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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뜯어보기/ 우리은행 ‘외환사기’ 논란

결국 '해프닝'으로 귀결… 만일 안들켰다면?

김경탁 기자 | 기사입력 2006/03/18 [08:13]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단계에 의례적으로 나타나는 해프닝일까, 아니면 제도자체의 결함으로 인해 처음부터 예상됐던 부작용이 현실화된 것일까? 서울외환시장이 난데없는 ‘외환 사기’ 논란에 휩싸였다.

사건의 개요를 정리하면, 우리은행이 한 공기업이 지정가로 내놓은 달러매수 주문을 임의로 취소했고, 체결내역 통보를 요구하는 업체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며 변명하다가 업체의 항의가 심하자 결국 당초 주문량의 일부만 체결된 것을 통보했다는 것인데...

일견 ‘일어날 수 있는 실수’로 보이는 이 문제가 크게 불거지게 된 것은 지난 2월 1일부로 원/달러환율의 체결가격이 공개되지 않는 '호가 이원화' 제도가 시행된 뒤, 서울외환시장에서 ‘은행권의 외환거래 체결내역 속이기’에 대한 소문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시장 선진화 명분의 '환율 이중호가제' 시행 한 달째
실시간 환율 비공개, 외환딜러들에 '불법 유혹' 환경

 
지난 3월 13일 정오경 경제전문지 <머니투데이> 홈페이지에 ‘은행권의 업체상대 외환 사기행각 들통’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는 “그동안 서울외환시장에서 공공연하게 떠돌던 은행권의 외환거래 체결내역 속이기가 사실로 드러났다”며, “모 은행은 기업체의 외환거래 주문을 해당 은행의 딜러 마음대로 조작하면서 업체에 피해를 준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튿날 후속보도에서 기사에서 언급되었던 ‘모 은행’은 우리은행으로 밝혀졌으며, 피해기업체는 공기업인 a공사였다.

우리은행은 “이번 일이 의도적인 속임수라는 세간의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 거래 과정에서 은행내 딜러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빚어진 단순 실수”라고 해명한다.

“개별 은행간 외환 거래를 담당하는 인터뱅크 딜러와 은행고객인 기업과의 거래를 맡는 코퍼레이트 딜러 사이에 의사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빚어진 실수일 뿐 결코 속임수를 쓴 것은 아니다”라는 항변.
 
a공사 “시세차익 사기, 빙산의 일각”
 
우리은행은 a공사로부터 “965.70원에 5백만달러를 매수해 달라”는 주문을 접수, 1시간쯤 후에 환율이 주문했던 수준에 근접하자, 인터뱅크 딜러가 주문을 받은 코퍼레이트 딜러에게 주문내용 확인을 요청했으나 별다른 응답이 없어 주문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20일 a공사로부터 “965.70원에서 5백만달러를 매수해달라”는 주문을 접수받았는데, 환율이 주문을 받고 한시간 동안 지정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미체결 상태가 지속된다.

매수주문시점으로부터 1시간 정도가 지난 뒤 환율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우리은행의 외환담당 딜러는 환율이 965원 아래로 하락할 것이라고 판단, 기존 달러 매수주문을 취소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실수로 공사의 주문도 함께 취소시킨다.
이후 공사의 주문이 잘못 취소된 것을 확인하고, 같은 조건으로 매수주문을 다시 접수시켰으나, 오후 2시33분과 2시52분에 각각 1백만달러씩만 거래가 체결됐고 나머지 3백만달러는 거래시키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a공사는 우리은행의 해명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이번 사건은 시세차익을 노린 은행의 고의적인 취소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은행이 자의로 주문을 취소시키고도 여러차례 말바꾸기를 하는 등 신뢰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a공사가 우리은행으로부터 넘겨받은 거래 체결 내역을 확인해본 결과 a공사의 주문이 취소되었다는 직후 애초 주문과 동일한 규모의 거래가 이루어졌고, 우리은행은 잠시후 이를 되팔아 시세차익을 거뒀기 때문이다.

a공사에 따르면 a공사는 2월 20일 오후 1시 5분 우리은행에 “965.7원에 500만달러를 매수해 달라”고 ‘지정가 주문’을 냈고, 1시간 쯤 뒤인 2시20분경 우리은행으로부터 “해당주문을 취소했다”는 답변을 듣는다.

a공사는 항의하면서 동일 주문을 다시 접수하는데, 이번에는 착오로 주문이 누락됐다는 해명이 돌아왔고, a공사는 결국 우리은행으로부터 “2시 48분 1백만달러, 3시 장마감후 추가로 1백만달러가 체결돼 5백만달러의 주문 중 2백만달러만 체결됐다”는 통보를 받는다.

상황이 석연치 않다고 여긴 a공사는 우리은행의 실시간 외환거래 내역 공개를 요구, 우리은행이 이날 2시30분50초에 5백만달러를 965.7원에 매수했다가, 2시31분59초에 5백만달러를 966.1원에 매도한 사실을 찾아낸다. 1분만에 2백만원을 번 것이다.

우리은행은 1분만에 2백만원을 벌어들인 이 거래가 소속 지점에서 들어온 매수주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a공사는 자신이 낸 매수 주문을 체결해놓고 환율이 오르자 이를 되팔아 시세차익을 남긴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은행 “의사소통 문제 인한 실수”
 
은행에서 외환거래를 담당하는 딜러는 코퍼레이트 딜러와 인터뱅크 딜러로 나뉘는데, 통상 코퍼레이트 딜러는 기업으로부터 받은 거래 요청을 구두로 인터뱅크 딜러에게 전달하며 인터뱅크 딜러는 접수주문 및 거래 체결 업무를 담당한다.

우리은행에는 코퍼레이트 딜러가 4명이 있는데 반해 인터뱅크 딜러는 1명 밖에 없어서 양자간 구두로 매매 관련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번과 같은 실수가 빚어졌다는 설명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경우 의사소통 과정에 실수가 있었다는 점을 발견한 이후 인터뱅크 딜러와 코퍼레이트 딜러 사이에 자존심 문제 등이 얽히면서 문제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우리은행은 이번 사안이 ‘실수’였음을 인정하고, a공사가 낸 주문을 제때에 체결시키지 못한 데 대한 보상으로 앞으로 우리은행과 외환 거래를 할 때 a공사에는 우대환율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또한 이번 실수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인원 배분이나 업무 조정 등을 통해 보완책을 마련할 방침이며, 이러한 실수가 재발되지 않도록 교육과 훈련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주무관청인 한국은행은 “이번 사건에 대해 경위를 파악해본 결과 우리은행측 실수를 오해한 데 따른 해프닝으로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기업의 주문을 실수로 은행이 취소해 논란이 된 적은 과거에도 있었다”며, “사건에 대한 조사를 더 진행한 후, 앞으로는 이런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제도적인 개선책을 강구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인 외환시장운영협의회도 “하루에만 수십억달러씩 외환을 거래하는 시중은행이 신용도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치팅 같은 위험한 짓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은행 딜러들의 단순 실수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하지만 은행에서 외환 거래를 하는 기업들과 일반 국민들이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른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과 같은 은행의 환거래 조작과 사기 행위가 원래부터 있었고, 원/달러환율의 실시간 체결가격이 공개되지 않는 '호가 이원화' 제도가 시행된 뒤부터는 이러한 행위가 더욱 빈번해졌다고 보고 있다.

소식을 전한 <머니투데이>의 기사에는 “대기업을 상대로도 치트를 한다면 중소기업들은 안봐도 뻔하다”거나, “먹으면 은행 포지션, 깨지면 업체 주고... 일부 은행권의 성과급 파티로 점점 더 얼룩져가는 서울환시장”이라는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특히 한 네티즌은 “은행에서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돈을 버는군요. 대부분의 기업은 그 반대인데... 은행은 개판이 되면 될 수록 돈을 버는 조직이군요. 인제 앞으로 개판이 되도록 은행 경영진은 직원을 독려하겠네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환율 이중호가제도’란?
정보차단 통한 외환 도·소매 시장 분리
실시간 환율 숨기고 ‘준거환율’로 거래

 
‘환율 이중호가제’란 외환시장을 은행끼리의 도매시장과 개인과 기업이 참여하는 소매시장으로 분리해 은행의 ‘시장 조성자’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국내에는 올해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은행간시장의 실시간 환율에 기초해 개별 은행이 각자 자기 이름을 걸고 매도환율과 매수환율을 동시에 제시(이중 호가)하고, 은행이 제시한 ‘준거 환율’을 근거로 기업이나 개인이 은행과의 흥정을 통해 외화를 사거나 판다는 개념이다.

외환거래를 하는 은행들의 협의체인 외환시장협의회는 지난해부터 ‘대고객 외환매매 시장정보 전달체계 개선안’을 통해 ‘환율 이중호가제’ 도입을 추진했고, 한국은행은 지난 연말 이 제도의 도입을 전격 발표한다.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외환 도매시장인 은행간 시장의 호가를 기업이나 개인 등이 제한없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지만 이중호가제가 도입되면서 실시간 환율은 외환거래를 하는 은행에게만 공개되고 있다.

일반에 실시간으로 제공되던 정보를 갑자기 볼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이번에 의혹이 불거진 사건과 같이 ‘은행 딜러들이 호가를 속일 수 있다’는 우려는 제도도입이 추진되던 시점부터 제기되었다.

은행권에서는 호가가 실시간 제공되는 상황에서 기업담당 딜러들 입장에서 성과급 확대를 위해서는 현물환 딜러보다 거래기업에 더 큰 이익을 줘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작은 이익 때문에 모험을 걸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7월 ‘환율 이중호가제’ 도입 추진 사실이 알려지자 기업체들 사이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으며, 특히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자체 발간하는 <중소기업뉴스>를 통해 반발의 목소리들과 근거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도 했다.

당시 <중소기업뉴스>는 “외국환거래 은행간의 실시간 거래환율정보를 비공개하거나 시차를 두고 공개하는 방안이 추진돼 외환정보 우위를 확보한 은행들만 배불리는 것 아니냐는 볼 맨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며 기업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중소기업뉴스>는 기업과 비은행권 외환시장 참여자들이 환위험 관리 차질 우려와 정보 독점에 따른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업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중호가제를 도입할 경우 은행들이 수혜를 입는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가진 대기업들은 내부적으로 네고가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들에게는 스프레드 확대에 따라 불리한 조건에서 매매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한편 제도의 도입 취지인 ‘환율 왜곡 억제’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일부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환율시장 개입 시점이 즉각 드러나지 않아 개입효과를 극대화할 수는 있겠지만 역외 투기세력이 이용하는 정보가 실시간 환율뿐이겠냐는 지적이다.
2001년 9월 해운업계 전문지인 <한국해운신문>에서 조선업계 출입 및 외신부 기자로 언론인의 길을 시작했으며, 2005년 11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브레이크뉴스+사건의내막 경제부에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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