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총탄'을 쏜 안중근과 중국 하얼빈

역사적인 의거 통해 하얼빈은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해외 역사도시

권기식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0/10/23 [09:56]

▲ 안중근의 역사적인 업적.    ©브레이크뉴스

 

19091026일 오전 930분 하얼빈역에서 3발의 총성이 울렸다. 메이지유신과 일본 근대화의 주역이자 대한제국 멸망의 주범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을 약관 31세의 청년 안중근이 쓰러뜨리는 순간이었다. 이 역사적인 의거를 통해 하얼빈은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해외 역사도시가 되었다.

 

당시 안중근 의사가 쏜 총은 분노의 총탄이 아니라 '평화의 총탄'이었다. 그는 조국의 위기를 걱정하는 애국지사를 넘어 동양의 평화를 걱정하고 실천한 '동양평화의 지도자'였다.

 

의거 직후 부터 계속된 취조와 재판에서 그는 시종일관 자신의 거사가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당당하게 주장했다.침략주의로 치닫는 일본 제국주의의 몸통인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하는 것이 동양의 평화를 지키고 일본 국민들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거사 이유였다. 이후 진행된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불러온 참화를 보면 안 의사의 통찰력과 혜안에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된다.

 

▲ 안중근 의사.

안 의사가 체포되고 뤼순감옥에 수감돼 재판을 받는 동안 뜻있는 일본인들이 그를 옹호하고 지원했다. 뤼순감옥 소장 구리하라 사다기치, 간수 치바 토시치, 검찰관 야스오카 세이지로, 취조관 미조부치 타카오, 통역관 소노키 스에요시, 교화책임자 치다 카이준 스님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법원에 안 의사에 대한 선처를 탄원했고,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이들은 안 의사를 '동양평화의 수호자'이며, 일본의 평화를 위해 행동한 의인으로 생각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존경과 지지는 중국인들에게 더욱 뜨거웠다. 쑨원 등 많은 중국 지도자들이 안 의사의 의거를 지지하고 격려했다. 이로써 안중근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동양인의 영웅이 되었다.

 

하얼빈은 그런 안중근을 품은 역사 도시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더욱 친숙하고 정겨운 도시, 방문하고 싶은 도시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 많은 한국인들이 하얼빈을 찾은 것은 하얼인의 아름답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큰 이유는 안중근 의거의 역사적인 현장을 보고 평화의 정신을 되새기기 위함이었다. 한중도시우호협회가 지난 2018년부터 매년 하얼빈을 방문해 '안중근동양평화문화축제'를 여는 것도 안 의사의 동양평화 정신을 기리고 하얼빈 시민들에게 감사와 우정의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행사가 어려워 흑룡강신문에 의거 정신을 기리는 광고를 내고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헌화를 하는 걸로 서운한 마음을 달래려 한다.

 

중국 정부와 하얼빈시가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훌륭하게 만들어 재개관하고 잘 관리해주는 것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하얼빈시에 대한 우호적인 생각으로 이어져 한국에서 하얼빈 관광 붐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하얼빈은 '평화도시'이다. 일본의 히로시마나 한국의 제주도와 광주시 등이 평화도시를 지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만 안중근 의거의 역사적 현장과 731부대 유적지가 있는 하얼빈은 세계적인 평화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역사자산이 매우 풍부한 곳이다.

 

▲ 권기식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안 의사의 평화정신이 깃든 자오린 공원과 쑹화강, 하얼빈 역을 다시 거니는 날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안 의사 역사유적을 잘 지키고 가꾸는 하얼빈시와 시민들에게 각별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하얼빈시가 세계적인 평화도시로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남양주시 국제협력 특별고문 등을 맡고 있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Ahn Jung-geun and Harbin, China shot the'Peace Bullet'

Based on historical grounds, Harbin is the most familiar foreign historical city to Koreans.

-Kwon Ki-sik columnist

 

On October 26, 1909, at 9:30 am, three guns rang at Harbin Station. It was the moment when Ahn Jung-geun, a 31-year-old young man, defeated Hirobumi Ito, the protagonist of the Meiji Restoration and the modernization of Japan, and the main culprit of the fall of the Korean Empire. Through this historical basis, Harbin has become the most familiar foreign historical city to Koreans.

 

At that time, the gun that Dr. Ahn Jung-geun shot was not a bullet of anger, but a bullet of peace. He went beyond a patriotic branch who was worried about the crisis in his country, and was a'leader of peace in the East' who worried and practiced peace in the East.

 

In interrogations and trials that followed immediately after the election, he confidently insisted that his success was to protect ``peace in the East.'' Eliminating Hirobumi Ito, the body of Japanese imperialism leading to aggressionism, is the peace of the East. It was the reason for his rebellion that he could protect the Japanese people and ensure a peaceful life for the Japanese people. After seeing the catastrophe brought about by the Japanese imperialist war of invasion, Dr. Ahn's insight and insight spontaneously bowed his head.

 

지난해 1026일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방문해 의거 기념행사를 하는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가운데)과 공연단.   ©브레이크뉴스

 

While Dr. Ahn was arrested and imprisoned in Lushun's prison for trial, meaningful Japanese defended and supported him. These include Sadagichi Kurihara, the head of the Prison Rushun, Toshichi Chiba, the prosecutor, Seijiro Yasuoka, the prosecutor, Takao Mizobuchi, the interrogator, Sueyoshi Sonoki, and the monk Kaijun Chida, the head of rehabilitation. They petitioned the court for preemption of Ahn's doctor and provided various conveniences. They regarded Doctor Ahn as a'guardian of Eastern peace' and a righteous man who acted for peace in Japan.

 

The respect and support for Dr. Ahn Jung-geun was even hotter among the Chinese. Many Chinese leaders, including Sun Yuan, supported and encouraged Ahn's remarks. With this, Ahn Jung-geun became a hero of not only Koreans, but all Asians who love peace.

 

Harbin is a historical city that embraces Ahn Jung-geun. So, it has become a more familiar and friendly city to Koreans and a city that you want to visit.

 

Before the Corona 19 pandemic came, many Koreans visited Harbin because they liked the beautiful and exotic atmosphere of Harin, but the bigger reason was to see the historic scene under Ahn Jung-geun and recall the spirit of peace. The Korea-China Friendship Association has visited Harbin every year since 2018 and held the'Anjung Geun East Peace Culture Festival' to commemorate Dr. Ahn's spirit of peace in the East and to express gratitude and friendship to the citizens of Harbin. This year, the event is difficult due to Corona 19, and according to the Heilongjiang Newspaper, an advertisement to commemorate the spirit will be posted and a wreath will be placed at the Memorial Hall of Ahn Jung-geun at Harbin Station.

 

Many Koreans are grateful that the Chinese government and the city of Harbin have reopened and managed the Ahn Jung-geun Memorial Hall in Harbin Station. This naturally led to a friendly thought of Harbin City, which led to the Harbin tourism boom in Korea.

 

Harbin is a'peace city'. In the same context as Hiroshima in Japan and Jeju and Gwangju in Korea aim for a peace city, Harbin, where the historic site of Ahn Jung-geun and the site of Unit 731, is a place rich in historical assets that can grow into a world-class peace city.

 

I look forward to the day I walk back to Zhaolin Park, Songhua River, and Harbin Station, where Doctor Ahn's spirit of peace resides. In addition, I would like to express my special thanks to the city of Harbin and the citizens for keeping and caring for the historical remains of Dr. An. I hope that Harbin will further develop into a world-class peace city.

 

Writer/Kwon Ki-sik, President of Korea-China Friendship Association

 

After serving as a reporter for the Hankyoreh Newspaper and the head of the Blue House Political Bureau, he served as the chairman of the Yeongnam Maeil Newspaper and the chairman of the 2018 Pyeongchang Winter Olympics Private Organization Council. He worked as a professor at the 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at Hanyang University, a visiting professor at Shizuoka Prefectural University invited by the Japanes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a visiting scholar at Tsinghua University invited by the Chines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He is a chair professor at Seoul Media Graduate University and a special advisor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 in Namya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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