서 나부낀다>라는 말에서, 가장 중요한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떠=浮>다. 그 <떠=浮>는, 모음 <ㅓ>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그것을 표기할 수단이 없는 일본 사람들이, 모음 <ㅏ>로 교체하고, 우리의 된소리 <떠>를 단순모음(單純母音) <다=た>로 표기해서, <다나비구=たなびく>로 적은 것은 이해(理解)할만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다=た>가 「아무 기능도 없는 접두어에 지나지 않다」라고 하니, 그러한 주석(註釋)은, 단순한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큰 오류(誤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말 <칠석(七夕)>. 칠석(七夕)은 일본말로 <다나바다=たなばた>라고 한다. 일본어 사전은 이 어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뜻이 있다고 주석(註釋)하고 있다. ①베틀(織機) ②베를 짜는 여성(織女) ③칠석(七夕)에 나타나는 직녀성(織女星) ④칠석 축제(祝祭) 「원래는<다나=たな(棚板)>를 부친 직기(織機)라는 뜻인데, 이렇게 전용(轉用)됐다」고 덧 부쳐 설명돼 있다. 칠석(七夕)은, 「견우직녀(牽牛織女)가 일 년에 한번 만난다는 전설이 담겨져 있는 칠월칠일(七月七日)의 저녁」이다. 그「칠월칠일(七月七日)의 저녁」을 뜻하는 일본말 <다나바다>가, 일본어 사전(辭典)에 「원래는<다나=たな(棚板)>를 부친 직기(織機)라는 뜻인데, 이렇게 전용 (轉用)됐다」고 설명돼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나라 초등학생들마저, 배꼽을 잡고 웃을 게 아닌가?
저들이 <다나>라고 발음한 것은, 원래 고구려(高句麗) 때에 씌어지던 수사(數詞) <나나=일곱(七)>이였는데, 자음 <ㄴ>와 <ㄷ>의 소리 바뀜 법칙(예: 鐵=가나→가다 地=나→다→따 누더기→두더기)에 따라서, 본래 소리<나나>가 <다나>로 바뀌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다나바다>의 <바다>는 원형(原形)이 <밤 때=저녁 때=夕>다. 바침이 없는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바침을 삭제해 버린다. 그리고 된소리와 모음 <ㅐ>를 표기할 수단이 없는 일본 사람들은, <때>를 <다>로 표기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본말 <다나바다>는 「七일 밤 때」즉 칠석(七夕)을 이르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말 <에미나><계집아이>를 뜻하는 사투리 <에미나>는, <어미=어머니>를 <에미>라고도 하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그 원래 꼴은 <어미나>다. 일본어로는 이것을 <오미나=おみな>라고 한다. 모음 <ㅓ>를 표기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ㅗ>로 대치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어 사전은, <오미나=おみな>의 뜻이 「나이 먹은 여자․노녀(老女)․노파(老婆)」라고 가르치고 있다. <계집아이(少女)>를 뜻하는 말이, 졸지에 노파(老婆)가 돼 버렸으니, 이게 될 말인가?

*우리말 <너> 상대(相對)를 부르는 이인칭(二人稱). 일본어 사전에는 이것이 <나=な>라고 돼 있다. 물론 모음 <ㅓ>를 표기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모음 <ㅏ>로 대치했음을 알 수 있다. 그건 알만하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 사전에 <나=な>는 일인칭(一人稱)이라고도 적혀있는 데 있다. 인간사회의 질서(秩序)는, 자기 스스로와 상대(相對)를 분간하는데서 비롯되는데, 이 세상 어느 곳에, 일인칭(一人稱)과 이인칭(二人稱)이 꼭 같다는 민족이 있겠는가? 참으로 어이없는 오류(誤謬)라 아니 할 수 없는데, 일본 학자들은 그런 모순된 표기가 사전(辭典)에 실려 있는 이유에 대하여 한마디 설명도 안 한다.

*우리말 <먼 곳>.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일컫는 낱말 <먼 곳>은, 원래 <멀은>과 <곳=장소>라는 두 낱말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멀은 곳>이 그 원형(原形)이다. 그 <멀은 곳>이, 오늘날 <먼 곳>이 된 이유는, <멀은 곳→머른 곳>으로 연음화(連音化)된 다음, <ㄹ>소리가 소실(消失)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ㄹ>소리는, <거닐다>가 <거니다>가 되고, <깔다>가 <까다>가 되는 예에서 보듯이, 자주 소실되는 습성이 있다. 그 <머른 곳>을, 일본말 고어(古語)로 <모로고시=もろこし>라고 한다. 일본어에서는 모음 <ㅓ>와 <ㅡ> 소리를 표기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두 모음을 각각 <ㅗ>로 대체(代替)해서 <모론 곳>으로 만든 다음, <모론>의 바침 <ㄴ>을 삭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곳>의 바침 <ㅅ>에는, 모음 <ㅣ>를 합쳐서, <시> 소리로 발음했기 때문에, 우리말 <머른 곳>이 일본말에서 <모로고시>로 발음되게 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말 사전에는, <모로고시>에 대해서 대략 다음 같은  참으로 엉뚱한 설명이 실려 있다. 「<모로고시>는 당(唐)나라를 뜻한다. <모로고시>의 <모로>는 전부․모두를 뜻하는 한자(漢字) <諸>의 훈독(訓讀)이고, <모로고시>의 <고시>는 넘다(越)를 뜻한다. 그 두 낱말이 결합해서 합성(合成)된 <모로고시>는, 백월(百越=많이 넘어가다)와 뜻이 같다. 그런 이유로, 일본으로부터 바다 멀리 넘어간 곳에 있는 당(唐)나라의 이름으로 쓰이게 된 게 아닐까?」 이러한 억지 논리(論理)가 지금도 당당하게 일본어 사전에 실려 있으니, 그런 것으로 수업(授業)받으며 자라나는 일본 아이들이 딱하기만 하다.

* 우리말 <어째?>. <어째?>를 만요-슈-(萬葉集)가 편찬된 8세기의 일본어로는 <아제=あぜ>라고 하며, 현대 일본어로는 <나제=なぜ>라 한다. 우리말 <어째>를 <아제>로 표기한 8세기 때의 일본 고어(古語) <아제=あぜ>는, <ㅓ> 모음을 <ㅏ> 소리로 대체한 동시에, 된소리 <ㅉ>와 모음 <ㅐ>로 구성된 <째>를, 자음 <ㅈ>와 모음 <ㅔ>로 합성한 <제>로 대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대 일본어 <나제=なぜ>는, 고어(古語) <아제=あぜ>가, <ㅇ>소리와 <ㄴ>소리가 교체되는 법칙(예: 쌀알→쌀낟 앙기다→안기다(抱) 옛(昔)→녯 옆→녑 옆구리→녑구리)에 따른 변화다. 그런데 일본어 사전에는 「고어(古語) <아제=あぜ>는 동국(東國) 지방의 사투리다」라고 풀이 돼 있다.

*우리말 <쌀(米)>.현대 일본 표준말로는 <쌀(米)>을 <고메=こめ>라고 하지만, <샤리>라고 도 한다. 된소리 <ㅆ>을 표기하는 수단이 없기 때문에 단순(單純) 자음 <ㅅ>으로 표기하고, 바침 <ㄹ>에는 모음 <ㅣ>를 결합시켜서 <사리>라고 했었는데, 연대(年代)가 내려오면서 모음교체를 일으켜서, <샤리>라고 발음하게 됐음을 알 수 있다. 초밥을 팔고 있는 일본식당에 가면, 그들이 쌀로 만든 밥을 <샤리>라고 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일본말 사전에는, 「<샤리>는 원래 범어(梵語)에서 온 말이며, 불타(佛陀)나 성자(聖者)의 화장(火葬)한 유골(遺骨)을 뜻한다. 일본에서는 그 빛과 모양이 쌀과 닮았기 때문에 <쌀>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라고 풀이한다. 이 얼마나 허무맹랑(虛無孟浪)한 소리냐!

이상(以上)에서 우리는, 변화된 우리말을 쓰고 있는 가라족(韓族)의 후예(後裔), 즉, 일본 사람들이, 일본어의 뿌리가 우리말이란 사실을 부정(否定)함으로써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가를 대충 살펴보았다. 그러면, 우리와 북쪽에서 접경(接境)하고 있는 중국(中國)사람들은, 가라족(韓族)에 대해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역사(歷史)를 왜곡(歪曲)하는 중국(中國)

요새, 중국 사람들이 「고구려는 한족(漢族)이 세운 나라다」라고 아주 맹랑한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은, 저들이 고구려(高句麗)라는 나라가 어떤 경유(經由)로 세워졌는지를 깨닫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더 앞으로 나가기에 앞서, 우선 임승국 씨가 펴낸(번역․주해)『한단고기(桓檀古記)』에서, 중국의 사학자(史學者)인 왕동령(王桐齡)이 저술한 『중국민족사』(4페-지)의 한 구절을 잠시 옮겨 소개하기로 하자.

「4000년 전(…중략…), 현재의 호북(湖北)․호남(湖南)․강서(江西) 등지는 이미 묘족(苗族)이 점령하고 있었고, 중국에 한족(漢族)이 들어오기 시작한 후에, 차츰 이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려(九麗)이며, 군주(君主)는 치우(蚩尤)다」여기서 <구려>라는 나라 이름은, 중국 고서(古書)에, <句麗)>․<九黎> 따위로도 표기돼 있다. 그리고 <치우(蚩尤)>는 단국(檀國) 시대에 치우대왕(蚩尤大王)이라고 불려 지던 용맹한 가라족(韓族)의 임금이므로, <구려>라는 국호는, <가라(韓)>에서 모음 교체된 형태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가 지적한 「호북(湖北)․호남(湖南)․강서(江西) 등지」라 하는 곳은, 대만(臺灣) 건너편에 위치한 복건성(福建省) 부근 일대(一帶)다. 따라서 왕동령이 기술(記述)한 내용으로 봐서, 지금으로부터 대략 4000년 전의 가라족(韓族)은, 중국 본토(本土)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강력한 민족(民族)이었음을 알 수 있다.

치우대왕(蚩尤大王)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 것은, 왕동령(王桐齡)의 『중국민족사』가 처음이 아니다. 전한(前漢. bc202년-ad8년)의 사마천(司馬遷)이 찬(撰)한 중국의 정사(正史)『사기(史記)』에도, 치우대왕(蚩尤大王)의 세력이 얼마나 막강(莫强)했는지가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제후(諸侯)가 다 와서 복종하여 따랐기 때문에, 치우(蚩尤)가 매우 난폭(亂暴)하였으나, 천하(天下)에 능히 이를 막을 자(者)가 없었다.」이러한『사기(史記)』의 서술(敍述)은, 왕동령(王桐齡)의『중국민족사』에 나오는 가라족(韓族)의 강력한 세력을 뒷받침하는 것이라 하겠다. 『사기(史記)』나『중국민족사』에 기술돼 있는 <구려(句麗)> 는, 앞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원형(原形)이 <하라→가라→구려=해의 자손이 사는 나라>이었다. 그들은 여러 부족으로 구성돼 있었으므로, 그들 전부를 통 털어서 구한(九桓)이라도 했고, 중국 『이십오사(二十五史)』에는 구이(九夷)라 적혀있다. 그 구한(九桓) 가운데 하나가, 나중에 <부여(夫餘)>라고 불려진 나라를 세웠다. 그 건국(建國) 시기(時期)가 언제였는지는 기록이 없으나, 아마도 진(秦. bc 221년-bc 207년)나라 보다 빨랐던 게 아닌가 싶다. 왜냐면, 진(秦)나라 때 사람인 복생(伏生)이, 그가 쓴 상서대전(尙書大傳)에서 말하기를, 「해동(海東)의 제이(諸夷)는 모두 부여(夫餘)에 속(屬)한다」라 했을 뿐 아니라, 중국문화대학(中國文科大學) 출판부가 발행한 중국역사지도의 진대통일지도(秦代統一地圖)에도 부여(夫餘)가 뚜렷이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그 부여(夫餘)는, 수도(首都)를 송화강(松花江) 유역(流域)에 세우고, 그 수도(首都)이름을 부여부(夫餘府)라 했다. 지금도 그 부여부(夫餘府)라는 지명이, 중국문화대학(中國文科大學) 출판부가 발행한 중국역사지도책의 51페-지, 오대도(五代圖)에 뚜렷이 남아 있다. <부여(夫餘)>라는 이름은, <하라=해의 자손이 사는 나라>에서 유래(由來)된 것인데, 그 소리 변화과정은 <하라→바라→부라→부려→부여>다. <ㅎ>소리가 <ㅂ>소리로 바뀐 것은, <하라=넓은 땅(原)>이 <바라>로 바뀐 다음, 모음교체를 일으켜서 현대어(現代語) <벌(原)>이 된 것과 같다. 우리의 옛말 <화라(弓. 활)>을 <바라>라고 도하며, <가잘하다=비유하다>를 <가비다>라고도 하는 것 역시, 그런 자음변화(子音變化)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 그 <바라>는, <바라→부라>를 거쳐 <부려>가 된 다음, <려>는 <여>로 소리바뀜 됐는데, <ㄹ>소리가 <ㅇ>소리로 바뀐 것은, 나라이름 <가라(加羅)>가 <가야(伽倻)>로 변하고, <달래다>를 고어로 <달애다>라고 한 것과 같은 자음변화다. 부여(夫餘)의 시조(始祖) 이름은 <해부루>라고 전해져 오며, 왕실(王室)의 성씨(姓氏)는 <해>라고 했다. <해부루>의 <해>가 태양을 뜻하는 <하>의 모음교체 꼴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해부루>의 <부루>는 <넓은 땅> 또는 <나라>를 의미하는 현대어(現代語) <벌(原)>(예: 서라벌=신라)의 옛 형태다. 이로서, 부여(夫餘)의 시조(始祖) 이름이라고 전해지는 <해부루>도, 우리의 최초의 국호인 <가라=태양의 땅․태양족이 사는 땅>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위지(魏志)』동이전(東夷傳)에 실려 있는 부여조(夫餘條)를 보면, 「부여는 장성이북(長城以北)에 있으며, …중략…남(南)쪽에는 고구려, 동(東)쪽에는 읍루(挹婁=肅愼), 서(西)쪽에는 선비(鮮卑), 북(北)쪽에는 약수(弱水)가 있다」고 했다. 이러한 부여의 위치는, 중국역사지도의 19페-지, 한대서역도(漢代西域圖)에서 확인된다. 이것으로, 부여라는 나라가 창건(創建)됐을 때엔, 그 남쪽에 고구려라는 나라가 이미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구려라는 이름은 도대체 무슨 뜻을 나타내는 것일까? 앞에서 여러 번 말 해 온 것처럼, 우리민족은 스스로를 태양신(太陽神)의 자손이라고 자부해 오는 탓으로, 그들이 정착(定着)한 땅(나라)를 <가라>라 했으며, 부여(夫餘)라는 이름도 거기에 유래 된 것임을 앞에서 확인(確認)한 바 있다. 그렇다면 <고구려>도 역시 그런 뜻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그렇다! <고구려>의 <구려>는, 우리의 첫 국호인 <가라>가 모음교체를 일으켜 변화된 형태로서, 중국 사서에 <구려=句麗․九黎․九麗>라고 표기돼 있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면 <고구려>의 <고>는 무슨 뜻일까? 그것은 한자(漢字) <고(高)>에서 빌려온 것이며,「종래의 <가라>보다 더 위대한 <가라>라」고 뽑내는 의미(意味)로, <높은 가라>, 즉 <대가라(大加羅)>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고가라(高加羅)>라고 했던 것인데, 연대가 내려오면서 차차 <고구려>로 바뀐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는, 현대의 우리가, <한국(韓國)>인 나라이름을, <대한(大韓)>이라 하고, britain(영국)이 great britain(대영국)이라 하는 심리(心理)와 같은 현상이다. 그런 기백(氣魄)에 넘치는 나라였던 고구려의 건국이념(建國理念)은, 중국에 빼앗긴 조선(朝鮮)의 옛 강역(彊域)을 도로 회복(回復)하자는 것이어서, 고구려 말로 <다물(多勿)>은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실려 있기도 한다. 이상에서 밝힌 바와 같이, <구려(句麗)>나 <고구려(高句麗)>라는 이름이,  모두 우리민족의 첫 국호인 <가라=태양족의 나라>에 유래된다는 게 확실한데, 어찌 중국 사람들이「고구려는 한족(漢族)이 세운 나라다」라고 우겨댈 수 있겠는가!

★가라. 검은 빛을 뜻하는 형용사(形容詞). 만주의 북부지역을 흐르는 대하(大河)를 흑룡강(黑龍江)이라고 한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그 지역 전체는  <가라족(韓族)>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그 지역을 흐르는 강물 이름을 왜 흑룡강(黑龍江)이라고 했을까가 궁금하다.예컨대, 부여(夫餘)가 자리 잡았던 지역을 흐르는 송화강(松花江)의 이름은 「가라족(韓族)의 물(江)」이란 뜻에서 부쳐진 이름이다. 왜냐면, 그 이름은, 지금도 여진어(女眞語)에 남아있는 우리 민족의 이름 <솔궈>에 유래되기 때문이다. 즉 <솔궈>의 <솔>을, 소나무를 뜻하는 한자(漢字)인 <松>으로 표기하고, <솔궈>의 <궈>소리가 꽃(花)과 흡사(恰似)하므로, 한자(漢字) <花>를 써서 표기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요(遼) 나라가 위치했던 지역을 흐르는 강물은, 요하(遼河)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것을 볼 때,  흑룡강(黑龍江)이라는 이름도 역시, 가라족(韓族)의 물(江)」이란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보면, 흑룡강(黑龍江)의 <黑>은, 우리의 고어(古語)로 <가라>라 하지 않던가? 다시 말하자면, <가라=黑>라는 우리의 고어(古語)는, <가라족(韓族)>의 <가라>와 꼭 같은 소리임을 알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용(龍)>은 우리말로 <미르>라고 하는데, 그 원형(原形)은 <마라=신성한 것>이었으며, <마라>→<무르>→<미르>와 같은 모음교체를 거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물(水)의 원형도 <마라=신성한 것>이었던 게, <마라>→<무르>→<무르>→<물>의 모음교체를 거친 것이다. 즉 흑룡강(黑龍江)의 <黑龍>은, 우리말 <가라마라=黑水>가 <가라마라=黑龍>와 꼭 같은 소리이기 때문에 오기(誤記)된 것임을 추정(推定)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어원을 캐 보면, 한자(漢字)로 흑룡강(黑龍江)이라 표기돼 있는 이름은, 원래 <가라마라=가라의 물(江)>이라고 불리던 것인데, <마라=물>과 <마라=龍>가 같은 소리였던 탓으로 흑룡(黑龍)이 되었고, 원래의 뜻을 모르게 된 후세(後世) 사람들이, 거기에 다시 강(江)을 덧 부쳤기 때문에 흑룡강(黑龍江)이라는 새 이름이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중국사서(史書)에 남아있는 <九麗>․<句麗)>․<九黎>라는 나라이름은, 바로 고구려(高句麗)의 전신(前身)을 나타내는 것임이 너무도 분명한데, 어찌 고구려(高句麗)를 한족(漢族)이 세운 나라라고 우길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일본 유전학자(遺傳學者)들이 밝혀낸 바와 같이, 옛 고구려 영역에 살고 있는 조선족과,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의 dna는 동일(同一)하지만, 한족(漢族)의 dna는 조선족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중국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필자/강동민 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은 가라민족문화연구원(韓民族文化硏究院) 학술고문이자 교수였던 고 박병식 선생의 유고집인 '어원으로 밝히는 우리상고사' '일본 탄생' '소리바꿈 법칙'을 발간(용인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발간)하는데 기여했다. 이 글은 박병식 선생의 글을 후학인 강동민 이사장이 보완해서 정리한 것임을 밝힌다. 주요 내용은 전적으로 박병식 선생의 저술에 담겨진 내용임을 거듭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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