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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지진’으로 뒤흔들린 프랑스
프랑스 대선, 우파와 극우파의 대결로

양인숙 | 기사입력 2002/04/23 [13:17]
{image1_left}좌우의 대결은 프랑스 정치계의 전통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프랑스인들은 당연히 우파의 시락과 좌파의 죠스팽의 이파전을 예상하고 있었다. 1차 투표가 끝난 4월 21일 저녁, 방송을 통해 표집계가 보도되기 시작하자 프랑스인들은 갑작스런 ‘지진’을 만난듯 경악하기 시작했다. 울음과 분노와 프랑스 민주주의에 대한 한탄, 그리고 기존 정치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극우파인 ‘민족전선(fn)’의 르펜이 사회당의 죠스팽을 누르고 공화주의연합의 시락에 이어 2위를 차지함으로써,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극우파에서 대통령 후보가 대선 2차전에 당당하게 등장하게 된 것이다.

예기치 못한 르펜의 출현에 대해 시락 지지자들도 ‘프랑스의 치욕’이라 표명하며 ‘2차 투표에서 르펜을 납작하게 만들어주자’, ‘2차전은 이미 시락이 이긴거나 다름이 없는데 토론이 없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이러다가 좌파와 연합하게 되는 건 아니냐’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정치인들 또한 우파와 좌파를 막론하고 죠스팽을 누른 르펜의 급상승을 보며 프랑스의 위기라고 진단하였고 28.40%라는 기권표에 프랑스인들의 심한 정치불신을 실감하였다. 최종집계를 보면 시락이 19.88%를 얻어 1위를, 르펜이 16.86%로 2위를, 죠스팽이 16.18%로 3위를 차지함으로써 시락과 죠스팽의 이파전이라는 예상을 층격적으로 뒤엎고, 시락과 르펜이 5월 5일, 대통령 자리를 놓고 대결하게 된다.

순위
후보자
득표수(%)
소속
정치적 성향 (프랑스 기준)
1 쟈크 시락19.88공화주의연합
2쟝 마리 르펜16.86민족전선극우
3리오넬 죠스팽16.18사회당
4프랑소와 바이루6.84프랑스 민주주의 연합중도(우)
5아를렛트 라기예5.72노동자 투쟁극좌 (트로츠키)
6쟝 피에르 슈벤느망5.33시민권을 위한 (운동)단체중도(좌)
7노엘 마메르5.25녹색당
8올리비에 브쟝스노4.25혁명적 공산주의 연맹극좌 (트로츠키)
9쟝 생 죠스4.23사냥, 낚시, 자연, 전통
10알랭 마들랭3.91자유민주주의우(신자유주의 옹호)
11로베르 위3.37공산당극좌
12브뤼노 메그레2.34공화주의적 민족운동 단체극우
13크리스티안 토비라2.32급진적좌파당극좌+여성+흑인
14코린 르파즈1.8821세기를 향한 시민권,행동,참여우+여성+환경주의
15크리스틴 부탱1.19사회공화주의포럼우+여성+카톨릭
+전통적 가족주의 옹호
16다니엘 글뤽스테인0.47노동자당극좌+반유럽경제공동체

(무효표 3.37%)

프랑스인들 자체가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아끼는 이 프랑스에서, 극우파의 강력한 등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선거전으로 본다면 시락이 선택한 ‘사회안전’ 문제를 통한 르펜 끌어들이기와 죠스팽 죽이기가 성공한 것이다라고 보고 있다. 대선기간 동안, 프랑스인들의 생활을 위협하는 ‘사회안전’ 문제는 커다란 이슈였다. 르펜은 9.11 뉴욕 테러에 힘을 얻어 아랍출신들이 다수인 가난하고 소외된 외국인과 이민자들이 사회안전을 위협하는 주범이며 이들을 몰아내야한다라고 상냥하고 온화하게 성토하고 있었다. 시락은 이 문제를 크게 다루며 프랑스인들에게  불안을 느끼게 하는 한편, 시락 자신과 비슷한 정책을 내세우고 있던 죠스팽에게 반응하게 했던 것이다. 서로 비슷한 정책을 놓고 그것이 유일한 정책인 것처럼 다투는 꼴에 넌덜머리가 난 프랑스인들은 자신이 극우파가 아님에도 그 불안한 사회안전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르펜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보도자료를 보면 사회안전 문제가 없는 소도시나 시골지역에서 조차 이 사회안전문제에 매우 예민해 있었고, 공산당과 같은 정치그룹을 과거에 지지했던 유권자들도 이 문제에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공산당의 로베르 위를 떠나 모순되게 극우파인 르펜을 지지했다라는 것이다.

28.40%의 기권률이라는 저조한 투표율 또한 죠스팽을 패배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다. 1차 투표일은 바캉스 기간이기도 했지만, 분석자료를 보면 노동자들의 투표 참여율은 높은 반면, 죠스팽의 잠재적 지지자들이라고 할 만한 지식인 계층의 3분의 1만이 투표에 참여했고 젊은 계층, 특히 이민자 젊은이들의 투표참여율이 매주 저조했다. 중상층과 젊은 세대들에게 좀 더 폭넓은 문을 열었던 죠스팽의 선거전략은 그들에게서 조차도 호응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image2_right}죠스팽의 패배에 대해 르 몽드지는 ‘좌파의 삼중의 실패’라는 제목으로 분석기사를 내놓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번 선거에서 좌파들이(쟝 피에르 슈벤느망을 포함하여) 얻은 유효투표 총계는 1995년과 비교해 3 포인트나 높은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좌파정부에 대한 압력을 희구하던 극우파에게 대통령이 될 자신의 기회를 내줌으로써 극우파에게 패한 것이다라는 게 그 첫번째 실패다. 두번째 실패로 들고 있는 것은, 좌파연합 조정의 문제이다.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급진적 좌파당이 연합했지만 1997년 국회의원 선거의 39%에 비해 이번 선거에선 27%의 지지율을 확보함으로써 12% 하락했다라는 것이다.  특히, 공산당의 로베르 위는 3.37% 라는 대통령 선거사상 최저의 지지율을 보유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좌파연합의 조정자이자 사회당의 리더였던 죠스팽의 개인적 실패를 들고 있다. 대선 사상 최저의 사회당 득표율로 1차 투표에서 탈락함으로써 죠스팽 개인의 정치적 생명뿐 아니라 사회당 자체에도 치명타를 입히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그의 실패는 그의 임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치적 입장과도 관련이 되는 것으로,  ‘실질적인 좌파’들에게 ‘사회주의적이지 않아’ 보이는 그의 정책들로 인해 출혈을 멈추지 못했다라고 평하고 죠스팽의 정치계 은퇴선언을 전하고 있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는 '좌/우'라는 정치적 이분법에서 서서히 벗어나 정책에 대한 토론없는 미국식 ‘인물 중심’의 대통령 선거가 되고 있다라는 우려와 반면에 그 배후엔 ‘차가운 괴물’이 아닌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대통령에 대한 열망이 있다라는 긍정적 시각들이 교차했었다. 각 후보자들은 전례없이 가족까지 동반하여 사생활을 공개하였고, 웃음과 눈물이라는 감정까지 보여주며 선거전을 벌였다. 1차 선거가 끝난 현재, 프랑스는 누구의 ‘인물’ 만들기가 성공적이었는가를 따지기 보다는, 당장 안티르펜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프랑스인들에게 르펜의 등장은 프랑스의 치욕이자 민주주의를 흔드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선거전에서부터 죠스팽을 지지하지 않겠다던 아를레트 라기예는 지금도 실패의 원인은 죠스팽에게 있다라며 2차 투표에서 그 누구를 지지하라는 호소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녹색당, 공산당을 포함한 다수의 좌파정치그룹들은 르펜을 막기 위해 시락을 지지하라는 호소를 하고 있다. 사회당의 전 재경부장관이었던 도미니끄 스트로스 칸은, 시락을 지지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내 인생 처음으로 우파를 찍을 것이다. 그건 시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극우파 르펜을 막기 위한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 이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국 각 거리에서는 고등학생들을 포함한 젊은이들의 즉흥적이거나 조직적인 시위들이 벌어지고 있다. 투표 다음날인 4월 22일엔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바스티유 광장에 5000여 명이 집결하여 즉흥적인 안티르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번 선거 결과를 계기로,  선거기간 동안 달아오르지 않았던 인터넷 정치토론이 열기를 띠고 있기도 하다. 논점은 르펜을 막기위해 시락을 지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모아지고 있는데, ‘슈퍼거짓말장이(시락)’와 ‘슈퍼파시스트(르펜)’,  ‘페스트(시락)’와 ‘콜레라(르펜)’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선택 자체를 거부하겠다라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의 르펜이 일으킨 정치적 ‘지진’은 우선 기득권을 쥐고 있던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상당한 불만이 표출된 결과로 보인다. 오래 전부터 정치인들의 관료주의와 엘리트주의,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이 있어왔지만 선거를 위하여 이미지를 바꿀뿐 달라져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비판하며 ‘발로 뛰며 국민을 직접 만나는 정치인’을 표방했던 프랑소와 바이루가 4위 자리를 차지한 것은 프랑스인들의 정치에 대한 변화의 요구를 증명해 준다. 이와 더불어, 사회당과 공산당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반면, 극좌파인 아를레트 라기예와 올리비에 브쟝스노가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얻은 것도 기존 정치계에 대한 불만의 징표로 볼 수 있다. 만연해버린 이런 정치불신과 뉴욕 테러와 아프카니스탄 문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사이에 일어난 극도의 사살전쟁에 예민해 있던 프랑스인들에게, 지나치게 중요 이슈화된 ‘사회안전’ 문제는 유권자들을 르펜에게 돌아서게 했을 것이다. 여기에 사회당 죠스팽의 좌파적 색깔을 포기한 선거전략과 좌파의 분열은 표의 분산을 낳아 르펜이 승리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이번 선거결과를 정치인들에게만 떠남기지 않고 대대적인 안티르펜 운동을 자발적으로 준비함으로써 자신들의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을 직접 나서서 수호하려 하고 있다. 이 운동은 프랑스인들에게 나라를 지키는 ‘애국’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음모론, 색깔론, 한국 좌파의 노무현 찌르기로 이어지는 대선준비 상황의 한국은 이번 프랑스 대선으로부터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조.중.동 언론이 앞장 선 극우세력을 막기위해 대대적인 참여와 연합의 힘이 필요하리라는 것이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좌파의 지지기반과 세력이 탄탄하였다.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다양한 좌파세력의 분포에도 좌파가 실질적인 세력을 얻을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연합’에 있었다. 그리고 그 연합은 노동자를 포함한 국민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연합’ 안에 프랑스의 전통인 정치토론이 자리하며, 그것이 프랑스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제대로된 민주주의를 경험해 보지도 못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적 질서 안에 노동자, 서민을 위한 정책들이 제대로 발현될 시대를 위해서도, 한국의 정치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우선 대대적인 안티극우 운동을 더욱 강력하게 벌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선을 앞둔 지금, 최선은 최악을 피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아는 지혜도 필요하지 않나 한다.

* 필자는 '프랑스 디종에서 공간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웹디자이너 공부를 준비하고 있는 유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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