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防疫)이 통치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일상(日常)을 되찾게 해주는 여유 있고 넉넉한 방역 정부 되기 기대

이영일 전 의원 | 기사입력 2020/09/17 [08:48]

▲ 이영일     ©브레이크뉴스

지난 70년의 한국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역대집권세력들은 언제나 상황의 요구에 맞춰 통치수단을 개발, 활용해왔다. 한일관계가 악화(惡化)하거나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반일 Nationalism이 통치수단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가장 오랫동안 역대 정권들이 크게 활용한 통치수단은 한반도의 분단 현실과 긴장을 배경으로 조장된 국가안보였다. 국가안보를 구실로 국민들의 정치 생활의 상당 부분을 제약했다. 군사 권위주의 시대의 통치수단은 한마디로 국가안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이 명분이 통용될 수 있을 만큼 북한으로부터의 안보위협도 끊이질 않았다. 간첩남파나 무장공비의 침입 같은 이른바 북한의 혁명 투입 공작이 이어져 왔다.

 

한미연합방위체제가 구축된 이후로는 간접침략으로 정의될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陣地戰)이나 기동전 같은 좌파이념과 세력의 구축 공작도 꾸준히 행해졌다. 그러나 내외정세의 변동과 한국의 국력 신장, 이러한 배경을 딛고 나온 민주화 요구의 확산과 더불어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하는 통치수단의 기능은 약화(弱化)되었다.

 

그러나 중국발 폐염 바이러스(코로나 19)의 위세가 반년을 넘길 만큼 장기화되면서 부터 방역을 통치수단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시작한다. 지난 달 8.15에 광화문에서 열린 시위 집회는 문재인 정권의 실정(失政)에 항의하기 위해 집결한 비폭력시민운동이었다. 이 시위는 정부가 원하지 않는 반정부 시위였지만 결코 방역 체제에 대한 도전은 아니었다. 정부가 권면하는 코로나 시대의 백신이라 할 수 있는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운집한 반정부 시위였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 사태에 대해 직접 나서서 반정부 시위를 방역체계에 대한 도전으로 시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왜곡하고 이를 빌미로 특정교회를 방역에 계획적으로 도전, 마치 코로나 역질을 확산시킨 범죄집단처럼 몰아갔다. 이때부터 방역의 의미는 변질된다. 방역이 구시대의 국가안보처럼 통치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11일 충북 청주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에서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감염병 대응 및 질병관리 예방체계의 도약을 당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국가안보가 통치수단의 하나일 때는 일반 국민들은 정치 활동에만 제약을 받았을 뿐 먹고 사는 문제에는 아무 제약이 없었다. 돈벌이도 좋았고 경제도 발전했다. 그러나 코로나 19시대는 방역이 국가통치의 수단이 되면 완벽한 백신이 나오지 않는 한 국민 생활 전반이 비대면(非對面) 사회의 늪에 빠져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침체를 피할 수 없다. 국민들은 굶어 죽느냐, 아니면 역질에 걸려 죽느냐와 같은 심각한 선택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역이 통치수단으로 규정되어 국민저항을 유발한다면 국민의 자발적 호응과 협력 대신에 갈등만 증폭되는 내상(內傷)확대의 위기가 심화된다.

 

코로나 19의 발원지로 전 세계를 역질의 소용돌이로 몰아간 중국은 지난 9월 8일 시진핑 주석의 주재하에 코로나 방역의 종결을 선언하고 방역에 유공(有功)한 사람들을 국가가 포상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였다. 중국에서 코로나 19가 종료되었다는 중국정부 발표를 액면대로 믿을 주변 국가들은 거의 없다. 혈맹이라는 북한도 중국의 주장을 믿지 않고 방역 단속을 엄히 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코로나 19 단속상황을 지속하다가는 경제가 폭망할 위기를 막기 때문에 대충 종료를 선언하고 추후 확진자가 생기면 이들을   독감 환자로 분류하면서 버틸 요량인 것 같다. 또 아직 개발이 끝나지도 않은 중국산 백신을 아시아 주변국들에게 입도선매(立稻先賣)하면서 미국이 펼치는 중국포위망에 그들이 파트너로 참여하지 못하도록 ‘백신 선심 외교’를 벌이고 있다. 종료선언을 서두른 것은 이런 환경공작의 한 방편 같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정부의 내치외교를 망라한 총체적 실패에 항의하는 종교단체나 시민단체들에 대해 방역을 명분으로 공권력을 동원, 항의를 제압, 단속하려 하지만 바로 그런 자세를 갖는 순간부터 방역은 정상적인 의미의 방역이 아니라 정치 방역 즉 통치수단으로 변질된다는 사실을 깊이 유념해야 한다. 

 

이른바 민주화를 주도해왔다고 자부하는 정부라면 비판, 저항세력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방역과 무관한 크리스천들을 방역에 대한 도전세력으로 모는 우매한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대 종교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고대 로마가 역질에 휩싸였을 때 역질희생자들을 돌보는 데 기독교가 앞장섰기 때문이다. 이런 고사(古史)를 상기하면서 크리스천을 방역방해자로 간주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신도들의 예배를 무작정 막겠다는 무모함도 버려야 한다. 마스크 착용 이외의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라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일상(日常)을 되찾게 해주는 여유 있고 넉넉한 방역 정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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