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비평]이향 화가...유불선의 회통을 향한 겁 없는 도전

“짙은 먹의 바탕에서 착실하게 다지면서 오방색, 단청, 불화 등을 도입”

김영재 철학박사 | 기사입력 2022/08/12 [09:47]

이향 화가(동곡)는 철저한 수련과 숙련을 거쳐 완성된 수묵과 문인화의 중화미(中和美), 선불교의 불이미(不二美), 도가적인 유현미(幽玄美)를 하나로 엮어 나간다. 그는 그 바탕에서 야심만만한 채묵의 세계를 선보였다. 

 

문인화의 중화미란 만권 서적을 읽고 충만한 내면의 기운이 서권기(書卷氣)라는 이름으로 뿜어져 나오듯, 그림을 그리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성(性)을 밝게 밖으로 내어 보인다(化)는 뜻이다. 성은 아직 내면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모습이라 중(中)이라 하고, 화(化)는 밖으로 이미 표출되어 화합하기 때문에 화(和)라 한다. 그렇게 중화는 내면과 외표가 일심동체가 되고, 중심이 되는 사상과 표현된 결과로서의 조형이 회통 하여 화면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아름다움이 된다.

▲ 이향 화가.     ©브레이크뉴스

 

이향 화가는 사군자를 포함한 문인화는 축자(逐字) 해석을 덧붙이자면 ‘낙양(洛陽)의 지가(地價)를 올린다’라는 말이 어울린다. 원래 이 말은 천하제일의 도시에서도 종이가 모자랄 만큼 훌륭한 문필가의 책이 많이 인쇄 되었다 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향 화가는은 어릴 적부터 사범대학 출신의 중국계 스승과 서지학과 품평에 밝은 아버지의 편달 아래 ‘나일론 끈’이라 부를 만큼 끈질기게 연습에 몰두했다.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 생) 문하에서의 길지 않은 수학을 중도에서 접고 나서는, 천리를 멀다 않고 좋은 그림을 빌어 돋보기로 필세와 운필을 살피어 전이모사(轉移模寫)하면서 그 저력을 길러왔다. 이윽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르러서도 ‘문인화 퍼포먼스’라는 이름의 실연을 그치지 않으니 한국의 종이 값이 올라도 한참은 올랐을 게다. 

 

사군자(四君子)는 이향 화가는 평생을 손에서 떼어놓은 일이 없는 문인의 기상이요, 문인화의 기개였다. 스승에게 기초를 배운 후 죽농(竹農)선생의 화본을 독습하면서 수백 번씩 고쳐 그렸다. 학원을 열어 문하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그 필력은 일취월장으로 부작난(不作蘭)을 감히 넘볼 정도가 되었다. 

 

부작난이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묵란 중에서도 백미(白眉)라 일컫는 난초그림이다. 세 번 붓끝을 돌려 그려진 난초 잎의 부드러우면서도 칼날 같은 예리함이 먹 점으로 이루어진 꽃과 잘 조화되었을 뿐 아니라 여백을 가득 채우고도 무한한 공간을 함축하는 추사체의 화제들이 어우러진다. 

 

부작난(不作蘭)은 불이선란(不二禪蘭)이라고도 하는데 유가적인 문인화의 드높은 경지를 선양할 뿐 아니라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불이(不二)의 선적 지취를 한껏 펼친 세계를 표상한다. 또한 문자와 도상으로 빼곡이 메우고도 넉넉한 공간의 깊이와 보는 사람에게 법열을 주는 여백은 도가에서 말하는 유현의 세계가 돋보이는 그림이다. 이를테면 추사의 그 문인화적 기개가 유불선의 회통으로 표상된 사군자가 부작난이다. 

 

그런데 감히, 겁도 없이, 이향 화가는 부작난을 그린다. 그것도 부챗살에 쓰윽 쓱 환칠 하듯이 난을 치고 부작난이라 썼다. 세 번 꺾어지는 삼곡난엽을 치고, 부작난이라는 글씨도 썼다. 불이선이라는 단어도, 낙관대신 빨간 난 꽃도 그려 넣었다. 그러면서도 서릿발 같은 부작난의 난엽은 부챗살에 걸려 토막이 나건, 밑동이 후줄근하도록 파묵으로 부채에 스며들 건 오불관언(吾不關焉)이라, 나 몰라라 하고 팽개쳤다. 그렇게 이향 화가는 겁도 없이 부작난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기개가 어디로 가겠는가. 눈에 띄는 대로, 손 가는 대로 화지 뿐 아니라 보료와 방석에 사군자를 치더니 그것이 채묵과 진채로 스며들어간다. 수묵이 채묵을 머금은 단계를 대충 뛰어넘다가 결국 제풀에 주저앉은 것이 먹 바탕이다. 먹 바탕 위에 마치 유화를 그리듯 색을 올려 밝은 세상으로 열린다는 생각이 채묵을 수묵문인화의 중화미로 이끈다. 

 

▲이향 화가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이향 화가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이향 화가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이향 화가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이향 화가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이향 화가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두꺼운 요철지에 뾰족뾰족 원경의 삼각형 산을 그린다. 중경에는 하얀 윤곽선으로 절을 그리고 전경에는 화면 가득히 소나무를 세웠다. 소나무의 밑동은 서릿발을 이겨낸 듯, 눈꽃이 핀 듯, 하얗게 그렸다. 그런데 빗긴 구름과 그 위쪽으로는 요철지에 선염을 뺏긴 수묵이 자리잡았다. 그렇게 까만 바탕에서 시작된 밝은 색으로의 행진은 그 정점에서 다시 하나가 된다. 채색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채묵을 짓이기더라도 겁 없이 수묵을 고집함이니, 그렇게 마음속에 깃들인 중(中)은 수묵에서 다시 화(和)가 된다. 

 

이렇게 수묵과 채색의 겁 없는 교섭은 선기직삼(禪氣直參)적인 불교, 혹은 도교적인 민화의 소재에서도 볼 수 있다. 선기직삼에서 선기란 불가에서 자신의 성품자리를 보아 앞으로 나아가는 기틀이라는 뜻이다. 문득 깨달음, 즉 돈오로 나아가는 자리라 할 때는 직삼(直參)이라는 말을 쓴다. 

 

다시 이것이 화면에서 나타날 때는 파묵(破墨), 발묵(潑墨)으로 가시화한다. 파묵이란 먼저 먹으로 선을 그린 다음 물을 묻힌 붓으로 엷게 우리는 것이요, 발묵(潑墨)은 닮게 그리지 않는 듯한 휘적휘적한 붓 자국이나 먹물의 희롱에서 문득 대상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기법이다. 

 

그렇게 이향 화가는 문인화에서 성취한 중화의 미와 선기직삼의 부처 그림을 통해 선이 목표로 하는 적멸의 경지를 표출하며, 좋음이나 추함이 없는, 즉 무유호추(無有好醜)의 세계로 나아간다. 무유호추란 다른 말로 불이(不二)이다. 다시 풀어서 설명한다면 주객(主客)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사상이 된다. 문인화에서는 이런 경지를 묵희(墨戱)로 표현한다. 내가 묵이요, 묵이 나인 초월적인 명상의 상태에서 그림의 좋음과 나쁨을 접어둔 채 일필휘지하여 일격(逸格)이 성취된다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그럴 때 적적성성(寂寂惺惺)이라는 말을 쓴다. 

 

적적성성은 한결같이 고요한 마음의 본래 모습과 어둡지 않고 환히 깨어 있는 마음의 본래 작용을 의미한다. 적적과 성성이 하나로 어울어지면 음의 길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완숙의 경지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적적이건 성성이건 원래 우리 마음자리에서 비롯하는 것이니 그 마음을 찾는데 어디 유가가 있고, 불가가 있으랴마는 이향 화가는 스님들과 교류하고 스님처럼 살고, 그 마음을 닮아가면서 수묵직삼이 바로 선기직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다시 채색화로 연결된다. 가깝게는 불교적인 소재로서 연꽃, 불상, 목어(木魚)등의 도상, 숫파니파타 등의 잠언(箴言)을 적은 선시로 나타나고, 이윽고 이 모든 것이 어울어진 세계로 나아간다. 

 

한 예를 들자면, 와불(臥佛) 혹은 열반불(涅槃佛)의 소재에서는 수묵직삼과 연꽃, 목어 등 불교의 소재와 진채의 선기직삼이 한데 어우러진다. 불상은 연꽃과 목어에 의해 장엄화하고, 한국의 소나무와 문살창호에 의해 토속화한다. 불상의 발묵과 선 염은 경직된 진채를 흐트러뜨려 파묵(破墨)으로 이끌고, 강렬한 온난대비를 보이는 청록과 주홍은 복합적인 질감과 문양으로 다시 채색화의 평면성을 파괴한다.

 

수묵직삼과 선기직삼을 문인화도 아닌 북종화 계열의 진채화에서 성취하려 하다니, 겁 없는 시도가 아닌가? 

 

이향 화가는 겁 없는 행보는 도가적인 유현의 세계에로 미치고 있다. 문인화의 먹이 만들어내는 세계와 여백의 미는 유가적인 것만으로는 성숙되지 아니하고 도가의 사상이 농익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먹은 원래 현(玄)이다. 유현(幽玄)이다. 유현이란 도가 화면이라는 공간에서 필묵을 통해 먹을 펼칠 때, 중화미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보는 사람에게 깊고 아늑한 세계를 느끼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문인화가 유가적인 것에서 시작하되 도가적인 것으로 귀결되는 중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향 화가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이향 화가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이향 화가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이향 화가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이향 화가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 이향 화가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화면에서 여백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형사(形似), 즉 닮게 그리려는 생각보다는 사의(寫意), 즉 화면을 초월적인 정신의 세계로 꾸미련다는 의지가 필요한 것이 여백이다. 또한 가필(加筆)의 욕구, 즉 붓을 대고 싶어도 마지막 일획에서 붓을 뗄 수 있는 감필(減筆)의 자족적인 심경이 필요하다. 이러한 세계란 유가의 중화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도가의 박(撲), 나아가 박산위기(撲散爲器)에 이르러 가능한 것이다. 

 

박(撲)이란 소박(素朴)하다, 졸박(拙撲)하다는 말과 통한다. 밝은 도를 깨닫게 되면 스스로 자리를 낮추어 생명의 근원에 서게 되는 데, 일러 박이라 한다. 문인화가는 먼저 기교를 배우겠지만 밝은 도를 깨우쳐 이 박(撲)을 증득하게 되면 박이 분해되어 기(氣)가 되고, 기가 모이면 만물이 된다. 이것을 박산위기(撲散爲器)라 한다. 이 상태에서 문인화의 조화는 도가적인 유현의 세계를 넘나들게 된다. 

 

이향 화가는 문인화의 정점에서 박(撲)을 지향한다. 요철지는 부챗살의 어눌한 장벽을 뛰어넘어 문인의 필을 멈추게 하고, 형사(形似)를 방해하여 가필의 욕구를 일으키게 된다. 두텁고 거친 질감 위에서 닮음을 필요로 하는 민화나 인물을 그리되 문인화의 중화미, 불가의 불이미, 그리고 도가의 유현미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렇게 몸을 결박하고 날카로운 붓끝을 잠재우면서 이향 화가는 민화 등의 소재를 도입하는 것은 분명 민족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원형정신을 일깨우련다는 것일 게다. 민화란 이름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처음 주창한 이래, 학문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엉거추춤 고착된 이름이다. 그러나 그 이름 뒤에는 무지한 백성들의 삶과 정신 속에 깃들이어 있는 조상의 얼과 전통의 원형이 있었다.

 

이향 화가는 곤륜산의 해와 달, 십장생의 거북과 연꽃, 바위산의 소나무와 상운(祥雲) 등을 그린다. 이러한 소재들을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기법으로 자기화 한다. 먹색이 배어 나오는 불상은 민불처럼 소탈하고 목어는 허공을 날아다니고, 소나무는 강렬한 청색과 주홍의 대비를 이룬다. 

 

소재와 기법에서 전통 민화를 빗겨가면서도 깊은 회화적 성취를 이루는 것은 현이위소혜(玄以爲素兮)라 부를만한 독특한 접근방식 때문이다. 원체 문인화야 소이위현혜(素以爲絢兮)아니던가. 하얀 바탕에 그림을 그린다는 정신이 칼날같이 살아있는 문인화에서 한 걸음 빗겨 나오면서 이향 화가는 까만 바탕에서 밝고 환한 그림으로 나아간다. 아팠던 과거의 그림자, 그것이 배어있다고 이향 화가는 표현한다. 

 

아팠던 과거란 부친이 소위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어릴 적부터 고난과 수모를 겪었던 세월을 말한다. 인혁당 사건은 1964년 당시 중앙정보부가 혁신계 인사와 언론인, 교수, 학생 등이 포함된 41명이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배후 조종했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다시 1974년 유신정권을 반대하던 학생 데모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1차사건 당시 최고 3년형으로 일단락되었던 관련자들 중 8명이 사형 당했다. 이후 줄곧 법집행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던 사건이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이향 화가는 부쩍 자신의 그림에 푸른색과 그 푸른 색 위에 자유롭게 날아가는 구름을 그리는 것 같다고 술회한다.

 

그 아픈 세월을 딛고 이향 화가는 신들린 것처럼 그림에 몰두해왔다. 박생광(朴生光 1904-1985)의 깊고 깊은 민족적 원형의 세계를 동경하여 짙은 먹의 바탕에서 착실하게 다지면서 오방색, 단청, 불화 등을 도입한다. 두꺼운 요철지 위에 펼쳐지는 문인화적 중화미가 선불교적인 수묵직삼을 만나, 이윽고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는 유현미의 세계로 나가면서, 이윽고 그 아픈 세월도 오직 예술의 이름으로 치유될 모양이다. 

 

*필자/김영재

미술사상가, 철학박사.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Art Criticism] Artist Lee Hyang... A fearless challenge to Yu Bul-seon's pain

“Introducing five colors, dancheong, and Buddhist painting while steadily grinding on the basis of thick ink”

-Kim Young-jae, Ph.D. in Philosophy

 

Painter Lee Hyang (Donggok) weaves the beautiful beauty of ink and painting, the beauty of Zen Buddhism, and the beauty of Yuhyeon-mi, the Taoist, that were completed through thorough training and skill. He showed the ambitious world of ink painting based on that background.

 

The Chinese beauty of Literary Painting means that the inner energy that is filled with reading ten thousand books comes out in the name of Seo Kwon Ki (seo Kwon Ki). Sexuality is called 中 because it has not yet been revealed from the inside, and hwa is called hwa because it has already been expressed and harmonized on the outside. In this way, Junghwa becomes a beauty when the inner and outer faces become one, and when the central idea and the molding as the expressed result are united and settled on the screen.

 

The phrase ‘raise the land price of Luoyang’ is appropriate if we add a literal interpretation of Li Hyang’s paintings, including the Four Gentlemen. Originally, this saying came from the saying that even in the best city in the world, many books by great writers were printed so that there was not enough paper. From an early age, painter Lee Hyang devoted himself to practicing persistently enough to be called a ‘nylon string’ under the guidance of a Chinese teacher from the College of Education and his father, who was well versed in bibliographic studies.

 

After graduating from the lengthy mathematics under Woljeon Jang Woo-seong (born 1912) halfway through, he developed his potential by examining the strokes and strokes with a magnifying glass, borrowing a good picture, not far from a thousand miles. come. Eventually, even at the age of Ji Cheon-myeong, he did not stop performing in the name of 'Literary Painting Performance', so the price of Korean paper must have risen for a while.

 

The Four Gentlemen (四君子) were the spirit of a writer who never let go of his life as a painter Lee Hyang, and the spirit of a writer and painter. After learning the basics from his master, he redrawn it hundreds of times while reading through Master Juk Nong's paintings. Although he opened a private academy and taught his students, he never neglected to practice, so his writing skills were so great that he dared to overcome the trilogy with Ilchwiwoljang.

 

Bujak orchid is an orchid painting called white rice among the silk orchids of Chusa Kim Jeong-hee. The soft yet sharp sharpness of the orchid leaf drawn by turning the tip of the brush three times harmonizes well with the flower made of ink dots, as well as the topic of chusa that fills in the blanks and implies infinite space.

 

Bujaknan (不作蘭) is also known as 不二禪蘭 (不二禪蘭), and it describes a world that not only promotes the high state of Confucian literary painting, but also fully unfolds the wisdom of the Buddhist family. represent In addition, the depth of the space, which is filled with text and images, and the blank space that gives the viewer a passion, is a painting that stands out from the Taoist world of Yuhyeon. For example, Chusa's literary and artistic spirit is represented by Yu Bul-seon's remorse, which is a trilogy.

 

But, without fear, artist Lee Hyang paints a trivial difficulty. It was also written as a trivial difficulty, as if smacking it on the brisket. He beat the three-cornered orchid, which was broken three times, and wrote the inscription “Nan of trilogy”. Instead of the word fire and optimism, a red orchid flower was also drawn. Nevertheless, the orchid leaves, which were like frostbite, were thrown into pieces, saying that they did not know about it, saying that it was a misnomer to say that I did not know about it. In this way, the artist Lee Hyang made the trilogy his own without fear.

 

where will that bastard go? As soon as you notice, you hit the four gentlemen not only on washi paper, but also on the boryeo and cushions, and it seeps into the ink and jinchae. The ink base is the ink-based ink that ended up sitting on the grass after roughly skipping the level of ink painting. The idea of ​​opening to a bright world by adding colors as if painting an oil painting on an ink base leads to the Chinese painting beauty of ink and ink paintings.

 

Draw a triangular mountain with a sharp point of view on thick uneven paper. In Chongqing, a temple was drawn with a white outline, and a pine tree was erected in the foreground. The base of the pine tree was painted white, as if it had overcome frost, as if it had bloomed with snow. However, above the combed clouds and the irregularities, ink with yarn dyed away from it settled. The march to bright colors, which started from the black background, becomes one again at the apex. Even if you don't like the coloring or you mess with the ink, you are not afraid to stick to the ink, so the middle in your heart becomes harmony again in the ink.

 

This fearless negotiation of ink and color can also be seen in the material of Buddhist or Taoist folktales. In Seongijiksam, Seongi means a framework for moving forward by seeing one's own character in Buddhism. When it comes to sudden enlightenment, that is, a place that leads to Dono, we use the term “Jiksam” (直參).

 

When this again appears on the screen, it is visualized in the form of Pamuk (破墨) and Balmuk (潑墨). Pamuk is a technique in which a line is drawn with ink first and then thinly applied with a brush dipped in water. In the case of balmuk (潑墨), the shape of the object suddenly appears from the fluttering brush marks that do not seem to be drawn similarly or from the mockery of the ink.

 

In this way, painter Lee Hyang expresses the realm of destruction aimed at by Zen through the beauty of Chinese painting and the Buddha painting of Seon Ki Jik Sam, achieved in literary painting, and advances into a world of no good or ugliness. . In other words, non-yu-ho-chu is fire (不二). If I explain it again, it becomes the idea that the main characters are one, not two. In literati painting, this state is expressed as silence (墨戱). In the state of transcendent meditation, where I am and I am me, one stroke is achieved by putting aside the good and the bad of the picture. In Buddhism, in such a case, the word aptitude is used.

 

The aptitude for aptitude means the original appearance of a calm mind and the original operation of a mind that is not dark and awake. When the enemy and sexuality are harmonized as one, the path of the note goes to a state of maturity where there is no other place to go. However, whether the enemy or the sanctuary originates from the place of our hearts, the painter Lee Hyang interacts with monks, lives like a monk, and emulates that heart. would have come to realize that

 

That leads back to coloring. Closely, as Buddhist material, it appears as a proverb written in proverbs such as lotus flowers, Buddha images, wooden fish, etc.

 

To give an example, in the material of the reclining Buddha or Nirvana Buddha, Buddhist materials such as ink ginseng, lotus flowers, and woodfish and seongijik ginseng of Jinchae harmonize together. The Buddha statue is majestic with lotus flowers and woodfish, and localized by Korean pine trees and munsal windows. The ink and ray dye of the Buddha disturbs the rigid essence and leads to a ripple, while the turquoise and vermilion showing intense warm and warm contrasts again destroy the flatness of the colored painting with complex textures and patterns.

 

Isn't it a fearless attempt to achieve Sumukjik ginseng and Seongijik ginseng not in literati, but in the Northern Jonghwa series of true chaehwa?

 

Hyang Lee's fearless actions extend to the world of Taoist Yoohyeon. The beauty of the blank space and the world that literati painters create food for is not matured only with Confucianism, but the ideology of Taoism is ripe for implementation.

 

It is the original prefecture eaten. This is Yoohyeon. In the sense that when you spread ink through ink in the space called Taoism, you can say that literati painting starts with Confucianism and ends with Taoist in the sense that it creates Chinese food and makes the viewer feel a deep and cozy world. have.

 

There is no blank space on the screen. It is a blank space that requires a will to decorate the screen as a world of transcendent spirit rather than a criminal (former), that is, the idea of ​​drawing a similarity.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have the desire of a painter (加筆), that is, the self-sufficient mind of a painter (減筆) who can remove the brush at the last stroke even if he wants to apply it. Such a world can be interpreted as the neutralization of Confucianism, but it is possible after the fall of Taoism and furthermore, the crisis of poverty (撲散爲器).

 

The word bak (撲) is in common with the words simple (素朴) and simple (拙撲). When one realizes the bright way, he lowers himself and stands at the source of life, which is called 'Ira-bak'. A literati painter learns technique first, but when he realizes the bright way and gains this knowledge, it decomposes and becomes qi, and when qi gathers, all things become things. This is called the Park San Crisis (撲散爲器). In this state, the harmony of literati crosses the world of Taoist Yoohyeon.

 

Artist Lee Hyang pursues Park (撲) at the pinnacle of literary painting. The irregularities stop the writer's writing by jumping over the weak barriers of the buchaetsal, and interfere with the detective, thereby arousing Garfiel's desire. Is it possible to draw folk paintings or figures that need resemblance on thick and rough textures, but create the Chinese and Chinese beauty of literary paintings, the irresistible beauty of fire, and the Yuhyeon-mi of Taoism?

 

In such a way, the artist Hyang Lee introduces materials such as folk tales while tying up his body and putting the sharp tip of his brush to sleep. Since the Japanese folktale was first coined by Yanagi Muneyoshi, the name of folktales has been fixed in a tumultuous way as the public's interest in it has grown in the absence of an academic system. But behind the name was the ancestral spirit and the archetype of traditions that were ingrained in the lives and spirits of the ignorant people.

 

Artist Yi Hyang paints the sun and moon of Kunlun Mountain, the tortoise and lotus flowers of ten longevity, and the pine trees and sang-un (祥雲) of the rocky mountain. He magnetizes these materials with his own perspective and technique. The ink-colored Buddha image is as easy as a wild fire, a carp fish flying in the air, and a pine tree contrasting intense blue and scarlet.

 

It is because of the unique approach that can be called Hyun Yi Wei So Hye (玄以爲素兮) that it achieves a deep pictorial achievement while deviating from traditional folk paintings in materials and techniques. Isn't that the original Writer Inhwaya Soi Wei Hyeon-hye? As the spirit of painting on a white background deviated one step from the literati painting alive like a knife, Hyang Lee progresses from a black background to a bright and bright painting. Painter Lee Hyang expresses that the painful shadow of the past is ingrained.

The painful past refers to the years of hardship and humiliation from an early age when his father was involved in the so-called Inhyukdang incident. The Inhyukdang incident was an incident in 1964 when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announced that 41 people, including innovation figures, journalists, professors, and students, had been behind the movement against the Korea-Japan summit. Eight of those involved, who were sentenced to three years in prison at the time of the first incident, were executed. It is also a case that has raised questions about the legitimacy of law enforcement ever since.

Perhaps that's why, Hyang Lee recounts that his paintings are more like drawing blue and clouds flying freely over the blue color.

Over those painful years, Hyang Lee has been immersed in painting as if possessed. Admiring Park Saeng-gwang (1904-1985)'s deep and deep national archetype world, he introduces five colors, dancheong, and Buddhist painting while steadily cultivating the base of thick ink. The literary Chinese beauty spread on the thick uneven paper meets the Zen Buddhist Sumukjik ginseng, and eventually goes out to the world of Yoo Hyeon-mi that touches the hearts of Koreans.

*Writer/Kim Young-jae

Art thinker, doctor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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