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두뇌 속의 감시자가 생물학적으로 존재한다

“나는 그의 존재를 1990년에 알았는데, 서양 학계에서는 1996년에 알았다”

이재운 소설가 | 기사입력 2019/02/22 [09:34]

▲SCN ©브레이크뉴스

30대 초반,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역술인들이 내 서재로 몰려들었다. 다 귀찮아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대답을 하면 만나주고 못하면 그만두었다.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게 왜 일간(日干)입니까? 연간이나 월간이 아니고 일간인 이유, 일지도 아니고 일간이어야 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난 고등학교 때 주역을 위편삼절(책이 해져 세 번 기우다)했다. 주역의 기초 원리를 모른 채 역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난 그냥 입을 다문다.

 

귀찮게 물어보면, 오늘을 주역의 음양 6효로 표시해 보시오, 해서 할 줄 알면 더 이야기하고 모르면 그만둔다.

인간이 만든 종교 중 신을 만나지 않고, 신의 명령대로 하지 않고 오직 인간의 두뇌만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창하신 분은 사캬 고타마 싯다르타 한 분 뿐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신에게 의지해 구원받자는 <믿음 우선의 교리>를 갖고 있다.

 

▲ 이재운  설설가.   ©브레이크뉴스

잘못된 믿음보다 잘못된 계산(종종 신념으로 포장되는)이 더 나쁘기 때문에 21세기에도 믿음 종교들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2600년 전에 붓다가 "믿지 말라, 너 자신도 믿지 말라"고 할 때 다른 종교는 <믿어라, 굳게 믿어라> 요구한 사실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21세기인데, 아직도 거짓으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인가, 거울을 볼 때마다 묻는다.

 

흔히 하늘이 알고 땅이 알 거라는 말을 한다. 아니다. 더 가까운 곳에서 보고 기록하는 눈이 실제로 있다. 바로 두뇌 속에 그런 감시자가 생물학적으로 존재한다. 얼마나 비겁한 인간인지, 얼마나 용렬하고 비루한 인간인지 지켜보고 있다. 그는 당신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고 나서 결정할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운명이다. 그는 SCN이다. 나는 그의 존재를 1990년에 알았는데, 서양 학계에서는 1996년에 알았다.

 

*필자/이재운. 소설 ‘토정비결’의 저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