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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의혹 사건의 문제점을 생각한다

장신기 | 기사입력 2002/03/18 [14:29]


  일간지의 정치기사를 보면 온통 의혹 사건으로 얼룩져있다. 이런 의혹 사건은 어떠한 방식으로도 사실규명 및 관련자 처벌로 이어져야한다. 이런 의혹사건이 의혹사건으로 남아서는 어떠한 발전도 모색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정치권과 언론 국민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image1_left} 정치권은 언론 문건 사건으로 상당히 오랜 기간 격렬한 갈등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옷 로비 사건에 대한 특별 검사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의혹들이 불거져나오게 되자 정국은 더더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혹이 나오면 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사건의 책임 당사자에게는 정치적 법적인 대처를 함으로써 다시는 이러한 일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의혹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서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문제는 단지 어느 한 세력이나 집단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전체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 같다.

그러면 의혹 사건이 정국을 주도하는 것의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이 문제에 접근하는 각 사회 세력(일반 국민들도 포함)들의 대응 방식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도록 하자.

우선 의혹 사건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면 정치의 생산성이 떨어진다. 의혹이 정국을 주도한다는 것은 사실 확인이 되기도 전에 이 문제가 정치권에서 중심적으로 다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만일 가정을 해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 문제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 결과에 따라 문제를 처리하게 된다면 의혹이 정국을 주도할 수가 없다. 가정한 경우대로 된다면 의혹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참으로 오랜 기간 의혹이라는 형태로 정국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은 서로 감정만 상하게 되어 바로 앞에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룬 채 갈등과 반목만을 하고 있다. 의혹은 밝혀지지 않는 미지의 세계이므로 또 다른 의혹이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 더더욱 정치권의 갈등은 깊어만 가고 우리가 바라는 생산성 있는 정치, 활발한 의견 개진과 토론으로 가득찬 국회의 모습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 큰 문제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완전하게 의혹이 해소되고 있는 않는 언론 문건 사건을 생각하면 의혹의 형태로 남아 있는 사건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혼란을 초래하는가를 체험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으로 생산성 있는 정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의혹 사건은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의혹은 실체가 불분명한 감각적 이미지이라고 할 수 있다. 감각적 이미지는 그 것이 나타내는 실체와는 다른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다. 실체를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서 실체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달라진다. 또한 고정된 실체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해석적 이미지는 포장만 잘하게 되면 상당한 시장성 있는 주제가 되며 정보의 소비자들도 이를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실체에 대한 인식을 더더욱 어렵게 한다.

또한 감각적인 이미지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자극적이고 즉흥적이며 오랜 기간 같은 형태로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이미지로 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이에 빠져있다가도 곧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신이 판단의 근거로 삼던 것의 안정성이 약하기 때문에 실체적 사실을 판단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어떠한 사실에 대한 판단을 하는 행위 자체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러면 더 나은 사회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정치에 대해서 사람들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사람들의 집합 의지를 모아서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행동이 무엇인가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정치적 행위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가치 판단이 개입된다. 또한 정치적 행위는 한정된 자원과 다양한 가치 판단 속에서 항상 무언가를 결정해야만 하는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어떤 경우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이해 관계를 충족시킬 수는 없을 때도 있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이 정치를 생각하고 정치적 판단을 하게 될 때는 항상 위와 같은 정치적 행위의 특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image2_right}그런데 국민들이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약해지고 정치적 행위의 실체를 벗어난 감각적인 이미지만을 중요시하게 된다면 합리적인 의사 결정 구조로서의 정치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듯이 옷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로 인해서 새로운 의혹들이 불거져 나오고 있고 옷 로비 의혹 사건은 또 다시 사회적인 중심 화두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옷 로비 의혹 사건을 생각하기에 앞서서 현재 우리 사회에 주어진 과제를 생각해야만 한다.

국가 보안법 개정 문제, 노동 문제, 인권 관련 법안 처리 문제, 의료 보험 통합 문제, 통합 방송법 문제 등등의 중요한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옷 로비 의혹 사건에서 보여준 열정을 보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본질적인 것은 뒤로 제쳐 놓고 순간적으로 사회적인 관심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할 사회의 각 세력들이 자신의 사회적 책무는 소홀히 한 채 감각적인 이미지만을 중시하여 국민들의 가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이러면 우리는 내부에서부터 스스로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것도 경제 위기 속에서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서 도약의 기틀을 세우는 일이 시급한 이 시기에 옷 로비 의혹 사건과 같은 일로 사회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강하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의혹 사건이 오랜 기간 지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 각 사회 세력들의 새로운 자세가 요구된다. 우선 정부 여당은 특별검사제를 상설화해서 의혹 사건에 대한 신속한 처리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옷 로비 의혹 사건과 지난 시기의 김대중 대통령 만 달러 수수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어렵다. 따라서 야당과 시민 단체가 주장하는 특별 검사를 제도적으로 상설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야당은 정치 공세만을 할 것이 아니라 국정 현안에 대해서는 당연히 자신의 주어진 역할을 해야만 한다. 또한 언론은 의혹 사건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가 의혹 사건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며 그에 따른 합당한 해결책을 찾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언론에서 의혹 사건을 접근하는 방식이 국민들의 관심만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너무 치우친 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이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진실로 미래를 위해서 중요한 구조적인 해결책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언론은 의혹 사건이 발생하면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중심적으로 다루어 생산적인 공론 형성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민들은 사건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하고 하나의 의혹 사건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도록 생산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의혹이라는 형태로 국가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 여당, 야당, 언론, 그리고 국민들 모두가 장기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언론 문건 사건에서 여당과 야당이 상대방의 약점을 서로 폭로하면서 정치적인 승리를 위해 당력을 집중하였지만 국가적 차원에서는 낭비임에 틀림없다. 의혹 사건에서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당도 야당도 언론도 모두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한 식구이므로 서로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의혹 사건으로 서로 단지 승리만을 위해 싸우고 국민들도 감각적인 이미지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지속할 만큼 우리 대한 민국이 한가한 상황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진정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일이며 의혹 사건에서 문제 제기되는 바와 같은 구 시대적 악습이 남아있다면 이를 과감하게 척결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혹 사건으로 국가적 에너지를 비생산적인 방향으로 낭비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고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대자보 24호(1999.1.24)에 발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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