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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 앞으로 몇 년을 더 살겠소. 경은 고의 심정을 그리 모르오!

<역사소설 대륙풍운(大陸風雲)-139>장사왕의 일편성심이 얼마나 갈까?

이순복 소설가 | 기사입력 2018/08/19 [01:01]

▲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진조가 피바람 속에 묻히고 만 것은 백치황제의 결여된 리더십이 빚어낸 피할 수 없는 참극일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다보면 황후 가남풍의 수렴청정의 실패에서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무분별한 인재등용의 실패는 여러 친왕들의 정권욕과 탐심에 부채질을 했던 것이다. 달콤한 권력 맛을 즐기게 된 친왕들은 낙양정권을 차지하려고 체통을 버려두고 권모술수를 즐기게 되었다. 그래서 천하의 모사들이 친왕들의 주변을 맴돌면서 손수와 손순처럼 기회 포착의 시간을 갈망하고 있었다.

역사는 정과 사가 섞기고 바꿈질하면서 꾸려가는 것일까?’

 

천하를 호령할 칼자루를 쥐었다고 생각한 장사왕 앞에 왕바위처럼 거대한 장애물이 나타났다. 그도 한손에는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칼을 쥐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 두 자루의 천하 검은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차창~ ~”

제왕과 한판 승부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었기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송홍과 마함을 두 장수에게 명하기를

송장군과 마장군은 속히 우림군 2천군을 이끌고 궁성 안의 동화문을 굳게 지키라. 머리가 둘 달린 자 라도 동화문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라!”

장사왕은 동화문을 단단히 지키라 단속하고 친히 상관기 황보상 왕구 등을 좌우에 대동하고 우림군 5천을 이끌고 운룡문 밖으로 나섰다. 마침 동예와 유은이 제왕군의 진중에 당도하였다. 동예가 장사왕을 보고 먼저 호통 치기를

장사왕은 어찌하여 까닭 없이 군사를 움직여 존엄한 금문을 유린하고 죄 없는 백성을 놀라게 하시오. 찬역의 뜻이 있는 것 아니오.”

 

장사왕은 냉소를 지으며 동예를 준엄하게 꾸짖기를

흐흐, 이놈 무엄하구나. 누구 앞에서 감히 적반하장의 수단을 부리느냐. 너희 제복5공이란 놈들이 제왕의 총명을 가리고 간녕과 포학을 일삼아 조정이 누란의 위기에 놓였다. 하여서 천자께서 특별히 성도왕 하간왕과 나에게 조칙을 내리시어 악역을 주토(誅討)하라 명하셨다. 네 감히 우림군에게 항거하겠단 말이냐.”

동예는 장사왕이 천자를 업고 나서는 바람에 움찔하며 대꾸하지 못했다. 또 실제로 눈앞에 어림군이 버티고 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이와 같이 상황이 급변하자 제왕의 군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형세가 기울었음을 알고 망설이었다. 이 때 유은이 별안간 큰 소리로 외치기를

너희들은 왜서 망설이기만 하느냐. 냉큼 내달아 반역도 장사왕을 사로잡지 못하느냐. 장사왕을 잡는 자에게 만호후를 봉한다는 제왕의 분부시다.”

이 말에 노수와 위의 2장이 말을 몰아 앞으로 내닫았다. 장사왕은 얼른 상관기와 왕구를 내보내서 2장 막게 했다. 그리하여 운룡문 앞에서는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다. 해가 동천에 높이 솟아 날이 밝은데도 싸움은 그치지 않았다.

죽여라! 까 부셔라! 역적 놈을 쳐 죽여라!”

 

제왕과 장사왕의 수하 장졸들은 험한 욕설을 퍼부으며 벌어진 싸움이 그치지 않자 백성들은 벌벌 떨면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바깥을 나오지 않았다. 모두 집안에서 쿵쿵 뛰는 가슴을 조이고 떨고 있었다. 양군이 승부를 내지 못하고 싸움이 지지부진하고 있을 때 제왕의 부중에서 갈여가 1만 철갑병을 이끌고 왔다. 형세가 점점 장사왕 쪽이 어려워지고 있을 때 동화문을 지키던 마함이 급히 말을 몰고 장사왕에게 달려왔다. 마함은 손에 추우의 번을 받들고 있었다. 바깥의 심상치 않은 상황을 보고받은 양현지가 혜제에게 주달하여 추우의 번을 들고 나가게 한 것이다. 마함은 상관기와 황보상의 보호를 받으며 추우의 번을 들고 진두로 나서서 외치기를

여기 황제의 칙명으로 추우의 번을 들고 나왔으니 양군은 즉시 싸움을 멈춰라. 이 기의 쓰임새를 모르는 자가 있느냐. 이 기를 보고도 창칼을 휘두르는 자는 역적으로 낙인찍어 3족을 멸한다. 이 기의 위력을 아느냐? 모르느냐?”

 

이리 외치는 소리에 추우의 번의 효험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양군의 장졸들은 순간적으로 싸움을 멈추었다. 그러나 마함의 입에서 또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갈여의 외치는 소리가 먼저 터져 나오기를

저 추우의 번은 장사왕이 천자를 위협하여 강제로 들고 나온 것이니 군사들은 속지 말라.”

그러나 제왕의 군사들은 선뜻 갈여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이 망설이고 있을 때 마함이 곧 바로 갈여의 뒤를 이어 소리치기를

난신적자 갈여는 들어라! 네놈이 끝까지 우림군과 추우의 번을 보고도 요망한 말을 할 테냐. 언사를 함부로 놀리지 마라. 머지않아 성도왕과 하간왕의 대병이 입성하면 네놈들은 몸이 만 갈래로 찢어지고 9족과 함께 주륙되리라. 군사들아! 저 역도의 말에 속지 말고 어서 무기를 버려라. 지체하면 역도와 연루된 자로 찍혀 이 추우의 번 아래서 참형을 당할 것이다.”

 

마함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제왕의 군사들은 1. 2. 3 무기를 버리고 대열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혹자는 우림군에게 항복해 오기도 하고 혹자는 달아나기도 하였다. 일이 이토록 급변하자 갈여 동예 손순 유은 등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제 자기들의 영이 서지 않자 얼른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장사왕은 수하 장수들에게 급히 영을 내리기를

속히 달아나는 간당들을 사로잡아라!”

상관기와 황보상은 날랜 1천 우림군 거느리고 질풍처럼 갈여 등의 뒤를 추격하였다. 갈여와 동예 등은 불과 2마장도 가지 못하고 상관기가 거느린 우림군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노수와 유의 한태 등도 제왕 부중에 닿기 전에 사로잡혔다. 이들이 쉽게 붙들린 것은 낙양의 백성들이 도와주었기에 때문이다. 거리로 나온 백성들은 도망치는 제복5공의 길을 끈질기게 막았다. 그만큼 그들은 오래 전부터 백성들에게 인심을 잃었던 것이다. 제복5공의 악당을 모두 체포한 장사왕은 친히 어림군을 이끌고 제왕의 부중으로 들어가서 제왕을 붙잡았다. 한데 웃기는 것은 제왕의 모사 손순은 대세가 기운 것을 알고 약삭빠르게 제왕의 부중을 빠져나와 장사왕에게 항복하였다. 장사왕은 손순의 해박한 식견과 예리한 재주를 높이 사서 그의 항복을 받아드렸다. 거사를 성공리에 마친 장사왕은 그날로 갈여 동예 유은 한태 노수 유의를 거리로 끌어내어 목을 베고 그들의 3족을 주륙하였다. 그리고 제왕에게는 사약을 내렸다.

 

제왕 경이 죽으니 소용돌이치던 역사의 한 매듭이 풀렸다. 긴장과 살벌, 저주와 질투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 숨 가쁘게 지나갔다. 장사왕 예에게 희망찬 새날의 여명이 터 올 때 파발마가 달려와 보고하기를

지금 성도왕과 하간왕의 선봉군사가 금방 성 아래 당도하였습니다. 하명을 주시라는 도위의 말씀이십니다.”

“... ...”

 

장사왕은 얼른 대답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거사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대의명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궁리해보다가 그냥 하는 말이

알았다. 날이 밝으면 입궐하여 폐하께 아뢰어 윤허를 받은 다음 연락할 테니 성 밖에서 둔병하라 하여라.”

파발마를 돌려보낸 장사왕은 급히 일어나 몸을 추스르고 나서 곧 상관기를 대동하고 사공부로 양현지를 찾아갔다. 양현지에게도 이미 파발마가 다녀간 뒤였다. 뜻밖에 장사왕이 찾아오자 양현지는 허둥지둥 뜰로 내려와 장사왕을 맞았다. 장사왕은 양현지를 만나자마자 성도왕과 하간왕의 군사를 어찌하는 것이 좋을지 그 대책을 물었다. 양현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아니하고 대답하기를 두 왕의 군사를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입성시켜서는 아니 됩니다. 먼저 황제를 모시고 만조백관을 모아서 이번 거사에 대한 처리를 천명하십시오. 그리고 칙명으로 성도왕과 하간왕에 대한 훈공을 포상토록 하고 양 왕의 선봉에게 벼슬을 내리도록 하십시오. 그런 후에 갈여와 동예 등의 수급을 성 밖으로 보내서 이미 대사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시면 양 왕이 굳이 군사를 몰고 입성하겠다고 우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장사왕은 양현지의 말을 듣고 비로소 근심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러나 장사왕의 고심은 두 왕의 휘하 장수들의 광포였다. 특히 장방과 석초의 잔인한 성격을 알기에 그들이 입성하면 한바탕 피바람이 일 것을 걱정하였다. 죄 없는 제왕 부중의 군사들과 무고한 백성들이 해를 입을 것을 근심했던 것이다.

불상사는 미리 막아야 해.’

 

양현지의 사공부를 나온 장사왕은 그리 생각하며 그 길로 입궐하여 문무백관을 불러 모이게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양현지의 의견대로 추진하였다. 성도왕과 하간왕에게 1천호를 증록 하고 장방에게는 평난거기장군의 벼슬에 관내후의 봉작을 내리고 석초에게는 평난표기장군의 벼슬과 장업후의 봉작을 내렸다. 또 업성과 관중의 군사들에게도 골고루 상을 내리고 술과 고기로 호궤한 다음 갈여 등의 수급을 보내서 양로의 군사들이 볼 수 있도록 효시하였다.

이와 같은 공적인 조처 외에 장사왕은 따로 성도왕에게 사신을 닦아서 보냈다. 그 날 미시 경에 성도왕은 낙양성 밖 10 리 허에 둔병하고 있는 석초의 장막에 당도하였다. 성도왕은 석초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장사왕의 편지를 전했다.

 

편지의 내용은 제왕의 지나친 전횡을 꺾고 참녕도배를 주륙하여 백척간두에 놓였던 종묘사직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성도 하간 두 왕의 덕이니 속히 입조하여 제왕이 하던 일을 맡아서 황제를 보필해 주시기 바란다는 것이었다. 성도왕은 편지를 장사 노지에게 주며 그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편지를 꼼꼼히 다 읽고 난 노지가 천천히 입을 열고 말하기를

이번 일은 장사왕 때문에 무혈입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성안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 쯤 낙양성은 쑥대밭이 되고 수많은 성명이 피를 흘리며 죽어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장사왕은 모든 공을 대왕과 하간왕에게 양보하고 손아귀에 들어온 대권을 대왕에게 양보하고자 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갸륵한 마음입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이번에는 모든 것을 장사왕에게 깨끗이 사양하시고 업성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더욱 빛나는 미덕이 아닐까 합니다.”

성도왕은 즉석에서 노지의 의견을 좇아 결정하기를

좋소. 돌아갑시다.”

 

결단을 내린 성도왕은 혜제에게 올리는 표문과 장사왕에게 보내는 서장을 써서 성중으로 드려 보내고 그 밤을 군막에서 쉬고 업성으로 회군령을 내렸다. 성도왕의 반사한다는 전갈을 받은 장방도 군사를 관중으로 회군시켰다. 장방으로부터 회군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들은 하간왕은 안색이 밝지 못했다. 사실 하간왕은 50줄의 나이라서 이번이 그가 조정에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여겼다. 그래서 제왕을 밀어내려고 서둘러 성도왕과 장사왕을 움직였으나 결국 그의 꿈은 깨어지고 대권의 주인은 장사왕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역정을 내거나 함부로 일을 다시 꾸밀 형편도 아니었다. 하간왕은 혼자서 짜증을 내기도 하고 풀기도 하다가 훌쩍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장사 이함이 조용히 입을 떼어 말하기를

소신이 대왕의 성려하심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에 하간왕은 안으로 들어가려던 발길을 멈추고 이함을 바라보며 묻기를

이때에 나를 위해 달리 무슨 특별한 계책이라도 있소?”

생각해 보면 어찌 계책이 서지 않겠습니까? 대왕께서는 이번 거사의 주된 일을 모두 시작하고 꾸며냈으니까요.”

하간왕은 이함의 말에 만감이 교차했다. 장사왕의 민첩한 소행이 괘씸하고 분하게만 생각되었다.

내가 내 권리를 행사할 틈을 주지 않고 발 빠르게 그리 단행했단 말인가?

 

장사왕의 한발 빠른 논공행상 결과를 두고 하간왕은 억울하다는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처음 자신이 꾸며 놓은 계책을 제멋대로 해 재끼고 양에 차지 않은 논공행상을 해버린 것은 불평을 넘어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그런 락 감정을 품고 있는 하간왕의 심리를 파악한 이함이 하간왕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작은 빌미라도 있다면 튀어나가 정권을 쟁취하고 싶은 하간왕은 이함을 가까이 불러 속마음을 털어놓고 묻자 이함이 대답하기를

옛날 태공망이 황하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80년 동안이나 세월을 낚았습니다. 그러다가 주 문왕의 부름을 받고 천하를 경륜하였습니다. 대왕께서는 어찌 그 고사를 잊으셨습니까. 좀 더 기다리시면 반드시 좋은 때가 올 것입니다.”

고가 살면 앞으로 몇 년을 더 살겠소. 경은 고의 심정을 그리 모르오.”

하간왕은 그와 같이 한 마디 던지고 옷자락을 떨치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어느 덧 세월이 흘러서 반년이 지났다. 그 동안 장사왕 예는 조정의 대소사를 일일이 업성의 성도왕에게 상의하여 그의 동의를 얻어 시행하였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이런 장사왕의 태도를 겸양지덕이라 하여 다 같이 칭찬했다. 장사왕의 관용지덕으로 친왕들 끼리 권세다툼이 사라진 것으로 대신들은 이해하며 안도의 숨을 내어쉬었다. 성도왕도 이런 장사왕의 처신을 만족해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장사왕을 칭찬하는 일을 아끼지 아니했다<계속>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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