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노변정담] 신민주연합론의 정치사적 함의
남북과 동서를 넘어 개혁과 통합으로

서영석 | 기사입력 2002/05/03 [02:41]
이제야 비로소 우리도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지도자상을 논의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런 느낌이다. 군사독재정권의 오랜 시절동안 양김씨만이 이에 대항해 투쟁해온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국민들은 지난 87년 이후 오로지 김영삼이냐, 김대중이냐 양자택일의 막다른 상황 속에서 고민했어야만 했다. 어떠한 지도자가 진정 대한민국을 웅비시킬 수 있는 지도자인가, 그 요건을 곰곰히 따져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뭐 이런 얘기 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선택의 강요 밑바탕에는 80년 광주항쟁 이후 심화일로를 걸어온 지역주의가 도사리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정신의 등장

양김씨의 퇴장은 말하자면, 우리도 진지하게 지도자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계기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정신이란 과연 뭔가.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화합이요 통합이며, 해방 이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친일잔재의 청산을 통한 상해 임정의 복원이다. 그것은 또한 이분법적인 대립구도를 기반으로 한 냉전적 개념의 청산이요,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정권의 진정한 정통성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정신의 지향점은 궁극적으로 개혁의 완성이다. 개혁의 완성이야말로 21세기 초반 우리의 목표인 통일과 이를 통한 국운의 일대상승의 전제조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시대정신의 근저에는 어느새 바뀌어버린 정치토양과 이들의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다.

{image2_left}김대중 정부의 남북화해정책도 결국에는 이같은 탈냉전 화합의 코드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 본인에게는 노벨평화상을 안긴 남북화해정책이 정권말기에 이르러 삐걱대고 있는 것은 물론 북한 내부의 갈등과 이로 인한 혼선이 근본원인이겠지만, 우리 내부의 동서대립도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부인키 어려운 현실이다. 아군 피해없이 북한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남북화해정책이야말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통수였지만 우리 내부의 지역주의와 대립, 반목은 이같은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도록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었다.

신민주연합론의 키워드는 개혁과 통합

자 그렇다면 이제 양김씨의 퇴장이란 사태를 맞이해 유권자인 국민들은 본격적으로 시대정신에 맞는 지도자상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이같은 고민의 결과가 투표장에서 발현되는 그런 시점을 맞이하지 않을 수 없게 돼버렸다.

노무현씨는 이런 시대정신의 요구를 투철하게 이해하는 노련한 정치인이라고 필자는 해석한다. 그가 투박하고 덜 세련돼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기실 노무현씨야말로 바뀐 정치 패러다임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무서운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하고 있다, 뭐 그런 얘기다. 노무현씨의 정치적 적수들은 이런 측면까지 이해해야만 노무현 돌풍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며, 그래야만 이같은 원인분석을 토대로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지금처럼 아무런 탐구와 고민도 없이 수구적인 흠집내기 네거티브적 공세로 일관한다면, 그리하여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쪽으로 간다면, 그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굳이 필자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image1_right}노무현씨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민주연합론을 주창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대정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지도자상에 자신을 맞추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신민주연합론이란 얘기다. 그것은 자신의 정통성이 과연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국민들에게 제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일단의 예비지도자가 자신의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은 그렇게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군사독재정권이란 한계 속에서 이순신장군을 추앙하는 작업을 계속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만 정치사적 함의를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비근한 예로 지금 서구철학계는 물론 인문사회학이나 정치학, 심지어는 예술계까지 풍미하고 있는 철학자 질 들뢰즈를 들 수 있다. 그는 헤겔 이후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던 서구 철학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플라톤을 부정하고 스토아학파에서 새로운 정통을 확립하는데서부터 시작했다. 2천년 서양철학사가 모두 플라톤에 대한 각주(脚註)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정통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기존의 정통을 부인하는데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들뢰즈는 이어 데카르트를 부정하면서 스피노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대안을 찾았고, 헤겔에 대한 극복은 니체와 베르그송에서 찾았다. 플라톤-데카르트-헤겔로 이어지는 서구 정통철학의 계보를 들뢰즈는 스토아학파-스피노자-니체로 대체함으로써, 새로운 정통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것은 또한 현대 지식인들의 플라톤 이래의 관념론에 대한 충족시킬 수 없는 결핍감이 근본적인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들뢰즈식 방법론은 노무현씨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필자가 요즘 들뢰즈에 대해 들은 풍월이 있어 예를 든 것일뿐, 다른 예를 들어도 상관없다. 핵심은 정통성 확립을 위한 방법론적인 문제다.

남북과 동서를 넘어 개혁과 통합으로

노무현씨에게 상해임정의 복원은 반세기 이상 흐른 시점에서 도저히 이룩될 수 없는 현실적 친일잔재 숙청에 대한 이념적 대안이란 의미가 있으며, 신민주연합론은 이러한 정통성 복원을 위한 징검다리로써, 또한 현실적 대안으로써 도구란 의미가 있다고 필자는 분석한다. 노무현씨가 존경하는 인물로 백범 김구선생을 들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노무현씨에게 통합이란 코드는 또한 그동안 한국사회를 풍미했던 이분법적 냉전 코드에 대한 대안이다. 탈냉전은 우리에게 남북대립의 해소란 의미 이외에도, 당면한 과제인 동서 대립의 해결이란 의미도 들어 있다. 정통성 복원과 통합이란 코드는 궁극적으로 바뀐 정치토양과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이 요구하는 개혁이란 시대정신의 또다른 표현이자 방법론이라고 필자는 분석한다. 물론 여기에는 수구기득권층의 정치행태가 지속되는데 대한 충족시킬 수 없는 결핍감이 근본적인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무현씨가 왜 신민주연합론에 집착하는가. 그 이유를 궁구한 결과, 필자는 이같은 답을 얻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노무현씨는 진짜 재평가될 필요가 있는 무서운(?) 정치인이란 점을 최근 들어 절감하고 있다...

* 사진출처 : 한겨레신문
* 이 글은 필자의 사견(私見)이오니, 이점 양지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본문은 서영석기자의 노변정담(爐邊情談)에서 제공하였습니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