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온 통일교 일본여성 7천명 납치공포”

주한 日대사관에 탄원 '1966년 첫 납치사건 후 4,300명 피해'

문일석 기자 | 기사입력 2010/03/23 [11:32]
통일교회의 국제합동결혼식을 통해 한국으로 시집와서 살고 있는 일본여성들의 숫자는 7천여명에 달한다. 이들 일본여성들 가운데 모국인 일본에서 납치감금 당하는 사건이 빈발, 일본의 신종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 통일교인 납치감금으로 인한 한국 인권피해자 대책위원회'의 대표 일본부인 50여명은 3월 23일 오후 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납치감금에 대한 공포로 인해 일본을 가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을 해결해 달라는 탄원서를 주한 일본대사관에 제출했다.
 
'일본 통일교인 납치감금으로 인한 한국 인권피해자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일본의 일부 기독교 목사와 사업적 성향의 변호사, 좌익 강제 개종업자들이 주도하여 통일교 신자를 대상으로 한 납치감금 등과 관련된 사건의 피해자는 1966년 첫 납치사건이 발생한 이래 4,300여 명에 이른다는 것.
 
'일본 통일교인 납치감금으로 인한 한국 인권피해자 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최악의 납치감금사건은 고토 토오루씨 사건. 대책위 관계자는 "감금됐다가 탈출했던 고토 토오루씨는 신장이 182cm였다. 그는  탈출 당시 39kg이었다. 죽기 직전이었다. 그는 12년 5개월 동안이나 납치감금 되었다. 그는 2008년 탈출하여 병원에 입원했다. 건장하던 체중이 초등학교 5학년 학생 몸무게인 39k밖에 나가지 않았다. 감옥 같은 방안에서 날마다 매를 맞고, 욕을 먹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생활은 생지옥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납치감금으로 인한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납치 피해자 고토 토오루씨.  ©브레이크뉴스
대책위 관계자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다 일본 친정에 들린 사이 납치감금 되어 결국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27세 일본부인도 있으며, 어떤 임산부는 감금 장소에서 '통일교 신앙을 포기하면 태아를 낙태시켜 주겠다'라는 공포감을 겪어 10년이나 지난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감금된 아파트 6층에서 뛰어내려 기억을 상실한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종교를 개종해 달라고 요청한 부모가 개종 전문업자에 의해 자신의 딸이 강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한 부모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강렬한 공포를 수반한 체험 뒤에 일어나는 정신적인 혼란상태)나 우울증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런 불법적이고 비도덕적 행위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고 덧붙였다.
 
'재한일본인남치감금피해자회(대표=田中志佳子 외 323명)'는 재 대한민국 일본대사 앞으로 제출한 호소문에서 “저희들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일본인으로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고 있는 통일교회의 신자들이다. 현재 한국 땅에서 한국인 남편과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는 일본부인의 수는 약 7천명 있다.”면서 “저희 가운데는 시부모를 잘 모시고 모범적으로 훌륭한 며느리이자 가정인이라는 것으로 지역 자치단체로부터 자랑스러운 '효부상'을 수상한 사람이 100명 이상에 이른다. 각종 사회단체나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tv나 신문 등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저희들은 그 때마다 저희의 새로운 조국인 한국의 사회에 헌신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조국일본의 진실한 모습을 이해하게 되는 것과 일한우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느껴 오늘까지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들은 지금까지 저희가 일본에서 신앙 때문에 받아온 부당한 박해,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피해의 실정을 알려 드리고 저희의 인권을 보호해 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탄원서를 준비했다.”고 피력했다.
 
'일본 통일교인 납치감금으로 인한 한국 인권피해자 대책위원회(위원장=에리카와 야스에)'는 “납치감금에 의한 강제개종을 없애기 위한” 내용을 담은 탄원서에서 “통일교의 신자로서 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일본인 여성 약 7천명이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저희들은 금번 일본에 있어 통일교회 신자인 고토 토오루 씨가 신앙을 버리게 할 것을 목적으로 12년5개월에 걸쳐 납치감금 된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 납치감금이란 통일교회에 반대하는 기독교 목사들, 탈회를 청부맡는 개종장사꾼들, 변호사, 부모, 형제 등을 동원해 '자녀를 보호한다' '대화한다' 등을 구실로 신자를 강제로 납치, 강제나 탈회를 표명할 때까지 장기간에 걸쳐 감금하는 것이다. 감금 현장을 고층 아파트의 한 방을 사용해 모든 출입구를 잠그고 외출할 것을 일체 허락하지 않는 채 짧게는 수주간, 장기의 경우는 수개월 수년에 이르고 있다. 문명국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역겨운 납치감금사건이 일본의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 시집온 일본인 가운에 몇 명이나 납치감금의 피해자가 된 것이 있으며 앞으로 새로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어 일본으로 고향방문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에 있다.“고 호소했다.

'일본 통일교인 납치감금으로 인한 한국 인권피해자 대책위원회'는 그 사례도 첨부했다. 이 회원들은 탄원서를 통해 “1997년7월, 한국에 시집온 藤田孝子(후지타 타카코)씨는 불교법사 때문에 한국에서 에히메현으로 귀국했을 때에 납치당해, 교토에서 감금당하고 있는 과정에서 막다른 데까지 몰려 자살한 비참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에 남겨진 남편의 슬픔은 어땠을까? 그런데 경찰은 이것을 감금사건으로 수색하지 않아 그를 죽음으로 몰아낸 이들이 체포되거나 기소되는 일이 없었다.”고 공개했다. 그뿐 아니라 “그 외에도 한국에 시집와 이미 가정생활을 하던 일본부인이 고향방문 했을 때에 납치감금을 당해 그 결과로 이혼을 할 수 밖에 없게 된 경우가 파악된 것만 해도 3건은 발생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이미 임신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출산을 위해 일본 고향방문 조차도 못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2002년 11월 12일 한국에 시집온 元木恵美子 (모토키 에미코)씨는 남편 김두식씨와 함께 고향을 방문했는데 13일 새벽 밤중에 두 사람은 모토키 부인의 가족에게 습격 당한 뒤 남편은 아키타현에 있는 츠치자키 성서 기독교교회에 감금된 상태에서 통일교회를 탈퇴하라는 말을 마츠야마 히로시 목사로부터 들었다. 이 때 남편 김두식씨는 센다이시에 있는 한국 영사관에 도움을 구해 도쿄에 있는 한국대사관도 움직인 결과 야마가타 경찰서가 출동해 11월25일에 경찰관 등이 모토키 부인을 석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문제는 한국측에서 본다면 한국인 남편이 납치당하고 그 가정이 파괴된다는 중대한 사건이다. 일본정부가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할 경우 일한간의 중대한 국제문제가 될 것은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하라 사유리씨는 재 대한민국 일본대사에게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 “1989년 4월 1일 통일교회에 입교하여 오타교회에 소속. 전도활동 등에 종사했다. 첫번째 1992년 6월부터 7월까지 한달 동안, 두번째는 1992년 11월 25일부터 1993년 6월 24일까지 7개월 동안 총 242일간 감금됐다”고 밝혔다. 그는 첫번째 납치감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1992년 6월 초, 두 명의 탈회자가 부모님을 방문하여 '사유리 씨를 탈회시키는데 협력해 주었으면 한다'고 장시간 어머니를 설득했다. 어머니는 쿠로토리 사카에 목사를 만나러 가 야마나시현의 일본 기독교단 타니무라 교회의 카와사키 쿄코 목사를 소개받았다. 1992년 6월 24일, 저는 야마나시에 본가에 돌아갔을 때, 외식 후 귀가할 즈음, 차의 뒷좌석에 앉혀졌다. 아버지가 운전하고, 조수석에는 오빠, 뒷좌석 오른쪽에 어머니가 앉았다. 부모는 '지금부터 이야기하고 싶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집에서 이야기를 하면 되잖아요' 하니, '집은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대로 야마나시현 후지요시다에 있는 '비지니스용 호텔 요시다'로 데리고가 307호실에 감금되었다. 요시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의 두번째 여동생 부부인 사카라 히로, 스미코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고 아버지가 오른 팔, 사카라 고모부가 왼팔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부모는 번갈아가며 하루에 몇 번이나 목사와 연락하여 그 지시를 서로 전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의 대화로 알게 되었다. 카와사키 쿄코 목사로부터 이곳에서 4일간, 모두 10시간 남짓, 통일교회 탈회를 강요당했다. 여기는 욕실과 화장실이 같이 있고, 창은 없으며, 방의 창은 한 곳밖에 없으며, 창은 조금밖에 열리지 않게 되어 있어 창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부모는 늘 계셨고, 삼촌과 외삼촌 부부를 합해 10명이 교대로 감시하여, 언제나 다섯 명 정도 있었고, 누군가 도어 근처에서 지키고 있었다. 도중에 다른 호텔로 옮겨졌지만, 1992년 7월 23일 밤, 부모가 자고 있는 틈을 타 그 호텔을 벗어나 도망쳤다.“
 
그가 밝힌 두번째 납치상황은 다음과 같다.
 

“1992년 11월 25일 오전 6시, 새벽 기도회에 가던 중, 갑자기 몇 사람의 남성이 나타나 저를 감싸않아 웨건차에 밀어 넣으려 했다. 함께 있던 친구 이시다 카에코 씨는 두세 명의 낯선 남성에게 지면에 억눌려 꼼짝 못하게 되었다. 저는 '도와줘요'라고 큰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다. 상가의 사람들이 뭔가 하며 창을 열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낯선 남성들이 '아, 미안합니다. 가출한 아이를 데리고 갑니다'라고 하고는 그대로 어디론가 가 버렸다. 웨건차에 저를 강제로 밀어 넣은 것은 저의 부친과 오빠였다. 차창은 열림 방지 장식이 붙어 있었고, 아버지는 저의 팔을 잡고 뒷좌석에는 어머니와 오빠가 있었으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낯선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고 외치며 저항했지만, 강제로 웨건차에서 끌려 내려졌다. 나는 내릴 때 운전기사와 조수석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에게 이름을 물었다. 운전기사는 '무라마츠입니다', 여성은 '나카타 노부코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무라마츠입니다'라고 대답한 남성은 쿠로토리 목사의 남편 쿠로토리 요시오미씨이다. '무라마츠'라고 가명을 사용한 것은 이 납치-감금 사실이 밝혀지면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들은 바로는 쿠로토리 요시오미씨는 모 고등학교의 영어교사라고 한다. 납치-감금에 교육자라는 사람이 도와주었다면,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하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일본 통일교인 납치감금으로 인한 한국 인권피해자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전세계 120여 개국에서 일본 통일교인 납치감금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자유의 상징 미국에서는 월터 폰트로이 목사(전 워싱턴 하원의원)를 중심으로 일본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moonilsu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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