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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재의 '2002 대선 돋보기']
유령에 놀란 언론

손혁재 | 기사입력 2002/04/11 [15:42]
{image1_left}현재 진행중인 민주당 경선에 유령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민주당 경선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동안은 유령들은 배회하는 데 그치지만, 그 유령들은 언제라도 국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버리고 경선을 절망의 늪으로 끌어들이려 틈을 엿보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은 바로 음모론과 색깔론이다.

경선 초반을 얼룩지게 만들었던 조직동원과 줄세우기, 돈 경선보다 더 경선을 위태롭게 만드는 음모론은 일부 언론이 기정사실화시키고 확대 재생산시켰을 뿐 실체가 없다. 음모론이 나타난 것은 광주 경선이 치러진 직후이다.

광주 경선에서 광주와 지역적 연고가 없는 영남 출신의 노무현 고문과 충청 출신의 이인제 고문이 1, 2위를 차지하고, 지역적 연고가 있고 조직이 튼튼해 1위가 예상되었던 한화갑 고문이 3위로 미끄러졌다. 광주 경선은 ‘괜찮은 정치인’ 정도로 평가받던 노무현 고문을 단숨에 ‘유력한 대통령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민주당 안에서도 ‘이인제 대세론’에 밀리던 ‘노무현 대안론’은 민주당 경선을 이인제-노무현 양자 대결로 만들었고, 여론조사에서도 ‘이회창 대세론’을 순식간에 압도하는 태풍의 눈으로 성장했다.

이 때부터 노무현의 급격한 지지도 상승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음모론’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음모론의 근거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음모론이 삽시간에 확산된 것은 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과장보도 때문이다. 이들은 음모론 주장을 여과 없이, 사실확인 없이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음모론을 내세우는 쪽에서조차도 음모론에 대해 목소리만 높였지 아무런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모 후보 측 캠프 멤버가 구속되었고, 모 후보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중도 사퇴했고, 연고지에서 부진했던 모 후보가 사퇴했다는 것만으로는 음모론을 뒷받침하기 어렵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발언의 내용과 수위도 수시로 오락가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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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한겨레
그런데도 언론들은 음모론 주장을 중계하기에 바빴다. 심지어 언론들은 음모론을 주장하는 측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된 측(청와대와 노 후보)에게 음모가 없음을 증명하라는 어이없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색깔론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색깔론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개혁을 하겠다는 약속이다. 기존의 것을 바꾸자는 주장만 하면 모두 수상한 색깔로 몰아버린 것이다. 정책대결을 선도해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잊어버리고 특정 후보의 선거전술에 장단을 맞춘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권자들이 예전과는 달리 음모론, 색깔론 등 무책임한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음모론이나 색깔론이 확산되는 것은 후보들의 주장을 사실 여부나 중요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실어주는 잘못된 보도 관행 때문이다. 언론이 시시비비를 가려주지 않는다면 국민이 좋은 후보를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또한 ‘누가 누가 잘하나’ 식으로 인기도 순위에 매달리는 ‘경마식 보도’를 일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은 선거정보의 공정한 전달자이기도 하지만 건전한 선거여론의 조성자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 기자협회보 4월 3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필자 손혁재 박사(정치학)는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및 시사평론가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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