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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의 미래
미디어에 가려진 쿠데타의 진실

조약골(편집위원) | 기사입력 2002/05/03 [02:16]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우고 차베스를 몰아내려는 지난 4월 12일의 우익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고 차베스는 이틀 후 다시 권좌에 복귀했다. 차베스는 국영석유회사가 주도한 노조의  총파업과 시위 군중에 대한 발포 명령을 내려 최소 17명을 살육한 책임자이며,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하던 tv 방송사에 대해 폐쇄 명령을 내린 독재자이기도 했다. 차베스는 군부의 강요와 기업가들의 압력으로 결국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는 듯 보였으나 그를 지지하는 많은 민중들과 압도적인 빈민층이 있었기에 다시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물론 그가 권좌에 복귀했음에도 아직 내분의 상황은 계속되고 있어, 사태가 어떻게 변할지 확언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노조 지도자들은 내전의 위험을 경고하기도 했다.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는 남아메리카의 후진국에서 최고 권력의 자리를 놓고 서로 다른 세력이 대립하며 일어난 정치적 사태이므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별로 많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베네수엘라의 앞으로의 행보를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이유는 이 남미의 석유 수출국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해 강경한 민중주의적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왔기 때문이다. 이번 기업가들과 군인들 그리고 중상류층이 중심이 된 쿠데타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고 대통령 차베스가 카리브 해의 조그만 섬에 유배되었다는 소식이 나와있을 때, 이를 두고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우익 성향의 분석가들은 ‘민중주의 정책이 역풍을 맞고 좌초한 것’이라면서 환호를 했다.


2002년 4월 13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대통령궁 앞에
우고 차베스를 지지하는 시위자들이 모여있다.
차베스는 쿠데타로 대통령직을 박탈당한 상태였으며,
항공편을 통해 쿠바로 가게 될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대다수 민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차베스는 결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임시대통령 자리에 오른 상공인기업가연합회장 카르모나에 불만을 품은 민중들의 차베스 지지 시위와 쿠데타를 일으킨 우파 독재자들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면서 차베스는 다시 대통령궁으로 극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쿠데타 기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연일 언론에서는 미국의 쿠데타 개입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차베스의 강경한 반미 조치들이 미국의 비위를 심각하게 건드리면서 실제로 미국에서는 차베스를 축출시키기 위해 갖은 공작과 술책을 지원하거나 실행했다는 것이다. 차베스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지적한 나라들과 가까이 지내고, 특히 쿠바에게 대량의 석유를 지원하는가 하면 콜롬비아의 반군 소탕 작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되버린 것이다.

실제로 베네수엘라의 쿠데타 실패는 미국의 대리전 성격을 띠었다. 즉 차베스를 밀어내고 이틀간 임시대통령이 된 카르모나는 미국이 가장 좋아할 만한 조치를 가장 먼저 발표한다. 쿠바에 대한 석유 수출 금지와 콜롬비아 반군 진압 전면적 지원 등이 그것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정권을 세우면서 미국의 신임을 얻으려고 미국의 대외정책에 꼭 들어맞는 조치들을 취하며 미국에 아첨한 것에 다름아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쿠데타를 실제로 지지했는지 아니면 묵인했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라크에 대한 내부 쿠데타 가능성이 없자, 즉 다른 말로 하면 cia 중심의 공작을 통해서는 사담 후세인을 밀어낼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오면 가차없이 직접적 군사공격을 결정하는 미국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쿠데타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면, 즉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단결력이 강했다면 미국은 아마도 결국 전쟁을 일으켜 그 단결을 파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9월 11일 테러 이후 미국은 전세계 각국에 대해 테러에 대한 입장표명을 강요하며 줄세우기를 시켰다. 정치적으로는 이 유일 초강대국 중심의 명령에 반발해 독립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에 반대하는 것이 ‘좌파 정권’이라면 기본적으로 갖는 두 가지 조건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대중 정권보다는 차베스 정권이 보다 좌파 정권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외신을 통해 읽을 수 있는 베네수엘라의 좌파 정권에 대한 평가는 보통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일부 군부-재벌-중산층에 의한 차베스 반대와 민중주의를 지지하는 다수 서민과 민중의 차베스 지지로 이분된다.

이런 단순한 이분법에 대해 쿠데타 발발 이후 베네수엘라의 한 아나키스트 그룹이 밝힌 성명서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 이들이 밝힌 성명서 원문은 아나키스트 뉴스 서비스 사이트 a-infos에서 읽어볼 수 있다. 이들 아나키스트 그룹에 의하면 차베스 정권은 시위자들에 대해 무차별적인 발포를 한 폭력적 정권으로 볼 수 있다. 즉 국영석유회사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일으킨 것은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과 차베스에 의한 자의적인 임원 선정에 반대하기 위해 벌인 것으로서 지극히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권은 이에 대해 지지자들을 끌어들여 총파업 반대 관제 데모를 벌이고, 인위적인 혼란을 초래해 자신의 반대자들을 무력으로 쏴죽였으며 이는 옛소련에서 권력을 독차지했던 볼세비키의 전제적인 권위와도 비교해볼 수 있다.

http://jabo.co.kr/zboard/

2002년 4월 13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쿠데타로 쫒겨나자 차베스를 지지하는 시위대들이 수도 카라카스의 길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한 군인이 시위대를 향해 지지의 손을 들어올리는 모습


차베스의 여러 개혁적 조치로 자신의 권력 유지에 불안감을 느낀 중산층 역시 일부와 군부와 짜고 ‘권력 탈취’라는 폭력적이고 구태의연한 방식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는 측면에서 희망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가진자들의 권력 투쟁에서 무고한 민중들이 목숨을 잃어야 하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비극인가.

이에 아나키스트들은 문제가 현 정권에 있으니 이것을 다른 정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문제는 차베스 대통령을 제거하고 다른 대통령을 내세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수직적인 위계질서로 이뤄진 대의제 민주주의에 있기 때문에 보다 수평적인 즉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으로 성취되는 사안이 아니라 우리가 지속적으로 노력해 이뤄가는 대안적 과정이다.

이번 베네수엘라의 쿠데타에 대해 조중동을 필두로한 한국 언론에서는 차베스의 실각과 이후 임시로 집권한 쿠데타 세력(자본가들과 군부, 그리고 중산층이 중심이 된)에 대해 환영한다는 보수적인 시각으로 다루었고, 이는 사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즉 베네수엘라를 다룬 사진들이 주로 차베스를 반대하는 시위들의 사진이었고, 이렇게 볼 때 마치 독재자 차베스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민중들의 적극적인 시위에 의해 물러났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가까이서 목격한 사람들에 따르면 차베스를 지지하는 시위대의 숫자가 차베스를 반대하는 시위대의 숫자에 맞먹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시위 장면을 찍은 사진들이 모두 차베스에 반대하는 시위 사진으로 악용된 측면이 많다.

본문에 소개된 사진들은 주로 차베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시위 장면으로서 한국 언론을 통해서는 소개되지 않은 것들이다.

* 사진은 로이터 통신(reuters)의 daniel aguilar의 작품임
* 필자는 한국 아나키스트 네트워크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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