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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경 화가 전시회, 슬픔과 비애의 미학이 낳은 생명의 찬가

8월7일부터 8월30일까지 롯데갤러리 일산점에서 전시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0/08/07 [09:22]

 

▲ 송민경의 봄봄전 (목련의 시간 바느질) 포스터 - 롯데갤러리(롯데백화점 일산점)     © 브레이크뉴스


8월 7일(금)부터 8월 30일(일)까지 롯데갤러리 일산점에서 열리는 (목련의 시간 바느질)이라는 부제를 담은 여류화가 송민경의 전시 도록을 한 장 한 장 펼쳐 들었다. 순백한 목련꽃이 흐드러진 작품과 무수한 별들이 가슴을 태우는 작품을 바라보며 슬픔과 비애의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놓아 가슴으로 쓰고 싶은 글이 있었다.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상징하는 가슴은 명확하게 신체의 일부이다. 그러나 저마다의 품성으로 이루어진 마음은 감정과 생각을 품은 자신만의 그릇과 같다. 이와 같은 가슴과 마음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 중에서 아픔과 통증으로 대표되는 슬픔과 비애의 차이는 마치 가슴과 마음처럼 비슷하면서도 분명하게 구분되고 있다. 이는 슬픔이 정신적인 고통으로 매만져지는 직접적인 감정이라면 비애는 슬픔의 빙하에서 녹아내린 서러움과 같은 의미이다.     

 

작가의 작품에는 이와 같은 슬픔과 비애의 미학이 겹겹으로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작가의 작품을 지켜보면서 느껴진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그림이라 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림 심상(心象)은 과연 무엇일까?


이와 같은 생각을 매만지면 작가의 작품에 존재하는 메시지와 같은 나무를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작가의 작품에 서 있는 나무는 자연의 단순한 시각적 대상의 표현이 아닌 생명의 바탕인 자연과 인간의 인과성을 관통한 의식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에 작품 자체로 존재하는 작가의 마음에서 키워온 나무와 같은 것임을 일깨우게 한다.  

 

오래전 기획전시에 어느 미술관 학예실장의 추천으로 작가의 작품을 처음 대면하였다. 이후 오랫동안 작가와 작품을 지켜본 느낌은 맑은 의식의 예술가였다. 오랜 시대를 거슬러 오르는 선비의 덕목 중에 청빈(淸貧)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무능한 삶이 아닌 맑은 의식이 원인이 되어 주어진 삶을 말한다. 가난하지만, 흐트러지지 않은 의식을 품은 진정한 예술가, 승화된 예술혼으로 따뜻한 마음을 그리는 소중한 의식이 가슴에서 느껴지는 글을 쓰게 하는 이유이다. 

 

▲ 송민경 作: See Spring series color on korean paper on canvas 181.8×181.8cm 2019     © 브레이크뉴스

       
작가의 작품은 시간 바느질이라는 작가의 표현처럼 한지위에 겹겹의 채색작업이 섬세하게 드리워진다. 마치 달빛에 젖어드는 세상처럼 깊은 울림의 여운이 빚어지는 과정이다. 이와 같은 작가의 작업을 슬픔과 비애의 미학으로 해석하는 맥락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먼저 심리적인 균형의 경계를 승화시킨 의식이다. 이는 작가 스스로 유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인 체험과 간접적인 인식에서 건져 올린 슬픔과 비애의 인식이 남다른 사실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의식에서 슬픔과 비애의 통증을 승화시킨 따뜻한 포용의 감성이 희망을 품은 메시지로 나타나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헤아려지는 또 다른 관점은 슬픔과 비애의 승화된 미학이다. 이는 통증으로 계량되는 슬픔과 비애를 삶의 찬가로 승화시키려는 작가 내면에 담긴 분명한 의지이다. 이에 작가는 작품을 통하여 세상 모든 생명이 가져야하는 유·무형적인 통증을 생명의 바깥으로 버려야 하는 폐기가 아닌 숨결 속으로 품고 있다. 이는 모든 생명의 탄생이 통증에서 비롯된 사실에 바탕을 두는 의미이다. 작가는 한 그루 나무가 얼어붙은 땅에서 인고의 숨결을 지켜내어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 다시 잎을 떨구는 신성한 의지를 안고 슬픔과 비애의 징검다리를 건너 인간의 품에 안착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의식에서 빚어진 작가의 작품은 따뜻하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질감이 아닌 가슴으로 더욱더 깊게 느껴지는 특성이 있다. 이에 작가의 작품은 화면 가득한 빛깔과 형태가 작품을 구성하는 부분적인 객체가 아닌 정신성의 실체로 존재한다. 이는 작가의 작품 화면이 곧 세상이며 작품 속의 나무가 단순하게 그려진 대상이 아닌 모든 존재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특성을 해체하여 보면 문학작품에서 중시되는 밖(행위)과 안(심리)이 균형 속에서 어우러지며 전개되는 이야기인 플롯(plot)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작가의 작품에 담긴 의식을 헤아리며 역사적으로 슬픔을 관통한 문학 작품 중에서 독일의 시인이며 표현주의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가 1944년 발표하였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생각하였다. 시인은 격동하는 역사의 바람 속에서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는 구절로 친구인 비평가 발터 벤야민(1892~1940)과 독일 여배우 마가레트 슈테핀(1908~1941) 그리고 카를라 네어(1900~1942)가 떠나간 세상에 남은 자신을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노래하였다.

 

이는 살아있는 존재의 자각은 곧 슬픔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슬픔과 비애의 통증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생명의 신성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살아있기에 끝없는 아픔에 맨살을 내어주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과 노력이 바로 삶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와 같은 가장 보편적인 섭리를 슬픔과 비애의 미학으로 품은 송민경 작가의 작품에서 예술이 가지는 승화된 정신성의 힘을 가늠하게 된다.  
           
이와 같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통하여 드러난 슬픔과 비애의 정점은 마침내 이별과 만나게 된다. 이는 가장 보편적으로 대중적인 감성을 대표하는 대중가요(팝송)에서 더욱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대중가요(팝송) 중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는 노래로 세상을 뒤흔든 가수가 있었다. 우수에 젖은 허스키한 음색으로 세계를 흔든 미국의 팝가수 멜라니 사프카(Melanie Safka)이다. 가수의 노래 중에 (슬픈 것들) 또는 (가장 슬픈 것-The Saddest Thing)으로 번역되는 노래의 첫 소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And the sad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을 고하는 것입니다-Is to say goodbye To the ones you love)이다.

 

이렇듯 격동의 시대에 자신의 구두 숫자보다 이상을 찾아 옮겨 다닌 국적이 더 많았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거나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을 고하는 것입니다)라고 노래하는 대중가요의 슬픔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영원한 이별(죽음)을 품고 있다. 이는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흐르는 슬픔과 비애의 통증은 살아있는 자의 몫이라는 사실에서 결국 가장 숭고한 생명의 가치는 슬픔과 비애의 인식이라는 사실이다.  

 

이렇듯 슬픔과 비애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송민경 작가의 작품에 존재하는 나무가 상징하는 의미는 크다. 마지막 세상의 소임을 다하는 날까지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나무를 통하여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가져야 하는 슬픔과 비애의 미학으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찬가를 빚어내는 작가의 깊은 예술혼이 많은 사람에게 헤아려지기를 기대한다.  artwww@naver.com

 

▲ 송민경 作: See Spring series color on korean paper on canvas 90.9×72.7cm 2020     © 브레이크뉴스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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