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갈등과 『안티고네』[상]

지속된 냉전 체제 하의 한국에서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가 억압적인 통치 이데올로기로 작용

이종철 철학박사 | 기사입력 2020/11/19 [15:05]

▲ 이종철 철학박사.  ©브레이크뉴스

1. 20세기의 한국사의 전개를 돌이켜 보면 참으로 신산(辛酸)하다. 이 민족의 고통이 집약되고 점철된 역사다. 일제의 식민지 치하에서 수탈을 당하고, 전후 강대국들의 합의 하에 타율적으로 해방이 되면서 분단이 되었다. 해방된 지 5년 만에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치루면서 전국토가 초토화되었다. 전쟁과 그 이후 분단의 경험은 70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대립과 갈등의 깊은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2. 전쟁 이후 그리고 수십년 동안 지속된 냉전 체제 하의 한국에서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가 억압적인 통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면서 독재체제의 구축에 악용되었다. 이승만 정권이 그랬고,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들이 그랬다. 그럼에도 한국의 민주화 경험은 역동적으로 독재와 억압을 헤쳐왔다. 60년 4.19 혁명과 70년대 반유신 반독재 투쟁, 그리고 87년도의 민주화 운동, 최근의 촛불 시위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뚜렷한 족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경제발전도 눈부실 만큼 비약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수출 주도, 재벌 위주의 경제 성장 정책에 대한 비난이 커도 이런 경제 발전 시스템이 한국 사회의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전체를 개방화하고 다양화한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90년대 말에 IMF를 겪고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급격하게 휩쓸리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불평등의 골을 깊게 했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 한국사회의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사회 체제의 탄력이 약해지고, 다문화와 환경 등 다양한 부문에서 새로운 갈등들에 노출되고 있다.

 

3. 이런 한국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갈등을 크게 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 그리고 세대 갈등을 꼽을 수 있다. 분단시대는 반공을 억압적인 통치이데올로기로 악용하는 빌미가 되었다. 과거의 대부분의 독재 정권은 반공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으면서 반대 목소리를 억압하는 데 활용했다. 반공 이데올로기는 민주화가 이루어진 21세기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통진당 해산 사건이 그 경우이다. 정권의 미운털이 박힌 공당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은 현재 7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다. 그만큼 반공 이데올로기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1990년대 초원복집 사건에서 나온 '우리가 남이가'라는 표현은 한국사회에 만연된 지역연고주의를 잘 말해준다. 지역주의가 나름대로 정치적 이유도 갖고 있지만 어느 지역에 사느냐는 거의 우연에 가까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지역주의를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시시때때로 악용하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긴 면이 크다. 예전보다는 많이 희석화되었지만 여전히 대국 경북과 전남 광주의 지역주의는 강하다. (양 쪽의 지역주의를 동일한 차원에 놓을 수 있는가?) 한국의 자본주의가 급성장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소홀시되었던 노동권 역시 집단화되면서 힘을 키웠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겪은 IMF와 그 이후 극복 과정에서 새로운 불평등과 비정규직의 문제는 자본에 비해 열악한 노동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한국 사회는 빠른 사회 발전 이상으로 급격하게 고령화되면서 세대 간의 갈등 문제도 적지 않게 키우고 있고, 외국 노동자들의 급격한 유입으로 인해 다문화 갈등의 소지도 많이 안고 있다. 이렇게 많은 부문에서 나타난 갈등들은 잠재적이건 현실적이건 한국 사회를 극단적으로 분열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4. 오늘 날 한국 사회에서 갈등과 대립이 보여주는 뚜렷한 현상은 그것들이 구조적으로 화해 불가능할 정도로 진영논리화 되는 점에 있다. 이제는 사회의 어떤 문제가 되었든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등으로 갈라져서 피터지게 싸우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한 편에는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든 태극기 부대와 엄마 부대가 있고, 다른 편에서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걸면서 정권 사수를 위해 일체의 내부 비판을 거부하는 지지세력들이 서로 간에 양극화된 대립과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촛불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통해 탄생한 문 정권하에서 오히려 더욱 극심한 양상을 보인다. 2019년 조국 교수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립했던 진보와 보수 간의 갈등은 나라를 극도로 분열시키고 있다. 지금은 이른바 법의 이름을 걸고 검찰 권력과 법무부까지 권력 투쟁을 일삼고 있다. 이런 양극화된 현실에서 중간지대의 목소리는 회색분자로 치부되고 오로지 아생살타(我生殺他)의 칼날만 번뜩이고 있다. 만일 이런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국사회는 앞으로 점점 더 큰 어려움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분단된 남북 간의 갈등도 심한데 사회 내부에서 지금처럼 갈등과 대립을 키워나간다면 대한민국호의 미래를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지금과 같이 양극화된 진영논리는 첫째로 선과 악, 옳고 그름의 문제를 상대화시킴으로써 모든 문제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둘째로 진영논리는 문제의 차원을 발전적으로 해소하지 못하고 추상적인 부정만을 일삼을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오로지 손바닥 뒤집기만 있을 뿐 미래로의 전진이나 발전이 없다.

 

5. 우리는 일견 화해가 불가능한 현재의 대립과 갈등을 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갈등에 대한 분석들은 사회학자나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적 시각에서 이러한 갈등을 조망하고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접근을 현재의 갈등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제시한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인 『안티고네』를 통해 시도해보고자 한다. 그리스 비극 시인으로 알려진 소포클레스의 작품 『안티고네』는 서구의 고전으로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다. 이 작품은 대학로에서 잊을만하면 리바이벌되는 고전적 비극이다. 『안티고네』는 조국을 배신한 폴리네이케스와 수호하려는 에테오클레스가 왕권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다 둘 다 전사하는 데서 시작한다. 문제는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데 있다.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장례는 혼례 만큼이나 인륜지 대사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트로이의 명장 헥토르를 죽인 영웅 아킬레우스는 분노감으로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달고 다니면서 모욕하고 훼손한다. 그 날 밤 아킬레우스에게 트로이의 늙은 프리아모스 왕이 찾아와 아비의 비통한 심정을 이야기하면서 자식의 시신을 돌려줄 것을 간청한다. 아킬레우스도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하며 차마 이 청은 거절하지 못한다. 시신을 앞에 두고 아킬레우스와 프리아모스는 눈물을 흘리며 화해한다. 그만큼 시신 처리 문제는 고대 그리스 사회의 인륜 사에서 중대한 문제이다. 그런데 새로운 왕 크레온은 반역자의 장례를 치러주는 자는 똑같이 들판에서 까마귀밥이 되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에테오클레스는 우리 도시를 위하여 싸우다가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장수로서 전사하였으니, 그를 무덤에 묻어주고 지하의 가장 훌륭한 사자(死者)들에게 어울리는 온갖 의식을 베풀 것이오. 그러나 그와 형제간인 폴뤼네이케스는, 내 말하노니, 추방에서 돌아와 조국 땅과 선조들의 신들을 화염으로 완전히 불사르고, 친족의 피를 마시고, 나머지는 노예로 끌고 가려고 하였으니, 그와 관련하여 나는 도시에 알리게 했소이다. 아무도 그에게 장례를 베풀거나 애도하지 말고, 새 떼와 개떼의 밥이 되고 치욕스러운 광경이 되도록 그의 시신을 묻히지 않은 채 내버려두라고 말이오.( 『안티고네』, 195-205)

 

5. 국법을 수호하는 통치자의 입장에서 이런 명령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만일 조국을 반역한 자와 그 조국을 지키려다 죽은 자를 똑 같이 취급한다면, 통치 질서가 더는 지켜지기 어렵고 국가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통치자는 사람들의 행위와 관련해 옳고 그름, 정과 부정의 차이를 명백히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월권하여 법을 짓밟고 자신의 통치자들에게 명령하려 든다면, 나로서는 결코 그를 칭찬할 수 없다. 누구든지 도시를 세운 자에게는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옳은 일이든 옳지 않은 일이든 마땅히 복종해야 한다.”( 『안티고네』, 663-668). 그런데 죽은 자들의 오누이인 안티고네는 이러한 왕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면서 죽은 오라버니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러준 것이다. “네가 감히 법을 어겼단 말이냐”라고 질책하는 크레온의 말에 대해 안티고네는 당당하게 자기 행동을 정당화한다.

 

"네, 그 포고를 나에게 알려주신 이는 제우스가 아니었으며 하계(下界)의 신들과 함께 사시는 정의의 여신께서도 사람들 사이에 그런 법을 세우시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나는 또 그대의 명령이, 신들의 확고부동한 불문율들을 죽게 마련인 한낱 인간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불문율들은 어제 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고,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안티고네』, 450-460)

 

크레온이 볼 때 안티고네의 이런 행동은 방자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안티고네는 단순히 왕의 명령을 어긴 돌발적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죽은 자는 하데스의 세계에 속하며, 따라서 그 세계에 시신을 돌려주기 위해 매장하는 풍습은 죽은 자에 대한 최대의 예우이다. 죽은 자를 매장하는 이 최후의 의무는 완전한 신의 법에 속하고, 가족이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인륜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크레온이 이런 하데스의 법을 무시하고 국가의 법과 질서를 고수하기 위한 명령을 내린 데 반해, 안티고네는 아무리 국가의 반역자일지언정 장례를 치러주는 것이 천륜에 부합된다고 생각한다.

 

6. 그들의 생각은 너무나 완고해서 서로 한 치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대립은 파국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와도 같다. 제 3자가 중재를 해보려고 무진 애들을 쓰지만,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안티고네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인 하이몬은 자살하기 전에 아버지 크레온을 설득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만 품지 마십시오. 아버지 말씀만 옳고 다른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안티고네』, 705-707). 그렇다. 나만이 옳고 다른 사람이 옳지 않다고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각자 자기만의 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포스트 모던한 상대주의는 오늘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도 사람들은 다들 자기식으로 세상을 생각하고 재단했던 것이다. 이 때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모르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잣대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동양의 고전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나와 자네가 논쟁을 한다고 하세. 자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자네를 이기지 못했다면, 자네는 정말 옳고 나는 정말 그른 것인가? 내가 자네를 이기고 자네가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나는 정말 옳고 자네는 정말 그른 것인가? 한쪽이 옳으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그른 것인가? 두 쪽이 다 옳거나 두 쪽이 다 그른 경우는 없을까? ... 누구에게 부탁해서 이를 판단하면 좋을까?”(『장자』)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하기 어려울 때, 가장 큰 지혜는 서로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고 하는 일종의 ‘개방성’에 있고,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신의 무오류를 주장하는 완고함의 ‘폐쇄성’에 있다. 그래서 힘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귀를 열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겸허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도자로서 가장 어리석은, 아니 그 이상으로 사악한 덕은 남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고집불통이다. 과거에도 그럴진대, 오늘 날처럼 개방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안티고네』,의 크레온에게서 바로 이런 완고함과 폐쇄성을 본다.

 

크레온은 말한다. “내가 이 나이에 이런 풋내기에게서 사리를 배워야 한단 말이냐?”( 『안티고네』, 726-727) 그는 사랑하는 자식 하이몬의 충고조차 단호하게 거부한다. 왕은 자신의 권위만을 완고하게 고수한다. 게다가 이런 충고를 받아 들여 안티고네의 태도를 허용하는 것을 한낱 비천한 여인에게 굴복하는 것만큼이나 싫어한다.

 

우리는 질서를 가져다주는 것을 보호하고, 결코 한 여인에게 져서는 안 된다. 꼭 그래야 한다면, 우리가 한 여인에게 졌다는 말을 듣느니 차라리 한 남자의 손에 쓰러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안티고네』, 677-680)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겉으로는 국가의 법질서 수호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남자가 어찌 여자에게 질 수 있겠느냐는 생물학적 치졸함이 감추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각자 자기 생명을 지키려는 생존 본능의 의지, 자기 관할 영역을 양보할 수 없다는 원시적 본능이 더 크게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물학적 본능은 모든 생명체에 공통된 것인데 어떻게 인간이라고 다르겠는가? 하지만 말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도대체 인간적인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런 원시적 본능, 생물학적 자존심 때문에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그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감히 손을 내밀 수 있고 따듯이 품어줄 수 있는 데서 인간 정신의 고결함과 위대함이 있지 않겠는가? 도대체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무엇이겠는가? 생물학과 윤리학이 갈라지는 지점이 어디에 있는가? < 계속> jogel4u@outlook.com

 

*필자/이 종철

철학박사.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Conflict in Korean Society and 『Antigone』[Award]

Division and anti-communist ideologies act as repressive ruling ideologies in Korea under the continued Cold War regime.

-Jongcheol Lee Ph.D. in Philosophy

 

1. Looking back on the development of Korean history in the 20th century, it is truly new. It is a history where the suffering of this people is concentrated and marked.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it was exploited, and after the war, it was voluntarily liberated under the agreement of the great powers, resulting in division. Five years after liberation, the same nations fought wars and the whole country was destroyed. The experience of the war and the division afterwards provides a deep cause of confrontation and conflict even at this point 70 years later.

 

2. After the war and under the Cold War regime that lasted for several decades, the division and anti-communist ideology acted as a repressive ruling ideology, and was exploited to establish a dictatorship. Syngman Rhee's regime did this, and Park Jeong-hee and Chun Doo-hwan's regime did that. Nevertheless, Korea's experience of democratization has dynamically overcome dictatorship and repression. The April 19 Revolution in 1960, the anti-reformist anti-dictatorship struggle in the 1970s,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in 1987, and the recent candlelight protests are clear footsteps symbolizing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in Korea. On the other hand, Korea's economic development has also been remarkably rapid. Even if the criticism of the export-led, chaebol-centered economic growth policy is large, there will be no room for theory that such an economic development system has rapidly developed the economy of Korean society and has opened up and diversified the entire society. However, the Korean economy suffered from the IMF in the late 90s and was rapidly swept away by the wave of neoliberalism, producing non-regular workers and deepening the goal of inequality. In the 21st century, as the aging phenomenon of Korean society intensifies, the elasticity of the social system is weakening, and new conflicts are being exposed in various fields such as multiculturalism and environment.

 

3. Based on these experiences of Korean history, the conflicts that dominate Korean society can be largely selected as ideological conflicts, regional conflicts, and generational conflicts. The era of division became a pretext for exploiting anti-communism as a repressive rule of thumb. Most dictatorships in the past used anti-communism as their ruling ideology and used it to suppress opposition. Anti-communist ideology is still exerting power even in the 21st century, when democratization took place. Typically, this is the case of the dissolution of the Tongjin Party. The government's ugly government was disbanded for violating the National Security Law, and the members of the National Assembly are currently being jailed for seven years. As such, you can feel the power of anti-communist ideology. The expression'we are Namiga' in the grassland rehabilitation incident in the 1990s speaks well of the regionalism prevalent in Korean society. Regionalism has its own political reasons, but it is almost a coincidence in which region you live. However, politicians used this regionalism from time to time in every election, and it was a big part of encouraging local sentiment. Although it has been diluted more than before, regionalism in the major countries of Gyeongbuk and Gwangju, Jeollanam-do is still strong. (Can both regionalism be put on the same level?) As Korea's capitalism grew rapidly, the relatively neglected labor rights were also grouped and strengthened. However, in the process of overcoming the IMF in the second half of the 20th century and afterwards, the new problems of inequality and non-regular workers clearly reveal the reality of labor, which is inferior to capital. As Korean society is rapidly aging beyond rapid social development, there are many generational conflicts, and a large number of multicultural conflicts due to the rapid influx of foreign workers. Conflicts in so many sectors, whether potential or realistic, are causing extreme divisions in Korean society.

 

4. The distinct phenomenon of conflict and confrontation in today's Korean society lies in the fact that they become camp-logic to the extent that it is structurally impossible to reconcile. Now, whatever the problem of society, it is a common practice to split into conservative and progressive, right-wing and left-wing, and fighting against it. On the one hand, there is the Taegeukgi unit and the mother unit carrying the stars and stripes and the Israeli flag, and on the other side, the supporters who, under the name of democracy, reject any internal criticism in order to defend the regime, intensify the polarized confrontation and conflict. have. These conflicts show a more severe aspect under the Moon regime, which was born through the absolute support of the candlelight citizens. The conflict between progress and conservative conflict, which was in earnest when Professor Cho was appointed as Minister of Justice in 2019, is dividing the country extremely. Now, under the name of the so-called law, the power of the prosecution and the Ministry of Justice are struggling for power. In this polarized reality, the voices in the middle ground are regarded as gray molecules, and only the blades of Asaengsalta are flashing. If this conflict cannot be overcome, Korean society will be faced with more and more difficulties in the future. The conflict between the two Koreas, which is already divided, is also severe. How can we assure the future of the Republic of Korea if we develop conflict and confrontation within society as it is now? The polarized faction logic as it is now can serve as an excuse to interpret all problems as subwarrants by relativizing the problems of good and evil, right and wrong. Second, faction logic cannot solve the problem level progressively and can only pursue abstract denial. In this state, there is only a flip of the palm, and there is no progress or progress toward the future.

 

5. We would like to approach the current confrontation and conflict, which cannot be reconciled at a glance, from a different level. Analyzes of these conflicts are widely discussed among sociologists and political scientists. However, it will also be meaningful to look at these conflicts from a humanities perspective and find new opportunities for reflection. We would like to try this approach through Antigone, an ancient Greek tragedy that presented in a form very similar to the current conflict. Sophocles' work Antigone, known as the Greek tragedy poet, is constantly reinterpreted as a Western classic. This work is a classic tragedy that revives if you forget it at Daehakro. Antigone begins when Polynaces, who betrayed his country, and Eteocles, who wants to protect his country, fight over the kingship and both die. The problem is how to deal with the body. Regardless of the East, West, and the ancients, funerals are as important as Inryunji ambassadors as weddings. The same is true in ancient Greek society. In Homer's Iliad, Achilles, the hero who killed Troy's master Hector, insults and damages Hector's body while carrying Hector's body on a chariot out of anger. That night, the old King Priamos of Troy visits Achilles, telling his father's grief and begging him to return the body of his child. Achilles also thinks of his parents in his hometown and cannot refuse this request. With the body in front, Achilles and Priam reconcile in tears. As such, the problem of handling corpses is a major problem in the history of human life in ancient Greek society. However, the new king, Creon, orders that those who perform the traitor's funeral will become crow rice in the field.

 

Eteocles, who fought for our city and died as an outstanding longman in every way, will bury him in the tomb and perform every ritual worthy of the finest messengers of the basement. But Paulneikes, brother of him, I say, returned from exile and tried to burn the land of his fatherland and the gods of his ancestors completely with flames, to drink the blood of his relatives, and to take the rest as slaves. I let you know. No one should bury him or mourn him, but leave his body unburied so that it may become a food for flocks and dogs and a shameful sight (Antigone, 195-205).

 

5. From the standpoint of the ruler who defends the national law, this order can be considered extremely natural. If those who rebel against their country were treated the same as those who died trying to protect the country, the order of governance would no longer be preserved and the state would fall into chaos. This is because the ruler must clarify the difference between right and wrong, affection and negation in relation to people's actions. “If someone wants to outdo the law and command his rulers, I can never praise him. Anyone who has built a city deserves to obey whether it is big or small, right or wrong” (Antigon, 663-668). However, Antigone, the brother and sister of the deceased, contradicted the king's orders, and gave the funeral of the deceased brother Polyneikes. Antigone proudly justifies his actions for Creon's reprimand of "you dare break the law?"

 

"Yes, it wasn't Zeus who gave me the decree, and the goddess of justice, who lives with the gods of the lower world, did not make such a law among the people. I also say your command, the unwavering destiny of the gods. I didn't think they were powerful enough to be ignored by humans, who are going to die, because they didn't come from yesterday and today, but because they live forever, and no one knows where they came from.” (Antigone, 450-460)

 

From Creon's perspective, Antigone's behavior seems to be relentless. This is because Antigone appears to have a strong confidence in his actions, not simply by violating the king's orders. In ancient Greece, the dead belonged to the world of Hades, so the custom of burying the body to return it to that world is the greatest courtesy of the dead. This final duty of burying the dead belongs to the complete divine law, and it can be said to be an active human action that the family can do. Whereas Creon issued an order to disregard the laws of Hades and adhere to the laws and order of the state, Antigone believes that having a funeral, no matter how much he is a traitor of the state, is in accord with heaven.

 

6. Their thoughts are so stubborn that they don't try to step back from each other. The confrontation between Creon and Antigone is like a train running facing each other while fully anticipating catastrophe. A third party tries to mediate, but he uses the innocent kids, but the seeds don't work at all. Antigone's fiance and Creon's son, Hymon, struggled to persuade his father Creon before committing suicide.

6. Their thoughts are so stubborn that they don't try to step back from each other. The confrontation between Creon and Antigone is like a train running facing each other while fully anticipating catastrophe. A third party tries to mediate, but he uses the innocent kids, but the seeds don't work at all. Antigone's fiance and Creon's son Hymon struggles to persuade his father Creon before committing suicide. “Don't just have one thought in your heart. Do not think that only the words of your father are correct and that other things are not right” (『Antigone』, 705-707). Yes. How do we know that only I am right and others are not right? This postmodern relativism, which each thinks they have their own standards, is not unique to today. Even long ago, people thought about and tailored the world in their own way. How do you know who is right and who is wrong at this time? Because we don't know, we don't know, aren't we constantly communicating with more people and looking for objective and rational standards that they can understand? This is also said in Eastern classics.

 

“You and me are arguing. If you beat me and I didn't beat you, are you really right and am I really wrong? If I beat you and you didn't beat me, am I really right and you really wrong? If one is right, is the other necessarily wrong? Is there a case where both sides are right or both sides are wrong? ... Who can I ask to judge this?” (『The Firstborn』)

 

When it is difficult to easily judge right or wrong, the greatest wisdom lies in a kind of'openness' that can make mistakes with each other, and the greatest stupidity lies in the'closeness' of stubbornness that asserts one's infallibility. So, the more powerful and high-ranking people, the more humble you should be able to open your ears and listen to others. The most foolish, or even more, evil virtue as a leader is the stubbornness of not listening to anyone. Even in the past, it goes without saying in an open democratic society like today. I see this stubbornness and closure in Creon of Antigone.

 

Creon says. “Am I supposed to learn Sari from such a young man at this age?” (Antigone, 726-727). He adamantly rejects the advice of his beloved child, Hymon. The king stubbornly adheres to his own authority. Moreover, I hate accepting this advice and allowing Antigone's attitude as much as surrendering to a humble woman.

 

We protect what brings order, and we must never lose to a woman. If we had to, it would be better to fall into the hands of a man than to be told that we lost by a woman (Antigon, 677-680).

 

It may be. On the outside, the cause of the nation's legal order is defended, but behind that, the biological dignity of how a man can lose to a woman may be hidden. The will of survival instinct to protect each one's own life, and the primitive instinct of not being able to yield to their jurisdiction may be at work. This biological instinct is common to all living things, so how would it be different to be human? But it is. In other words, what is human being? It is not because of such primitive instincts and biological pride, but in spite of such things, is there not the nobility and greatness of the human mind in the way that you dare to reach out and bear warmth?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animals and humans? Where is the divergence between biology and ethics? <continue> jogel4u@outlook.com

 

*Author/Lee Jong-cheol

Doctor of Philosophy. Yonsei University Humanities Research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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