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라임∙옵티머스 사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부자의 사회적 기여

이길원 박사 | 기사입력 2020/10/18 [13:42]

▲ 이길원 박사.  ©브레이크뉴스

부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흥부와 놀부 얘기에서 우리는 부자라는 어휘가 비도덕성과 지나친 욕심, 파렴치함의 상징으로 배웠다. 보통 사람들이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때로는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치한 소비생활을 보면서 부자는 타락한 인종이라고 욕설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했고 이런 이유로 시샘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군사정권 시절 정경유착 혹은 정부의 정책적 특혜 등을 통해 거부가 된 재벌들은 불공정과 부도덕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청업체를 선정할 때 친인척에게 이권을 주는 대 기업의 편파적 횡포는 불공정한 경쟁의 전형으로 낙인이 찍혔고 그래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한 마디로 부자는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불공정의 결정판이라는 인식이 한동안 일반의 생각을 지배하게 했다. 이런 인식은 GDP30,000불을 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국민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터진 라임과 옵티머스 사건은 부를 쌓기 위해 권력과 결탁한 부자 지망생들이 보여주는 부도덕의 극치로 보여 진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형성된 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그러나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에게는 매우 효과적인 여건을 제공한다. 예컨대 소득 평준화를 명분으로 한 부자증세와 부를 창출하는 기업에 대한 다양한 규제와 조세정책을 사회정의의 실현으로 정당화 시키고 이것은 부자에 대한 증오심을 심화시켰다.

 

19 세기 마르크스와 엥겔의 공산주의 선언은 부자가 가난한 계층을 착취하기 때문에 제거해야 하는 계급으로 규정하였다. 부와 소득의 평등을 폄하하거나 반대의견을 제시하면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게 되고 지지 세력을 잃는 것이 오늘 날의 사회정치적 현실이다. 과연 이런 현상은 바람직한 현상이고 따라서 부자는 매도되거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하는 존재인가? 만약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 특히 부의 불평등을 비난하는 정치인은 정말 부의 축적에 전혀 욕심이 없는 것일까?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부자의 사회적 기여

 

이상 언급한 부자에 관한 부정적 인식에 대한 반론으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부자들의 사회적 기여를 살펴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대개의 경우 대량생산을 통하여 소비자를 최대로 만족시키는 기업가가 생존하고 번영하게 된다. 그 결과 성공한 기업주와 창출된 일자리 즉 직원, 그 기업에 납품하는 업체들이 먼저 많은 소득을 확보하고 부를 쌓게 된다. 성공한 기업가의 일자리 창출은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과도한 징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 보다 훨씬 건전한 경제적 결과를 낳는다. 시장 경제체제하에서 기업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의 도입과 생산성을 높이는 기계, 시설, 즉 자본재와 질 좋은 부품의 활용이 필요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축적된 자본이다. 그런데 이 자본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바로 부자 즉 자본가이다. 물론 자본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억만장자가 아니다. 번 수입을 모두 소비하지 않고 저축하거나 기업에 직간접으로 투자한 사람들은 모두 자본가이다. 그래서 현대의 자본가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노동자를 착취하는 계급이 아니고 부의 생산에 기여하는 일반 사람들이다. 또한 투자의 성공 여부에 따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수시로 바뀐다. 이것은 왕조시대나 봉건제도 하에서 신분이 정해지면 평생 바뀌지 않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경영을 어렵게 하는 최저임금제, 52시간 근무제 등의 기업 활동 규제는 현 노동자(근로자)가 나중에 기업을 운영할 때는 당연히 부담이 된다. 부유층과 가난한 계층이 수시로 바뀌는 역동적인 체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이기 때문에 부자를 죄악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문제는 부자에 대한 시샘, 다분히 감성적인 적개심, 시쳇말로 배고픔은 참을 수 있어도 배 아픔은 참을 수 없다는 비합리적 감성이 많은 사람들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완성한 것은 18세기 후반(1776), 이 시기는 제임스 왓트의 증기기관 발명이 계기가 되어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때였다. 인류의 생활수준은 그 이전까지는 일주일 내내 일을 해도 간신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였고 평균수명과 유아사망률이 현재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을 정도의 큰 차이를 그 동안 인류는 경험해왔다. 18 세기 이후 급속한 부의 증가는 분업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부가 창출되는 자유 시장경제 체제 덕분이었다. 그래서 미국과 서구의 여러 나라들은 물론 우리나라도 이미 주 40 시간만 일해도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부의 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덕분이고 이런 발전에 필수적으로 기여한 것이 바로 부자 혹은 자본가 이다.

 

정치인의 사회정의를 내세운 부의 불평등 해소 정책은 과연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무엇이 사회정의인가는 깊은 철학적 연구과제이다. 18세기 이후 인류가 누린 괄목한 생활수준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적인 궁핍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소득불평등 해소를 주장하는 정치세력에게 다수의 유권자는 지지를 보낸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결정을 하기 전에 반드시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년 소득이 2,500만원인 저 소득층과 5,000 만원의 고 소득층이 있다고 가정하자.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부유계층에 대한 고율의 징세가 자본축적을 저해하고 그 결과 자본 축적이 그만큼 줄어들어 부의 생산이 감소한다.

 

이로 인해 모든 계층의 년 소득이 2,000만원으로 평준화는 달성되었지만 소득은 오히려 감소하여 전체 국민의 생활수준은 이전과 비교하면 더 가난하게 된다. 반면 이에 비해 부자증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가 없거나 적을 경우에 그 결과로 자본축적이 증가하고 전체적인 부의 생산이 늘어나는 경제성장의 결과 부유층 및 저소득층의 소득이 모두 2 배로 늘어나 각각 1억과 5,000만원이 되었다. 이로 인해 비록 소득격차는 증가되었지만 두 계층 모두 생활수준의 향상이 가능해 졌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느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한가?

 

1979년 대처(Margaret Thatcher) 영국수상이 집권한 이후 영국 국민의 소득 격차는 증가했으나 절대빈곤 비율은 197960%에서 199040% 그리고 199735%로 줄어들었다. 또 소득의 불평등 정도가 가장 낮은 우크라이나(지니계수 25.0)에 비해 가장 높은 호주(지니계수 35.8)의 평균소득 수준은 우크라이나에 비해 월등히 높으며 중국의 경우 1990년 이후 소득의 불평등 정도가 증가했지만 수억 명의 국민이 절대빈곤으로부터 벗어났다. (참고 : Eben McDonald, Setting the Record Straight on Income inequalityhttps://news.joins.com/opinion/editorialcolumn/list?cloc=joongang-section-subsection)

 

소득격차가 늘어나지만 전체적인 생활수준의 향상은 우리가 경험한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 때 부자들만 TV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전자제품과 자가용 승용차등을 소유하여 보통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샘, 질투의 대상이던 부자들만이 향유했던 그런 고가의 내구소비재는 오늘 날엔 최하위의 소득계층도 모두 누리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비록 거부(巨富)의 소비패턴이 위화감을 부를 만큼 방만하더라도 그들은 쌓은 부의 극히 일부만 소비할 뿐 대부분은 부의 창출에 재투자 하고 때로는 그 투자가 송두리째 상실되는 위험도 감수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일반의 선입견과는 달리 부자 혹은 자본가는 모든 국민에게 경제성장의 혜택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결코 비난을 받거나 배척의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칭찬받는 것이 마땅하다.

 

현명한 소비자는 이미 설명한 것처럼 경제성장보다 소득불평등 해소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정치권력의 선동에 비판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정경유착 혐의를 받고 있는 라임과 옵티머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정경유착 사건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부유층, 자본가 혹은 기업가의 명예를 손상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런 사건이다. andrewkwlee@naver.com

 

*필자/이길원

 

 

경영학 박사. MBA-American 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management. 영남대학교 객원 교수. Finance Director-한국화이자(주) CEO-BBX Korea.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Lime-Optimus case that defames the rich

 

The social contribution of the rich under the capitalist market economy system

-Dr. Gilwon Lee

 

Social perception of the rich

 

In the story of Heungbu and Nolbu, we learned the vocabulary of rich as a symbol of immorality, excessive greed, and shame. While seeing the luxurious consumption life that ordinary people can't dare to imagine, sometimes thought of as waste, it was common to swear that the rich were a corrupt race, and for this reason, they were envy and criticized. During the military regime, the chaebols that were rejected through political or political conflict or government policy preferences became synonymous with injustice and immorality. When selecting a subcontractor, the biased tyranny of large corporations, which gives interests to relatives, was stigmatized as the epitome of unfair competition, and thus became a target of social criticism. All of this, in a word, made the perception of the rich as the definitive version of injustice against social justice for a while dominated the general idea. This perception still affects the thinking of many people even today, when the GDP exceeds $30,000. The recent Lime and Optimus incidents are seen as the culmination of immorality shown by rich aspirants who collaborated with power to build wealth. The negative image of the rich, formed for these various reasons, however, provides a very effective condition for political forces seeking power. For example, the realization of social justice justified various regulations and tax policies for the wealthy tax and wealth-generating companies based on income leveling, which intensified hatred toward the rich.

 

In the 19th century, Marx and Engel's Communist Manifesto defined the class as a class to be eliminated because the rich exploited the poor. It is today's socio-political reality that disparaging the equality of wealth and income or giving a dissenting opinion will result in political damage and loss of support. Indeed, this is a desirable phenomenon, so is the rich to be sold or morally criticized? If so, why do so many people want to be rich? In particular, are politicians who criticize wealth inequality really not greedy for wealth accumulation?

 

The social contribution of the rich under the capitalist market economy system

 

As a counter-argument to the above-mentioned negative perception of the rich, we look at the social contributions of the rich under the capitalist system.

 

In the capitalist market economy system, entrepreneurs who maximally satisfy consumers through mass production of goods and services desired by consumers in most cases survive and prosper. As a result, successful business owners and created jobs, that is, employees, and companies that supply them, first secure a lot of income and build wealth. Job creation for successful entrepreneurs has far more sound economic consequences than income redistribution through excessive taxation targeting the wealthy. In order for an entrepreneur to succeed under a market economy, it is necessary to introduce cutting-edge technologies and to utilize machinery and facilities that increase productivity, that is, capital goods and high-quality parts, and it is the accumulated capital that makes this possible. But the people who supply this capital are the rich, or capitalists. Of course, those who provide capital are not necessarily billionaires. Anyone who saves or invests directly or indirectly in a company without spending all of their earnings are capitalists. Thus, modern capitalists are not the class of exploiting workers, as Marx argued, but ordinary people who contribute to the production of wealth. Also, depending on the success of the investment, the rich and the poor change from time to time. This is in stark contrast to the fact that in the period of the dynasty or under the feudal system, the status did not change throughout life.

 

Regulations on corporate activities, such as the minimum wage system and the 52-hour work week system, which make management difficult, are naturally burdensome when current workers (workers) run the company later. It is not rational to regard the rich as a sin because the capitalist market economy system is a dynamic system in which the rich and poor are changed from time to time. The problem is that envy toward the rich, emotional hostility, and irrational sensibility that hunger can be tolerated, but hunger is unbearable, dominates the emotions of many people.

 

Adam Smith completed the theory of national wealth in the late 18th century (1776), when James Watt's invention of the steam engine triggered the industrial revolution. Until then, humanity's standard of living was such that he could barely eat and live even if he worked for a whole week, and humans have experienced such a large difference that the average life expectancy and infant mortality rate are different compared to the present. The rapid increase in wealth since the 18th century was due to the free market economy system in which wealth was created by invisible hands through division of labor. So, not only the United States and Western countries, but also Korea already enjoys a considerable level of economic prosperity by working only 40 hours a week. This is due to the capitalist market economy system that enables the creation of wealth, as already mentioned, and it is the rich man or the capitalist who has contributed essential to this development.

 

Can a policy to address inequality in wealth that promotes social justice by politicians really achieve its purpose?

 

What is social justice is a deep philosophical research subject. Despite the remarkable improvement in living standards that humanity has enjoyed since the 18th century, inequality between income and wealth has made people feel relative need. So, the majority of the voters send their support to the political forces that are advocating for the resolution of income inequality. Before making this decision, a reasonable person must think about which one to choose in the following cases.

 

Suppose there are low-income people with an annual income of 25 million won and high-income people with an annual income of 50 million won.

 

The government's high rate of taxation on the wealthy class, aimed at resolving income inequality, hinders capital accumulation and, as a result, decreases capital accumulation, resulting in a decrease in wealth production.

 

As a result, the level of income was achieved at 20 million won per year for all classes, but the income decreased, and the standard of living of the whole people was poorer than before. On the other hand, when there is no or less redistribution of income through the rise of wealth, as a result of economic growth in which capital accumulation increases and overall wealth production increases, the income of both the rich and the low-income class doubled to 100 million and 50 million won, respectively. This made it possible to improve the standard of living for both classes, although the income gap increased. In this case, which choices are we wise to make?

 

After British Prime Minister Margaret Thatcher came to power in 1979, the income gap for the British people has increased, but the absolute poverty rate has decreased from 60% in 1979 to 40% in 1990 and 35% in 1997. In addition, the average income level of Australia (Gini coefficient 35.8), which is the highest compared to Ukraine (Gini coefficient of 25.0), which has the lowest level of income inequality, is much higher than that of Ukraine.In China, the degree of income inequality has increased since 1990, but hundreds of millions of people You have escaped from this absolute poverty. (Reference: Eben McDonald, Setting the Record Straight on Income inequality https://news.joins.com/opinion/editorialcolumn/list?cloc=joongang-section-subsection)

 

Although the income gap is widening, the overall improvement in living standards can be easily confirmed by the following facts we have experienced. At one time, only the rich owned TVs, various types of electronic products, and private cars, and these expensive durable goods enjoyed only by the rich who were the object of ordinary people's envy, envy, and jealousy. It has become a necessity for life.

 

What we need to know is that even if the consumption pattern of rejection is negligible enough to cause a sense of incongruity, they consume only a fraction of the wealth they have accumulated, but most of them reinvest in the creation of wealth, and sometimes they risk losing that investment.

 

In view of this, it is deserved that the rich or the capitalist, unlike the general prejudice, are never to be criticized or excluded, but rather praised in that they give the benefits of economic growth to all citizens.

 

Smart consumers need to respond critically to the agitation of political power that places greater value on resolving income inequality than economic growth, as already explained. For this reason, Lime and Optimus, who are accused of collusion with political power, and similar collusion between economics and economics, are very regrettable in that they damage the honor of the wealthy, capitalists, or entrepreneurs who contribute to economic growth. andrewkwlee@naver.com

 

 

*Writer/Kilwon Lee

 

Doctor of Business Administration. MBA-American 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management. Visiting professor at Yeungnam University. Finance Director-Pfizer Korea, CEO-BBX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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